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써보는 옛날이야기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 무렵 나는 21살 이었다.
21살의 나는 곧 군대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돈이라도 벌어보자며 무장적 휴학계를 냈다.
야간 아르바이트의 장점은 손님이 별로 없다는 거였고 단점은 손님이 별로 없다는 거였다.
... 너무 한가해서 심심하고 졸리고 그랬다
휴학을 했으니 낮에는 더 할일이 없었고 자는거 외에는 정말 할게 없어서 게임을 해보기로 했다.
아직 오픈도 하지 않아던 N 게임사의 A 로 시작하는 게임은 플레이영상만 나돌아도 뭇 게임유저들의 마음을 흔들기 일쑤였고
나도 그 영상에 빠져 언제 해볼 수 있나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게임 홈페이지는 게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수다로 북적거렸고 나도 시덥잖은 댓글이나 달며 그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그 홈페이지는 특이하게 등급제도라는게 있었는데 어떤 이벤트라든가,
어떤 조건만 충족하면 게시판 내에서 등급이 올라가고 게임을 할 때 혜택을 주며
유저들이 게임을 하지 않음에도 떠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혜택이라봐야 아이템 이런게 아니라 게임 시작시 닉네임을 선점하는거라든가, 종족 선택 우선권이라던가.)
나는 그냥 미천한 계급이었다.
별로 관심도 없었고.
며칠을 그렇게 들락날락하고 댓글달아주고 놀다보니 안면이라는게 생겼는데
익숙한 사람도 보이고 흔히 말하는 '네임드' 급의 사람들과도 말을 틀 수 있었다.
참 신기한게 네임드 급의 사람들은 서로가 되게 친했다.
친하다보니 대화도 자주하고 알게모르게 친목적인 분위기도 있고 여론이 그렇다보니 더 우와- 하게 되는 그런게 있었다.
웃긴건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계급이었는데 그들 중 한명과 친해지면서
"저 사람도 네임드인가봐."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쎄컨아이디인가?"
"뭔가 대단한거 같아. 다들 네임드인데 혼자 평민이라니 우와." 같은 말들이 오고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나도 네임드가 되어 있었다.
묘한게 그 전까지는 별 관심도 없었던 그 곳이 내게 무언의 책임(?) 또는 혜택 비스무리한 관심 같은 것들이 주어지자
폭풍같응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네임드로 불리는 사람들도 끕이 여러개로 나뉘었는데 그 중 독보적인 인지도를 뽑내는 몇명중 한명이 내게 쪽지를 보냈었다.
"자네, 우리 길드에 가입하지 않겠는가?"
굉장히 끌리는 제안이었지만 난 마다했다.
왜냐면 곧 군대에 갈거였으니까.
군대에 간다는 의견을 밝히자 그는 그랬다.
어차피 너 군대 다녀왔을쯤에나 게임이 시작할것 같다고. (아직 개발중인 게임이었다)
그냥 가입이나 해두고 친하게 지내며 시간 보내다가 군대 다녀와서 게임 시작하면 되지 않겠냐고 그랬다
듣다보니 맞는 말이고 내가 손해보는건 없었기에 그가 건네준 주소를 따라가 까페에 가입했다. ...
헐
까페에 여자님들이 무수히 반갑다며 인사를 남겨주는데...!!
가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길드 가입을 권유한 그 분은 최대한 홈페이지내의 네임드급들을 많이 섭외해서
까페를 꾸려나가고 게임이 시작되면 게임내에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까페 사람의 반 이상은 홈페이지 네임드급이었고 홈페이지에서 이리저리 댓글을 휘두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소위 말하는 쩌는 길드 랄까.
타게임에서부터 친분을 유지했다는 그들은 이번 게임은 더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세력을 넓히리라 생각하고 있었고 그 첫번째 계획은 미인계였다.
예쁜 여자님들이 많은 길드에 실력 있는 남자가 꼬이는건 당연한 정설,
비공개 까페였던 까페의 대문에는
<우리 길드의 예쁘니들~♥>
여자님들의 큐티, 섹시, 하앜 한 사진이 여러개 걸려있었고
그 사진들을 보고 가입 신청이 세네배는 늘었다며 까페지기 형은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예쁜 여자 사진이 진짜 많았다.
대부분 와 진짜 예쁘다! 라는 분위기였는데 딱 한명 친근하게 예쁜 사람이 있었다.
친근하게 예쁘다는게 뭐냐면 음...
섹시하게 예쁘거나 굉장히 예쁜 그런 느낌이 아닌 보면 되게 편한 느낌으로 "예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그런 예쁜 사람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여섯살이 많았다.
그녀는 조용조용한 성격이었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활동도 많지는 않았다.
애교있고 활동이 많은 사람들이 까페내에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거에 끼어들 틈 없이 그냥 가끔 얼굴이나 내밀고 수다나 떨며 곧 입대할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간 편의점은 참 심심했고 그날도 그냥 심심하고 할거 없으니까 편의점 창고에 위치한 컴퓨터를 통해 몰래 까페를 드나들며 시간을 떼우고 있었다.
시간은 3시, 4시를 지나는터라 까페에 방문중인 사람은 있을리 없었다.
그런데 그때 쪽지가 날아왔다. 어라 뭐지?
"ㅇㅇ님, 안자고 뭐해요?" 그녀였다.
나보다 여섯살이 많은.
"저... 아르바이트중인데요? 야간 편의점 일해요." "그래요? 힘들겠어요."
그녀랑 댓글로 가끔 예뻐요! 어머 감사해요! 같은 시시껄렁한 얘기만 주고 받았는데 느닷없이 쪽지라니.
새벽에 설리설리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일 끝나고 회식도 있고 했는데, 기분이 별로더라구요. 까페 구경이나 하고 자야지 하고 들어왔는데 ㅇㅇ님 보여서 말 걸어봤어요."
"저 야간이라 이 시간엔 늘 있어요. 야간은 심심해서 까페도 자주 오구요."
"나 가끔 잠 안오면 까페 들락날락 자주 하는데. 새벽은 사람이 없더라구요. ㅇㅇ님 계시니까 가끔 쪽지로 수다 떨면 되겠어요 ㅎㅎ"
"저야 그러면 고맙죠! 정말 심심하거든요."
그녀랑 몇번 쪽지를 주고 받고 그녀는 곧 자러갔다. 별거 아닌, 진짜 아무것도 아닌 쪽지였는데 기분이 되게 좋았다
오늘은 일을 더 열심히 잘 할 수 있겠어!! 라는 생각과 함께 폐기로 찍힌 삼각김밥과 우유를 먹으며 새벽을 그렇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