“나랑 성관계해 주면 돈을 주겠다고 했는데 계속 반항했어요. 살려서 보낼 수는 없겠다 싶었죠.”
수원 20대 여성 피살사건의 범인 오원춘(吳元春·42) 씨는 9일 경찰청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감에게 이렇게 말했다. 7일부터 사흘간 오 씨를 심층 면접 한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 경감은 오 씨가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른 과정을 상세히 전했다.
○ 피해자 얼굴 가리고 시신 훼손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사건 당일인 1일 오후 10시 32분 오 씨는 집 앞 전봇대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다 피해자 A 씨가 지나가자 넘어뜨린 뒤 10m 정도 떨어진 집으로 끌고 들어왔다. 오 씨는 경찰 조사에서 “술 먹고 외로움을 느끼다 멀리서 여성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일부러 넘어뜨렸다”며 계획적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권 경감에 따르면 오 씨는 A 씨에게 “돈을 줄 테니 성관계를 맺자”고 요구했다고 한다. A 씨가 계속 거부하자 오 씨는 “그럼 돈을 더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통하지 않았다는 게 오 씨의 주장이다. 오 씨는 “살려 보내면 신고할 것 같아 방 안에 있던 스패너로 머리를 내리친 뒤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말했다.
오 씨는 시신이 여행가방에 잘 들어가지 않자 시신을 훼손했는데 그 방식이 여느 흉악범들과는 달랐다고 한다. 권 경감은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전문 도구를 이용해 신속히 시신을 토막 내 분리했는데 오 씨는 부엌용 식칼을 썼다”며 “몇 시간에 걸쳐 살점을 발라내는 식으로 시신 부피를 줄이려 했다”고 말했다.
권 경감은 또 “오 씨가 피해자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린 채 시신을 훼손했는데 이는 오 씨의 소심한 성격을 보여주는 것으로 범인 자신도 끔찍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오 씨의 범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했다. 오 씨는 피해자의 시신을 무려 280점으로 조각내는 악마 근성을 드러냈다. 권 경감은 다만 “오 씨가 범행에 생활도구만 쓴 것으로 봐 살인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시신을 훼손하기 위한 전문 도구도 미리 준비하지 않았고 14개 비닐봉지에 나눠 담은 뒤엔 스스로 한동안 멍하니 서 있기도 했다는 것.
○ 놀림받을까 봐 대인기피
오 씨는 고향인 중국 옌볜에 몽골인 아내와 여덟 살 된 아들을 두고 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농사일을 시작한 그는 여덟 살 많은 누나와 일곱 살 어린 여동생, 부모를 부양했다. 농사로 고리의 빚을 갚으며 생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권 경감은 “오 씨가 고향에서도 가난과 무식 때문에 무시당해 대인기피 증세가 심했다”고 했다. 오 씨는 몽골인 아내에 대해서도 “부모가 점지해 결혼했고 말이 안 통해 제대로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권 경감은 오 씨가 이렇다 할 이상형을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여성과 감정적 교류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오 씨는 인생역전을 할 요량으로 2007년 한국에 왔다. 그는 노동일을 하며 최근까지도 한 달에 한두 번 2만, 3만 원을 주고 성매매를 했다고 한다. 집과 공사장을 오가는 게 일상의 전부였고 집에선 혼자 독한 술을 자주 마셨다. 인간관계라곤 공사장에서 만난 인부 몇 명과 성매매 여성들뿐이었다. 오 씨 동료들은 “겁이 많고 말없이 일만 하던 사람인데 정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권 경감은 “오 씨가 어려서부터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해 자존감이 매우 낮았는데 A 씨를 굴복시키며 자존감을 세우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억눌린 자존감을 잔혹하게 표출한 살인마라는 것이다.
오 씨는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많이 맞았는데 커서 체력이 강해진 뒤에는 친구들 20여 명을 찾아다니며 때려줬다”고 말하며 소리 내 웃기도 했다.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여부를 알아보는 진단검사(PCRL)에서는 22점(35점 만점)이 나왔다. 25점 이상이면 사이코패스로 간주하는데 유영철은 이 검사에서 34점을 받았다.
○ “운이 없어 걸렸다”
2일 아침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오 씨는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 시신을 훼손했던 화장실은 나름 걸레로 핏자국을 닦았지만 감식 결과 벽면에서 수백 점의 혈흔이 나왔다. 오 씨는 “경찰이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어디로 도망가겠느냐”고 했다. 권 경감은 “오 씨에겐 경찰이 중국 공안 이미지로 각인돼 있어 저항할 엄두를 못 냈다”며 “경찰에 걸리면 어렵게 모은 돈도 다 뺏기고 총살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증거를 인멸하려 한 것 같다”고 했다.
오 씨는 조사 과정에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오 씨는 “내가 왜 그때 거기(집 앞 전봇대)를 갔는지, 그 여자가 왜 내 앞을 지나갔는지 정말 재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 경감에 대해 “목마르다고 하면 커피도 타주고 자상하게 대해 준다”며 고마워했다. 권 경감이 ‘식사는 잘 하느냐’고 묻자 오 씨는 “난 반찬 같은 건 필요 없고 밥만 많이 주면 된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10일 오 씨를 검찰에 송치하고 여죄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오 씨가 머물렀던 경남 거제, 부산, 제주 등에서 가출 및 실종 신고된 14세 이상 여성 151명의 소재를 확인 중이다. 다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된 성폭행 관련 미제사건 유전자(DNA) 중 오 씨의 것과 일치하는 것은 한 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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