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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45447
    작성자 : red.irect
    추천 : 34
    조회수 : 3023
    IP : 221.165.***.229
    댓글 : 6개
    등록시간 : 2013/04/09 14:28:08
    http://todayhumor.com/?panic_45447 모바일
    여성분들, 늦은 귀가길에는 가급적 이어폰을 빼는게 좋습니다.

    옳은 일을 했다고 해도, 가끔은 그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럴때마다 '그냥 못본 척 하는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요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집근처 헬스장에서 웨이트와 유산소를 겸해서 하는 편이고,

    가끔 퇴근이 늦거나 할 경우는 집 근처 한적한 동네공원에서 줄넘기나 달리기를 하는 편입니다.


    어제는 퇴근이 무척 늦었습니다.

    집에오니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날씨도 궂어서 운동을 거를까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왕 마음먹은거 제대로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서,

    집 근처 공원에 나갔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경기도 외곽의 전원주택단지 입니다.

    요새는 근처에 대형아울렛이 생겨서 지역경제가 바뀌는 모양이지만,

    아직까지도 이 동네의 지역생산의 대부분은 농업이고, 서울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따라서 늦은 저녁이 되면 동네 전체가 고요해집니다. 

    시골이라는 특수성과 근처에 논과 밭 등 작물들 때문인지 보안등(가로등)도 어두운 편입니다.


    아무튼 자정이 넘은 시간에 줄넘기를 하면, 이웃에 민폐가 될 것 같아 가볍게 -

    셔틀런(구간반복 달리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쳐서 큰 길가 도로 경계석에서 쉬는 중이었습니다.


    자정 즈음에 동네로 들어오는 막차를 끝으로 지역의 모든 대중교통이 종료됩니다.

    아마도 그때 걸어오시던 여성분은 그 막차를 타고 오셨던 걸로 생각됩니다.

    버스정류장에서 제가 있던 곳으로 오는 길은 특히나 더 어둡습니다.

    어둡긴 하지만 길 자체가 꽤 넓은 편이고 인근에 집들이 많아서 딱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 길입니다.


    멀찌감치 걸어오던 그 여성분의 얼굴은 유독 더 또렷히 보였습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걷기 때문이었죠. 얼굴만 둥둥 떠온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한참을 보던 중, 그 뒤를 따르는 한 남성이 어스름하게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아무튼 어두운 계통의 정장을 입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별 생각없이 다시 공원으로 돌아가려는데, 좀 이상한 광경을 봤습니다.

    걸어오던 여성이 무엇때문인지 갑자기 제자리에 섰고, 그 남자도 간격을 유지하며 제자리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여성이 다시 걷자, 남자도 다시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아 이거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 공연히 나서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그냥 지켜만 봤습니다.


    사실 제가 큰 키는 아니지만 덩치는 좀 있는 편입니다.

    운동복의 하의와 상의 모두 검정색의 속건성 이너웨어(타이즈)였고, 모자까지 뒤집어 쓴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날이 꽤 쌀쌀해서 검은 짚업후드까지 입은 상태였습니다. 쫄쫄이 위에 짧은 반바지, 후드, 모자만 쓴 덩치 큰 남자.

    이건 누가봐도 위협적인게 분명하지 않나요. 큰 키는 아니지만 일단 키도 180이 넘습니다.

    괜히 나섰다가 오히려 그 여성이 위협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여성이 제가 있는 곳 근처까지 무사히 왔을때는, '아 별일 아닌가보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건, 그 남자의 구둣발소리가 멀리 앉아있던 저한테까지도 들렸지만 -

    그 여성분은 어떠한 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겁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이어폰까지 꽂은 상태였던거죠.

    이거 굉장히 위험합니다. 시각과 청각을 스스로 차단해버린거죠.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


    아무튼 그 상황에서 결국은 사단이 났습니다.

    남자가 뒤에서 여성분을 덥쳤고,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제압당한 여성분은 차마 소리도 못지르고 있더군요.

    제 잘못입니다. 제가 진작에 기척이라도 냈다면 그 남자는 범행을 포기했겠지요.

    그 상황에서 나서지 못한 제가 잘못입니다.


    이후 제가 나서서 남자를 제압했고, 그 여성분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재빠르게 도망갔습니다.

    정말 빠르더군요. 흡사 우사인볼트가 뛰는 마냥 폭발같은 스퍼트로 금새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남자를 제압하는 것은 쉬웠지만 흉기가 있었던지라 제가 좀 다쳤습니다.

    아마도 여성을 위협할 목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흉기였던 것 같습니다.

    복장이 정장이었기에 제압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제가 너무 쉽게 본 것이 잘못입니다.

    그렇게 허벅지에 흉기를 맞고, 범인을 놓쳤습니다. 그리고 그 여성분도 사라졌습니다.


    범인을 현장에서 잡지도 못했고, 근처에 CCTV도 없는데다가 인상착의 또한 기억을 못하니 잡을래야 잡을수가 없지요.

    혹시나 버스를 타고 온 것이 아닌가하여, 경찰측에서 버스 내 CCTV를 확인한 모양인데 그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고, 오늘하루 병가를 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범인을 잡지도 못했고, 그 여성을 위험에서 구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출근도 못했고, 돈은 돈대로 썼네요.

    그리고 오늘부터 또 한동안 운동을 못하고, 업무에도 큰 차질이 생겼습니다.

    분명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오늘 하루종일 질타만 받고 있는건지.. 절 보는 모든 사람들이 오지랖도 그정도면 병이라고 하네요.

    어떻게 생각하면 한심하기도 하고, 종합무술을 배운 몸으로서 뜬금없이 칼을 맞았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뭐, 그래도 여성분에게 닥칠 최악의 상황을 막아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합니다.

    그 상황에 제가 그 자리에 있었으니 망정이지, 칼까지 들고다니는 범죄자가 설마하니 그 여성을 한번 안아보고 끝내진 않았겠지요.

    허벅지 이거.. 딱히 큰 손상도 아니니 금방 아물 것 같습니다. 그러니 됐습니다.


    하지만 범죄는 발생 이후의 대처보다는, 예방이 더 우선입니다.

    늦은 시각, 특히 어두운 곳에서는 청각과 시각을 열고 주위에 집중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혹시나 늦은 시각에 퇴근하는 여성분이 계시다면 이 부분 꼭 알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호신술 별거 없습니다.

    훈련을 잘 받은 여성이라 할지라도 갑자기 뒤에서 덥치면 대처하기가 어렵습니다. 차라리 호루라기 하나 들고다니는게 낫습니다.

    또한 근접한 상황에서의 동작은 아무래도 여성보다는 남성이 유리합니다. 힘으로는 상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예방이 우선입니다. 스마트폰 그거.. 정말로 급한게 아니라면 집에가서 확인하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어폰,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안전과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시한번 부탁드립니다.

    늦은 시각에 한적한 길을 걸을 때는 스마트폰은 잠시 주머니에 넣어두시고, 음악을 듣지 말고 주위의 소리를 듣길 바랍니다.

    여성분은 물론이고, 남성분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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