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길거리에서 발렌타인 데이다 뭐다 해서 초콜릿을 많이 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술도 한 잔 걸치니 문득 왜 나는 그 흔한 남자친구가 없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내 나이 한국 나이로 23.. 어디가서 나이가 많다고도 들어본 적도 없지만 모태 솔로는 모태 솔로인거다. 그래서 귀가길에 내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오유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내 인생은 평범하지만... 오히려 행복한 삶일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2학년 전 까지만 해도 굉장히 우리집은 부유하고 평화로운 가정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쯤 아빠가 사업에 뛰어 들었다가 룸싸롱 언니랑 눈이 맞는걸 엄마한테 들키고 또 아빠의 사업이 망하면서 우리집도 파토가 났던것 같다. 술을 좋아하는 아빠는 역시 술에 취해서 엄마를 때렸고 부부싸움도 많이 늘어났다.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가 집을 나갔고,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혼하셨다. 뭐.. 친척들이 내가 딸이니까 나보고 엄마 아빠 사이를 중재하라고 엄청 타일렀지만 난 아빠가 정말 싫었기 때문에 집나간 엄마를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친척들이 이해가 안갔다. 엄마가 우리를 아예 안 보는것도 아니고 아빠가 엄마 멱살잡고 보증 세워서 아빠 빚을 엄마가 다 떠 앉게 되었는데 왜 엄마를 아빠 옆에 두려고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중학교 입학 후 아빠는 여전히 그 룸싸롱 언니랑 새로운 집을 차려서 우리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아빠가 들어오는 날에는 그 룸싸롱 언니가 우리 집에 전화해서 아빠 계시냐고 물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남녀 공학이었던 우리 학교지만 난 그 때 아빠 때문인가 남자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딱히 잘 지내고 싶었던 기억도 없다. 다 아빠같은 사람 같았다. 빚도 빚이지만 바람난 남자. 한심한 사람.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여고에 진학하게 되었고 아빠도 또한 그 룸싸롱 언니랑 관계를 주욱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한 살 차이가 나는 오빠가 있는데 오빠는 별로 혐오스러운 인간이 아니었다. 오빠는 오히려 좋은 사람이었다. 단지 나는 오빠 덕분에 성에 관해서 굉장히 빨리 눈을 떴던거로 기억한다.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 였고 그 때 아빠랑 룸싸롱 언니랑 그런 관계를 정기적으로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그나마 지켜주고 의지가 되었던 오빠는 대학생이 되었고 그리 공부를 잘 하지 않았던 오빠는 지방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여느 날 같이 술을 진탕 잡수신 아빠가 내가 자고 있던 침대에서 같이 잤다. 아빠는 술에 취했었고 자고 있던 나를 룸싸롱 언니랑 착각 한 것 같았다. 나는 한 번 잠에 빠지면 누가 부르거나 때려도 못 일어나는 편인데, 가슴에서 이상한 느낌이 났다. 누가 내 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무서운데 내 착각일거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떴다. 아빠였다. 그래도 다행힌게 아빠는 중간에 나라는 걸 눈치 챈 건지 개념이 그 정도까지 없진 않았던건지 강간은 없었다. 이건 진짜 살면서 아무한테도 말 할 수 없었다. 그런 일상이 있는 한국에서 사는게 굉장히 싫어졌던 것 같다. 나는 그래서 무작정 엄마한테 빌었던 것 같다. 나 여기서 살기 싫다고 아빠가 너무 싫어서 둘이서 사는게 너무 싫다고.. 그리고 한국이 너무 싫다고.. 참 철도 없이 엄마한테 떼를 썼고 일본어를 공부 하던 나는 알바도 하면서 공부를 해서 21살에 일본에 있는 모 대학에 입학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름 유학 시험도 점수가 높았기 때문에 1학년 때 매달 4만 8천엔(한화로 약 60만원)씩 나오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서 생활은 그렇게 힘들 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 왔다는 그 해방감과 갑작스럽게 느껴진 자유? 