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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가을에 포도를 수확해 와인을 담급니다. 따라서 프랑스에서는 11월에 보졸레 누보 와인을 마십니다. 그러나 남반구인 호주에서는 포도를 수확하지도 않는 11월에 보졸레를 만들어 마실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본인이 원한다는 이유로 굳이 포도를 구해다가 만들어 마시는 사람이 있기는 하겠지만, 지리적 맥락에서 끄집어내진 ‘보졸레 누보’는 합리성을 잃고 오직 자의적인 ‘취향’만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음식문화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논리는 단 하나, 즉 음식문화란 그 문화가 생겨난 지리적 맥락 내에서만 진정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내륙의 음식 중에는 자연스럽게 생선 요리가 많지 않으며, 척박한 지역의 음식이 풍부한 농작물을 재료로 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요.
서구에서는 일반적으로 개고기를 먹지 않아 왔는데, 이유는 서구인들이 특별히 ‘우월해서/교양있어서’가 아닙니다. 이는 서구라는 지리적 공간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가축 무리를 지킬 넓은 목초지가 여러 군데 있는 나라에서 개라는 동물은 고기로 소비해버리기에는 너무 귀중했기 때문에 개를 먹는 것에 대한 금기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지킬 가축이 없는 한국인들에게 서구의 이 ‘금기’를 강요하는 것은 비합리적입니다.
개고기 반대론자들은 그러나 위와 같은 지리적 맥락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언제나 식인 풍습이나 인신공희(심청이)같은 문화적 유물을 예시로 듭니다. 그러나 이 비유가 유효하려면 동물이 사람과 같은 가치와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전제해야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동물은 인간이 아니기에, 동물에게 권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들리나요? 진정 동물에게 권리가 존재한다면, 동물들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인 자유권을 가질 것입니다. 고로 인간에게 사육되는 모든 형태—즉 애완동물, 경찰견, 맹도견 등—은 동물들을 노예로 삼는 행위이기 때문에 지양되어야 하겠지요. 이 이론에 따르려면 우리는 애완견, 애완묘가 있는 가정의 현관을 활짝 열어 그들을 자연에 방생해야 합니다.
위 궤변에 전형적인 거짓말 하나가 더해지는데, “개고기는 불법”이라는 거짓말이 그것입니다. 개고기, 불법 아닙니다. 축산물위생관리법상 ‘가축’으로 정의된 동물 중 개가 없을 뿐입니다. 저 법은 소, 말, 양(염소 포함), 돼지, 닭, 오리, 사슴, 토끼, 칠면조, 거위, 메추리, 꿩, 당나귀만 가축으로 정의합니다. 목록에는 개만 없는 게 아니라 타조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고기, 타조고기 먹는 것이 불법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개고기 반대론자들은 개고기에 축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개고기가 불법이라고 주장하지요.
다른 식당이나 마찬가지로 개고기 음식점들도 정부로부터 합법적인 승인을 받아서 개업합니다. 개고기 음식점도 다른 식당과 마찬가지로 세금 냅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개고기 식당도 재료 구입비용, 즉 개고기 구매 비용에 대하여 다른 사업비용과 마찬가지로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는 것은 동물보호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도 있습니다. 지방 정부는 식품위생법에 준하여 개고기 음식점에 대하여 제한적인 위생 검사를 실시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에 따르면 법에서 금지하지 않는 것은 허용된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타조고기를 먹는 것은 합법적인 행위이며, 개고기를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개고기 반대론자들은 자기들이 시위를 해서 개고기가 축산물위생관리법의 규제를 받지 않도록 해놓고, 개고기기가 축관법상 규제받지 않으니 불법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육견들은 정말 맞아 죽을까요? 물론 그러한 끔찍한 죽음을 맞는 개들이 한 마리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육견들이 맞아죽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개고기 사육사나 개고기 판매업자는 일부러 힘 빼가면서 개를 때려잡을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육견 사육장이나 모란시장에선 육견들은 전기충격으로 도살됩니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과 같은 ‘취향’일 뿐이지만, 개고기 금지론자들은 자신들의 임의적인 문화가 개고기를 먹는 문화보다 낫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아직도 개를 잡아먹는 무지몽매한 인간들을 계몽시켜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일관적으로, 정력을 위해서 새디즘을 자행하고 법을 무시하는 사람으로 그려냅니다. 무법천지. 가학적인 의식. 성욕과다. 더러운 고기. 이런 이미지는 19~20세기의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그려낸 원주민들의 이미지와 합치합니다. 개고기 금지론자들이 자신들이 계몽해야 할 역겨운 인간들을 묘사하기 위해 제국주의자들과 똑같이 거짓말과 왜곡을 일삼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신분 상승을 꾀하는 사람들은 이제 스테이크, 파스타 등을 먹는 것만으로는 스스로를 충분히 ‘표시’할 수 없다고 믿고,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신분적 표시로 삼고 있습니다. 게다가 음식에 도덕성까지 부여함으로써 개고기 반대의 식문화는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강력한 정신승리를 제공합니다. 개고기 반대론자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다른 한국인들에게 자신들이 물질적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가학적인 괴물들이 아니라, 습관, 기억, 맛과 같은 정상적인 이유로 특정한 음식을 먹는 정상인들입니다. 반면, 수천 마리의 개들의 삶을 일거에 향상시킬 수도 있었을 축관법 개정 시도를 막은 것이 개고기 반대론자들이었음을 기억한다면, 누가 진정 가학적인 괴물들인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줄 요약
1. 먹을 만해서 먹는 것이므로 해당 문화는 존중받아야 함.
2. 개고기 반대론자들은 자기정당화를 위해 각종 궤변과 거짓말을 일삼고 있음.
3. 개고기 반대론자 말고는 아무도 식용견의 복지 개선을 막고있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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