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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animation_351667
    작성자 : ▶◀DTB
    추천 : 1
    조회수 : 603
    IP : 120.136.***.80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5/09/05 00:15:32
    http://todayhumor.com/?animation_351667 모바일
    [팬픽] 에반게리온 TS - 4
    관제실의 직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들을 신속히 처리하고 있었다. 모니터에 비춰져 있는 것은 인류 최후의 희망과도 다름 없는 에반게리온,
    그 초호기였다.
     
    "......"
     
    모니터를 바라보는 미사토의 시선에 불편함이 서려 있었다. 지휘하는 자의 입장이기 전에 어린 소녀가 에바에 탄 현재의 상황이 탐탁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스렸다.
    리츠코 또한 미사토와 같이 마냥 편해보이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었으나 그 것은 레이를 향한 걱정이 아닌, 레이가 해낼 수 있을까란 걱정이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에선 합리적인 기준을 감성에 맞기지 않는 리츠코의 이성이야 말로 가장 필요한 덕목이었다.
     
    "엔트리 플러그 삽입"
     
    초호기의 척수 부분의 장갑이 열리고 그 안으로 기다란 원통이 매끄럽게 들어갔다. 
     
    레이는 숨을 최대한 고르게 쉬려고 노력하면서 정면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레이는 자기 스스로가 이 것에 타기를 선택했다. 그런 만큼 최선을 다 할 것이라 다짐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내린 선택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엔트리 플러그 주수"
     
    "...읍!"
     
    수수께끼의 액체가 갑작스레 발 밑에서 부터 차오르자 레이는 숨을 멈추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액체의 정체를 묻는 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걱정마. LCL이 폐에 차게 되면 직접 산소가 직접 공급 되니까. 금방 익숙해질 거야"
     
    리츠코의 말에 레이는 참았던 숨을 풀면서 눈을 감고 LCL을 들이마셨다. 속이 거북해져 여간 기분이 나쁜 게 아니었으나 당장의 느낌이 중요한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에 이내 시선을 앞으로 고정시킨 채 조종간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 곳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하늘빛 머리카락을 한 소년의 무조건적인 순종.. 레이는 그게 싫었다. 어른들의 터무니 없는 요구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소년의 모습을 본 레이는 소년이 어른들의 뜻대로 휘둘리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본래 거부했던 것을 자처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 마음엔 소년을 위한 희생 따윈 없었다.
     
    오히려 레이는 어른들의 도구이기만 한 소년을 경멸했다.
     
    레이가 초호기에 탄 이유는 이미 어른들의 도구가 되어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는 소년이 아닌 자신이 탄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이 죄책감을 느끼기를
    바랬기 때문이기도 하면서..
     
    '과연 그런 말로 네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미사토에게 방금 들었었던 말이 레이의 귓전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말로써 자신을 납득시키 못 하겠다면 행동으로써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레이의 마음을 휘어 잡았다.
     
    .....
     
    실제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미사토 뿐이었다. 당장에 닥친 상황의 긴박함과 더불어 레이의 의연해 보이는 겉모습이 관제실에 있는
    이들에게 죄책감을 크게 덜어 주고 있었다.
     
    "인터페이스 접속"
     
    "하모닉스 수치 전부 정상, 이상 반응 없습니다"
     
    오퍼레이터 마야의 모니터를 통해 레이의 싱크로율을 확인한 리츠코는 굳어 있던 표정을 풀며 엷은 미소를 띄었다.
    일말의 희망이 생겨 났다는 증거였다.
     
    "나가도 문제 없겠어"
     
    리츠코의 말을 들은 미사토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하는 듯 했지만 이내 결의에 찬 목소리로 작전부장으로서의 지휘를 내렸다.
     
    "발진 준비!!"
     
    케이지 안에 있는 작업 인원들이 바쁘게 움직였고 오퍼레이터들의 목소리가 왕왕 울려댔다. 초호기 안에 있는 레이는 밖의 분위기를 알려고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상념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생각들 중엔 자신이 곧 마주하게 될 적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진 못 했다.
     
    전 인류의 목숨을 등에 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평온했다. 평소에도 자신이 제법 침착한 편이라고 여겼었던 레이였지만 이 정도로 동요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심심하게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짧게 내쉬는 한숨이 기포가 되어 떠올랐다.
     
    그러는 사이 초호기는 케이지 밖을 나와 사출구에 도착해 있었다. 레이도 대강의 낌새를 눈치채고 다시 한번 조종간을 움켜 쥐었다.
     
    "발진 준비 완료"
     
    리츠코의 말에 미사토는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다가 겐도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괜찮겠습니까?"
     
    미사토의 질문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나는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은 자를 에바에 태워도 괜찮겠냐는 의미였고 다른 하나는 
    당신의 딸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싸움터로 몰고 가는 것이 상관 없느냔 얘기였다.
     
    "물론이다. 사도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인류에게 내일은 없다"
     
    과연 네르프의 사령관다운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미사토는 그 사실을 머리론 이해하고 있었지만 가슴 속 한구석에선 잠깐의 고민도 없이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겐도에게 약간의 경멸을 느꼈다.
     
    "정말로 괜찮겠나 이카리?"
     
    "...상관 없는 일이야"
     
    이번엔 후유츠키가 겐도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미사토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깍지 낀 손 밑에 감춰진 입은 겉으로
    드러난 부분과 똑같이 정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발진!!"
     
    미사토의 외침과 동시에 초호기가 사출구에서부터 솟아 올랐다. 레이는 처음 느껴보는 쇼크에 신음하면서도 고통을 감내해 내겠다는 듯 눈을 치뜨고
    있었다.
     
