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
2007년 혼전임신으로 양가 허락을 위해 먼저 부산으로 찾아가 우리 부모님을 뵈었음. 아버지께서는 당연히 혼전임신에는 화를 내셨지만 결혼에는 반대 안 하셨음. 최초에 말씀드렸을 때도 일단 데리고 오라고만 하셨음. 2박3일간 잘 지내고 서울에서 집에 보내줄때만 해도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갑자기 문자로 아버지가 혼을 내서 기분 나빴다니 물에 빠져 죽겠다니 애 지울테니 등등 말도 안되는 소릴 함. 순간 멍하게 되버림. 어떻게든 말려서 안정시켰지만 안됐음. 초강수로 손윗처남에게 임신 사실을 알려 처가 식구에게 계획보다 빠르게 통보함.
이후 상견례 자리에서 우리 아버지께서 떠 보기 위해 결혼식을 부산 또는 전주에서 하는게 어떻겠냐는 말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림. 우리 가족, 처가 가족 둘다 멍때림.
중간중간 또 자살하겠다니 애 지우겠다니 별별 말을 다 들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함.
신혼여행 중 마지막날 선물가게에서 진주를 구입하던중 집사람이 장모,처형,새언니,친한친구 진주만 삼. 시어머니와 시누이(누나가 한명 있음) 선물은? 이라고 물으니 되게 기분 나빠 하면서 안 삼. 근데 장모,처형,새언니 진주는 끝까지 삼. 미안한 나머지 친구거는 안 샀음. 그 상황에서 기분 좋을 남자는 없을 듯. 비행기 타고 한국 올때까지 말 한마디 안 했음. 공항서 내리기 직전에 가방에 든 진주며 돈이며 선물 산거 내가 다 들고 내림. 그리고 게이트 나와서 기다리면서 좀 몇마디 하고 지나간 일이니 넘어 가려고 하는데 1시간이 지나도 안 나옴. 공항서 미아 됐나 싶어서 방송도 하고 인천공항 끝에서 끝까지 다 뒤졌지만 없음. 내가 미쳤지 하고 아버지께 전화드리니 아니나 다를까...하나 밖에 없는 며느리 잃어버렸다고 30분 동안 욕먹음. 욕 먹고 어찌하다가 서울 손윗 처남한테 전화옴. 집사람 택시비도 없이 왔다고...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 처남집에 도착하니 새벽1시. 처남 와이프가(처남 와이프가 우리 집사람이랑 고등학교 동창임) 안자고 기다리고 있었음. 술 한잔하고 선물 이야기를 하니 걍 나보고 이해하라고 함. 원래 그런 성격에 그런 경향이 있었다고. 신혼여행 갔다와서 어른들께 인사 안 드리고 이런 사고까지 터질거란 생각도 못했음.
어른들 못 뵙고 인사 못드려서 죄송한 가운데 처가 식구는 다 챙겨서 감. 단지 살고 있는 곳이 처가에서 가깝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대한민국은 어디 가려면 중국처럼 몇날 며칠을 갈 곳도 없는데...
그러다 임신7개월째 추석에 시부모님 뵈러 가자니 못가겠다고 난리침. 추석땐 간다고 약속해 놓고는 안 간다니 나 역시 다 때려 치우라고 하고 집안 뒤집어 놓았음. 하루 자고 나니 아침에 가자고 함 . 사람 속 뒤집어 놓고 뭐하자는 건지...가자해서 갔더니 어른들 뵈러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짜증냄. 몸 무거운데 혹사 시킨다고. 이 말에 미안해서 최대한 필요한 어른분들만 뵙자고 아버지께 말씀드려 일찍 끝냈음. 집에 와서 또 투덜거림. 내가 백번 잘못 했다고 빌었음. 그니까 좀 그만 투덜대라고.
출산시기
첫째가 태어났음. 태어난 첫날 처가 가족은 다 왔음. 가까이 사니까...우리 부모님 좀 멀리 계셔서 다음날 오신다고 함. 마누라 오지말라고 함. 이유도 없음. 할아버지가 손자보러 오겠다는데 왜 오지말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됨. 어찌됐든 오셨음. 근데 여기서 또 일이 터짐. 본인은 당시 그 자리에 없어서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본거는 마누라가 산후조리원 방에서 확 나와버리고 사라진 거. 방안에는 부모님만 근심스런 표정으로 계셨던 거. 이후 들은 이야기는 부모님, 마누라 둘다 좀 다른 말을 했지만 공통된 건 산후조리원 나오면 시댁으로 와서 몸조리 하자던 거. 여자 입장에서 시댁이 싫은건 이해함. 할아버지로서 손자 보고 싶은 맘도 이해함. 난 그 타협점을 찾았으면 하는데 그럴 맘이 둘다 없었나 봄. 그렇게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처가 식구는 마누라한테 뭔 소릴 들었는지 우리 부모님이 자식 뺐어 간다기 울면서 전화 왔다고 날 죽일놈으로 만듬... 나도 그 당시 어떤 상황인지 알았음 뭐라 말이라도 했겠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도 말 안 해주니 욕 먹어도 걍 듣고만 있었음.
이후 우리 부모님은 그저 아들과 며느리 손자는 먼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림. 우리 아버지 한다면 하시는 분이라 나랑 연 끊고 사시겠다면 능히 그러실 분임. 그런 분이 저런 일을 당하고 그냥 가셨을 분이 아니라는 거임. 여전히 며느리로 여기는 것임.
