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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부부같이 살던 3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날은 오늘처럼 비가 왔다.
장마도 내리고 이슬비도 내리고..하여튼 비가 왔다.
대학가 근처에 있었기에 막바지 기말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우린 그런 학생들의 고뇌를 보며 웃을 뿐이었다.
너는 강아지와 같았다
나는 너를 위해 정성스레 음식을 내놓았고
너는 그것을 맛보고 미슐랭 가이드 편집자 마냥
코멘트를 달았다.
너무 솔직한 너라, 박한 표현도 있었지만
맛있다라고 말해주는 너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힘들어 하는 너를 위해 장을 보며 사왔던 닭을 정성스레 해체하여
생강을 다듬고 토마토를 갈아 닭스튜를 만들고, 치자빛 카레를 만들었으며
초딩같은 네가 좋아하는 고기 반 밥 반의 비율로 굴소스 볶음밥을 만들었다.
그리고 후식으로는 붉은 딸기 하나.
너는 한마리 강아지 처럼 그것들을 다 먹었지만
체구가 작고 입이 짧은 네가 속이 불편해지는 걸
내가 모를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친구 앞에서 담담하게 너의 속을 달래기엔
묘령의 나이인 너는 많이 부끄러웠겠지
해서 나는 말했다.
"우리 비 그치면 밤산책 갈까?"
그러자 너는
베시시 웃었다.
하지만 하늘의 장난인지 비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침없이 내렸고
너는 안전부절 못했다.
그런 너를 위해 우산을 피고
"밤 산책 가자!"라고 말하며
우리의 신혼집에서 길을 나섰다.
다행히 비는 이슬비로 바꾸어져 있었는데
여름이었지만 비 덕분인지
이슬비 내리는 여름 밤은 너무나 시원하고 상냥했다.
밤은 시위하듯 주변은 어둑해져
불빛이라곤 노란 가로등과 편의점 불빛 뿐이었다.
우리 만날 때 유독 비가 많이 왔고
키 차이가 많이 나는 너를 위해
항상 너의 오른쪽 어깨를 오른손으로 감싸안고
우산을 네 쪽으로 낮춰 걷곤 했는데
그럴 때 마다 항상 나의 왼쪽 어깨는
먹물에 젖은 붓처럼 빗물에 검게 변하곤 했다.
그러나 그 날은 그러지 않고, 너의 왼손을 꼬옥 잡고 걸었다.
너의 속이 편해지길, 그리고 네가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며
너의 마음과는 달리 너의 속은 야속했고
소리는 컸다.
그리고 나의 배려 보다 나의 장난기는
그 보다 더 컸다.
"우리 강아지 이젠 시원해?"
담담한척 하지만 노란 가로등 밑에서 낮에 먹은 딸기보다
빨개 지는, 너의 젖무덤 같이 토실토실한 양볼이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입술을 훔치고는 꽉 안아 주었다.
때마침 이슬비는 더 가늘어 졌고
우리는 우산을 접고 논가를 조금 더 걸었는데
풀벌레 쓰르르 우는 소리
개구리 우는 소리
풀잎새 이슬 번지는,
비온 뒤 맡아지는 청량한 냄새보다
더 진한건
아까보다 더 붉어진 너의 볼과
입술 이었다.
밤 산책을 마치고
언덕을 올라가는데 언덕위에는
붉은색 보름달이 걸렸다.
그때 문득, 나는 네게 말을 걸고 싶어졌다.
"만약 우리가 결혼 한다면 매일 널 이렇게 산책시켜 줄거야"
"내가 무슨 강아지냐, 치"라고 말하는 너에게
나는 대답없이 웃으며 너를 가득 안고 귓가에 말했다.
'사랑해, 앞으로도, 영원히'
.
.
.
만약에 아주 만약에
우리가 언젠가 돌고 돌아서
다시 만난다면
차가운 이슬비 맞으며 둘이서 함께 걷는
그 밤이 너무 좋았으니깐
그러니깐
우리,
이 비가 그치면
우리 산책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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