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사진보러 텀블러를 가끔 구경하는데, 첫 화면에 흥미로운 포스트가 떠 있더군요.
팔꿈치 이하의 부분이 없는 채로 태어난 한 블로거가 "퓨리오사"라는 캐릭터에 관해 쓴 글입니다.
<오픈 게시판에 해당 포스트를 번역해서 올려도 되냐는 질문에 승낙해 준 메일>
<내가 본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 그리고 퓨리오사 사령관이라는 그 완벽함>
그래 좋아. 꽉 붙들어 매. 이제부터 퓨리오사의 이야기가 시작되니까.
근데 한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나는 "태아수지기형"(a fetal amputee)이라는 증상을 갖고 태어 났어. 쉽게 얘기하면, 난 태어날 부터 팔의 일부분이 없었지.
여기(텀블러)에 이 얘기를 쓴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팔로워가 조금 늘어서 이 얘길 처음 듣는 사람도 있을 거야.
이게 나야. (참고:원 글쓴이는 원문에서 얼굴을 가리지 않았으나, 혹시 몰라서 제가 얼굴은 가렸습니다.)
이게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매드맥스의 퓨리오사.
이 영화가 너무 보고 싶은데 친구들이 시간 날 때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 결국 월요일 저녁에 혼자 이 영화를 보러 갔어. 사실 친구들이 이번 주말엔 모두 바빠서 "다음에 같이 봐야지"하고 맘 먹고 있었는데, 페이스북에 이 영화에 대한 칭찬이 자자해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어젯밤 영화를 봤고... 결국엔 펑펑 울고 말았어.
왜냐면 말야, 이번주에 난 서른살이 돼. 그리고 항상 액션영화를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여태까지 헐리우드 영화에서 신체적 장애가 있지만, 이렇게 멋진 여자 주인공은 본 적이 없었거든.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여태까지 "무언가를 대표하는 이미지"라는 것에 관해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백인 여성으로서 그 문제가 나한테 크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매드 맥스"를 보고 나니 내가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더라고. 난 태어날 부터 이런 상태였지만 한번도 이게 약점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 물론 불편하긴 하지. 당연히 내가 할 수 없는 일들도 있고. 하지만 내가 쓸데없는 인간이라고 생각 해 본 적은 없어. 나는 여태까지 "문제가 닥치면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해서 그냥 해치우자"라는 태도로 내 삶을 살아왔으니까. 내가 아무것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가 없었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해 보고 나서야, 그렇게 전부 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
그런데, "매드 맥스"를 보면서 내가 일생동안 겪어야했던 힘겨움, 싸움, 발버둥, 고난을 2시간동안 스크린으로 보는 기분이 들었어.
퓨리오사가 샷건을 장전하는 장면을 생각해 봐. 퓨리오사가 "절단된 팔꿈치"로 맥스에게 펀치를 날리는 장면도. 그리고 두 손으로 총을 잡고 쏘는 대신, 맥스의 어깨에 총을 지지해 조준하는 장면을 생각해봐. 퓨리오사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똑같이 할 수 있지. 아니 너보다 훨씬 더 잘 해. 남들의 반 밖에 안 되는 손가락을 가지고 말이야.
이 영화가 주인공의 장애에 관해 아무렇지 않은 듯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그 점은 정말 엄청난 거야. 정말 내가 이 영화에서 뭘 더 바랄 수 있을까. 퓨리오사의 팔은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듯, 아주 흔하다는 듯이, 별 거 아니라며 이야기는 진행 돼. 퓨리오사의 팔은 줄거리에서 "전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아. 그냥 그래도 된다는 거야.
1) 퓨리오사에게 팔이 없다는 사실은 한번도 대화 속에서 언급되지 않아. 단 한번도. 이 간단한 사실이 얼마나 강력한 지 생각해 봐.
2) 영화 "그라인드하우스"에선 무릎 이하가 없는 여자 캐릭터에게 총을 달아준 걸 생각해봐. 여기선 그런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아. 퓨리오사의 의수는 현실적이야. 실제로 저런 의수를 착용해서 사용할 것 같으니까.
3) 왜 팔이 없는가에 대해서도 전혀 이야기하는 않아. 어떻게 잃었는지,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없었던 건지 관객은 전혀 모르지.
4) 그리고, 등장인물 그 누구도 퓨리오사의 상태에 대해 동정을 가지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아.
퓨리오사와 영화 "300"의 에피알테스를 비교해 볼게. 레오니다스가 에피알테스에게 친절하게 대하긴 하지만, 에피알테스가 불구라는 사실은 꽤 분명하게 나와. 군인이 될 수 없다는 거야. 스파르타의 대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에피알테스는 쓸모 없는 존재인거지. 만약 퓨리오사가 그 스토리라인에 등장했다면? 퓨리오사는 에피알테스를 흘끗 본 후, 레오디나스를 향해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에피알테스에게 스파르타 전투대열에 맞는 맞춤형 갑옷과 방패를 위한 의수를 만들어 줬을 거야. "자, 내가 해결 해 줬지? 이제 전쟁에서 재미 좀 봐!"
퓨리오사가 유능한 사령관이자 전사라는 사실 말고도 내가 더욱 더 감동받았던 건, 퓨리오사가 친절하고 감정을 느낄 줄 알고,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거야. "매드 맥스"의 주요 줄거리는 퓨리오사가 임모탄의 부인들을 구해내 자신의 고향과 가족들에게 돌아가 전쟁과 고통이 없는 소박한 삶 그리고 평화를 찾고자 한다는 거야. 할리우드에서 흔히 나오는 "감정 없는" 여자 액션 캐릭터가 아닌, 지구 어느 곳에 살고 있을 듯한 진짜 인간, 삶을 위해 발버둥치는 인물이 바로 퓨리오사야.
이 영화는 페미니스트적이고, 강력해. 그리고 장애라는 것을 현실적이지만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어.
어쨌든, 이제 그만 마무리할까 해. 친구들이 당장 퓨리오사의 코스프레를 준비하라며 잔소리를 할 게 생생하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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