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주말 내내 자고 깨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너는 꿈속에서 조차 볼 수 없었다.실망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렇게 많은 시간을 오로지 자는 데에만 썼음에도 씻는 것조차 힘들만큼 나는 지쳐있었다.
하루 종일 누워있었기에, 다리가 점점 앙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리운 너를 보러 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다행이었다. 휘적휘적 걷는 나는 엄청 꼴사나울 테니까. 그런 꼴을 너에게 보일 순 없으니까.
깨질 것 같은 머릿속에서 많은 문장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아마 떠오른 문장의 개수만큼,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많은 이별들이 허공에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지구상에서 이별은 1분 1초의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한 이별은 우리가 했던 사랑만큼 너무나도 독하게 평범한 것이다. 숨을 쉬는 것만큼 흔한 일이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1분 후에도 어떤 연인들은 흔한 이별을 맞게 될지 모른다. 우리처럼.
하지만, ‘너’와 헤어진 사람은 이 지구상에 몇 명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이건 어쩌면 나에게만 주어진 일종의 사건이다. 행복한 일이다.
2.
인생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내 인생에서 누군가를 떼어내야 한다는 것이 늘 어렵다. 그가 처음이었든 두 번째였든, 그들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나에게서 멀어져간다. 동그란 모습, 세모난 모습, 네모난 모습 등의 흔적을 남기고. 슬픈 건 이 전의 그가 동그라미 같은 모양이었다면 다음에 만날 사람도 동그라미 같은 사람을 만나면 될 텐데, 세상엔 똑같은 동그라미 모양이어도 그와 지름이 비슷하거나 색깔이 똑같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내가 사는 이 곳엔 그 모양 말고도 너무나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결국 네가 준 상처는, 너밖에 줄 수 없었던 것으로 남는다. 그가 준 상처가 그밖에 줄 수 없었던 것이었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너 또한 사랑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직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의미 있는 대답을 지어내기에 나는 지금 너무 지쳐있으니까)
다만 어느 소설에 나왔던 평행우주 이론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3.
만약 이 우주가 너무나도 넓고 광활해서 어느 별 어느 행성에 또 다른 우리가 살고 있다면, 그곳에서의 너와 나는 행복할 것이라고. 그 별의 또 다른 내가 너무나도 행복해서 지금 이 지구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자꾸 엔트로피의 법칙에 의거한 텔레파시를 보내는 거라고. 그래서 이 곳의 내가 길을 걷다가도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고 종종 동그랗게 울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지금 내 곁에 없는, 하지만 저 우주 어딘가에서는 내 옆에서 환히 웃고 있을 너를 떠올리는 것이라고.그러니까 지금 이 지구에서는 내가 너를 죽도록 그리워하고 있을지언정 다른 별에서는 너와 함께 미소를 짓고 있을 수도, 또 다른 별에서는 너를 만나기 위해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있을 수도, 그리고 또 다른 별에서는 이미 너를 다 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 속에서도 단 한 가지 변할 수 없는 것은
‘너와 내가 살아가며 한번은 만났다’는 그 사실.
‘그때의 나는 어쨌든 너여야 했다’는 그 사실.
4.
그러니까 나는 이것을 받아들여야한다. 적어도 이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나는 그렇다. 하루에 열 번씩 자고 깨기를 반복한다 해도, 나는 저 별에서 행복한 너를 꿈꿀 수 없으므로. 저 별 어딘가의 내가, 이 곳의 나 대신 행복해하고 있음으로. 이제는 인정해야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우주 위에 파편처럼 존재하는 모든 너를 사랑한다. 그것 또한 이 세계의 어쩔 수 없는 일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 한가운데에서 여전히 너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게 너를 미워했던 나의 진짜 마음이었다는 걸 인정해야한다.
우리 사랑했던,
그 공간은 너무나 행복하고 너무나 아름다워 다른 곳에 그와 같은 세상이 하나 더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므로. 내가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면 그 날의 몸이 바로 나라면 그런 공간도 단 한 곳뿐이었고, 그런 순간도 단 한번 뿐이었을 것이므로 *
5.
잠깐이었지만 미워했다.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랑했었다.
그리고 이 지구 위의 나는 아마 내게 주어진 얼마간의 시간동안 너를 계속해서 그리워할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곳은, 결국엔 네가 머무르고 있는 ‘이 곳’이므로.
우리의 파편들이 잠시나마 서로에게 기댈 수 있었던 곳은
'잊혀져버린 명왕성'이 아닌
지금도 돌고있는 이 동그란 행성 바로 이 곳, '지구'이므로.
-
지구 위의 너를 사랑한다.
그게 너를 사랑하는 수 십명의 한 명으로 남아 그저 그런 사람이 되는 일일 지언정,
이 곳에서 살아가는 너를 사랑한다.
'*' 표시가 된 곳은 김연수 작가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라는 소설에서 차용하였습니다.
- <안녕? 이 곳은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라는 시를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