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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분위기 환기 좀 시켜볼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 물론 [항공열전]도 쓰고는 있습니다, 보시는 분은 안계셔도 말이죠, orz
무작정 반대 달기전에 뭔 글인지는 보고 반대답시다, 머리가 있는 즉 생각 있는 사람은 댓글로 말합니다 =====================================================================================================
말을 타고 있는 에스파냐 정복자(Conquistador)의 모습 1492년, 크리스또발 꼴론이 오늘날의 아이티섬에 상륙한 이래 에스파냐인들은 아메리카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의 식민지는 거주적인 성격이 큰 식민지로, 훗날 영국,프랑스등 제국주의 열강의 원료및 시장공급 식민지와는 약간 성격이 다릅니다.)
그런데 운나쁘게도 에스파냐인들이 처음 상륙한 카리브해의 도서지방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자원이 부족한 지역이었고, 황금에 눈먼 에스파냐인들이 원주민을 학대하는 바람에 원주민 인구는 대량으로 줄어 쿠바섬의 경우 원래 수십만에 달했던 원주민인구가 1535년경에는 전멸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되자 에스파냐인들은 또다른 식민지를 찾아야 했고, 이로써 발보아(Vasco Nunez de Balboa - 1475~1519.1.15)가 이끄는 원정대가 1510년 오늘날의 파나마에 다리엔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아메리카 본토 정복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에스파냐인의 신대륙 원정은 여러 정복자들에 의해 북으로는 켈리포니아에서 남으로는 파타고니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향으로 이루어졌으나 그중 백미는 단연 에르난 꼬르떼스와 프란시스꼬 삐사로의 원정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미숙하지만 이 두 원정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왜 한창 성장하고 있던 아스떼까, 잉카 두 제국은 패배해야 했을까요??
강철검을 든 에스파냐 병사와 마카나를 든 아스떼까족 독수리전사가 접전하는 모습 먼저, 에스파냐인들은 아스떼까제국이나 잉카제국의 전사들과 비교해볼때 월등히 앞선 무기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스떼까족이 애용했던 베는 무기인 마카나가 비록 흑요석날을 박았다 하더라도 말의 목을 벨수 있을만큼 예리했지만 에스파냐인들이 무장하고 있던 강철제 검(Espada de toledo)은 베는것 뿐만 아니라 찌르는 공격도 가능했으므로 훨씬 더 다양한 공격을 펼칠 수 있었고, 아스떼까족의 창은 에스파냐인의 창과 달리 찌르는 목적이 아니라 휘두르는 목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에스파냐 기병의 공격에 대항해 유럽의 밀집방진과 같은 대형을 취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가능했다 하더라도 포로를 사로잡는데 광분했던 아스떼까족 전사들이 지휘를 따랐을지는 의문스럽습니다.)
더군다나 에스파냐인들은 소수지만 활의 사용을 경시했던 아스떼까족에 비해 더 강력한 석궁을 사용했으며 몇몇은 무시무시한 소음을 내는 총과 대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것보다도 아스떼까족을 무력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말이었습니다. 에스파냐인들은 말을 앞세워 돌격했고 아스떼까족은 그 가공할 속도를 당해낼만한 방어무기도 없었을뿐만 아니라 기병과 교전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스떼까족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오뚬바 회전에서 4만명에 달했던 아스떼까족은 꼬르떼스가 이끄는 겨우 23기의 기병으로 재빨리 치고가 적 지휘관만 죽이고 튀는 전술에 말려들어 패배합니다. 당시 아스떼까인들은 에스파냐인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테노치티틀란에서 쫓아내고 이들을 추격하던 중이었는데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입니다.
촐룰라에서의 학살(위)과 에스파냐인과 그들의 원주민 동맹군과 싸우는 아스떼까족의 모습(아래) 까하마르까(Cajamarca)에서 아타왈파를 만나는 프란시스꼬 삐사로의 모습 두번째로 원주민들은 처음보는 에스파냐인에 대해 심각한 외교적 실수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아스떼까족의 몬테수마 2세와 께추아족의 아타왈파는 처음에는 이들이 반인반수의 괴물 혹은 신이라고 생각해 두려워했지만 곧 이들이 음식을 먹고, 말에서 내려서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곧 이들이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라는것을 깨닫게 됩니다.
혹자는 원주민들이 에스파냐인들을 신이라고 생각해 감히 싸울엄두를 못냈다고도 하지만 이는 잘못된 추측입니다. 이렇게되자 몬테수마 2세와 아타왈파는 수백명에 지나지않는 에스파냐인의 숫자를 보고는 이들을 노예로 사로잡아 부하로 써먹을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교활한 이 두 제국의 군주는 에스파냐인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이들은 자기가 판 꾀에 자기가 넘어가게 됩니다. 몬테수마 2세는 이들을 테노치티틀란으로 불러들이는 실수를 범했고, 아타왈파는 비무장한 수행원만을 데리고 (뒤에 8만대군을 숨겨놓긴 했지만) 까하마르까에서 이들과 만났지만 기습에 의해 도리어 자신이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잉카제국은 에스파냐인들의 상륙당시 와스까르가 이끄는 꾸스꼬(Cusco)파와 아타왈파가 이끄는 끼또(Quito)파 둘로 나뉘어 내전을 벌이고 있었고, (이 내전에 대해서는 다음편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아스떼까족은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기는 했으나 '지속적인 포로 확보'를 위해 제국을 느슨하게 통치하는 바람에 여러 도시에서 끊임없이 반란이 일어났고, 제국내의 암세포나 다름없이 테노치티틀란을 끊임없이 위협해오던 틀락스칼라(Tlaxcala)와 에스파냐인들이 동맹을 맺자 아스떼까족은 엄청난 수의 원주민 전사들의 협공까지 받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몬테수마 2세의 뒤를 이은 쿠이틀라우악이 천연두로 급사하자 제위문제를 놓고 아스떼까족 내부에서까지 분열이 일어났고, 결국 에스파냐인들은 아스떼까 삼각동맹의 일원인 텍스코코까지 흡수함으로써 전세를 굳히고 1521년 8월 13일에 드디어 테노치티틀란을 함락시키기에 이릅니다.
16세기 중엽 에스파냐인들이 그린 막 정복된 테노치티틀란의 지도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들은 기술의 부진과 내분, 미숙한 외교정책등의 이유로 결국 에스파냐인들에게 밀려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문명을 결정적으로 종말시킨것은 에스파냐인들이 가져온 또다른 궁극의 무기때문이었는데, 이 궁극의 대량살상무기로 인해 원주민들은 에스파냐인들이 총칼에 의해 죽인 수보다 수십배에 달하는 수가 사망하게 됩니다. (에스파냐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미시시피강 연안의 원주민 사회는 이 무기로 인해 아예 통째로 와해되기에 이릅니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음편에 이어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