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규(일간스포츠 야구 기자, 전 스포츠2.0 야구팀장) 컬럼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717n01526?mid=s1000 1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롯데는 LG에 5-4로 승리했다. 이 경기에서 롯데 지명타자 이인구는 9회말 1사 만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쳤고, 그의 이 경기 성적은 2타수 1안타 1타점이다.
이처럼 야구 경기는 대다수의 플레이가 기록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래서 야구의 별명은 ‘기록의 스포츠’다. (주)스포츠투아이는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이 야구 기록에 대한 권리를 독점 위임받은 업체다. 김봉준 스포츠투아이 이사는 15일 한 인터뷰에서 “일부 개인 야구통계 사이트에서 스포츠투아이가 서비스하는 문자중계를 수집해 사용하고 있다“며 “(향후)적절하고도 강력하게 대응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개인 야구팬이 운영하는 기록사이트는 아이스탯(istat.co.kr)과 스탯티즈(statiz.co.kr) 두 곳이다. 이 인터뷰가 게재된 직후 그 중 한 사이트의 운영자는 운영을 잠정 중단한다는 게시물을 올리며 기록실을 닫았다.
해당 사이트는 스포츠투아이가 제작하는 문자중계 내용을 카피해서 같은 방식으로 서비스하지는 않는다. 대신 문자중계에서 나오는 각각의 플레이들을 추출해 데이터화한다. 이 데이터를 모아 다양한 야구 통계를 무료로 야구 팬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타구 위치, 투구 위치 등 데이터를 제외하곤 모든 야구 기록은 공식야구기록지에 기재된다. 따라서 공식야구기록은 곧 야구 통계(Stat)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문제의 ‘문자 중계’는 간단히 말하자면 야구기록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다. 스포츠투아이의 ‘적절하고도 강력한 대응’은 곧 야구 기록에 대한 저작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야구 기록에는 과연 저작권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직 국내에는 스포츠 기록의 저작권에 대한 판례가 없다. 그러나 프로스포츠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가장 최근의 판결은 2007년 이뤄졌다.
팬터지베이스볼은 유저가 가상 구단의 단장이 돼 팀의 성적을 겨루는 게임이다. 처음에는 일부 야구광의 소일거리로 시작했지만 2003년에는 600만 명이 11억달러를 쓰는 대형 산업으로 발전했다. 유저는 가상의 팀을 운영하지만 자기 팀 선수의 이름과 기록은 진짜다.
팬터지베이스볼 업체들은 메이저리그에 라이선스비를 지급하고 스태츠 등 통계회사로부터 야구 기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게임을 운영해왔다. 그런데 2005년 메이저리그는 업체들에게 대폭적인 라이선스비 인상을 요구했다. 선수노조로부터 5000만 달러에 선수 이름과 기록에 대한 권리를 사왔으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였다. 한 업체의 경우 종전 2만5000달러이던 미니멈 개런티가 200만 달러로 올랐다. 메이저리그의 요구대로라면 CBS스포츠라인, ESPN, 야후 등을 제외한 군소 업체는 문을 닫아야 할 판이었다.
세인트루이스를 근거지로 하는 CBC디스트리뷰션&마케팅(이하 CBC)이라는 회사는 앉아서 죽기보다 법정 싸움을 택했다. CBC는 2004년 라이선스 계약이 만료된 뒤에도 서비스를 계속했고, 메이저리그는 2006년 6월 CBC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메이저리그와 선수노조는 퍼블리시티권을 강조했다. ‘이름’과 ‘기록’은 선수 개인의 고유한 권리다. 따라서 이를 동의없이 사용해 상업적 이득을 얻는다면 권리 침해라는 입장이었다. 반면 CBC 측은 팬터지베이스볼에서 선수에 관한 정보는 특정인이 소유해서 이득을 얻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2007년 내려진 판결에서 승리한 쪽은 어디였을까. CBC였다. 당시 법원의 판결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CBC의 선수 이름과 통계 사용은 선수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침해가 아니다.
2) CBC가 선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하더라도,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로 보호될 수 있다.
3) 메이저리그 선수 이름과 통계에 대한 저작권을 갖지 않는다.
4) 메이저리그와 CBC의 종전 라이선스 계약에서 ‘계약 만료 뒤 선수 이름과 통계 사용을 금지한다’는 조항은 공중 질서와 미풍 양속에 위배된다.
한 마디로 야구 통계에는 저작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미국 법원은 2001년 “메이저리그 홈페이지에서 내 이름과 기록을 지워달라”는 은퇴 선수의 주장을 기각했고, 1997년 NBA와 모토로라 분쟁에서도 “스포츠 기록은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법체계는 다르다. 또 구체적인 사실 관계에 따라 비슷하게 보이는 사안에서 다른 결론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야구 기록에 대해서 특정 집단의 권리보다는 언론 출판의 자유를 우선했다는 점은 유의할만하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기록을 전혀 모르고 야구 팬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야구 기록의 가장 기초가 되는 공식경기기록이 어느 한 업체의 전유물이 되는 건 과연 타당한 일일까. 스포츠투아이는 KBO로부터 기록을 관리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낼 권리를 위임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야구기록 자체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 건 아니다.
복잡한 법의 문제를 떠나, KBO 공식 기록업체로서 스포츠투아이는 야구 기록을 팬에게 더 잘 전달해야 할 소명이 있다. 하지만 스포츠투아이가 그동안 ‘돈을 내는 고객’이 아닌 일반 팬들에게 얼마나 좋은 기록을 제공해 왔을까. 스포츠투아이의 이사는 일개 팬이 만든 비영리 기록사이트 운영에 대해 ‘강력 대응’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팬들은 스포츠투아이가 제작한 허술하기 짝이 없는 KBO 공식 홈페이지의 기록실에 만족해야 할까. 이건 독점 사업자의 횡포가 아닐까.
사실, 돈을 내는 고객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스포츠케이블 방송사들은 최근 프로야구 중계에 여러 다채로운 기록을 자막으로 제공하며 시청자의 눈길을 끈다. 한 방송사 PD는 “스포츠투아이와 계약을 하고 있지만 활용도는 높지 않다. 자막 제작은 개인 사이트를 주로 참고한다. 정식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싶지만 여러 이유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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