사건-1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 즉 처가에 얹혀 살 때. 솔찍히 쪽팔려서 집에 말 못함. 근데 아버지 어찌 아시고 2008년 추석이후(추석 땐 내가 처가 식구 보기 싫어서 집에 안 들어감. 마누라 욕이며 상소리며 다 해댐. 말대꾸 못함. 근데 나도 우리 부모님 보고 싶어서 숨어서 울었음) 처갓집을 찾아오심. 물어물어 오신거였음. 우리 마누라...우리 부모님과 장모님, 그리고 같이 오신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 앞에서 그 해 5월 우리 누나가 미국에서 보내준 애기 옷 박스를 아버지 머리 위로(아버지 앞이 아님. 진짜 머리 위로임) 던져버리고는 소리 지르고 반말로 막말을 해댐. 나, 처남, 처형 등등 마누라 말리고 아버지 그제서야 못 볼 꼴 다 보셨다고 조용히 나가심. 그 길로 돌아가시면서 사왔던 손자 장난감들을 그냥 버리기 아까우셨는지 길에 뻥튀기 팔던 할머니께 다 드렸다고 함. 이후 2010년까지 아버지와 연락을 못했음
사건-2
아들 이름은 내가 지음 한글 한자 이름 전부 다.. 첨에 아버지께 내가 지었다고 혼 좀남. 그래도 첫 손자인데 본인이 짓고 싶으셨나 봄. 그래서 한자음이라도 따 오셨음(2007년 산후조리원 때임) 근데 한자도 이미 내가 지었는데 아버지께 이래 지었다니 크게 만족하심. 아버지께서 해 오신 한자가 내가 만든거랑 똑같았음. 나도 상당히 기분 좋았음. 하지만 내가 처가에 얹혀 살 때...어느 날 마누라가 나한테 전화 올테니 받고 아무소리 말고 들어보라고 함. 왠걸 금방 전화가 옴. 무슨 작명소인데 이름 어쩌고 저쩌고 하길래 죄송하지만 전 그런거 관심없으니 전화하지 마세요 라며 공손히 끊었음. 근데 잠시 뒤 마누라가 오더니 뭔 말을 했길래 그 작명소에서 내가 소리지르고 욕을 하고 그러냐고 도리어 날 몰아감. 미치지 않고서야 첫 통화에 누가 소리지르고 욕을 함? 그래서 마누라 앞에 세워 놓고 그 작명소에 전화해서 그 놈이 들었다고 하는 욕을 그대로 퍼 부어줌. 마누라 멍하니 있을때 말해줌. 이제 욕했으니 된거라고. 각설하고, 마누라의 목적은 아들의 한자이름의 뜻을 바꿀려고 한 거임. 근데 내가 걸려서 설득하려고 그 작명소에 내 번호 알려 준거였으며, 내가 뜻대로 안되니 없던 말을 지어낸 거임. 그 후. 나 몰래 내 이름의 도장을 파고 서류에 찍어서 법원에 제출, 아들 한자 이름 바꾸는데 성공함. 그러나 나의 분노찬 말은 장모님께까지 들으시고는 딸을 한번만 봐 달라 하심. 근데 정작 중요한건... 이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우리 아버지께서는 그 사실을 모르심. 알면 정말 우리 아버지 쓰러지실 듯.
2008년 10월부터 2012년 추석까지 있었던 일은 생략...너무 많음...
이번 추석때...처가 식구들 다 모인다고 우리도 가야한다고 함. 그 전 8월말에 시부모님한테 가자 했더니 냉전사태로 빠져 들었었음. 그러다 추석이 다가오고 처가 식구 모인다니 날 꼬시는 것임. 그래...이번에도 져 주자 근데 전화를 하게 해서 빈말이라도 해 시부모님 마음 좀 풀어드리게 할 계획이었음. 추석 전전날, 처가 식구 선물...이라기보다 그냥 술 한 박스씩 안겨줌. 처가 보수 공사 실시, 장모님 대화상대로 자처 등등...추석 날 아침까지 막내사위 역할 톡톡히 함. 제사를 안 지내는 처가라 그건 별로 안 내키지만 장인어른 산소는 찾아가서 술 한잔 따라 드리고 담배 하나 꽂아드림(장인어른과 나와 고향이 같음, 만일 장인어른이 살아 계셨으면 이런 일은 안 생겼을 거라 장담함. 진짜임)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살짝 이야기를 함. 시부모님께 못 가서 죄송하고 다음번엔 가겠다고, 글고 다가오는 둘째 돌때 같이 식사나 하자고 전화나 하라함. 그거 알고 있음? 시베리아 벌판도 이보다 싸늘하지 않음. 몇번이나 설득하고 어루고 달래도 답이 없음. 마치 앞집아저씨에게 안부인사 하는것 보다 더 기분 나빠함. 순간 나 빡쳐서 니 가족만 가족이냐 라고 함.
이후 계속 냉전이다가 참고 참았던 내 분노가 머리 위로 터져버림. 같이 살면서 지금까지 마누라가 한 행동의 증인과 증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황이며 아버지도 중간에 한번 풀어지셔서 지금은 며느리로 여기시지만 내 결정과 각오를 말씀드리면 2008년 추석때 당하셨던 그 치욕...모두 사진과 음성파일로 남아 있어 그걸 나한테 넘겨 주실것임.
마누라한테 기회를 줘도 지금도 열심히 발로 뻥뻥 차고 있음. 끝까지 자기가 잘했다고 난리치고 있음. 처가 식구들도 나한테 미안해 하는 판에...
아직 100%갈라설 생각은 없고 자식 때문이라도 이해하고 살아가고 행복을 찾을려고 하는데...
이대로 살아가도 과연 저와 제 가족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요?
폰으로 쓴거라 내용이 두서가 없을수도 있어요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