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은 말합니다. 힘든 시절을 가족과 자식만을 바라보며 힘들게 살아온 부모세대에게 위로를 던지는 영화이고 싶다고.
그러나 바로 이 부분이 국제시장이 불편한, 이 영화를 제작한 의도가 불쾌해지는 부분이라 봅니다.
영화를 왜 굳이 정치와 연관시키려고 드느냐, 색안경을 끼고 보니까 그런 것이다 이렇게 말 할 수도 있지만, 역사를 말하는 영화가 그 역사가 담고 있는 의미를 의도적으로 배제시키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정치적인 행동인 것입니다. 게다가 그 역사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라는 매우 민감한, 그 시절의 희생자들이 두눈 시퍼렇게 살아있고, 오늘날까지도 그 시절의 폐단들이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민감한 역사라면 더더욱 그러하죠.
감독은 말합니다. 우리 부모세대의 희생과 노력으로 우리 자식세대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이 말은 두가지 의미에서 모두 옳은 말입니다.
부모세대의 노력 덕분에 우리 젊은 세대가 이렇게나마 살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부모세대의 그 눈먼 노력 덕분에 우리 자식세대가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세대는 늘 말합니다. "내 자식만큼은 나처럼 고생하며 살지 않게 만들겠다"라고요. 그러나 정작 지금의 젊은 세대가 -비록 지금도 고생하며 살고 있기는 하지만-그들처럼 지독한 고생을 겪지 않아도 되는 기반은 부모세대의 눈먼 노력 덕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외면하고 내쳤던 '진짜 희생자'들, 자기 몸에 불을 질러가면서까지 부당한 노동환경의 개선을 요구했던 운동가들의 희생 덕분이죠. 부모세대가 6.25 전후 그 처절했던 잿더미 속에서 온몸 던져가며 나라의 경제 규모를 발전시켜 냈지만 정작 나라가 부유해졌다고 해서 노동자들 개개인의 삶이 나아진 것은 없습니다. 언뜻 풍요로워 진 것 같은 이 나라의 외양 속에서 여전히 젊은 세대들은 쥐꼬리 만한 임금조차 받네 못받네 아웅다웅 살아야하고 부당한 해고위협 속에 살아가며 불법 잔업과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지금 젊은 세대들이 전후 부모세대들 보다 약간이라도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이유는, 나라 경제 규모가 커진 덕분이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값으로 쟁취해낸 노동법과 노동환경 개선 덕분인 것이죠.(물론 이것 역시 아직 갈길이 머나먼 후진적 노동환경을 보유하고 있으나, 그나마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이유는 이것 덕분인 겁니다)
즉 부모세대가 정말 처절하게 노력하고 희생한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 노력은 의도는 순수했을지 모르나 방향이 잘못되었고 결국 실패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옥같은 환경 속에서 내 가족, 내 자식만은 지켜내겠다는 그 분투를 폄하하고픈 생각은 없지만 이들의 노력은 실패하고 배반당했습니다. IMF가 바로 그 적나라한 사례죠. 평생 직장이라 믿었던 직장에서 내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몸 바쳤건만, 심지어 내 자식이 자라나고 커가는 모습을 볼 시간조차 없이 그렇게 모든것을 희생했건만, 권력자들과 재벌들의 추잡한 비리와 부정 덕분에 모든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책임을 모두 여태껏 이렇게나 희생해온 노동자 개개인에게 떠넘겨버렸고 이렇게 밀려나온 아버지들은 사회에서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받고, 가정에서도 이미 아버지의 그늘없이 홀로 자라나버린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유리되는 처지가 됩니다. 당시 수많은 정리해고 피해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죠. 그리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아이들 세대에게 물려집니다. 계약직의 양산, 평생직장이나 저축으로 부자가 되는 꿈이 모두 산산이 깨어진 지옥도가 펼쳐졌죠. 어떻게든 취업을 하기 위해 고학력 고스펙을 갖추려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빚을 지고 그렇게 사회에 나왔으나 취업은 힘들고 취업을 해도 쥐꼬리만한 봉급에 언제건 잘려나갈 수 있는 위태위태한 계약직 신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젊은 세대가 6.25전후 세대보다 아주 약간이나마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이유는, 나라 경제 규모가 그때보다 커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같은 첨단 기술의 수혜 속에 살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이, 운동가들이, 열사들이 피값으로 치뤄낸 민주적 노동환경 덕분인 겁니다.