뭐 그런 거 때문에 나는 10대 때도 오지 않았던 사춘기가 찾아왔고 허세 작렬..ㅋㅋ 그래서 많이 놀았다. 술도 처음으로 배웠고 친구들도 예전에 비해 많이 생겼다. 남자 사람도 알게 되었다. 물론 1학년 2학기 때는 꽤 좋아하는 남자 사람도 생겼다. 같은 학교 같은 학과 한 살 아래의 한국 사람이었다. 그 때의 나는 굉장히 여성적인 모습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고 오빠나 남자인 친구들에 대해서 경계를 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전까지 술에 취해본 적이 없었고, 남자인 사람들과 둘이 술 마셔도 아무 일도 일어난 적 없었고, 멍청하게 그런 상상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스물 한 살의 가을무렵에도 그 남자애 한테 고기 먹으러 집에 오라는 초대를 거절하지 않은 것 같다. 바보같이 아빠는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아무런 경계없이 남자 혼자 사는 집에 간거다. 그래서 그 아이의 집에 도착했고 고기는 개뿔 근처 24시간제 슈퍼에서 그 아이랑 같이 장을 보고 그 아이네 집에서 내가 만든 요리를 안주로 소주를 깠다. 난생 처음으로 취해봤다. 소주를 둘이서 4병인가 마셨다. 미쳤지.. 멍청하게 자신하던 내가 그 날 따라 술이 잘 받는다면서 물 마시듯이 마셨다. 그리고 취하니까 잠이 오네.. 자야지..하고 엎어졌던 것 같다. 누워서 자라는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고 이불에 기어가서 잠이 들었다. 근데 곧 옷이 벗겨지는 느낌이 나더라... 술이 다 깨지는 않고 그냥 놀라서 아둥바둥 댔는데 역시 술 취한 남자의 힘은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옷 다 벗겨지고 근데 헤롱 거리고 그 상태에서 소리라도 지를까 했더니 정말 오빠 컴퓨터에서 봤던 소설이 따로 없었다. 처음으로 강제 입맞춤을 당했다. 그 혀를 뽑아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그 아이한테 구석구석 훑어졌고 억지로 그의 성기를 만지게 되었다. 그 핏줄 그 감촉... 그 순간 정신이 팍 들면서 아 이대로라면 난 꼼짝없이 당하는구나.. 이걸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생각을 했다. 남자의 약점이라니까 한 번 믿어보자 하고 고환을 주먹으로 내딴에는 세게 쳤다. 시간을 벌었다. 옷가지랑 휴대폰만 들고 그대로 신발도 구겨신고 냅다 집 밖으로 나왔다. 새벽이라 아무도 없어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고 오히려 없어서 다행이었던것도 같다. 무작정 뛰었는데 걘 다행이도 안 쫓아왔던 것 같다. 그래도 무서우니까 옷이라도 입고 빨리 전철을 타야 한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입을라고 보니까..속옷이 없네.... 옷만 들고 와서.. 외투 주머니를 보니까 열쇠가 들어있어서 집에 들어갔다.(지갑은 놓고왔더라..) 그리고 한 일주일 쉬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망할 학기중이라서 다다음날 학교를 가게 되었고.. 걔랑 같이 듣는 수업은 그 뒤로 한 번도 안갔다. 지갑에 현금 사천 몇엔이랑 학생증 그리고 포인트 카드 밖에 없어서 깨끗이 포기했다. 학생증은 잃어버렸다고 재발급 받고 지갑도 새로 샀다. 그리고 그 날 입었던 옷은(외투 빼고) 다 버렸다. 외투는 몇개 없어서 못버리겠더라ㅠㅠ 그리고 우연히 학교에서 마주치면 대놓고 숨었다. 피했다. 평생 그렇게 살 수 없었는데 걔가 막 말하고 다닐까봐 학교 한국 사람들이랑도 많이 못어울렸다. 일본애들이랑만 지내고 그렇게 숨어 지내고 아무한테도 말도 못하고 지내다가 겨울방학이 찾아왔고 후유증?비스무리 한건 없어졌다. 같은 유학생 친구들은 모르는건지 모르는 척 해주는 건지 내게 그 관련 얘기 안했고 나도 굳이 할 생각이 없었기에 짧은 방학생활동안 마음을 다 잡은 것 같다. 물론 이 얘기는 아무한테도 한 적이 없다. 한국에 있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나 강간 당할 뻔 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내 잘못이 있었으니까 내 부주의로 인한 것도 있으니까 절대 말하기 싫었던 것 같다. 근데 이건 익명이니까..ㅋㅋ.... 어딘가에는 털어놓고 싶었고 위로 받고 싶기도 하고 그랬으니까 내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 받고 싶어서 써본다..
