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입추가 지났지만 여전한 더위에 다들 건강 조심하시길 바라며 지난달 친구네 집에서 겪은 일을 써 보겠습니다.
제 친구는 비교적 이른나이에 결혼과 득남을 한 젊은 아빠인데 제수씨의 압박과 아이의 탄생으로 금연을 시도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전자담배로 갈아탄 대한민국의 흔한 20대 입니다.
이 친구는 주택에 사는데 꼭 흡연을 대문앞에서 합니다. 아무리 전자담배라 해도 몸에 좋은건 아니라며 아기와 제수씨에게 피해가 갈까봐 순도 100퍼센트 제수씨의 의견에 따라 꼭 집밖에서 담배를 피는데 옆집 할아버지가 이 친구 담배 피시는 모습만 보이면 '어딜 어른앞에서 담배를 피냐 당장 불끄지 못하냐'고 지팡이를 휘둘러가며 혼을 낸다고 합니다.
이 친구의 집 주변 환경으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대문 앞은 길이 나 있고 그 할아버지네인 옆집 과의 사이에 친구네 주차장(차 2대 들어갈 정도)이 있을 정도로 거리도 꽤 있어서 전자담배가 아닌 일반 담배를 펴도 다른 가정집에 피해를 입힐 구조가 아닌데도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오는지 자기가 담배만 피우려고 하면 할아버지가 나타나셔서 지팡이를 탁탁 치시며 그렇게 역정을 내신다 했습니다.
그나마 전자 담배이기에 망정이지 그냥 담배는 불씨를 비벼끄든 튕겨끄든 끝장을 보시는 통에 아까운 담배만 축났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지난달에 제 생일을 맞아 친구들과 모여 밥을 먹고 2차로 술을 한잔 하러가는 길에 유부남 친구가 자신은 2차에 가려면 제수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친구들에게 동행해 줄것을 요구했고 친구들이 다같이 우르르 몰려 가는건 제수씨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겠다는 친구의 의견에 따라 생일 당사자인 저와 차를 가져온 또 다른 친구 그리고 유부남 이렇게 세명만 친구네로 향했습니다.
유부남 친구가 먼저 혼자 집에 들어가고 혹시나 자신이 카톡을 하면 들어와서 도와달라고 하기에 저희는 친구 집앞에 차를 대고 기다리기로 하면서 저는 날씨가 더워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려했고 차를 가지고 온 친구는 담배를 한대 피운다고 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사고 난뒤 먹으면서 차로 가고 있는데 저 앞에서 친구가 어떤 할아버지와 대화 하는것을 보고 '저 분은 누구시지?'하며 다가갔습니다.
가까이 가서 들으니 할아버지께선 "넌 집에 할아버지 할머니도 없냐. 어른을 봤으면 담배불을 끄고 인사를 해야지 어디 머리에 피도 안마른게 담배질이야!! 니 애미애비가 그리 가르치더냐"라고 하셨고 친구는 얼굴이 붉어져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제대로 대꾸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친구에게 "OO야 무슨일이야? 이 분은 누구시고?"라고 물으니 할아버지께서 대답을 가로체시고는 "누구긴 누구냐 이놈아. 너도 어른을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이 동네가 어떤 동네인지 알고 이 동네 예의가 얼마나 바른지 알아? 내가 누군지 알아? 어른 앞에서 하드나 먹으면서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ㅉㅉ, 너는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없냐? 니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도 그렇게 하냐?"라고 하셨습니다.
