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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story_411283
    작성자 : 아메리가노
    추천 : 14
    조회수 : 1452
    IP : 183.99.***.217
    댓글 : 436개
    등록시간 : 2014/02/12 23:18:09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11283 모바일
    (15)인생 빠르게 사는남자

    모든것이 내 인생은 빨랐다. 밥먹는것도 언제나 1등, 시험문제를 풀고 선생님께 제출하는것도 1등(하지만 시험성적이 썩 좋진 않았다)
    심지어 나이까지 빠른연생이라는 것으로 동사무소에 또래들보다 1년이나 더 빠르게 학교에 진학하니 나에겐 모든것이 빨라야만 할 것 같았다.
    중학교를 들어가자마자 자퇴를 하고 6개월이 지난뒤 검정고시를 쳤다. 합격이었다. 남들은 3년동안 다녀서 얻어야할
    졸업증이 나에겐 6개월만에 모든것이 끝나버렸다. 다시 6개월뒤인 1년 2개월뒤엔 내 손에 고등학교 졸업증서와 같은
    검정고시 합격증이 들려있었다. 할것이 없었다. 정말 할 일이 없어 할 일을 찾아헤매야만 했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알바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검정고시 보라고 한거지 어디가서 설거지나 하라고 검정고시 보라고 한게 아니다!"

    나에게 언제나 응원을 해주고 따뜻한 말만 해주시던 부모님의 훈계였다. 나를 찾는 여행을 해야 할것 같았다.
    뭐가 나를 가슴뛰게 만들지? 뭐가 나를 산다고 느끼게 해주지?
    이 생각만 약 한달을 했던것 같다. 나는 조급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빠르게 살아왔던 나는 생각할 시간도 없이
    빠르게 결정해야만 할 것 같았다. 어렸을때부터 쳐왔던 피아노는 전공반에 들어가 있었지만 별로 가슴이
    뛰진 않았다. 그러다 바이올린 선생님을 보고 그 매력에 빠져 한달만에 바이올린 전공을 선택해버렸다.
    바이올린 선생님께 다가가 말했다.

    "선생님 저도 그 바이올린 옛날에 방과후로 배웠었는데 전공 하고 싶어요!"
    당돌하게 말했다.

    "너 그거 진심이니? 다른 악기도 마찬가지지만 바이올린은 특히 지금 너의 나이라면 늦었다 포기하렴"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난 당황스런 기색을 숨기고

    "정말이에요! 정말 하고 싶어요! 저에게 바이올린 곡 하나만 주세요! 일주일내로 완주할께요!"
    라고 말해버렸다. 이렇게 말하면 내 자랑 같지만 다른것은 몰라도 앉아서 하는 것은 언제나 자신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면 당연히 선생님이

    '어이구 기특해라~'
    하면서 곡을 주실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선생님은 짐짓 지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변도 안하시고 바이올린 전공학생들을 보러 가셨다. 오기가 생겼다.

    옆에있는 친구의 스즈키(바이올린 연습곡이 들어있는 책)를 아무거나 들고와 첫페이지를 폈다. 그 와중에도
    쉬워보이는 스즈키책을 집어들고 펴니 보이는 곡이 작은별이었다. 이미 방과후에서 배운 바이올린으로
    그 곡은 켤수가 있었다. 하지만 오기가 생겨 정말 하루에 10시간씩 연습을 했다. 나만의 항의였다.
    난 정말 하고 싶은데 왜 선생님은 내 마음을 몰라주는걸까 라고 생각을 했다. 이미 학교를 안가도 됐기
    때문에 나에겐 24시간이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쓸수가 있었다. 하루 10시간씩 연습하자 정말로 거짓말처럼
    선생님이 나타나

    "정말 너 못 당하겠다. 지금부터 곡을 하나 줄껀데 이게 대학 입시곡이야. 니가 6개월만에 아니, 1년안에 하면
    진심으로 받아줄께"라며 뜬금없는 미션을 주셨다. 

    처음 본 대학 입시곡은 난해했다. 정말로 악보가 아닌 그림같아 보였다. 그것도 뭉크의 절규와같은 보기만해도 어지러운 그림같았다.
     내 생각엔 선생님이 이걸 빌미로 중간에 떨쳐내시려는게 눈에 보였다. 연습했다. 또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바이올린이 없는 일상생활에선 그 시간조차 아까워 내 오른손이 지판이라고 생각하고 왼손으로 운지연습을 했다.
    하지만 그냥 연습하는것은 효과가 없었다. 내 귀에는 고름이 날 정도로 이어폰이 꽂혀있었고 왼손으로 오른손에
    비브라토 연습을 하고 다니니 사람들은 내가 틱 장애가 있는줄 알 정도였다. 화장실에서 볼일보는 시간이 아까워
    목이 부러진 바이올린 지판을 가지고 들어가 연습하며 볼일을 봤다. 연습실까지 가는 시간이 아까워 바이올린을 끼고
    다니며 연습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봤지만 이미 나는 음악에 빠져있었다. 아니, 미쳐있었다.

