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반어적으로 글을 써서 반대를 먹는 것 같아 다시 적어볼게요. 말투가 공격적이었던 점 죄송합니다.
베오베 식민지 근대화관련 반대 먹는 댓글들 보면
'일본은 나쁜놈이지만 결론적으로 근대화 된 것은 역사절 사실이다.'
라고 하셨는데 이건 망언입니다.
왜 저런 주장이 나오느냐 하면 일제 강점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일본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막기위해 노력한 나라이며
일제 강점기는 한국의 근대화를 어떻게든 억누르고 지연시키려는 일본과 이에 대한 독립열사들의 근대화를 위한 투쟁의 역사입니다.
먼저 근대화를 정치, 사회, 경제적 측면으로 바라보면
정치적으로는 왕정에서 민주주의로의 발전 (공화정의 수립)
사회적으로는 평등한 사회로의 발전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도입과 상공업의 발달, 신문물의 도입 등이 있겠지요.
먼저 정치적으로 보겠습니다.
신민회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신민회는 안창호 선생님 등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비밀결사로 국외 항일 투쟁의 중심이 된 신흥 무관 학교를 설립하는 등의 항일 투쟁을 했던 단체이기도 합니다.
이 신민회의 가장 핵심적인 활동 목표가 국권 회복 및 공화 정체의 국가 건설이었습니다.
그러나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해산됩니다.
그 후 1910년대 국내 비밀결사였던 대한 광복회. 김좌진 , 박상진 등이 주요 인물로 역시 공화제를 목표로 하는 항일 단체였지만 일본에 의해 진압됩니다.
그 뒤 대한 국민 의회나 임시 정부등의 항일 단체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공화 정체 국가 건설이었다고 해도 틀린말이 아닙니다.
이 단체들을 모두 진압하거나 그렇기 위해 시도했던 것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일본입니다.
사회에서는요
1894년 동학을 중심으로 하여 전라도 지방에서 농민들이 신분제 타파와 봉건적 인습 폐지 등을 목표로 운동을 벌입니다.
다들 아는 동학 농민 운동이지요. 이 농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 진압한 것이 일본입니다.
그 후 정부에서는 농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자주적 근대화를 위해 교정청이라는 개혁 기구를 설치합니다만
일본이 경복궁을 불법 점령하면서 무산되게 됩니다.
그 후 1차 갑오개혁에서 사회적으로 큰 개혁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1차 갑오개혁은 청일 전쟁 중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나마 일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이루어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신분제도의 단순 제도적 철폐 뿐만 아니라 실제 백성들의 의식에 있어서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운동들이 일어납니다.
근대 계몽을 위한 신문 등이 발행되고 학교가 설립됩니다만, 일본의 신문지법과 사립학교령 등에 의해 다 폐간되고 폐교되고 탄압받습니다.
근대적 의식 확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1919년 3.1 만세 운동 이였습니다.
3.1 운동을 통해 우리나라는 중세로의 복고라 할 수 있는 복벽주의를 완전히 청산하게 되며 3.1 운동이 불씨가 되어 국가 곳곳에서 진정한 평등사회 건설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백정 차별 철폐를 위한 형평운동, 어린이, 여성의 차별 철폐를 위한 여성, 어린이 운동등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3.1 운동은 항일 투쟁임과 동시에 근대화를 위한 우리 민족의 자주적 투쟁이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일본에 의해 혹독하게 진압당합니다.
경제를 볼까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상회사 등을 설립한 것은 일본과 청 상인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특히 광무개혁 때 많은 회사와 은행등을 설립하면서 발전을 이루는가 했지만,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화폐 정리 사업에 의해 조선의 은행과 회사 자본이 아작나버립니다. 그 후 회사령에 의해 철저히 탄압받습니다.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얻어진 빚을 갚기 위한 국채 보상 운동 등도 일본에 의해 무산되구요.
조선 병참기지화 운동에 의해 많은 공장들이 세워지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냥 착취당하는 노동자로 전락할 뿐이었죠.
문물에 대해서도 광무개혁이 일본에 의해 무산되고 경원선 착공을 위한 서북 철도국도 일본 때문에 무산되고 맙니다.
또한 새로운 사상, 문물에 대한 발전되고 근대적인 지식과 이에 대한 교육도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탄압받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대학 설립 운동이 일제에 의해 무산되었구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 큰 만세 운동이 3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위에서 적었던 3.1 운동입니다.
두 번째가 6.10 만세운동입니다.
발단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일본의 교육적 억압에 대해 학생 조직이었던 조선 학생 과학 연구회의 조선인에게도 더 나은 교육을 하라는 요구에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세 번째가 광주 학생 운동입니다.
역시 발단은 일제의 식민지 차별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항일 단체와 애국 열사들이 있었죠.
이들 대부분의 공통점이 일본에 대해 투쟁했다는 것과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살펴보면 당시의 항일 운동이라는 말은 근대화 운동이라는 말과 별 차이가 없게 느껴집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일본은 조선 근대화의 정확히 반대편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근대의 추구가 곧 항일이였으며 항일이 근대의 추구 였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근대화 운동의 본질은 바로 일본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