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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story_433369
    작성자 : 알파찌개
    추천 : 17
    조회수 : 1141
    IP : 1.246.***.102
    댓글 : 34개
    등록시간 : 2015/02/26 17:44:27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33369 모바일
    브금有) 폐암 걸린 줄 알고 놀랐던 이야기.txt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Zwd2P


    나는 유학시절에 담배를 배웠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극도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귀국을 3주 가량 앞둔 상태였다. 한창 엇나가기 쉬운 나이인데 항차 주위에 통제할 사람이 없으니, 이건 뭐 더 타락하지 않고 담배 정도에서 끝난 것을 신께 감사드릴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한 마리의 성난 짐생이 되어 무고한 사람들을 습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향수병의 시기에도 결연히 11개월을 버티던 내가 호기심 한 방에 흡연자로 변모하고 말았으니, 역시 인류 역사의 원동력은 큐리오씨티가 아닌가 한다. 인류 몰락의 원동력도 역시 큐리오씨티일게다.


    이 이야기는 흡연자인 내가 대학 입학을 목전에 두었던 시절에 있던 이야기이다.


    나는 고향집과 꽤 떨어진 곳으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통학이 불가하니 남은 것은 기숙사 입실과 자취 생활이었다. 나는 유학에 군대코스를 밟으며 이미 솔로들의 생존기술들을 완벽히 터득한 상태였다.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방법에 통달했으며, 전구를 갈아끼우는 순서 또한 정확히 숙지하고 있었다. 크레모아는 볼록한 부분이 적방향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며, 슈퍼마켓에서 소주 한 병을 사고 거스름돈을 정확히 받아오는 일도 가능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런 내가 마뜩찮은 눈초리셨다. '내가 너랑 스무다서해 넘게 살아봐서 아는데, 너 자취하면 하루에 한 끼도 안 먹다가 굶어죽을게 분명하다' 고 말씀하시더니 기어이 내 자취를 반대하시는게 아닌가. 나는 아빠에게 필사적인 구원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아빠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실 뿐이었다. 부모 이기는 효자 없다고, 나는 결국 내 뜻을 굽히어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B형 간염과 결핵에 걸리지 않았다는 통지서를 제출해야만 했다. 이 사실을 접하고 난 나는 등 뒤로 한 줄기의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의학계의 일을 훤히 꿰뚫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혈액채취를 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거워진 가슴을 안고 동네 보건소로 향했다. 얼추 이야기를 들어보니, 피를 뽑고, 폐 사진을 찍어보는 두 가지의 코스만 밟으면 끝나는 듯 했다. 폐 사진이야 다들 한 번은 찍어보던 그 사진이었다. 턱을 기계위에 올리고 양 손을 엉덩이에 살포시 가져댄 뒤, 숨을 한껏 들이마시니 어느 순간 사진촬영이 끝나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혈액채취 시간이 다가왔다. 책상앞에 앉으니 상 위에 사우나에서나 볼 법한 굉장히 불편한 가죽배게 소 짜리가 하나 있었다. 나는 군말없이 왼팔을 내밀었고, 주사바늘이 혈관에 도킹하는 것을 느꼈다.


    내 혈구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열심히 영양소와 산소를 져나르고 있었을게다. 여러 세포들을 향해 열심히 혈관을 내닫던 자신의 운명이 주사기 속에서 끝맺을 것을 그 어떤 적혈구가 알수 있었을까. 그 중에는 어제 갓 태어난 신생적혈구도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등에 산소를 지고 왼손 엄지로 향하며 들떠있었을 그 적혈구를 생각하자니 눈시울이 붉어져왔다. 절대로 주사바늘이 무섭거나 아파서 눈시울이 붉어진게 아니었다.


    그렇게 고난의 혈액채취가 끝나고 나는 알코올 솜을 댄 상태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 때 내 폐사진을 찍어주셨던 분이 방으로 들어왔다.


