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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story_444292
    작성자 : 성성2
    추천 : 36
    조회수 : 3695
    IP : 115.94.***.142
    댓글 : 20개
    등록시간 : 2016/03/02 11:29:08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44292 모바일
    소개팅 주선한 이야기
    옵션
    • 창작글
    얼마전 설 연휴가 끝난 뒤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물론 가끔 보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보는 녀석도 있었다.
    대학 다닐 때는 여자친구 있는 놈과 없는 놈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서는 전방인 놈과 후방인 놈, 갓 졸업을 한 뒤에는 취직한 놈과 취직을
    준비하는 놈으로 분류되었다면 나이가 들어 만나니 머리가 아직 있는 놈과 없는 놈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모두 후자였다. (여자친구 없고 군대를 후방으로 다녀오고 취직도 못 한 머리 없는 놈...)

    오랜만에 만난 친구 중에 유일한 미혼은 한 명 이었다. 자주 만나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녀석의 현재 별명은 '마흔까지 못해 본 남자' 였다.
    뭐를 못해 봤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런 녀석의 대학 시절을 회상해보니 대학 때 그렇게 인기가 없던 녀석은 아니었다.
    녀석은 수업이 끝나면 항상 농구장에서 농구를 하던 농구를 좋아하는 녀석이었고, 봉사동아리를 다니며 나름의 선행도 많이 베풀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남자가 결혼하면 신데렐라 된다고 생각한다. '귀한 아들' 소리를 들으며 세수할 때 빼고 손에 물을 묻히지 않다가 설거지를 비롯한 각종 
    집안일을 도맡아 하게 되고, 12시가 되면 마법이 풀려 집으로 귀환해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일정 시간이 되면 초조하게 핸드폰을 살펴보고 마초, 
    위엄있는 가장이라는 마법이 풀리면서 허둥지둥 집으로 귀환하게 된다. 심지어 신발 한 짝을 놓고 집에 간 신데렐라처럼 다급하게 집으로 향한
    녀석들은 핸드폰 또는 지갑, 목도리, 장갑 등 자신의 흔적을 하나씩 남기고 돌아간다. 마치 신데렐라가 다음에 왕자님을 만날 장치를 하나 만드는 
    것처럼 녀석들은 "너 목도리 놓고 갔더라~" 라고 하면 "다음에 만나서 줘." 라고 훗날을 기약한다.

    그날 역시 그랬다. 10시가 되자 친구 몇몇 놈은 안절부절 핸드폰을 바라보다 한 놈은 장갑을 놓고 갔고 다른 한 놈은 목도리를 두고 갔다.
    10시 이후 그 자리에 남은 건 나를 포함한 4명이었다. 2세 이야기, 회사 이야기, 정치 이야기 등이 오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흔까지 못해 본 남자'가 최근에 여자를 만나는지로 대화의 주제를 옮겨가려 할 때 녀석은 단 한 마디로 주제를 전환했다.

    "여자친구가 왜 없냐고 물어보지 말고 너희가 소개 좀 해봐.."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나도 신데렐라로 변신할 알람이 울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후 회사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데 한 후배 녀석이 나이가 드니 소개팅도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한탄하는 것을 들었다.
    그 후배의 성별은 여자였는데, 같이 오랜 시간 일을 하고 편하게 지내다 보니 남자 후배보다 아니 마치 친동생처럼 편하게 느껴지는 후배였다. 
    순간 내 머릿속에 '마흔까지 못 해본 남자'가 떠올랐다. 친구 녀석은 농구를 좋아하고 후배 녀석은 등산을 좋아하니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녀끼리 
    둘이 잘 어울릴 수 도 있겠다는 그릇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후배에게 바로 소개팅을 할 것인지에 관해 물었다.

    "**아 너 소개팅 해줄까?"

    "선배 안 속아. 지난번에 연하 꽃미남 소개해준다고 하면서 삼삼이 소개시켜줬잖아. 나를 며느리 삼을 생각이었어?"

    "아.. 그때는 네가 하도 삼삼이 보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한 거고 이번에는 진짜로 내 친구 한 명 소개해주려고.."

    "됐어요. 안 해. 말로만 그래 본 거에요."

    후배 녀석은 나의 소개팅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리고 오후 몰려오는 잠을 깨며 일을 하고 있는데 후배에게 메시지가 왔다.

    "선배, 그런데 아까 소개해준다는 친구 괜찮은 사람이야?"

    "당연히 괜찮지. 내가 너한테 이상한 아저씨 소개팅 해주겠냐? 직장도 괜찮고, 운동 좋아하니까 같이 등산하면 되겠네."

    "흠.. 선배가 봤을 때 내가 한 번 만나봐도 될 거 같아?"

    "야! 일단 만나봐. 네 살 차이면 나이차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니까."

    바로 '마흔까지 못 해 본 남자' 에게 소개팅 의사를 묻는 문자를 보냈다. 정확히 3초만에 

    "콩" 이라는 최고의 식물성 단백질 식품이라는 문자가 왔다. 그리고 내가 "콩"이 뭐지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콜" "콜" 이라는 문자가 왔다.

    후배 녀석이 원하는 조건은 단 한 가지 "너무 아저씨 같은 사람만 아니면 돼요.." 였고 '마흔까지 못 해 본 남자' 는 "무조건 + 그리고 감사" 였다.

