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때 전공과 상관없던 경제학 원론을 친구들과 함께 받았었다. 사실 교양과목을 고르다 할 게 없어 선택하게 되었는데
교수님은 전공자도 아닌데 경제학에 관심을 보인다며 우리를 관심 있게 지켜보셨다.
그리고 한 번 더 경제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우리를 적어도 물물교환 이론이라도 제대로 알고 사회에 내보내야 한다는 교육자의 사명으로
세 명 모두에게 F를 선물하셨다.
제대 후 교수님의 배려로 우리는 경제학 원론을 다시 한 번 받게 되었다. 힙합 바지와 헐렁한 티셔츠가 잘 어울리던 풋풋풋풋한 20대의 우리는
깔깔이와 예비군복이 더 어울리는 강의실보다 공사현장에 더 어울리는 외모를 가진 아저씨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든 예비역이 처음 복학하면 다짐하듯 '우리도 이제 철들어서 열심히 공부 좀 하자' 라는 생각으로 모든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글만 읽을 줄 알던 실질적 문맹같은 우리는 그 어렵다는 경제학 원론서인 맨큐의 경제학을 매일 같이 읽으며 토론했다.
주로 한 명이 설명하면 다른 두 명이 대답하는 즉문즉설식 학습법을 했는데,
"너 한계효용이 뭔지 알아?"
책의 내용대로 암기 한 친구가 설명을 했지만, 우리 둘은 이해하지 못했다. 답답함을 느낀 녀석은
"너희가 밥 처먹을 때 쓸데없는 오르가슴을 느끼잖아. 그런데 배 터지게 먹으면 오르가슴이 고통으로 넘어가는 거랑 비슷한거야. 이 무식한 놈들아."
"아..한계효용은 고통이구나..."
"산업혁명에 관해 설명해봐"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혁신으로 사회, 경제 구조의 변혁이 온 거야. 인류 역사상 위대한 발명이 증기기관이 큰 역할을 했지."
"증기기관? 물 끓이는 거? 물 끓일 화력으로 화력에너지 개발하면 되지 왜 쓸데없이 물을 끓여..그거 재능 낭비네"
산업혁명에 관해 설명하는 놈도, 듣는 놈도 할 말을 잃었다.
우린 저런 식으로 경제학을 이해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고사가 끝나고 5인조로 구성된 조별과제를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로 경제학과 신입생들로 구성된 학생들은 선뜻 타과의 복학생 3명과 함께 조별과제를 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반강제적으로
무리에 이탈된 2명의 여학생이 우리와 한 조가 되었는데, 우리가 스무 살 여학생들에게 "오빠, 오빠" 소리를 들을 조별과제의 낭만을 꿈꿀 때
그녀들은 "아 씨.. 진흙 피하려다 똥 밟았네.." 하는 표정이었다. 첫 조별 모임부터 우리 조에게 학업에 대한 열의를 찾기는 힘들었다.
결국, 사다리 타기를 해서 2명이 과제 준비하고, 발표까지 하는 험난한 과정을 하기로 하고 사다리 타기를 했다.
1등으로 선발된 건 키가 큰 여학생, 나머지 넷은 제발 자신이 피해가길 바랐으나 운명의 사다리 신은 나를 선택하셨다.
그녀의 입에서 아주 작게 "젠장"이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모르는 영특한 친구들과 하느니
차라리 쟤랑 같이 하는 게 낫지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주의 기간 동안 그녀와 함께 서로 수업이 없을 때 만나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함께 피시방에서 문서 작업을 하곤 했다.
함께 과제를 준비하면서 남녀가 함께 있다 보면 없는 정도 생기는 법. 나는 키만 큰 그녀에게 의외의 귀여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고
그녀도 내게 "오빠, 생각보다 말 재미있게 하네요." 하면서 서로에 대한 호감이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의 조별 과제 발표가 끝난 날, 과제를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성취감보다 이제 그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친구 한 놈이 "과제도 성공적으로 끝냈으니 우리 뒤풀이나 하자"고 제안했다. 사실 지들이 한 게 뭐 있다고.... 하지만 그녀와 처음으로 술자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싫은 척하면서 "뭐.. 그래 간단하게 뒤풀이나 하자..."라고 했다.
