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mkhksss)
이번 대선을 통해서 나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됐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모든 것들이 항상 상식대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음을 알게 됐고, 또한 정의가 항상 승리하는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됐다. 나는, 이렇게 된 바에야 예전과 같이 이명박을 무조건적으로 불신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가 거짓말을 했건, 부정축재자이건 어쨌거나 국민은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원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일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바란다. 이명박이 부디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를… 그리고 제발, 내가 그를 욕보이지 않게 되기를 바라여 본다.
이번 대선에서 아쉬운 점을 찾아보자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겠으나, 그럼에도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찾아보자면, 아마도 문국현의 존재와 문국현의 가치가 아닐까 한다. 문국현! 훌륭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여건에서 노동자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경영자 역시도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중요시하는 문국현이라는 의견에 이의가 없다.
이와 같이 세인들에게 문국현이 좋은 평가를 듣는 이유는, 바로 문국현의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또한 문국현의 선을 추구코자 하는 그만의 청명한 인간성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문국현을 존경한다.
그럼에도, 문국현은 결국 자신의 정치적 역량에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꼭 청명하고 합리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문국현이 간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문국현이 한 말과 한 행동을 살펴보자면, 그것으로 비롯된 결과와는 무관하게 나름대로 옳은 말들이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증오, 사람중심의 경영, 가치관이 틀린 자와의 타협 거부, 등등… 어떤가? 그가 한 말만 놓고 보자면, 구태여 흠집을 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그러나 그로 인해 비롯된 결과를 살펴보자. 문국현이 말해오고 주장해온 신자유주의에 대한 부정은, 그동안 딴나라당식 가치관에 비해서 훨씬 진보적이며 합리적으로 변모해온 대한민국의 민주화 10년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것으로 문국현은 타협해야 할 대상을 외면하며 스스로 고립이 되는 치명적인 우를 범하고 만다.
아울러, 그것은 딴나라 집권저지에 최후의 보루였던 단일화의 빌미를 아예 제거해버리게 된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문국현은 신자유주의를 증오한다면서 오히려 대한민국을 더욱 우경화시켜버린 것에 일조하게 된 셈이다. 결국, 문국현의 주장은 그야말로 주장으로 끝나고야 말았다.
기업은, 돈의 흐름을 쫓음으로써 이윤을 남긴다. 돈이 모이는 것은 대개가 어느 한 개인의 이익을 지향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는 인위적인 조성으로 비롯되는 것이 아니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투자와 선택에 의해서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그것을 기업에서 잘 실현해왔던 문국현이다.
하지만, 기업에서의 경험이 그러했으니, 막연하게 정치판 역시도 그러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에서 이미 오늘의 일은 예견이 됐던 것이다. 썩은 냄새가 풀풀 나고 각종 암투와 음모가 판을 치는 정치판에서 애초에 모든 것이 투명하고 합리적이기를 기대한 것 자체가 이미 오늘날의 실패를 기다린 것과 동일한 효과를 만들고야 만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문국현의 존재와 가치가 매우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럽게 느껴진다. 문국현은, 정작 누구를 상대로 싸움을 벌여야 자신에게 득이 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갈피조차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문국현은 당시 출마했던 모든 후보들에게 똑같이 각을 세웠다. 민노당은 민노당대로 이래서 안 되고, 정동영은 가치관이 틀려서 안 되고, 이명박은 부패해서 안 되고, 그러다가 난데없이 이회창이 정신적으로는 부패하지 않았다는 이상한 소리를 해대며 시계 불알처럼 왔다갔다하기를 반복했다.
솔직히 문국현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정동영이 영 못 미덥고 그와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같은 편을 하기 싫었다는 것이 실제 문국현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국현이 조금만 약삭빠른 자였다면, 공격의 대상을 엄한 노 대통령이나 정동영으로 삼을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공공의 적은 딴나라요, 비토의 대상은 이명박에게 집중됐어야 했다.
그와 함께 유권자들에게 왜 자신이 정동영보다도 이명박을 누를 확률이 높은 자인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선전하고 그것에서 잠재(이번에 투표를 포기한)해 있는 유권자들이 자신을 선택하도록 유도했어야 한다. 그러나 문국현은 전혀 그럴 의사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신념만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렇다. 문국현의 말이 맞다. 사람중심 해야 하고, 가치관이 틀린 자와는 타협을 해선 안 되고,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심각하기에 그것을 앞으로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결론은 이명박이란 말인가?
도대체 이번 대선에서 문국현은 무엇을 얻었는가? 득표율에서도 애초에 목표로 삼았던 10% 대에 한참이나 못 미친다. 각계의 원로(단일화 문제로)들에게 원성만 듣게 됐다. 돈은 돈대로 날렸다. 대관절 무엇을 바라고 문국현은 상황을 이리도 어처구니없게 만들었단 말인가!
문국현은 깨달아야 한다. 기업의 경영은 합리적인 사고방식만으로도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정치판에서는 그것만 갖고는 어림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치는 매우 합리적인 것을 요구하면서도 실상은 매우 불합리한 것들로 그 세포를 구성하고 있다. 그것을 문국현이 알아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문국현은 그저 유한킴벌리의 전임 경영자일 뿐, 그 이상의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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