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연봉 7000만원 근로자들이 벌인 불법파업”이라는 의도적인 왜곡으로 유성기업 노조를 공격하고 나서면서 유성기업 사태는 지속적인 파장을 낳고 있다. ‘7000만원 근로자’라는 왜곡도 문제지만, 생산직의 고액연봉을 문제삼는 의식의 저변에 깔린 ‘기능직 천시’의 고정관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생산직 노동자라고 하면 허덕이는 월급을 받아야 한다는 차별의식이 우리 사회에 아직 존재한다”며 정부 고위 관료들의 발언이 그런 의식의 발로라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 발언에 앞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 23일 “연봉 7000만원의 불법파업”을 언급했고, 경찰은 다음날 전격적으로 경력을 투입해 파업 노조원을 전원 연행했다.
이 대통령이 “평균 2000만원도 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많다”며 유성기업을 ‘얌체’처럼 묘사한 데서도 드러나듯이 기능직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 수준은 고정관념의 토대가 된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177개 중소 제조업체의 임금을 조사한 결과 사무직 노동자의 월급여 수준을 100으로 했을 때, 생산직 노동자의 월급여 수준은 75정도에 그쳤다.
전통 공업 강국인 독일의 경우와 비교하면 한국 생산직 노동자의 현실은 여실히 드러난다. 독일의 공업 경쟁력은 ‘마이스터 제도’로 대표되는 기능직 노동자의 탄탄한 토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이스터란 독일의 장인정신을 대변하는 기능직 전문가들로 각종 수공업 분야의 실질적인 능력과 이론 지식, 교육 능력을 두루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한 연구원에 따르면, 독일에서 만난 4년 경력의 마이스터는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5000~6000유로(770만~930만원 가량)의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직종은 보일러 관련업이었다. 아직 마이스터 자격증을 따기 전인 19살 기능직 노동자의 경우 월 2000유로(310만원 가량)를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직종과 경력에 따라 차이가 크기 때문에 마이스터의 평균 임금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이들이 한국의 ‘고졸’에 해당하는 학력임을 감안하면 우리와의 임금 격차는 매우 크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밝힌 지난해 구매력 기준 근로자 평균임금을 보면 한국은 4만3000달러 가량인 반면, 독일은 5만2000달러 수준으로 두 나라의 임금 수준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한국 기능직의 낮은 임금 수준에 비하면 독일의 기능직이 받는 노동의 가치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낮은 임금은 생산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부정적 인식은 다시 낮은 처우의 합리화로 되먹임(feedback)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공장 노동자들 사이에도 자기 자식에게는 이른바 ‘기름밥’을 먹게 하지 않겠다는 의식이 아직 남아 있다”며 “학력 인플레와 고학력 구직난 등의 현상은 사회적으로 깔려 있는 이런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나아가 한국이 일류대학, 좋은 직장에만 매달리는 획일화된 경쟁사회로 돌진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이 밝힌 지난해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79%로, 30%대에 머물고 있는 독일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달희 울산대 공공정책연구소장은 “정부는 마이스터고 도입 등으로 기능직의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다지만, 취업한 실업고 졸업생들이 대졸자와 임금 격차 때문에 다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고졸 기능직에 대한 낮은 처우는 청년층이 택할 진로의 다양성을 해치고 결국 ‘무한 입시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