평소 소주를 잘 마시지 못하던 나는 그날따라 소주가 마치 격한 걷기 운동 후 마시는 몸에 흡수가 빠른 게 '토' **처럼 잘 넘어갔다.
그 당시 나의 주량은 소주 3잔인데, 얼마를 마신 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소주가 내 몸에 주는 한계효용의 최고치를 넘어서는 순간
나는 밖으로 뛰쳐나가 주로 먹는 데 사용하는 입을 배설의 용도로 활용하고 있었다.
"우웨웨웩..."
누군가 나를 따라 나왔다. 당연히 친구 중 한 놈이 내 등을 두들겨 주러 나왔겠지 생각하며 더 불쌍한 자세로 몸을 웅크리며 예전 사귀었던
여자친구에게 배운 두성창법으로 우렁차게 소리를 냈다. '왜 내 등을 안 두들겨'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헉. 내 옆에 그녀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으로 그녀가 왔다. 쪽팔림보다 "아 씨 X됐다..." 라는 생각이 들 무렵
예쁜 목소리로... "우웩, 우웨웨웩.." 그녀도 내 옆에서 입을 다른 용도로 쓰고 있었다.
우리는 감미로운 발라드곡을 부르듯 서로 호흡을 맞추며 열변을 토했다.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 온 뒤 그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괜찮아?"
"아뇨 죽겠어요. 아까 오빠들이 게임하자고 했을 때 오빠 계속 걸렸을 때 내가 괜히 흑장미해서..."
사실 난 그녀가 나를 위해 흑장미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라고는 동네에서 풍년마다 잔치할 때 춤췄던 가락으로 몸을
굿거리장단에 맞춰 흔든 기억밖에 없었다.
"왜 그런 시키지도 않은 장한 행동을 한 거야..."
"오빠 술 먹다 죽을까봐요."
"고맙네. 그리고 미안해. 내가 술이 약해서..."
"오빠 그런데 나 오빠 좋아하는 거 같아요."
"어 그래.. 나도 내가 좋은데 너라고 안 좋아할리가.. 잠깐 뭐라고?"
그날 마신 소주 아니 평생 내가 마신 술이 다 깨는 기분이었다.
"술김에 어른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야.. 너 내일 술깨면 후회할 거야."
"아니야. 진심이라고 새끼야..."
"너 나한테 반말하는 거 보니까 취했다. 내일 술 깨고 연락해."
나는 뒤따라 나온 그녀 친구에게 그녀를 맡기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친구들은 술 마시다 실종된 나를 찾으러 학교 앞을 1시간 동안 방황했다고 한다.
그날 자취방에 와서 누웠을 때 태어나서 처음 듣는 '좋아한다는' 고백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건 꿈일 거야. 그것도 악몽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1년동안 들을 욕을 선불로 땅겨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을 했을 때 친구들은
"걔 술 취했네... 너 다른 사람한테 한 말 너한테 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걔가 뭐가 아쉬워서 너 같은 동남아 교환학생을..."
이 새끼들은 친구도 아니었다.
그리고 해장할 겸 라면을 먹고 있는데,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왠지 '어제 술 먹고 제가 실수한 거 같아요' 라고 하는 말을 듣고 실망하는 잠시 후
미래의 내 모습이 연상돼 받지 않았다. 그녀에게 2통의 전화가 계속 왔다. 그리고 "오빠 어제 잘 들어갔어요? 아직 자나 보네요. 일어나면 전화 주세요."
라는 문자가 왔다. 고민하다 그녀에게 전화 했다. 그리고 어제의 안부를 묻는 이야기를 주고받다 그녀는 내게 해장국을 사달라고 했다.
라면을 두 개나 끓여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1%의 희망을 꿈꾸며 그녀를 만나러 갔다.
콩나물국밥을 앞에 놓고 우리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빠... 어제.."
"어. 괜찮아, 나도 술 취했고, 너도 취한 거야. 난 어제 일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그럼 내가 어제 오빠한테 고백한 것도 몰라.?"
근데 동방예의지국에서 어디다대고 반말이야 하는 생각보다 순간 먹던 콩나물이 식도에서 걸리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에이.. 너 술 취해서 말한 거잖아. 신경 안 써도 되."
