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군 입대를 앞두고 밥을 해주겠다며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물론 배웅을 해준다는 의미로 오신 것이었고 내 새끼 군대가기 전 좋은 것 좀 먹인다며 이것저것 싸가지도 오셨습니다.
외할머니는 경남사람으로 해양생물(?)요리 전문가였다면 할머니는 수도권 쪽에서 지내신 분으로 축산과 양념요리의 대가였습니다.
그리고 저희 어머니는 4남매 중 첫 째 맏언니여서 동생들을 자식처럼 키웠고 나름 주부 20년차를 넘어선 현대요리(?)의 대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두 분을 모셔오시고 어머니를 주방에서 봤을 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지만
그것도 그 순간 뿐이었습니다.
선공은 할머니 쪽에서 이뤄졌습니다. 보자기에 싸온 큰 통을 여니 양념을 절인 갈비가 보였고
" xx엄마야 이거 어디 구울 판 좀 줘라 "
라고 운을 떼시는 순간 세 분의 신경전이 벌어졌습니다.
곧 바로 외할머니께서는 아버지가 들고온 스티로폼을 뜯더니 메기가 들어있었습니다.
저를 보시고선
" 아가 쪼매만 있으라 할미가 퍼뜩해서 주께 "
라며 맞받아치시자 할머니께서는 헛기침을 하시더니
" 시간도 없을텐데 얼른해서 줘야지 곧 저녁시간인데 ... 사돈 그거 하시다가 애 군대가겠수 "
...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자신이 하겠다며 어르신들은 TV보시며 쉬라고 하곤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부엌에서는 불과 물과 흙의 전쟁이 벌어졌고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저와 동생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할머니가 간장을 쓰시면 외할머니는 간장을 달라고 재촉하고
외할머니가 소금을 뿌리시면 너무 짜게 먹으면 안좋다고 훈수두시던 할머니
고기굽는 냄새와 연기가 방안을 뒤집자 119 오겠다는 외할머니 ...
묵묵히 떡갈비를 손질하시던 어머니는 두 분을 보시고는 요즘 애들 입맛에는 그런게 안 맞을 수 있다고 하시고 ...
2시간이 지났을까 전쟁은 끝나고 밥상엔 화려한 요리들로 가득찼습니다.
할머니가 해주신 양념갈비는 입 안에서 푸른 초원이 그려지고 소 떼가 뛰노는 맛이었습니다
외할머니가 해주신 메기탕은 마리화나 해구의 깊은 맛이 담겨있었고
어머니의 떡갈비는 조선시대가 부활한 맛이었습니다.
섣불리 맛 평가를 하지못하고 셋 다 맛있다며 얼버무리는데 ... 서로가 서로의 음식을 먹어보고는 고개만 끄덕일 뿐
2차대전이 끝나자 냉전이 벌어진 것 같았습니다.
당시 군대 가기 전이라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저는 흡사 전쟁터에서 낙오하여 중립국으로 떠나는 외인이었고 아쉽게도 요리전쟁의 승자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이걸 왜 적냐고요?
월요일날 동생이 군대갑니다.
아버지가 할머니랑 외할머니 모시고오고 있다네요 ㅎㅎ
어머니는 장보러 가심 ㅎㅎㅎㅎㅎㅎㅎ
전역자 겸 냉정한 심판으로서 전쟁을 즐기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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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5/06/06 17:17:21 219.248.***.82 데렐릭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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