여튼 겨울 방학이 끝나고 1월 말에 시험기간이 되었다. 집에 들어가면 무서울 것 같아서 학교 도서관에서 될 수 있는 만큼 버텼다. 거지같은 게 일본의 대학교는 24시간제가 아니라서 시험기간이어도 학교는 오후9시에 닫는다. 10시에는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야만 했다. 학교에서 버티고 막 혼자서 안 있으려고 노력 많이 했다. 친구들한테 좀 굽신굽신 하면서 항상 학교 안에서는 친구랑 같이 있으려고 했다. 걔 마주쳤을때 나 혼자면 또 무슨일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2주 버텼고 기나긴 봄방학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1년만에 왔고 점차 그 일을 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인가 조금은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스물 둘.. 3월에 학교에 돌아가기 위해 조금 일찍 일본에 돌아왔을 때 대지진이 일어났다. 자다가 지진때문에 깼는데 아 죽는건가 이런 생각에 엄마랑 인터넷 전화로 전화 하고, 다행히 전화는 불통이어도 인터넷은 되어서 스카이프로 일본친구들이랑 계속 통화하고 며칠 후에 엄마의 만류에 의해 다시 한국 왔다. 그 일도 있고 지진을 빌미로 휴학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고민도 많이 했다. 그 때 나를 잡아준게 지금같이 사는 내 룸메이트다. 내가 이런 일을 당한것도 모르는 주제에 마치 아는 것 처럼 나를 많이 챙겨주고 의지가 되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요 기지배한테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여튼 나는 휴학 결국 안하고 걔 마주 쳐도 무시하자고 좀 극복해가자고 생각 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 달 말쯤에 친하게 지내던 유학생회 오빠들한테 들었는데 군대갔다고 했다. 지진이고 뭐고 해서 휴학한 애들도 많은데 남자애들은 그 시기 타서 일부러 군대 간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진짜 운이 좋았다.
만약 내가 휴학을 했더라면 그 아이랑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었을 테지만.. 내가 휴학을 하지 않았던 덕에 그 아이는 내가 졸업해야 학교에 돌아오는거였다. 처음으로 군대랑 지진에 감사했다. 당당하자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결국 난 당당하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이 넘게 시간이 흐르니까 조금씩 잊어 가고 호감이 생기는 사람도 생겼다. 근데 그 이상의 감정은 생기지 않더라.. 뭐라고 해야하나 이 사람도 걔처럼 나한테 행동하면 어떡하지? 라거나 생각은 많이 없어졌는데 그... 성기의 감촉이 꿈에서라도 느껴지고 그러면 그런 호감도 사라지고 막 내 자신이 더러운 년 같고... 그랬던 것 같다. 아직도 걔 얼굴이랑 이름이랑 키랑 등치가 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게 다 벗어나진 못한것 같다. 언제쯤이면 다 잊고 나도 정상적으로 남자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괜히 씁쓸하다...
내일은 그냥 집에만 있어야겠다... 그래도 웹이지만 여기에 털어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은 그나마 다리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친구한테도 가족한테도 못 한 얘기 다 털어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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