"난 진심인데..."
난 콩나물을 급히 삼키며 감격에 겨워 말했다.
"그럼 오늘부터 1일..." 콩나물이 나의 사랑을 축하해줬다. 아.. 옆에 있던 수란도 뜨겁게 나의 사랑을 축하해줬다.
친구들을 급하게 소집한 나는 오늘부터 1일이 되었다는 말을 했다.
친구들은 다시 한 번 찾아온 사랑에 대한 축하보다 나이차 나는 우리 커플에 대한 걱정을 먼저 했다.
"너 무좀 있는 거 걔가 알아? 절대 너 걔 앞에서 신발 벗지 마. 가뜩이나 심어줄 환상도 없는 놈이...."
"야.. 5살 어린 애야.. 잘 생각해봐 네가 대학 신입생이라도 술 마실 때 중학교 교복 입고 키 크려고 서울우유 마시던 청소년이라고..
이런 것도 범죄야 범죄.."
결론을 말하자면 그녀와 나의 연인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기말고사가 시작될 즈음
조카의 똥을 먹을 듯한 심각한 표정의 친구들이 평소 내게 안 사주던 술을 사주며 말했다.
"성성아.. 내가 할 말이 있는데, 너 절대 욕하거나 화난다고 우리 때리면 안돼...우린 연약하니까"
"왜 나보고 술값 내라고?"
"아니야 우리가 살께. 너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어...."
"용건이 뭐야? 너희 둘이 설마 사랑에 빠졌냐? 드디어?"
"아니라니까.. 니 여자친구 있잖아. **이 얼마 전에 다른 남자하고 있는거 봤어..."
"친구나 과 동기겠지.."
"친구나 과 동기하고는 손잡고 다니지 않아."
"그럼 가족이나 사이 좋은 친척인가 보지."
"가족하고 친척끼리는 서로 팔짱 끼고 껴안지 않아."
우리 셋은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날 또다시 벽을 잡고 "우웨웨웩..."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녀가 아닌 두 놈이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서로 두들겼다.
그날 아무 말 없이 술을 마셔주고 내 등을 두들겨준 녀석들이 너무 고마웠다. 오늘 만큼은 녀석들이 사탄 마구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찰나
내 뒤에서 위로한답시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이따위 노래를 부르는데
그녀에 대한 분노를 주먹에 담아 녀석들을 한 방에 교회다는 한 놈은 주님에게로, 무교인 한 놈은 염라대왕 곁으로 보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다음 날 그녀에게 "오빠 미안해.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라는 말을 먼저 듣기 싫어 내가 선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내가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난 군대에서나 썼던 편지로 내 마음을 전달하기로 했다.
(그날 썼던 편지의 기억을 최대한 재구성한 것입니다.)
**아 안녕. 오빠야.
봄부터 여름까지 짧지만 너의 소중한 20살의 시간을 나와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맙다.
**이 덕분에 잊어버린 줄 알았던 나의 연애 세포도 다시 각성하는 계기가 된 것 같고, 잠시나마 내가 "괜찮은 놈, 앞으로 괜찮을 놈"이라는 생각을
들게 해줘서 고맙다.
고3 때까지 부모님과 학교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 사회주의 경제체제 같은 삶만 살다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삶을 사는 나를 보고
아마도 네가 나를 통해 대학이라는 자유경제주의를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우리 둘의 사랑이 행복의 인플레이션이라는 정점을 지나 디플레이션 단계로 넘어가는 시기인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손이 너의 손을 잡고, 너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광경을 보았다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처음 사귀었을 때 내가 했던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가 보내 준다고 한 말'의 시기가 내 예상보다 조금 빠르게 온 것 같구나.
경제학자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미래 예측을 참 못하기는 하는 것 같다.
너에게 나는 '네 삶의 필수재'가 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사람은 너희 좋은 기회비용이 되길 바란다.
그럼 행복해!!
나는 저 편지를 쓰기 위해 맨큐의 경제학 2장까지를 활용했다. 경제학 용어가 틀렸는지 맞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난 경제학 원론 수업을 A+ 받았다. 그녀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