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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밥 먹여줬다", "민주주의는 탄압했지만 경제를 살렸다", "박정희는 구국의 영웅이다", "대한민국 초석을 낳았다"
박정희 추종자들과 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자주 한 말입니다. 쉽게 말해 박정희는 대한민국 경제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민주주의는 탄압했지만 경제를 살렸다는 주장을 일부 진보게혁세력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재임기간의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이는 누구일까요? 다들 '박정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이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바로 전두환입니다. 경제지표가 망라돼 있는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bok.or.kr)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독재자 박정희 집권기간(1963~1979년) 연도별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평군내면 9.1%(자료에 따라 조금 다름 9.9%도 있음)입니다. 전두환(1981~87년)기간때는 10.0%(8.7% 통계도 있음)입니다. 불과 0.1% 차이지만 경제성장률만 비교하면 전두환이 경제대통령입니다.
더구가 경제가 발전하면 할 수록 성장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만원일 때 10% 성장하는 것과 200만원일 때 10% 성장하는 것은 같은 10%이지만 사실은 두 배나 차이가 납니다. 당연히 전두환이 박정희보다 더 경제를 성장시킨 대통령입니다. 박정희가 경제를 살려 우리를 밥 먹여주었다는 것이 허구임을 하나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알겠는가? 경제지표로 본 박정희 경제가 얼마나 허구인지, 경제학자 강기춘의 <정권별 경제성적표> (김영삼정권 2년까지)에 따르면 1위 전두환.노태우정권(각각 12점), 김영삼정권(10점), 박정희(6점)으로 박정희가 꼴지였다. 여기서 오해들 하지 마십시오. 김영삼 전반기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애초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것만 아닙니다. 박정희 경제 시절은 노동시간이 길었습니다. 하루에 18시간씩 일했던 노동자도 있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노동자 가운데 근로면세점 이하 임금 노동자가 1976년 74.9%, 1978년 76.7%였습니다. 10명 중 약 8명이 세금 조차 내지 못하는 임금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역수지와 국민소득을 한 번 비교해보겠습니다.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무역수지'입니다. 박정희 때 무역수지가 250억달러 적자였습니다. 박정희는 1977년인가 무역 100억 달러를 달성했다고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임기 동안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입니다. 박근혜 의원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경제를 이렇게 만들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김영삼이 경제를 망쳤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박정희 때 우리나라는 경제가 밑뚱째 흔들렸습니다. 창고 안에 달러가 없었습니다. 전두환이 쿠데타로 집권 한 후 일본으로부터 40억달러 차관을 도입합니다. 당시 일본은 "한반도가 공산화돼 부산에 붉은 기가 나부끼면, 일본이 위험해진다"며 우리나라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차관을 제공합니다. 명분은 맞지만 전두환 일당이 차관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창고에 달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은행 창고에 달러가 텅 비었다"고 했는데 아마 전두환도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박정희 시대 경제성장은 빌린 달러 성장한 빚잔치였던 셈입니다. 그것이 결국 IMF로 이어졌습니다. 박정희 경제는 또 한일협정으로 돈(무상 3억 달라, 차관 2억 달라)와 월남특수였습니다. 베트남 전에서 한국군 5만 명이 이 5년간 받은 수당은 1억3,000만 달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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