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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story_433095
    작성자 : 알파찌개
    추천 : 49
    조회수 : 3087
    IP : 1.246.***.102
    댓글 : 28개
    등록시간 : 2015/02/21 05:06:17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33095 모바일
    정초부터 외가 유리창 깨먹은 이야기.txt
    설이라 외가에 갔었다. 외가는 단양이라는 시골인데, 시골집 답게 마당이 있다. 마당이 있다면 당연히 마당문도 있다. 마당문은 꼭 닫혀서 아귀가 들어맞으면 안에서 열어주지 않는 이상 열리지를 않는 우직한 마당쇠 같은 문이다.  

    화두를 잠깐 돌려서, 심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는 금연에 실패했다. 우사인볼트보다 내 금연실패가 훨씬 빠를게다. 아마 평생 금연을 못 하고 폐암이나 뭐 그런 걸 걸릴 운명임에 틀림없으므로 이젠 운명에 순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당문과 금연실패가 한데 어우러져 이런 영 좋지 못한 시너지 효과를 내게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이야기는 바로 엊그제에 시작된다. 

    저녁을 먹고 어르신들과 함께 술을 땡긴 뒤였다. 상이 슬슬 비어가고 취기도 솔솔 올라왔을 무렵, 나의 중추 신경계가 니코틴 좀 올려보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집어들었다. 술 기운에 대범해진 것일까, 바람이 그리 불어재끼는데도 나는 겉옷도 걸치지 않고 티셔츠 한 장에 쓰래빠로 집을 나서는 패기를 부리고야 말았다.  

    문의 우직함은 외할머니께서 일러주셔서 익히 알던 터였다. 나는 문이 닫히지 않게 조심하며 마당을 나섰다. 잠시동안은 전혀 추위를 못느꼈지만 역시 나도 보잘 것 없는 일개 인간일 뿐이었다. 사회망을 벗어나 초라한 개인이 된 나는 채 40초를 버티지못하고 뼛속까지 격히 떨려오기 시작했다. 

    도저히 추위를 견딜수가 없어서 피우는 둥 마는 둥 담배를 끄고 집으로 들어가기로 결정을 봤다. 나는 발을 동동구르며 뛰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문과 물리적 마찰을 빚고야 말았다. 난 엄청난 소음과 함께 뒤로 나동그라졌는데, 당연히 열리겠거니 하고 고갤 숙이고 뛰어들었지만 문이 열리질 않아서 머리를 격하게 부딪친게다. 

    나는 아프기보다는 당황스러움에 추위도 잠시 잊었다.  문고리를 잡고 흔들어보았으나 문은 요지부동의 해태마냥 열릴 줄을 몰랐다. 마치 스핑크스 한 마리가 '여길 통과하고 싶다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고 말을 한 주제에, 수수께끼를 내질 않아서 수수께끼를 풀 수가 없고, 수수께끼를 풀질 못해서 통과를 할 수가 없는 처지에 놓인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휴대폰은 집 안에 놓여있었다. 나는 초인종을 연거푸 눌렀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초인종은 작년 추석부터 고장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문짝을 탕탕 두드리며 큰 소리로 문 좀 열어달라고 외쳤다. 그러나 집 안에서는 TV소리와 함께 간만에 모인 식구들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내 목소리는 창문과 문에 막힌 뒤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도저히 누구 하나 창 밖을 보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슬슬 생명에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 부분부터 점점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발가락은 유리알로 변하기라도 했는지, 발을 내딛을 때마다 깨질듯 아파왔다. 

    그러다가 기가막힌 묘안이 떠올랐다. 창문에 작은 돌맹이를 던져서 주의를 끈 뒤, 누구라도 내다보면 문을 열어달라고 말하는 방법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인가 하여튼 어디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나는 '아, 이래서 어른들이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셨구나' 하고 감탄해 마지않으며, 적당한 크기의 돌을 주웠다. 그리고 외가의 창문을 향해 내던졌다. 거실의 동쪽이 창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도저히 빗나갈 수가 없었다. 

    내 희망과는 다르게, 돌은 허약한 소리만을 남겼다. 너무 작아서 나도 들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돌을 던졌다. 역시나 별 소득은 없었다. 울화통이 치밀어오른 나는 갑절은 큰 돌을 골라냈다. 추위에 제구도 안 되고, 짜증이 치밀어오르던 나는 살짝 던져야 할 돌을 빛의 속도로 내던지고야 말았다.  

    이쯤되면 다들 '유리창을 해먹었겠구나' 하고 예상할테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인생은 영화나 소설이 아니기에 유리창은 깨지지 않았고 그냥 금만 갔다. 진짜 다행이었다.  

    효과는 대단했다. 바람이 씽씽 부는 밖에서도 간간히 들려오던 이야기소리가 일거에 멎었다. 10초 정도 뒤에 아버지와 이모부들이 앞다퉈 마당으로 뛰어나오셨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이제 금이 가버린 유리창이 문제였다. 

    큰이모부가 마당문을 벌컥 여셨고 나는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어설프게 골목길 끝을 쳐다보며 '야... 야 이 새끼야...! 돌을 던지고 튀어?!' 라고 외쳤다. 아마 내가 영상학과를 다니면서 단편 시나리오를 쓸 사람이라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내 시나리오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집에 들어간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분명히 문을 꼭 닫지 않았는데 문이 열리지 않던 일, 7분이상을 추위에 떨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일, 책에서 지혜를 얻고 -결과는 썩 좋지 못했지만- 돌을 내던진 일 따위를 시간의 경과순으로 서술하자 어르신들은 예상과 다르게 빵 터지셨다.  

    하지만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나는 외할머니께 유리창 값으로 새뱃돈을 다시 반납하였고, 약간의 감기 기운도 얻었다. 다행인지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내 자금 사정은 정초부터 썩 좋지 못했다.

    이제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문을 닫은 것은 작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편히 쉬고 계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외할아버지께서는 말년에 암으로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아마 외할아버지는 외손주가 젊어서부터 되도 않는 담배지랄을 하는 것을 보시며 '저 눔 시끼 저거, 담배를 어떻게 끊게 하나' 하고 고민하셨을게다. 그러다가 내가 밤중에 담배때문에 혼자서 집 밖으로 슥 나가는 것을 보시곤 고생을 좀 시켜서 담배를 끊게 하시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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