    "알파찌개(가명)님? 사진 한 번 더 찍을게요."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 분을 바라보았다.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또 다시 내 못 된 버릇이 동하는 것을 느꼈다. '폐 사진을 다시 찍다니? 드디어 올 암이 왔구나!' 부터 시작하여 '야, 어쩐지 작년에 그렇게 암 걸릴것 같은 일만 일어나더니' '이미 폐포 구석구석까지 로열블랙이 된 게 분명하다' '폐암이면 답도 없는데, 나도 목에 구멍 뚫어야 되나?' '기관지에 타르로 8차선 고속도로 깔렸나봐' 까지 암울한 온갖 상상들을 하기 시작했다. 뢴트겐을 다시 찍으러 갈 즈음엔 이미 난 자신에게 폐암 말기를 선고한지 오래였다.


    나는 뢴트겐 사진이 방사선을 내뿜는 사진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자꾸 찍어재끼다가 돌연변이 암세포라도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일었다. 학계에 보고된 일이 없는 슈퍼 암세포가 무차별적으로 전이되어 암 인간이 된다면? 정말이지 내 걱정은 끝 간데를 모르고 치달았다.


    사진을 찍으러 다시 방사선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새카맣다 못해 두 덩이의 석탄같은 폐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순간적인 충격에 흠칫했다. 예상은 했지만 내 폐가 화석연료 수준일 거라고는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연비도 굉장히 좋아 보였다. 나는 충격에 말을 잊지 못하고 어버버 하며 사진만을 바라보았다.


    "아까 섰던 것처럼 서세요."


    스피커로 사진기사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N극에 이끌리는 S극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기계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 때, 석탄같은 폐 사진 아래의 보건복지부 마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돌려 사진을 응시했다. '아니, 내 화석연료폐사진에 왜 보건복지부 마크가 붙어있지? 내 폐 사진이 금연 홍보 포스터에 최적합인가?' 하도 지그시 응시하니 마치 사진도 나를 응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왔다. 물론 그럴리 없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그건 그냥 원래부터 그 자리에 붙어있던 금연 홍보 포스터였다. 자라는 구경도 못 한 사람이 솥뚜껑에 삿대질을 하며 '자라다! 산개하라!' 라고 호들갑을 떤 꼴이었다.


    "고개 돌리지 마세요."


    스피커에서 다시 한 번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나는 그제야 홍보포스터에서 눈을 때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기분탓인지 X선이 내 폐를 관통하는 찌릿한 느낌이 느껴졌다. '왜 처음 사진 찍을때는 발견하지 못했던걸까? 고 사이에 찰싹 붙여놓은건가?' 사진이 찍히고 난 뒤에도 나는 인류역사의 원동력 때문에 4초간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


    방사선실을 나서서 나는 사진기사님께 말을 걸었다.


    "왜 두 번이나 찍나요?"
    "아, 그게....."


    그 분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저장을 분명히 눌렀는데 파일이 없더라고요. 하하."


    나는 그렇게 약간 놀란 마음으로 방사능 구역을 나섰다. 저장을 눌렀는데 파일이 없을리가 있나. 저장을 안 누른게지 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어쨌건 암은 아니었으므로 정말 다행이었다. 보건소 밖으로 나오자 2월의 찬 바람이 불어왔다. 올해는 저따위 금연 포스터에 농락당하는 일이 없도록 반드시 금연에 성공해야겠다는 굳은 결의가 샘솟았다.


    "어휴, 사람 놀래키는 방법도 정말 가지가지구나...."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지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담배를 꺼내물고 불을 붙였다. 그렇게 또 한 번의 금연이 실패했고, 나는 내 폐를 믿어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


    친구 중 한 명이 '오유에 글 올려봐라' 고 노래노래를 부르기에 올렸더니, 묻힐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너무 폭발적인 반응이라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진짜 별 거 없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좋아해주시다니, 손 둘 바를 모를 뿐입니다.

    앞으로 개강 전까지 3 가지 이야기가 더 남아있습니다.


    1. 유학시절에 가위눌린 이야기

    2. 여자친구 생길 뻔한 이야기

    3.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로 일본인 놀려먹은 이야기


    저렇게 3개 쓰면 나머지 다른 이야기들은 바빠서 학기중에는 어지간하지 않는 이상은 못 올릴 것으로 사료됩니다.

    단 한 분 이라도 제 글을 읽고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잊으실 수 있도록, 저 3가지는 개강 전에 꼭 풀어놓고 가겠습니다.

    어..... 이렇게 즐거워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토요일 즈음에 1번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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