결국 부모세대는 우리 자식세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영웅의 면모와 함께 이러한 '진짜 희생자들'을 외면하고 홀로 죽게 내버려 둔 비겁한 도망자, 비겁한 생존자의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겁니다. 그들의 그 숭고한 의도나 그들이 해 온 정말 뼈를 깎는듯한 엄청난 노력은 분명 위대한 일이지만 그들의 그 노력은 방향이 틀렸으며 실패한 것이란 말입니다. 결국 그 대가를 부모세대 스스로 역시도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노인층의 빈곤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던가요. 그렇게나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그들이 말년에 극도로 빈곤한 삶을 사는 것도 모자라 그들이 근근히 주워오는 폐지, 고철까지도 효율성이라는 이름하에 탐내고 있는게 지금 대한민국의 괴물같은 모습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젊은층이나 노년층, 중년층, 어느 한 계층에게만 위로가 필요한 그런 시절이 아닙니다. 이 모든 세대가 겪고 있는 아픔을 모두 아우를수 있는 그런 위로가 필요합니다. 세대간 단절과 반목이 심각하게 일어나며 지금의 고난이 서로 상대방의 탓이라 싸우고 있는 무간지옥 같은 세상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위로는, 서로의 상처와 서로의 노력을 알아주고 서로의 잘못과 서로의 실책을 받아들이고 서로 힘을 합쳐 이것을 이겨낼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진정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지를, 과연 누가 뒤에서 우리를 조종하며 서로 반목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국제시장이 불편하고 불쾌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모세대의 희생과 노력만을 조명합니다. 그들의 실책과 실수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오직 나와 내 가족'만을 바라보며 부당한 권력 아래에 순응해버리고, 그 권력에 의한 희생자들에게서 눈을 돌려버리는 비겁함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그 노력이 결국 현대 대한민국에 어떠한 폐단을 초래했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자식세대에게 그렇게나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지옥같은 현실을 그러나 그들의 그 잘못된 노력과 잘못된 희생으로 인해 고스란히 물려주게 되어버린 이 비극을, 이 아이러니를, 이 안타까움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그저 부모세대의 영웅으로서의 반쪽 얼굴만을 보여줍니다. 그럼 이제 질문이 남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폐단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요? 국제시장은 그 책임에서 부모세대의 몫을 슬쩍 빼버립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이해합니다. 영화가 노리고 있는 주 타겟층인 중장년, 노년층에게 표를 팔아야 하니까요. 그러나 그런 목적으로 정말 해야 할 말은 빼버리고 어설픈 위로, 그릇된 향수만 자극해 버린다면 결국 문제가 터지고 맙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살기 좋은 태평성대라면 문제가 없겠지요. 그러나 누구나 다 알다시피, 노년층부터 중장년층을 거쳐 청년층까지, 심지어 어린 학생들까지도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지금의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살기 괴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든 세대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지만 모든 세대가 그 책임을 지기 싫어 서로 상대방의 탓만 하며 싸우고 있는 살벌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 노년층의 '노력과 희생'만을 보여주고 '책임'을 슬쩍 빼버린 불쾌한 마약같은 영화를 만든다니요. 영화 표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면 세대간 싸움이 나건 말건 상관 없다는 이런 태도가 불쾌하지 않을 수 있을리가요.
국제시장을 가리키며 감독은 자꾸만 포레스트 검프를 들먹입니다. 그러나 포레스트 검프는 특정 세대만을 찝어 가리키는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바보였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포레스트 검프에서 특정 세대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야기에 더 친숙하게 집중하게 만드는 뒷배경일 뿐 영화 자체는 순진한 바보를 세상의 굴곡과 대비시켜 인생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영화였습니다. 보편적 진리에 관한 영화요. 국제시장처럼 특정 세대에 대해 영화표 장사질을 할 요량으로 그들의 역사적 책임을 희석시키는 비열한 행각을 벌인 영화랑 동급으로 놓일 영화는 아닙니다.
부모세대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면, 그들의 처절한 노력과 희생을 담음과 동시에 그들의 실패의 과정 역시 담아야 마땅합니다. 자식세대 역시 마찬가지죠. 자식세대의 처절한 노력과 고민은 그들이 느끼는 자괴, 패배감, 실패와 함께 이야기 되어져야 합니다. 이 모든걸 아우르며 세대간 서로 이해와 협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위로가 아니에요. 마약, 소위 말하는 뽕에 불과하죠. 그리고 그 뽕 팔아 돈 벌 목적으로 세대간 불화를 방조하는 불순한 동기의 영화가 나왔는데 평론가들이 좋은 평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젊은 세대 역시 마찬가지로 화를 낼 수 밖에 없죠. 지금 대한민국의 개차반 현실에서 부모세대의 책임을 다 걷어내고 '우린 우리 할 몫 다했다'하고 발빼는 영화를 보면 젊은 세대가 화를 내는게 당연합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은 뭐냐, 이 고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거나, 이 고난을 만든 책임을 우리한테 떠넘기려는 것이다"라고 느끼는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부모세대에게 위로를 안기고 싶다면, 역사와 상관없이 위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잭 니콜슨이 열연한 어바웃 슈미츠를 보세요 차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