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막내
집에서 빨래를 널고, 인터넷 쇼핑 좀 해볼까해서 열심히 구경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막내: 어디양?
나: 왜?
막내: 집이네?
나: 왜?
막내: 잠깐 나올래?
나: 왜?
막내: 시간 되지?
나: 왜?
막내: 그럼 잠깐 나와.
나: 왜?
막내: 어느 역, 몇 번 출구로 내리면 무슨 카페 있는 거 알지?
나: 왜?
막내: 거기 맞은 편에 병원 있잖아.
나: 병원 왜?
막내: 거기서 보자. 빨리 오면 좋고.
맛있는 거 사주려나 하고 신나게 달려갔는데, 막내가 작은 접촉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너무 놀라서, 특히나 몸쓰는 앤데 부상도 잦은 앤데!!! 의사 쌤께 괜찮냐고 흥분상태로 묻다가
진정하시라는 소리 듣고, 검사했고, 이상은 없다고 하지만 놀랐을 수도 있으니 경과를 보자는 말을 들었다.
나: 아니, 다쳤는데 외식하자는 거 처럼 말을 해?
막내: 그냥 살짝 넘어진 정돈데.
나: 그래도 그렇지. 야, 엄마한테 전화 해야지.
막내: 아 엄마 놀라잖아.
다음 날 밥 두그릇 먹는 거 보니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큰 무리는 없었던 거 같다.
2. 아빠
마트 다녀오는데, 집 앞에 많이 보던 차가 서 있어서 본능이 이끄는대로 일단 숨었다.
아빠: 아니 왜 숨는데?
나: 그냥. 왜 왔어? 연락도 없이?
아빠: 집에 누구 있어?
나: 작은 오빠 있을 걸?
아빠: 그럼 오빠한테는 말하지 말고 우리 놀자.
나: 아빠, 왜 놀아? 왜 직장 안가? 잘렸어?
아빠: 오랜 만에 너랑 놀라고 왔지.
나: 오호. 지갑 준비 되셨습니까?
그렇게 함께 쇼핑을 갔다. 진짜 오랜만에 둘이 하는 쇼핑이라서 비상금을 털어서 아빠 옷을 사드리기로 했다.
나: 잠바는 안 될 것 같고. 셔츠로 하자. 내가 골라줄게.
아빠: 오, 내가 니 엄마 꿈을 사서 횡재하나보다.
나: ㅋㅋㅋㅋㅋ
아빠: 딸한테 옷도 다 얻어입고... (감격)
나: 엄마가 알면 질투하겠어. 그치?
아빠: 니 엄마는 데이트 할 남자가 셋이나 있는데 뭐.
나: 마잨ㅋㅋㅋㅋ
쿵짝 잘 맞는 부녀는 각자에게 옷 한 벌씩을 사주고, 맛있게 저녁과 빙수까지 먹고 헤어졌다.
엄마는 내 옷은 없냐며 서운해 했다고 하는데, 다음날 전화와서 안 받았다.
3. 큰오빠, 작은 오빠
우리 집은 말을 신중하고, 곱게 하라는 게 가훈? 뭐 아무튼 그런거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욕이나 험한 말을 하면 눈물이 쏙빠지게 혼났는데, 부모님과 따로 살다보니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비속어 남발을 하고 있다.
이게 추석 때 한 번 크게 걸렸는데, 작은 오빠랑 나랑 부모님 댁에 갔다가 장난으로 욕을 주고 받아서...
그 때 부터였나.
큰오빠와 나머지 찌끄레기들이 모여서 평화협정을 맺은게.
큰오빠: 정말 화가 나면 한 번 더 생각을 하고 말을 하자. 또 정말 화가 나면 존댓말을 하기로 해.
엄마 아빠가 정말 화가 나고 심각하면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합의했다.
그러고 난 이후, 큰오빠의 차에 작은오빠가 주스를 쏟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차례 컵 뚜껑 열지말라고, 흔들리면 쏟는다고 경고했는데...
평소 평온의 달인이며 온화한 컨트롤러 큰오빠의 머리가 비정상 작동을 하며 이성이 끊어지고 말았다.
큰오빠: 야, 이 식빵아 내가 뭐랬어? 뚜껑 열지 말라고 몇 번 말해?
작은오빠: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저기 님아 존대 좀.
큰오빠: 그래요 이색히야. 님이 이거 세차한지 얼마 안 됐는데. 너 님이 이거 다 닦을래요?
작은오빠: 예. 그럽죠. 근데 고의는 아니었어요.
큰오빠: 그래? 그렇겠죠. 멍멍이아기같은 님아. 조카 십팔색 색연필. 제가 몇 번 말씀 드렸을 텐데요. 그거 뚜껑 열지 말라고.
큰오빠가 단시간에 가장 많은 욕을 쏟은게 아닐까 싶었고, 작은 오빠가 나중에 말하기를
작은오빠: 아니 이럴 거면 존대가 무슨 소용이야?
라고 했다. 그러고 우리는 여전히 화가 날 때 소용없는 존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