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는 정말 여러종류의 인간들이 존재한다. 자대배치 밷은 순간부터 전역하는 날까지 매일아침 침상에 똥 찌리는 놈, 정신병때문인지 비온 뒤 고인 물로 세수, 양치하는 놈, 근무나가기 싫다고 낫으로 자기 다리를 찍는 놈부터 이것들이 정녕 인간의 탈을 쓴 동물색기들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해가 안되었다.
오늘은 그중에 탈영을 두번이나 시도했던 2개월 후임에 관련된 이야기다.
그놈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동그랗게 생긴 얼굴, 170정도 되는 키에 약간은 통통한 체형. 그냥 순박하게 생긴 동네 동생같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녀석의 장점은 신병치고는 뛰어난 작업능력이었다. 당시엔 나도 사제물이 덜 빠진 이등병이었기에 몰랐으나 회상해보면 그놈의 작업능력은 이등병의 작업능력이라고 할수 없었다. 마치 작업의 신이 현계한듯한 움직임이었다. 본인은 만나지 못한 과거의 고참중 일과 시작부터 끝날때까지 한손에는 톱, 한손에는 망치를 들고 주둔지를 배회하던 작업의 망령 빡룡이라는 고참의 모습이 저것과 흡사할거라는 추측만 할 뿐.....
군대에서는 축구, 작업, 눈치만 있다면 누구라도 A급 취급을 받을수 있다. 물론 그놈도 A급소리를 들으며 고참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거기다가 내무생활도 나쁘지 않으니 2소대 1분대에는 A급 신병이 들어왔다고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그놈이 100일휴가를 나갈 시점이 되었다. 보통 첫 휴가 이전에는 신병이 큰 잘못을 해도 크게 나무라지 않고 좋게좋게 넘어가는게 기본이었다. 너무 심하게 갈궜다가 100일 휴가때 복귀를 안할수도 있고 100일 휴가 전에 사고라도 나면 정말 상황이 X같이 되기 때문이다. 삽질하는 놈들에게도 저정도인데 작업 잘하는 A급 이등병에게 대하는 태도는 차원이 달랐다. 휴가 나가기 2주 전부터 A급 전투복에 칼줄을 잡고 전투화 관리를 해주고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고참들은 그놈이 저지를 일을 꿈에도 알아채지 못했다. 마치 고요한 폭풍전야의 밤처럼.......
작렬하는 태양빛이 머리털을 홀라당 태울것만 같은 여름날....그놈과 그놈의 동기, 그리고 6개월 고참이었던 대갈상병 이렇게 셋이 휴가자 신고를 끝마치고 나왔다. 휴가자를 붙잡고 당시 소대장이었던 김사탄이 말했다.
"나가서 먹고싶은거 다 먹고 친구들도 만나고 재미있게 보내고 와라. 자기 전에 연락하는거 잊지 말고. 그리고 대갈상병은 복귀할때 이등병들 잘좀 챙겨서 복귀하도록."
이때까지 소대장은 빵긋 웃는 얼굴로 휴가자들을 배웅했다. 그리고 그 얼굴은 불과 4박5일밖에 가지 않았다.
A급이라 불리던 이등병놈이 휴가복귀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군생활 하면서 탈영병이 언젠가는 나올거라고 생각했었으나 생각한지 불과 한달도 안되어 탈영병이 발생했다. 뭐 이런 미친 부대가 있는가......아니지 그렇게 잘 해줬는데 복귀 안한 놈이 미친놈인가..... 당시 이등병이었지만 중대의 분위기는 초상집 분위기란걸 한방에 직감했다. 그리고 그놈과 같이 나간 그놈의 동기이자 내 맏후임이었던 동키녀석은 꼭 복귀를 하길 빌었다. 그냥 탈영도 아니고 이등병 더블 탈영이라는 타이틀이 걸리면 내 군생활은 Hell of 고통의 지옥이 될것이 뻔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오후가 지났고 휴가인솔자인 대갈상병과 내 후임 동키가 무사히 복귀했다. 맏후임이 무사히 휴가복귀를 했다는 기쁨도 잠시, 1소대장이었던 신중위는 휴가인솔자였던 대갈상병에게 외쳤다.
"상단 타 이 개xx야!"
선배들한테나 듣던 고난이도 얼차려였던 상단 관물대타기를 자대배치 받은지 4개월만에 보았다. 대갈상병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엎드렸다. 역시 상병쯤 되면 저정도 얼차려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신중위는 아무 잘못없는 대갈상병에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을 퍼 부었고 소대장이었던 김사탄의 표정은 마치 마지막 한입 남은 폴라포의 액기스 부분을 뺏긴 초딩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무실에 앉아서 장기복무는 끝났다면서 한숨을 푹푹 쉬던 모습이 정말 처량했다. 물론 그 뒤에서 상단 타던 대갈상병의 표정또한 볼만했다.
그렇게 탈영 1일차의 밤이 저물고 있었다. 다음날 본부에 정식으로 보고가 되고 헌병 군탈체포조가 활동을 개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놈의 분대원들은 제발 밖에서 다른 사고만 치지 않길 빌 뿐이었다. 탈영 자체도 큰 범죄지만 탈영병 신분으로 사고를 치면 그건 정말 돌이킬수 없기 때문이었다.
중대 간부들과 분대장이 모여서 탈영징후에 관련된 회의를 했으나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 작업 잘하고 고참들한테 이쁨받는 놈이 뭐가 아쉬워서 탈영을 했을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 사건이 일어난지 일주일. 헌병대에서 탈영병을 체포했다는 연락이 왔다. 지방의 한 피시방에서 찾아냈다나......
중대 간부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중대원들은 생활 잘 하던 놈이어서 그런지 영창갔다 온 놈에게 크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탈영전과가 있는 병사라서 중대장은 섣불리 휴가를 보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 이후 1년간 성실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준 녀석에게 100일휴가 이후에 새로운 휴가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 개xx는 또 안들어왔다.
이에 빡친 중대장은 직접 본부에 있던 헌병대에 직접 가서 탈영병 신고를 했고 놈은 3일만에 붙잡혀 부대로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군생활이 끝날때까지 그놈에게 더이상의 휴가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