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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_40720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19
    조회수 : 1820
    IP : 210.57.***.240
    댓글 : 9개
    등록시간 : 2018/01/24 23:51:37
    http://todayhumor.com/?love_40720 모바일
    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6).
    "발목 삔거 아냐?"
    "아뇨. 그냥 좀 취해서..."

    현관문을 열고, 둘 다 안으로 들어가서야 아차. 했다.
    아니 ㅆㅂ 아무리 취했어도, 혼자사는 여자애 방에;;;;

    이 생각은 그 방을 나오고나서야 한거고,
    전역하고 지게차 속성으로 30분 배우고 냉동창고에서 3개월쯤 일한 적이 있는데,
    내가 그때 느낀 한기를, 초봄의 사람 사는 방에서 느꼈다.

    말그대로 냉방. 
    아마 지난 겨울 내내 단 한번도 보일러를 틀지 않았던것 같은 냉기.
    어찌나 방 안이 차가운지, 술이 한번에 다 깨는 기분이었다.
    흔한 전기장판이나 전기담요조차 없었다. 
    차라리 어메리카스톼일로 신발을 신고 들어올 걸 그랬다고, 발바닥이 시릴 정도로 추운 냉방.
    그리고 그 냉기를 타고 풍겨오는 진한 곰팡이 냄새.

    하지만 여자애가 곤혹스러워한건, 어찌됐든 손님이 들어왔는데 너무나 썰렁한 방 온도가 아니라,
    깨끗이 정리된 방에서 얼마나 들고 고민을 했는지, 꾸깃꾸깃해진...다음 주에 방빼란 주인집이나 복덕방에서 붙인 듯한 통지서였다.

    "저기 이거 방세는 곧 해결돼요."
    "...짐싸."
    "네?"
    "너 오늘 이 추운데서 못 재워. 따듯한대서 자. 내일 학교갈거 챙겨."
    "무...무슨...오ㅃ...아니. 아저씨가 뭔데요?"

    그래 남이다. 
    우연히 그 비오는 날 특이한 인연으로 만나, 어찌어찌 초장부터 같이 커피도 마셔, 담배도 펴, 술도 마셔...딱 이뿐인 사이.
    거기다 나는 오래 만난 사람과 헤어지고, 사람과...특히 여자와 딱 어느 선 이상으로 감정을 소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키다리아저씨가 될 생각도 아니었다.
    혼자 먹고 살고, 부모님이 아직 건강하셔서 큰 돈 안들어가서 이렁저렁 사는거지,
    내가 뭐 누구 스폰하며 살 정도로 여유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날 그 아이가 너무나 가여웠다. 

    잠시 옥신각신하자, 옆 집에 사는 사람이 술에 취한 목소리로 시끄러!!!하고 현관문을 발로 쾅!!! 찬다.
    현관문을 열어재끼자 초로의 사내가 나를 보고 움찔한다. 
    사실 내 인상이 보통 인상은 아니다.
    "뭐?"
    "아니 거 보쇼. 한밤중에..."
    안 그래도 기분이 더러워져있는데, 현관문을 열고 나를 보고 움찔하면서도 내 등 뒤의 여자애를 얼른 눈으로 훑는걸 보니 기분이 더 더러워졌다.
    "꺼져."
    "아 네네. 그래도 좀 조용ㅎ..."
    "꺼지랬다."

    상대는 도망치듯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보고는 조용히 하라더니 현관문 졸라 크게 닫더라. 

    여자애는 울기 시작했다.
    창피하고 서러웠을거다. 
    현관문을 닫고, 우는 그 아이를 두고, 나는 대충 짐을 싸기 시작했다.
    가방이랄것도 책이 가득찬 그 낡은 백팩 밖에 없어서, 이 냉방에서 돌돌 매고 잤을 얆은 담요에다가 대충 다 때려박고 싸맸다.
    거기에 어지간한 짐은 다 들어갈 정도로 짐이랄게 없었다.

    "...울지말고..."
    "...?"
    "너 속옷은 내가 차마 못 싸겠다. 그건 너가 좀..."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댔는데, 그 아이는 그 말에 울면서 웃었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나. 
    그 애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집을 나서며 아까 그 놈 현관을 발로 까주고, 그 냉방을 나섰다.

