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친이 장기간 엄슴체입니다. 다소 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2012년 겨울, 난 대학가 빌라 촌에서 자취를 했음.
밤 10시 정도였던가? 자기 전에 담배를 하나 피려고 빌라 앞으로 나왔음.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도 없고 해서 마음 놓고 담뱃불을 붙이고 피고 있는데, 언덕 아래에서 여자분이 올라오는 게 보였음.
골목이 차 두 대는 지나가는 곳이지만 담배 냄새가 풍길까 봐 구석으로 최대한 들어갔음.
자세히 보니 여자분이 술을 얼큰하게 드셨는지 비틀대며 올라오고 계셨음. 그러다 구석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의심스럽게 쳐다보기 시작했음.
대학가에 성폭행사건이나 강도사건이나 소문이 흉흉 할 때였고, 골목에 가로등도 밝지 않고, 곰 같은 체구의 놈이 검은 패딩에 모자까지 뒤집어 쓰고
골목구석에서 담배까지 피고 있으니 뭐... 경계할만도 하겠다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고 있었음.
그런데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어디에 전화를 거는 거임.
'엉~ 오빵~ 나 집에 가고 이쒕~'
술을 드셔서 그런지 통화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따가웠음.
'웅~ 오빵~ 다 와 가는 데에~ 그래도 데리러와라~ 웅? 오빵~ 데리러오면 안돼?'
점점 목소리가 커졌고 술에 취해 목소리가 늘어져 애교가 과하게 넘쳤음.
골목 들어설 때는 전화를 안 하다가 왜 하필 나를 보자마자 의심스럽게 쳐다보더니 이런 염장질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짜증이 몰려왔음.
오랜 기간 솔로인 것도 서러운데 예비 범죄자로 생각하는 건지;; 그냥 난 집 앞에서 담배만 피웠을 뿐인데..
그 순간, 앞 빌라에서 '오빵~ 데리러오면 안돼?'라며 여자들의 합창이 들려왔음.
등교 시간에 여자들이 우르르 나오던 그 빌라 였음.
그 여자분은 벙쪘는지 걸음을 멈추고 통화도 멈춘 상태가 되었음.
그런데 이번엔 뒷 빌라에서 더 큰 소리로'오빵~데리러오면 안돼?'라며 여자들의 합창이 들려왔음.
그러자 앞 빌라에서 질 수 없다는 듯이 더 크게 ' 오빵~데리러오면 안돼?'라고 응수해 주었음.
난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하고 웃기기도 했고 수많은 여자들의 오빵~소리에 취해있었음. 마치 내가 데리러 가야할 것처럼.
여자들의 오빵~소리를 다 느끼기도 전에 그 여자분에 폭발하셨음.
'야이~ ㅆㄴ들아~ 어디서 개ㅈㄹ이야 이 개ㅈ같은 ㄴ들'
'어디 나와서해봐~ 이 개ㅈ같은 ㄴ들아~ &*%#&^#*&$*&$^'
좀 전에 애교 섞인 목소리와는 달리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욕을 시전하는 것임.
씩씩데면서 욕을 퍼붓다가 남자친구에게 '아니~ 미친ㄴ들이 나보고 놀리잖아. 그러니까 데리러 오라니까'
그러자 앞 빌라에서 '오빵~데리러오면 안돼?'라고 또 합창을 함.
여자분은 분을 이지기 못해 또 욕을 시전함. "야이~ @#$@$%@같은 나와바 면상 좀 보게!! 내 앞에서 해봐!!!'
이젠 나도 웃기기보다 벙찐 상태가 되었음. 여자분은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씩씩거리고만 있었음.
그런데 갑자기, '어떤 미친ㄴ이 한 밤중에 사람 잠도 못 자게 ㅈㄹ이냐' '이 ㅆㄴ을 내가 가만 안 둔다'라며
우리 집 지하에서 아주머니 욕하는 소리가 들렸음.
그러자 술 취한 여자분이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서 골목에서 사라졌음. 진짜 술이 취했던 건가 싶을 정도로 빨랐음.
우리 빌라에서 아주머니가 집 밖으로 나오셔서 주변을 살피다 나를 발견하고 시선이 잠시 멈추었음.
내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확인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음. 내가 남자인 것을 확인하고 골목을 다시 한 번 본 뒤 집으로 들어가셨음.
이 모든 사건이 내가 담배 한 가치를 피우는 동안 벌어진 일임. 아주머니가 올라오셨을 때 내가 여자였다면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을 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침.
내가 인생살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거의 없는데 이 일이 유일무의한 일인 것 같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