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충청남도 서산의 어느 집안에서 4남매중 첫째로 태어났다.
사방이 산과 들 그리고 논과 밭으로 둘러 쌓인 탓에 친구들과 놀기보다 주로 농사일을 도우며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서울에 있는 작은 회사의 경리로 취직했다.
그렇게 번돈을 생활비만 남겨두고 모두 집으로 송금하며,
머나먼 타지에서 자신만의 여가생활도 즐기지 못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집을 떠나 생활한지 3년쯤 지났을 때
사촌오빠의 권유로 선을 보게되었고,
그곳에서 4살차이의 청년을 만나게되었다.
선자리에 슬리퍼를 신고 나온 그를 보고 무례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에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게 궁금증에 한번 두번 만나다보니 어느새 사랑을 나눴고 둘은 약혼을 했다.
그리고 87년 4월 어느 봄날 그녀는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녀에게 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은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건설회사직원으로 현장에서 지내는 날이 많았고,
아이의 양육은 그녀 혼자서 할 수 밖에없었다.
아이가 열이 심해 울음을 멈추지않자 밤새 열이 내릴수 있게 물수건을 갈아주었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딸을 낳았고
곧 아들도 낳았다.
두 아들과 딸을 보며 건강하게만 자라길 기도하고 기도했다.
자식들이 점점 커가면서 크고 작은 사건들로 아플때 그녀는 더욱 아파했다.
자신이 대신 아프지않은걸 미안해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보다 자식들은 소중히 여겼다.
자식들이 자라면서 사춘기를 지나고
그로인해 그녀에게 대드는 일들도 잦아졌다.
뒤늦게 시춘기가 왔던 막내가 엄마가 해준게 뭐가 있냐며 대들었을 때
그녀는 말없이 혼자 눈물을 훔쳤다.
큰아들이 입대했을 때에도 눈물을 흘렸고
둘째 딸이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에도
막내 아들이 축구하다 다리가 부러졌을 때에도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자식들이 다 자라고 나니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슬픔에 또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자식들은 그녀가 자신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희생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녀는 세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냈고 세 자녀 모두를 대학에 보냈다.
자신의 자식들 만큼은 자신처럼 돈이없어서 공부를 못하게 하고 싶지 않았단다.
지금도 그녀는 많은 것들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식들에게 바라는것 없이 자식들이 건강하게 사는것을 바란다.
앞으로는 우리 생각만 하지 말고 엄마하고 싶은것들 하셨으면 좋겠다.
좀 늦긴했지만 지금이라도 엄마가 즐겁게 살길 바란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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