초면부터 이게 무슨 패드립인가 기분이 매우 상했지만 침착하게 대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르신, 먼저 인사 안드린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어르신을 처음 뵙는데 왜이리 역정을 내세요." "그리고 저보고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없냐고 하셨는데, 저희 집에 여든 되시는 할아버지하고 일흔 여덟 되시는 할머니가 계신데 전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하드먹고 과일도 먹고 해요." "그런데 어르신께선 어른 앞에서 하드먹는게 아니라고 하시니까 안먹을게요. 그런데 어르신 실례지만 오늘이 제 생일인데 그럼 어르신이 어른이고 제가 아랫사람 이니까 저한테 인사 안했다고 역정만 내시는게 이니라 생일이라고 용돈도 주시겠네요?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른이 어른 대접 받으려면 말은 줄이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오늘 생일이라고 용돈도 주셨거든요"(저희 할아버지가 스마트폰도 쓰시는 신세대 감성이십니다ㅋㅋ)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오늘 처음 본놈한테 뭣하러 돈을 줘 돈을 주긴! 이 핏덩이 같은게 이런 도둑놈을 봤나"라고 하시며 지팡이로 땅을 팡팡 쳐대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르신 어른으로 존경받고 대우받고 싶으시면 베풀줄도 아시고 어른답게 행동하실줄도 아셔야죠. 처음본놈한테 담배를 끄라마라 하시면서 애비애미 운운하시는건 나이먹은 어른 이니까 당연히 할 수 있는거고 핏덩이 같은놈 생일에 실컷 성내놓고 용돈 하나는 처음본놈이니까 못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선 "이 어린놈이 돈이나 밝히고 여기가 어떤 동네인줄 아냐 이놈아, 내가 머슴도 부리던 집안이야 우리집이 어떤 집안인데 이놈이" 라고 하셨습니다.
전 이에 질세라 "저도 XXX씨 XXX공파 27세손 이구요. 저희 집안도 조선시대에 상신이 2분에 부마가 3분이구요,(예전에 나의 뿌리 찾기인가 알기인가 그런게 학교 방학숙제 같은 거여서 족보를 재밌게 찾아봤고 저희 할아버지가 종친회에서 활동도 하고 계셔서 제가 평소에 관심이 좀 있었습니다.) 여기 이 친구는 전주 이씨인데 조선시대 왕조가 전주 이씨인거 아시죠?" "그리고 지금 이친구 아버님이 시청에서 근무하시는데 3급 공무원이니까 조선시대로 치면 군수쯤 되는거네요?(자세히 모르는데 여권이나 재학증명서 등 볼일보러 시청에 가보면 지방 공무원 3급인 친구아버님이 제가 느끼기에 시장같은 선출직 공무원 빼놓고는 거의 제일 높았던 걸로 기억돼서 군수쯤에 비교해봤습니다;;)그럼 어르신이 도련님으로 불러야 하는거 아니에요? 어르신은 공무원이나 경찰 군인 하셨어요?" 라고 했습니다.
이정도쯤 대화가 진행되니 할아버지는 하실 말씀이 없으신지 대답 대신 애먼 지팡이로 바닥을 치시며 제 시선을 피하시곤 헛기침을 하셨고 때마침 옆집 할머니가 나오셔서 '이 사람이 원래 이런다, 젊은 사람들이 참아달라'라며 말리시자 할아버지는 못이기는 척 들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전 들어가시는 할아버지 등 뒤에 대고 "어르신 설날 세뱃돈 받으러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어르신 신분에 대해 다 못들었는데 혹시 제 친구보다 어르신 신분이 낮으면 어르신 세뱃돈은 제 친구가 준비할테니 걱정마세요" 라고 했습니다.
제가 건방져 보일 수도 있지만 저희가 친구집 앞에서 담배 좀 피고 길에서 아이스크림 먹는것에 대해 할아버지께서 먼저 나이, 머슴, 집안 그리고 웃어른의 권위 등의 전근대적 가치관으로 지적하며 화를 내시기에 저 또한 가문과 신분, 웃어른의 권위 이면에 있어야 할 베품 등을 얘기하며 할아버님의 요구가 다소 부당할 수도 있다는걸 어필해 봤습니다.
원래 사이다 게시판에 썻는데 쓰고 보니 그닥 사이다는 아닌것 같아서 멘붕게에 썻다가 어느분이 사이다라고 하시기에 게시판 미아인것 같아 다시 사이다게로 옮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