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분이 먼저 다가와 데이트 신청을 하였으나,
피치못하게.. 가난해서..데이트 비용등의 부담스러움등으로 인연이 되지 못했다는 베오베 글을 보고..
느닷없이 제 오래전 약 십여년전 첫사랑 옛 추억이 떠올라 진지먹고 처음으로 오유에 글을 남겨봅니다.
십여년전 군대 전역하고, 학비+용돈이나 벌어볼 요량으로 복학전 단기 알바를 하던 땝니다.
남중-남고-공대-군대 전형적인.. 여자 손한번 아니 여자라곤 가족외 학교 여선생님밖에 겪어보지
못한 그런 인생.. 대학 새내기땐 숫기마저 없어 그 흔한 미팅 한번 못해보고.. 하긴 집안 환경도
당시 여러가지 여건으로 좋지가 않아.. 용돈은 커녕 학비, 차비 받아쓰기에도 빠듯했고.. 그렇다고
무슨 공부를 특출나게 잘해 장학금 받고 뭐 그러지도 못했거든요. 자연스럽게 용돈이 부족하니
무슨 좋은 옷, 좋은 음식은 언감생심.. 자연스레 반아싸? 의 길을 걸어왔던거죠.. 용돈이 없으면
알바를 해야한다 이런 개념조차 없었나봅니다. 미련하게 등교-수업-퇴교-집 땡칠이 생활이었죠.
알바를 하고 있던 어느날, 친구한테 연락이 왔는데.. 너 일마치는 퇴근시간 맞추어 밤에 데리러
오겠다는 겁니다. (당시에 이녀석이 차가 있었음) 무슨일이냐 했더니, 자기 후배가 예전에
소개시켜준 여자 두사람이랑 함께 있는데, 이 중 한명은 내가 이미 점찍었고, 나머지 한명은
바로 너를 소개시켜주겠다.. 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소개팅인건데 저로선 경험이 전무하다보니,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막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되어버리는 거에요.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바닷가 해안 근처의 어느 카페였습니다. 창밖 아래로는 파도가 밀려오는게 보이고 근처에
해변이 있는.. 당시 날씨가 흐려 창밖으로 비도 부슬부슬 내려오고.. 커피는 맛있었고..
다시말해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어요. 네사람이 마주앉아 하하호호 재밌는 시간을 보냈죠.
제친구가 점찍었다던 여자분은 예쁜데다, 애교 많고, 아기자기하고, 깍쟁이같은 그런 이미지였던
반면, 저에게 소개해준다던 여자분은, 얼굴은 화장기도 없고 평범한데 키가 크고 아주 굉장히
늘씬했어요. 그왜 청바지 아주 잘어울리는 여자분들 있잖아요.. 그리고 성격이 뭐랄까 쿨했습니다.
말투가 좀 톡 쏴서 그렇지.. 싱글벙글 하면서 톡 쏘는 말투에, 저는 여자와의 만남이 처음이기도
하거니와, 아 이 기지배가 내가 그닥 맘에 안내키는가보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죠.
내 주제에 연애는 무슨 연애냐.. 이생각으로요.
암튼, 서로 다들 젊고 막 할말도 많고 그러니 내내 웃고 그러다가, 결국 거기 카페 문 닫을
시간이 되어 밖으로 나왔는데 어느덧 비도 그치고 해서, 자연스레 해변으로 걷게 되었습니다.
제 친구와 그 여자분은 제대로 눈맞았는지 막 웃고 떠들며 신나서 둘이 해변을 내달리더군요.
남겨진 전 어찌할바를 모르고 어색한 침묵속에 천천히 따라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다가와
제 손을 살며시 잡아오는 겁니다.
그렇게 제 첫사랑이 시작되었지요.
맨날 맨날 그냥 행복했습니다. 무심결에 입가에 미소가 생기고, 아침에 늦잠도 사라지더군요.
밥도 맛있고,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 막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바로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준다는 느낌..
근데 서로 무지 좋아하고 사귀는데, 제가 연애라는 경험이 전혀 없다보니 진도 나갈줄도 모르고 그냥
손잡고 팔짱껴본게 다였어요.. 한 다섯달동안 계속 그랬는데, 그리고 그게 당연한줄 알았는데,
결혼할 사이 아니면 키스같은 스킨쉽 같은거는 하면 안되는줄 알았어요 진심으로...
손잡고 팔짱끼는것도 다 그녀가 알아서 하더군요. 그러면서 저더러 맨날 쑥맥이라고 놀렸지요.
그리곤 어느날 그녀의 언니, 오빠들을 함께 만났는데 그분들이 술을 한잔 사주시며 제가 썩 맘에
든다며, 앞으로 두사람 아끼고 잘 사겨라 지켜보겠다 이런식으로 당부까지 해주시더군요. 그날
그녀를 집에 바래다 주는데, 집에 들어가기전 잠깐 얘기좀 하다 가자며 근처 놀이터에 가자더군요.