    6개월이 지나자 완주해야 하는 곡은 총 4장 반 분량이었지만 난 겨우 2장을 연주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연습하고 있는데
    들어오셔서 말씀하셨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솔직히 지금 나이에 바이올린을 도전하는 것도 굉장히 웃긴 이야기고 니가 이렇게 하고 있는것도 굉장히 웃긴 이야긴데
    그걸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는게 더 웃긴 이야기다. 근데 웃긴 이야기로 그칠게 아니라 정말 있을법한 이야기로 만들어보자"

    난 이 이야길 듣고 6개월만에 인정받은것 같아 펑펑울었다. 물론 꼴에 남자라고 선생님앞에선 못울고 혼자 화장실가서
    혼자 찔끔찔끔 훌쩍거리며 울었다. 선생님의 입시 전략(?)은 간단했다. 어짜피 지금 속도로 나머지 2장반을 못 채우니
    운에 맡기고 2장 연습한것을 최대한 다듬고 입시때 입시관들이 거기까지만 듣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에겐
    보통으로 따지면 약 2년이라는 기간이 남았지만 언제나 빠르고 싶었다. 그리고 난 그 전략에 동의를 하고 최대한
    다듬기 시작했다. 예체능은 입학시험이 년도 초에 있다. 1월에서 2월에 실기시험을 보러가야 하는데 난 수시를 넣었다.
    검정고시를 친 나에겐 내신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수시가 나에겐 훨씬 유리했다. 실력으로만 평가를 받을수가 있으니
    말이다. 시험을 치러간 학교는 단 한군데였고 난 떨리는 손을 계속해서 붙잡으며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1번부터 5번까지 저쪽방으로 들어가세요"
    라는 시험 진행하시는분이 말씀하셨고 나는 4번이었다. 그쪽방에 들어가니 옆에 암막커튼으로 쳐진 조그만 방에
    1번을 제외하고 모두 들어가 있으라고 하셨다. 1번 학생은 기교가 굉장히 좋았다. 2번 학생은 기교는 그냥 그렇지만
    음이 하나하나 굉장히 섬세했다. 3번학생은 하다가 두번 틀렸는데 거기서 페이스가 흐트러졌는지 갑자기 멈추고 말았다.
    그리곤 문이 쾅! 열리며 3번 여학생이 울면서 나가는걸 보고는, 나의 신경은 극도로 민감해져버렸다. 

    "4번학생 들어오세요!"
    방금 나간학생은 안중에도 없다는듯한 말투로 시험면접관은 나를 불렀고 난 

    '후우~ 하나, 둘, 셋!'
    을 한숨에 털어버리며 스테이지로 향했다. 나의 이름과 나이를 확인하곤 무성의한 얼굴과 손짓으로 연주를 시켰다.
    그리곤, 정말로 기억기 여기까지다. 다음 기억은 왠지 엄마와 동생, 그리고 사촌형과 피자를 먹고 있는 기억밖엔
    없다. 내가 뭘 어떻게 했는지는 언뜻언뜻 기억나지만 그 기억의 연결고리는 좀처럼 이어지질 않았다.

    약, 한달 후 나에겐 정말 기쁜 합격 소식이 들려왔고 난 당당히 고1의 나이에 대학을 진학할 수 있었다.
    정말 빨랐다. 빨라서 만족했다. 하지만 빠른게 능사는 아니였다.
    기초가 없는 나에겐 대학에서 내주는 과제와 실기과제를 따라갈수가 없었다. 남들은 이미 한번씩 했던 것들이지만
    나에겐 처음보는 것들뿐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졸업을 하고 바로 군입대를 하였다.

    군대에서도 빨리빨리해야만 할 것 같았다. 빠르게빠르게 훈련소를 지나고 바로 자대를 배치받았다.
    자대에서도 난 늘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이등병이 되어야만 했다. 남들은 쉬라고했지만 나는
    언제나 빠르고 싶었다. 그 덕일까 자대에서 2달정도 지나자 날 좋게본 선임들이 사지방(pc방)을 데려가
    맘껏 하게 해줬다. 그때당시엔 사지방은 일병부터 들어갈 수 있는, 나에겐 금단(?)의 구역이었다.

    "정말 해도됩니까?"

    "아 이새끼 뭘 쫄고 그래? 내가 하라면 하는거지 누가 너한테 토달면 김상병이 시켰습니다! 라고만 해 짜샤"
    라며 츤데레 김상병은 나에게 해피타임을 주고 혼자 쭐레쭐레 나갔다.

    "하아.. 벌써 다다음주면 100일 휴가구나. 시간 참 빠르네 이놈들한테 나 나간다고 얘기해줘야지!"
    라고 친구들 싸이월드를 모조리 다니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군생활에서 휴가는
    정말 꿀 같은 존재였다. 별탈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며 어느덧 일년이 지나 나도 상병이 되었다.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상병이 되어 여동생의 미니홈피를 보고있는데 심장을 강타당한것 같은 마치, 헤비급 복서가 온몸의
    무게를 실어 내 가슴을 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녀.를.보.았.다

    내 평생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전기가 뒷목으로 찌리릿!하고 타고내려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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