    쌀쌀한 밤이었는데, 그 방보다 밖이 더 따듯하더라.
    피난민 보따리 같은 담요에 싼 짐 두개를 양 쪽으로 들고, 나는 뒤도 안보고 길가로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꽤 젊은 기사였다.
    "일행있어요. 미터기 켜시고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어디 야반도주하시나봐욬ㅋㅋㅋ"
    "보쌈해갑니다. 좀 도와줘요."
    "휘이~미터기 안 켤께요."

    잠시 그렇게 택시를 잡아놓고 기다리자, 쭈볏거리며 그 여자애가 골목입구에 나타난다. 
    나이 차가 확 나는 남녀인지라, 기사는 잠시 멈칫했지만, 내가 그 애를 뒷좌석에 태우고 조수석에타고 문을 닫자 일단 출발했다.
    "XX아파트요. 짐있으니까 단지 안으로 들어가주세요."
    "아 네.XX아파트요."

    기본요금보다 조금 더 가는 거리.
    얼마 안되는 그 거리에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질러버렸구나. 미친거지. 이 일을 어쩐다.



    "아파트 현관들어올땐 ***호 누르고 샾 누르고 xxxx. 누르면 돼."
    "..."
    엘리베이터에서 무거운 침묵.
    "여기가 내 집. 이거 비밀번호 누르는거 고장나서 카드키로 따야 돼."
    현관문을 열고 내 집으로 들어섰다.

    아무리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와 잠만 자는 집이어도, 어느 정도 온기라는게 있다.
    그나마 있는 그 온기에도 그 아이의 양 뺨에는 홍조가 올라왔다.
    "자. 이거 딱 두개 있는 카드키야. 이거 여기다가 두개 다 두고갈께. 보일러켰으니까 따듯한 물에 씻고, 옷 갈아입고 연락줘."
    나는 대답도 듣지않고,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 상가에 편의점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사서 창가테이블에 어떤 애새끼들이 먹고 치우지도 않은 라면과 핫바 봉지를 치우고 앉았다.
    오늘은 오늘인데, 앞으로 어찌해야하나...시계를 보니, 들어가서 한두시간 눈붙이면 출근할 시간이 다 되어있었다.
    고양이 혓바닥이라 뜨거운거 잘 못마시는 내가 그 커피 다 마시는 동안 연락이 안 와서,
    헉!!!! 나 키없는데 잠들어버렸나??? 이러고 있는데, 다행히 그 애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다 씻었어요."
    "ㅇㅇ. 요 앞에 편의점이니까 곧 올라갈께. 현관문 노크하면 문 좀 열어줘."
    편의점에서 대충 이 애에게 필요하겠다. 싶은거 몇가지 더 사가지고 올라가서 현관문을 두드렸다.

    가끔 오마니나 사촌여동생들이 와서 문 열어줄때랑 기분이 틀리더라.
    샤워를 한 듯한 그 애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저녁 내내 울어서 충혈되고 부었던 눈이 좀 원상태가 되었고,
    씻고 나니까 안 그래도 한 살 정도 어리게 봤는데, 진짜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이거, 필요할것 같아서 몇개 골라왔어. 써."
    "고맙습니다. 저..."
    "넌 여기 큰 방 써. 부모님오시거나 손님오면 쓰는 방이니까 부담갖지 말고 써. 나 원래 여기 작은 방 쓰니까."
    "저기..."
    "일단 오늘은 자자. 너 내일도 아르바이트가?"
    "아뇨. 내일은 1교시부터 수업이 있어서, 오전아르바이트는..."
    "그래. 자고, 이거 현관키 너 써. 피곤하다. 방문잠그고 자도 서운해 안할테니까 어떡게든 편히 자고 내일 학교가."
    "아저씨는..."
    "나 이따가 출근해야돼."
    "네? 아...시간이 벌써..."
    "피곤타. 잘 자."



    아침 회의 때, 저번에는 지각해서 사장님이 나를 10분 기다리게 만들어놓고,
    이번에는 사장님계시는 회의자리에서 쿨쿨 자다가 
    사장님은 허허. 괜찮아, 새벽같이 나오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어가주셨는데,
    상무님 전무님 부장님들 팀장님들 차장님들한테 신나게 까였다ㅋ




    그렇게 우리의 기묘한 동거는 시작되었다.
    출처 내 가슴 속.
    철전열함의 꼬릿말입니다
    5시에 출근해서 밤 10시 퇴근.

    연말연초에 뭔 일들이 이리도 많은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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