    소개팅 주선의 진행속도는 빨랐다. 장소는 건대 입구로 결정되었고, 나는 친구 녀석에게 후배가 좋아하는 것 (등산, 나이들어 보이는 모습과
    언행 금지 등) 을 이야기해줬고, 후배 녀석에게는 평소 네가 나한테 하는 것처럼 하면 친구 녀석이 매우 좋아할 것이라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둘은 만났다. 어렸을 때 같았으면 만나서 서로 이야기 잘하고 있는지 첫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전화나 문자를 보냈을
    건데, 둘 다 애들도 아니고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3시간 후 친구 녀석에게 좀 전에 헤어졌다면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후배가 외모는 물론 유머감각, 그리고 사람을 편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면서 마음에 들어 했다. 이번 소개팅 주선은 '절반의 성공'이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 후배 녀석에게 카카오톡이 왔다. 

    "선배... 선배 친구 등산복 입고 왔더라.. 심지어 등산화에..."

    나는 바로 '마흔까지 못해 본 남자' 에게 확인 전화를 했다. 

    "너 설마 소개팅 자리에 등산복에 등산화 신고 갔냐?"

    "응! **씨 등산 좋아한다면서 그래서 잘 보이려고 깔맞춤 하고 갔지.." 이 새끼.. 아무리 지상보다 높은 2층 커피숍에서 만났다고 하지만 등산복 입고
    소개팅 자리에 나간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계단을 등정했냐.. 이 자식아..

    "야! 아무리 상대방이 등산 좋아한다고 초면에 등산복에 등산화 신고 가면 어떻게 해! 

    "그런가?"

    녀석이 왜 '마흔까지 못 해본 남자' 인지 조금 이해가 됐다. 아니 녀석은 지금 '오십까지 못 해본 남자'가 되기 위한 진행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후 후배 녀석과 통화를 했는데 후배는 친구 녀석이 분명 좋은 분인 거는 같은데 확신이 서질 않는다고 했다. 아무래도 등산복과 
    썰렁한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아재 아재 등산 아재'의 개그가 그녀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후배에게 일단 내 친구 녀석은 너에 대한 호감이 있는데, 네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부담되면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 때 후배는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후배에게 카카오톡이 왔다.

    "선배, 선배 친구 부담돼서 못 만나겠는데 선배가 나 대신 최대한 정중하게 말 좀 전해줄래요? 아니면 제가 직접 말할까요?"

    "왜? 생각해보니 도저히 안 되겠어? 내가 직접 만나서 녀석에게 말할게."

    후배의 이야기로는 토요일 아침 7시에 데드풀을 보자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후배가 이번 주는 야근을 계속했더니 피곤해서 좀 쉬어야
    겠다고 정중하게 거절을 했는데 (이번 주 내내 후배가 야근한 것은 사실이다.) 친구 녀석은 한술 더 떠서 "피곤해요? 그럼 저랑 병원 가요!" 라며
    찾아간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시간 간격으로 "괜찮아요? 아직도 아픈 거 아니죠?" 라는 문자를 집요하게 보냈다고 했다..
    아.. 이 육십까지도 못 해볼 녀석아... 

    결국 소중한 황금 같은 주말 시간 녀석을 만나기로 했다. 돌려서 말하는 것보다 직접 말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 소주 한잔을 마시면서
    녀석에게 그녀가 너한테 부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녀석은 '내가 오랜만에 여자를 만나서 그런지 너무 들이댔나..' 하며 후회하는 눈치였다.
    위로해주고 싶었다.

    "야.. 그렇게 데드풀이 보고 싶으면 나랑 볼까?"

    "너랑은 안 봐. 데드풀은 사랑이래.."

    "그래.. 술이나 마시자.."

    풀이 죽어있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한 단어가 떠올랐다. 데드풀.. 풀이 죽었어...
    출처 친구와 후배 저한테는 모두 소중한 사람입니다.
    개그는 개그일 뿐 그 이상은 확대하여 해석하시지 말아 주세요..
    성성2의 꼬릿말입니다
    삼삼이가 태어나기 6개월 전 의사에게 아버지의 남은 시간이 길어야 1년 남짓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 울거나 충격에 빠지던데, 현실의 나는 뜻밖에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형들은 힘든 말을 막내에게 듣게 했다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누군가는 들어야 할 말이었다.

    우리 형제는 투병을 해야할지 아니면 편하게 여생을 보내 드릴 수 있게 해드려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께 있는 그대로 의사가 했던 말을 전해 드렸다. 아버지는 나보다 더 담담하게 "내가 내 몸은 제일 잘 알아. 네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느끼고 있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듣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께서 "우리 막내는 아빠가 어떻게 하길 바라니?" 라고 물으셨을 때 고민하지 않고 "힘드시겠지만, 아버지께서 암이라는 놈과 싸우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씀드렸고 전신에 퍼져가는 암과 아버지는 힘든 싸움을 시작하셨다.
    그 후 기적인지 아니면 의술과 아버지 의지의 힘인지 의사가 예상한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인 지금도 아버지는 암과 싸우고 계신다.

    아버지께서 암과 싸워보기로 하고 입원하셨을 때 병문안을 온 나의 손을 잡고 "내가 너한테 해준 것은 없지만, 우리 막내는 꼭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내가 한동안 아니 영원히 포기하려 했던 글을 다시 쓰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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