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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45425
    작성자 : 무도빠란다
    추천 : 10
    조회수 : 2643
    IP : 39.113.***.213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3/04/08 23:18:05
    http://todayhumor.com/?panic_45425 모바일
    엘리베이터(어플펌)

    지현은 평범한 세일즈 우먼이다. 그녀는 매주 수요일만 되면 항상 그렇듯 쓰레기를 버리러 아파트 단지 내의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물론 쓰레기를 버리려는 목적이 주가 되겠지만 하루를 바쁜 일상에 찌들어서 살아야하는 세일즈 우먼으로선 수요일 밤의 하늘만큼
    안식을 주는 대상 또한 없기에, 그녀는 왠만하면 이 날만큼은 (굳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도 될 만큼의 양이라 할지라도)
    가벼운 걸음으로 밤하늘을 보러 나간다.

    그날도 역시 하루의 여독을 풀기 위해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무거운 어깨가 그녀를 짓눌렀지만
    높고 까만 하늘을 본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에게 더없는 안식을 줄 수 있을거란 생각에 지현은 한없이 들떠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기대는 한 남자에 의해 여지없이 깨지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 남자가 지현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아니었다. 그 남자는 그저 남아도는 체력을 쓸 곳이 없어 무턱대고 아파트단지를
    뱅글뱅글 도는 무식한 남자처럼 보였고, 그러한 남자에게 모두 신경쓸 만큼, 아니 그런 남자들에게 관심을 끌 만큼 그녀는 이쁘지도,
    그렇다고 남다른 매력이 있지도 않았던 터였다. 그러나 그녀가 쓰레기장까지 도착하는 그 잠시동안 그 남자는 그녀와 총 5번을
    마주쳤고, 그때마다 그 남자가 지현을 기분나쁜 듯이 쳐다보는 탓에 그녀 역시 그 남자의 존재가 영 달갑지않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기분나쁜 남자잖아. 내 즐거운 수요일밤이 저런 짐승같은 남자때문에 망가져야 하다니..억울해!'

    그때였다.
    "이봐요"
    소심한 지현이 땅을 보며 이런저런 불평을 중얼거리고 있던 바로 그때, 기분나쁜 그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저 말씀이신가요?"
    지현은 평범하지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세일즈우먼이었기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최대한 정중하게 그의 물음에
    답했다. 그러나 예의를 갖춘 그녀에게 돌아온 한마디는 나이 30이 되도록 일에 집중한 터라(물론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남자 한번 못만나본 그녀에겐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거 나이도 있으신 아줌마가 애 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시키신 겁니까?"
    "네..? 애라뇨??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
    "아까부터 내가 쭉 지켜봤는데 댁 어깨에 매달린 그 애가 자꾸 날 보면서 기분 나쁘게 웃잖아요. 참는 데도 한계가 있지..
    도대체 얼마나 오냐오냐 키웠길래 쥐똥만한 꼬맹이가 저런 기분 나쁜 눈으로 사람을 째려보면서 비웃는 거요?
    하여간 요즘 아줌마들은 문제가 있다니까..쯧쯧"
    "이봐요..말이 좀 심하신데요? 거기다가 저는 아직 결혼도 안했다구요!"
    "허..거참...변명도 유분수지. 있는 애를 없다고 하는 것도 모자라서 결혼을 안했다구요? 자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보슈.
    댁 꼴이 집에서 김치찌개 끓이다 나온 애 셋 딸린 아줌마같은지 파릇파릇한 처녀같은지. 아~더이상 아줌마랑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없으니까 얼른 쓰레기 버리고 아까 그 애 데리고 갈 길 가슈. 그 꼬맹이는 금새 또 어디로 튀어간 건지...거참 재수가 없으려니까..."

    이내 빠른 걸음으로 어두운 아파트 뒷편으로 사라져가는 남자를 바라보던 지현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의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도대체 저 우락부락한 남자는 다 큰 처녀한테 그런 심한 결례를 범하고 어찌 저리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엘리트한 자신이 참아야 한다며 속을 진정시켰지만 상당한 굴욕감이 그녀를 짓누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즐거운 수요일의 검은하늘에서 느꼈던 평온함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애라고? 도대체 무슨 애라는 거야? 그리고 뭐? 아줌마? 하 참.. 지는 무슨 장동건 빰치게 생긴줄 아나? 너야말로 오지헌 페이스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그녀는 주위에 아이가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주위는 설사 아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찾아내기 어려울 만큼의 칠흑같은 어둠 만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잠깐의 한기를 느끼고 몸을 움츠려들었으나 이내 자신의 이런 모습을 그남자가 보면서 비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짐짓 태연한 척하며 쓰레기장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쓰레기장에 도착하자 그녀는 쓰레기를 버리는 둥 마는 등 휙 집어던지고서는 바로 뒤돌아서 집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하늘을 볼 마음따위는 애저녁에 사라져버린지 오래인데다가 시간을 지체하다간 그 오지헌 면상을 또 봐야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무겁던 어깨가 그녀가 느낀 굴욕감만큼 묵직하게 허리를 누르는 것 같았다.

    '당신같은 남자들 때문에 나같은 사람들이 늙은거야..지들은 뭐 잘난줄 알아?,,별꼴이야..'
    -탁탁탁탁
    그 남자와 마주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던 그녀의 기대를 비웃기나 하듯 지현이 아파트라인 앞에 도착하자마자 뒤에서 그 기분나쁜
    남자의 발소리가 따라왔다. 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 발걸음을 크게 딛었다. 그 남자에게 자신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니 시비를 걸지말라
    는 뉘앙스를 풍기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아까 잠시 느꼈던 한기가 자꾸 등 뒤를 맴도는 것 같았기때문이기도 했다.
     
    그 남자 역시 더이상 지현과는 얽히기 싫었는지 조용히 그녀의 뒤를 가로질러 뛰어갔고,
    지현은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며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툭 내뱉는 듯한 그 남자의 한마디는 지현의 뒷덜미를 기분나쁘게 움켜쥐고 있던 한기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거참..저렇게 뒤에 꼬마아이를 떡하니 업고 가면서 애가 없어? 어이가 없구만..."
    무거웠던 어깨가 그녀의 발걸음을 더욱 짓누르는 이순간, 엘리베이터를 타야 할지 그대로 뛰어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지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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