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형이 두 명이 있다.
형들이 태어나기전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연애사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아버지께서는 시골에서 태어나 넓은 논 (물론 우리 논은 아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붉게 익어가는 고추밭에서 고추를 바라보며
내가 스무살만 되면 이 곳을 탈출하겠다고 다짐하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셨다고 한다.
그럴만도 한게 아버지는 위로 누나만 다섯 분이 계셨고, 집안의 가업으로 고추 농사를 짓던 집안의 유일한 고추로서 철이 들자마자
한 손에는 호미, 한 손에는 고추씨를 들고 집과 학교보다 고추밭에서 시간을 더 보내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스무살이 되던 해 서울로 상경하셨고 그곳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셨다. 아주 짧은 신혼생활을 보내시다
큰 형 임신과 동시에 부모님은 붉은 고추가 기다리고 있는 고향으로 내려 가셨다.
어머니께서 처음 시골에 내려가셨을 때 고추밭의 고추들은 "어서와 고추는 처음이지"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름 70년대 도시 여성이라 자부했던 어머니는 우리 삼형제를 낳으셨고, 점점 억센 시골 아줌마화 되어 갔다.
현재 우리 어머니는 농사는 기본 스킬이고 보조 스킬로 전기 배선, 논에 물대기, 돼지 사육하기 등 두덕리 온라인에서나 등장할 법한
만렙 시골 할머니이시다. 내가 걸음마를 떼고 걷기 시작하던 때 쯤 우리 어머니는 마치 습격자 풀셋 악사처럼 우리 형제를 소환수
로 데리고 다니셨다. 그 당시 내가 태어난 시골에서는 아들이 곧 재산이던 시기여서, 삼형제를 끌고 고추밭으로 향할때 온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했다고 한다. 특히 딸딸이 아빠, 딸만 아는 바보, 하지만 가끔 딸을 칠 것도 같은 외모의 옆 집 딸만 둘을 둔 미영이 아버지가
가장 부러워했다고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큰 형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면, 큰 형은 태어났을 때부터 말년 병장 같은 존재였다. 큰형은 장손 + 아들 귀한 집의
큰아들의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도 먹을 게 입에 들어 왔고, 두 동생들이 검은소, 누렁소 처럼 고추밭에서 일을 할 때
어떤 소가 일을 잘하나 감시하며 그리고 황희 정승에게 귓속말을 하던 농부처럼 구경하고 감시만 했다. 심지어 어머니께 오늘은 검은소가 좀 더
열심히 했으니 여물, 아니 밥을 좀 더 주세요 라고 하기까지 했다. 나쁜 새끼..
(실제 큰 형은 작은형과 나를 누렁소 검은소 했는데, 자칭 에미넴을 닮은 작은 형은 누렁소, 태국 농민을 닮은 나를 검은소라 불렀다.)
나와 작은형이 가장 분노했을 때는 김장철을 앞두고 우리 두 형제가 고추를 따고 있는데, 대학물 겨우 1년 먹고 시골에 온 큰 형이
어떤 책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석양의 고추밭을 바라보며 책을 읽고 있을 떄 작은형과 팀플로 형을 구타하는 석양의 무법자가 될 뻔 했었다.
큰 형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자마자 같은 회사 연상의 여인을 만나 부모님께는 맏며느리를 우리 형제에게는 형수님을 안겨 주셨다.
물론 6개월도 되지 않아 부모님은 할아버지, 할머니 호칭을 작은 형과 나는 삼촌의 칭호를 얻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형수님이 처음
우리집에 인사드리러 온 날 어머니는 이런 시골에 시집와줘서 고맙고, 부족한 우리 아들과 결혼해줘서 고맙다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다.