거기에서 수줍은 첫키스를 했습니다. 취한건 아니지만 약간의 술에 제가 용기가 생겼나보더라구요.
하지만 그녀는 무슨 남자가 그렇게 무드가 없냐면서 후다닥 집으로 올라가버렸습니다.. 아차 뭔가
실수했구나 싶어서 멍하니 바라보다 멋적게 뒤돌아서는데 조금뒤 전화가 오더군요.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겁니다,... 이때 정말 엄청 놀랬습니다. 가슴이 철렁하더군요 이를 어찌해야하나..
어쩌긴요.. 젊은 혈기에.. 순식간에 본능이 이성을 마비시켜 버리더군요.. 그날 그녀와 잤습니다.
그리고 위기가 찾아왔죠.
저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도 제가 첫 남자였다는걸 알게 된건 나중의 일입니다.
그녀와 그날밤을 보낸뒤 얼마후부터 그녀를 만날수가 없었습니다. 핸드폰은 꺼져있고, 집앞에서
기다려도 감감 무소식인데다가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내가 넘은거구나.. 내가 실수했구나.. 하고 잔뜩 사과하려고 풀어줄려고 기다리고
있었지요. 근데 한달 후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이, 그녀가 바로 제 아이를 임신을 해버렸고,
친구랑 둘이 산부인과에 가서 그 애를 지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녀는 스무살이었고 전
스물넷이었습니다. 우린 둘다 결혼도 출산도 불가능했기에 그녀는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어쩔줄 몰라 연락을 끊은 것이었구요..
얼마후 곧바로 마지막 만남을 갖게 됐습니다. 어느 커피숍이었는지는 모릅니다. 정신이 없었으니깐요.
모릅니다만, 둘다 시종일관 펑펑 울었습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자세한 기억은 나질 않습니다. 제가
수없이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으며, 한편으로는 왜 연락을 해서 상의를 하지 않고 혼자 힘들어
했느냐고 원망도 많이 했던것 같습니다. 울면서 아무말없이 날 노려본건지 원망한건지 뜻모를
표정으로 한없이 바라보던 그녀는 먼저 일어서 뒤돌아서서 그렇게 떠나갔고, 전 그날 이후 죄책감과
자기 회의에 빠져 몇달간 완전 폐인이 되어버렸지요. 매일매일 눈물로 지새웠고 알바는 그만뒀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집안에 안좋은 일마저 생겨 복학도 연기해야 했습니다. 말그대로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더군요. 그 핑크빛 같던 밝은 세상이 완벽한 암흑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정신차리자 무려 2년정도 흘렀더군요.
이때는 베오베의 그 학생과 비슷한 처지가 되었네요.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일한 돈으로 모조리
학비+생활비를 대야 해서, 정말 거지처럼 생활하던 때였지요. 어느날인가 새벽 알바를 하고 있는데,
집에서 전화가 온겁니다. 집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는데 어떤 아가씨인데 너를 찾는다고..
집으로 돌아와 알고보니 그녀였습니다. 그 새벽 단번에 달려갔죠. 이년만에 만난 그녀는
많이 성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더군요. 오빠가 지난시간 힘들어하는거 다
들어서 안다고.. 죄책감 갖지 말라며.. 자신은 이제 괜찮다면서 그러면서 다시 시작하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더군요.
집으로 돌아와 정성껏 편지를 한통 썼습니다.. 아주 정확하게 베오베 그 학생과 같은 심정으로요.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치킨 한마리 못사줄 만큼 지금 가난하다고, 사입혀주고 싶은것도 많고
사입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렇게 해줄 수가 없다고.. 2년동안 매일같이 죄책감속에
살았고 그러다보니 이젠 슬퍼도 눈물도 안나올 지경이 되버렸다고.. 너에게 그렇게 잘못을 했는데도
내 속에 악마가 있는지 꿈속에서라도 니 모습 보게될까 매일같이 기도하고 너랑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사귀고 잘못했던 만큼 다시 충분히 보상하고 싶다고요.. 허탈하고 담담한 채로요.. 아니 한편으론
너무나 부끄럽더군요..
끝내 그 편지는 붙이지 못했고, 어떠한 답변도 전해주지 못한채 그렇게 그 편지는 제 일기장에
아직도 고이 보관하고 있지요.. 그녀도 제 맘을 어떻게 알았는지 몇번쯤 더 연락을 해오다
말더군요.. 그리고 수년후 집안 사정도 좋아지고 졸업을 하고 취직도 해서 저도 이제 살만하다고
느낄때쯤 되었는데, 붙이지 못한 편지라는 노래 구절이 의외로 많아 나이가 지금 서른중반이
다되가는데도 어디선가 한켠에서 그 노랫말만 들려오면 맘 한구석 피멍이 지독하게 아려옵니다.
베오베 학생의 말처럼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게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겠지요.
가난하다고 혹은 객관적으로 보편적으로 제대로된 행동거지를 못한다고.. 또는 그당시 왜그렇게
미련했냐고 조롱거리, 웃음거리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제발 댓글 달때 조금만더 남을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조금만 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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