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주도로 떠나는 비행기를 탄 큰오빠와, 작은오빠, 그리고 친구.
오래간만의 여행에 셋은 즐거웠고, 비행기에서 내리면 무엇을 먹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작은오빠: 제주도는 역시 돼지고기지.
큰오빠: 무슨소리야. 회 먹어야지.
작은오빠: 여름에 무슨 회야.
친구: 야, 둘다 먹으면 되는데 왜들 그래.
큰오빠: 그건 그렇지.
그 시각 서울, 잠에 빠져있었는데 어디선가 내 머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눈을 떠보니 방문은 열려있는데, 문 앞에서서 들어오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막내가 흐릿하게 보였다.
막내: 나랑 눈사람 만들래?
나: 그렇게 해서 문 부수겠냐.
막내: 그치? (더 세게 코와ㅘ와콰와콰오아하며 노래를 부른다) 나나 눈사람 만들래?
나: 한 여름에 무슨.
막내: 일어나, 치킨시켜줄게.
나: ㅇㅇ. 근데 너 돈 있음?
막내: 있지.
그 시각 제주도.
셋은 비행기에서 내려 렌트를 하러갔다. 철없이 뚜껑열리는 차 몰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작은오빠를 챙겨 간 건 좋았지만
큰오빠는 두가지를 서울에 두고 갔다. 하나는 동생들을 걱정하는 마음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갑이었다.
큰오빠는 평소 지갑을 두개 쓰는데, 하나는 얇은 카드지갑이고 하나는 각종 포인트 카드부터 지폐까지 넣는 정식지갑으로,
거의 얇은 카드 지갑에 신분증과 체크카드 하나만 들고 다닐 때가 많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현금을 찾아서 지폐지갑에 넣어두고, 습관처럼 아침에 쳌카드 지갑만 달랑달랑 들고 나갔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큰오빠는 한 여름에 오한을 느꼈다고 했다.
왜냐면, 여행 자금 대부분을 현금으로 찾아 큰오빠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늘 자금을 한사람에게 몰아준다)
친구: 차는 그냥 포기하자. 교통카드는 있잖아. 버스 타면 돼.
큰오빠: 그건 그렇지.
작은오빠: 그럼 예산 부족이잖아.
큰오빠: (온화하게) 숙소부터 잡자.
작은오빠: 어디?
큰오빠: 이제부터 찾아야겠지.
친구: 밥부터 먹자.
큰오빠: (폰을 보며) 게스트 하우스도 있고.
작은오빠: 거기 사람 다같이 자는데 아니야? 나 그거 싫어.
큰오빠: 음...
작은오빠: 콘도나 호텔 없어?
큰오빠: 너 나랑 신혼여행 왔냐.
그 시각, 서울에서는 치킨과 맥주 파티가 열렸다.
눈뜨자마자 먹는 치킨은 상당히 맛이 좋았고, 동생이 사주니 더 맛있었다.
나: 엄마가 돈 줬어?
막내: 아니.
나: 알바했어?
막내: 아니, 방에 돈 있더라고. 큰형이 놓고 갔나봐.
나: 아하~ 그렇구나.
잠시의 침묵이 우리를 지나쳤다.
나: 그렇다고 그걸 쓰냐? 그걸 써? 이 새끼가.
막내: ㅋㅋㅋ없으면 쓰는 거지 뭐 어때.
나: 피자 시킬까.
그 쯤 문자가 왔다. 작은오빠의 문자 였다. "니들 왜 전화 안 받냐 전화 해라."
같은 시각 제주도에서 그들은 밥을 먹고있었다. 각자 챙겨온 비상금은 있었던 상태라 완전 거지는 아니었다고 (아까비!) 한다.
심기가 불편한 작은오빠를 달래주기 위해 큰오빠는 손수 돼지고기를 굽고 있었고,
작은오빠는 나와 막내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나: 왜. 왜. 왜 자꾸 전화하는데? 왜?
작은오빠: 야 잘있어? 밥먹었어? 하는 인사 생략하고 우리 방 가면 형 지갑있을거야.
나: 근데.
작은오빠: 거기에 있는 돈 통장에 넣어서 나한테 쏴라. 아님 형한테 쏘든다.
나: 왜?
작은오빠: 하라면 하면 될 걸...
나: 아, 돈 두고 갔구나.
막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은오빠: 아 빨리. 우리 방도 못 잡았어.
나: 부탁하는 사람 자세가 너무 뻣뻣하지 않냐.
작은오빠: 야이씨...
막내:ㅋㅋㅋㅋ커커어커엌어ㅓㅋㅋㅋㅋㅋㅋ
작은오빠: 이 새끼들아 웃지 말고 빨리.
나: 다음주에 나 재활용 당번이더라.
작은오빠: ...형이 대신 해줄거야.
나: 면세점에 DXXX 립제품 신상나왔더라.
작은오빠: 아 이씨 돈이 있어야 사갈거 아니냐! 지금 제발. 빨리! 제발요. 응?
더 놀리고 싶었지만 더운 날씨와 함께 작은오빠의 짜증이 극에 달한듯 하여, 쉽게 그냥 바로 쏴줬다.
잠시 뒤, 큰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큰오빠: (온화하게) 고마워. 돈 받아서 우리 차빌리러 왔어 근데 돈이 좀 비네.
나: 아참, 우리 치킨 먹었어. 두마리.
큰오빠: 그래. 잘했어.
작은오빠: (수화기 너머로 욕하기 시작함)
나: 오빠 여행 즐겁게 하다 와. 재밌게 놀다가 선물사와~
큰오빠: 그럴게. 잘있다 갈게. 막내한테 돈 주웠다고 함부로 쓰고 그럼 안된다고 말해줘.
그렇게 통화가 끝이나고, 재미지게 바다에서 놀고, 밥 먹고 놀고, 차타고 다니고, 작은오빠가 원하던 독립적인 방을 하나 마련했다고 한다.
친구는 게스트 하우스에 묵으면 생길 썸을 기대했다고 하지만, 어차피 안생기겠지.
그리고 그들이 서울에 온 뒤, 막내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돈에 대해 변명을 할 수 밖에 없었고
큰오빠는 온화하게 막내에게 그동안 갈고 닦았던 암바 기술을 써볼수 있었다.
큰오빠: 원래 행운에는 뒤탈이 있는거야.
막내: 나나 나좀 살려줘봐. 나나! 작은형아!
나? 나도 작은오빠한테 갖은 사랑스럽고 상스러운 욕을 먹었지만,
원하던 립 신상을 (무릎꿇고 두손으로 "오빠에게 잘하겠습니다"를 외치며) 수령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