하지만 형과 형수님이 서울로 올라간 뒤 어머니의 눈빛은 "혼인신고 하는 날 부터 내가 저년에게 고추지옥을 맛보게 해주겠어" 라는
디아블로의 사악한 눈빛을 보았다. 하지만 디아블로가 성역의 용사들에게 굴복했듯이 직장생활과 손자들 교육을 위해
서울에 있겠다고 버티는 형수님을 어머니는 이겨낼 수 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형수님은 아주 가끔 내려오셔서 형이 핸드폰으로
애니팡2를 하며 석양의 밭을 바라볼 때 옆에서 조카와 함께 쿠키런을 하며 "두마리 소, 아니 도련님들이 참 일을 열심히 하시네요"하면서
3인칭 방관자 역할을 수행하고 계신다. 한 놈이 그런 것도 모자라 이제 한 파티가 그러고 있으니 더 열받지만 디아블로 아니 어머니도
굴복하신 마당에 우리 소들은 음메 음메 하면서 일만 할 뿐이다.
작은 형은 내게 허세 가득한 존재였다. 자칭 학교의 일진이었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떄는 일진 까지는 아니고 한 십진법 정도 쓰는 존재
같이 여겨졌다. 작은 형은 막내였던 나를 많이 아꼈다. 가끔은 아끼는 마음이 도를 지나쳐 때리기도 했는데, 그럴때마다 때리는 내 마음은
더 아프다 이러면서 나를 때렸다. 큰 형보다 더 나쁜 새끼...
작은 형과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내가 중학교 입학하던 때 부모님께서는 큰맘먹고 오토리버스 기능과 AM, FM 라디오 기능이 탑재된
마이마이의 강력한 라이벌 대우 전자의 미니카세트 요요를 사주셨을 때다. (미니카세트라 했지만 크기는 보온 도시락 사이즈였다.)
내 생애 첫 "내 물건" 이었던 소중한 요요와 나는 항상 함께 였다. 고추밭에서 비료를 뿌릴 때도, 학교에서 출퇴근 할 때도, 심지어
응가할 때도 난 요요와 함께 했었다. 그런 요요를 읍내 잘나가는 형들이 그냥 곱게 봐줄리가 없었다. 읍내 질이 안좋은 형들은
나에게서 요요를 강탈해갔고 나는 눈물 콧물 흘리면서 집에 왔다. 그 모습을 본 작은 형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다음날 저녁 작은 형은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상태로 내 소중한 요요를 가져다 주며, "야 다음부터 병신같이 맞고 다니지 말고
*** 동생이라 고 해" 라고 했다. 난 그 떄 처음으로 작은형이 멋있게 보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작은 형은 읍내 잘나가는 형들에게
그 요요를 받기 위해 엄청 맞으면서도 내동생 요요 내놓으라고 달라 붙은 뒤 받아 냈다고 한다.
물론 훗날 고등학교 때 "내가 *** 동생인데..." 이 말 했다가 더 두들겨 맞은 적도 있었다.
에미넴과 동갑인 누렁소 아니 작은형은 에미넴을 아주 좋아해서 대학시절과 청년시절 에미넴 처럼 입고 다녔다. 그때 사진이 아직 집에
있는데 작은 형은 그 사진들을 흑역사로 치부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가끔 난 형을 헤이! 슬림 쉐이드 이러고 놀리고는 한다. 그리고 맞는다.
지금 작은형은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아주 잠깐 한뒤 시골로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고추밭의 누렁소 아니 고추밭의 에미넴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직 결혼을 못했는데, 에미넴이 리한나와 환상의 하모니를 연출하듯 작은형과 환상의 하모니를 연출할 형수님이 생기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나. 나는 큰 형을 닮아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작은 형을 닮아 허세도 있다. 항상 형들에게 도전하는 역할이었지만, 까부는
막내를 항상 형들은 이뻐했던 것 같다. 그런다고 형들이 나쁜 새끼들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셋 중 둘은 결혼해서 2세들도 있고 (영원히 고통받는 고추밭 에미넴 ㅠ,ㅠ), 먹고 사는게 바빠 자주 만나기는 힘들지만, 힘들고 고민있을 때
서울에서 만나 아주 간혹 비싼 여물에 소주를 사주는 큰 형과 지금도 허세있게 뭔일 있으면 형을 찾아 하는 작은 형이 있다는게
나에게는 큰 재산인 것 같다. 그래도 형들은 나쁜 새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