    한편 사도는 아무도 없는 제 3 신도쿄시의 지상 위를 천천히 거닐며 지오프론트로 향하는 곳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한 건물을 우회하는 순간 사출구로부터 올라온 초호기와 마주치게 되었다.
     
    "......!"
     
    겉으론 동요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호흡의 박자가 흐트러 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최종안전장치 해제, 에반게리온 초호기 리프트 오프!"
     
    초호기의 구속구에 부착된 고정장치가 해제되었다. 하지만 레이는 에바의 제대로 된 조종법 조차 몰랐기에 초호기는 어깨와 목이 힘없이 축 늘어진
    추한 모습을 취하고 말았다.
     
    "레이양, 일단은 걷는 것만 생각해"
     
    리츠코의 조언을 들은 레이는 오로지 걷는 것 하나만을 생각하려 했지만 다른 잡념들을 지우는 게 쉽지 않았다. 크게 조성되지 않은 긴장감이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무리였던 건가"
     
    "아니, 지금 단정 지어서는 안돼. 레이양?"
     
    ".....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줘. 현재 초호기의 몸은 너의 몸과 감각을 같이 할 정도로 일체화 되어 있어"
     
    어른들에게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레이는 그제서야 잡념들을 떨쳐내는데 성공했다. 긴장감은 조성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원인은 눈 앞에 마주하고 있는 적이 사도가 아닌 자신의 편인 자들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레이는 그들을 아군이라 생각하고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추한 모습 따위...보여주지 않겠어..'
     
    자신이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를 되새기며 레이는 다시 한번 걷는 것 하나 만을 머리 속에 두었다. 그와 동시에 레이의 생각에 반응하듯 초호기는 오른
    발을 느리게 뻗어 첫발자국을 내딛었다.
     
    "걸었어!"
     
    매우 미약하긴 하지만 실질적인 가능성이 눈 앞에 드러났다.
     
    '다시 한번..'
     
    한번 집중하기가 힘들었을 뿐 레이의 집중력은 훌륭했다. 초호기는 두번째 걸음을 내딛었고 연이어 세번째 걸음까지 내딛는데 성공해냈다.
     
    "잘 하고 있어 레이양. 이젠 그 요령을 기억하면서 초호기를 움직여"
     
    터무니 없고 무책임한 말이었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레이 또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리츠코의 말대로 방금 전 초호기를 걷게 했던 방법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초호기를 움직여 보려 했다.
     
    "이카리양! 앞을 봐!!"
     
    당연하게도 적인 사도는 레이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당장의 요구인 초호기의 작동만을 수행하려 했던 레이는 사도의 존재 마저 잠시 잊어버렸었기에 미사토의 외침을 듣고서야 조종간을 급하게
    움직이며 어떻게든 사도의 접근을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걷는 법을 터득한 레이가 사도의 재빠른 접근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도의 접근을 허용하고만 초호기는 순식간에 사도에게
    왼쪽 팔이 붙잡혀 압도적인 완력에 의해 뒤틀려졌다. 
     
    "아아아아아아악!!!"
     
    제아무리 레이가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운 면이 있다고 할지언정 육체는 여타 다른 소녀들과 다를 게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강도 높은 고통을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레이의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관제실에 울려퍼졌다. 다시 한번 관제실 안에 완연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카리양! 진정해!! 너의 팔이 아니야!!"
     
    제아무리 자신의 팔이 아니라고 해도 고통 만큼은 진짜였다. 미사토의 말은 레이에게 닿지 못 했다. 레이의 비명은 붙잡힌 팔이 부러질 때 까지
    그치지 않았다.
     
    "왼팔 손상!"
     
    "회로 단절!"
     
    "...하아.... 하아...."
     
    고통으로 경직되어 있던 레이의 등이 굽혀졌다. 왼쪽 팔은 레이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레이는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오른팔을 이용해 어떻게든 조종간을 움직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이미 정신은 풀어헤쳐진 상태가 되어 초호기는 더 이상 레이의 뜻 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도의 손에 머리가 붙잡혀 덜렁거리는, 마치 갈고리에 꿰인 고깃덩이와 비슷한 몰골이 되고 말았다. 
     
    "방어 시스템 작동하지 않습니다!"
     
    "필드 무전개!"
     
    "역시 사도를 상대로는... 무리인 건가..."
     
    리츠코의 뺨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원래부터 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내심 기적을 바랬던 것이지만 역시나..인 것이다.
     
    이게 현실인 것이다.
    리츠코 마저 이런 말을 내뱉은 지금 어느 누구도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초호기의 머리를 움켜쥔 사도의 팔꿈치에서 빔이 솟아 나왔다. 이내 팔꿈치에서 부터 나온 빔은 초호기의 머리를 연신 두들겼다.
    아직 초호기는 손상 되지 않았지만 연약한 레이의 육체가 사도의 공격을 버텨내지 못 했다. 왼쪽 안구의 실핏줄은 전부 터진 상태였고 피는 눈물의
    형태로 흐르지도 못 한 채 나오는 족족 LCL에 중화되었다.
     
    ".....아..."
     
    몇초 간격으로 초호기를 통해 느껴져오는 머리가 부서질 것 같은 충격에 레이는 아까와 같이 제대로 된 비명 조차 흘리지 못 했다. 쉰소리를 내는
    것으로 겨우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통신 회선을 통해 관제실에서 여러 목소리들이 오가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어느 것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당연한 얘기였지만 너무나도 아팠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이 부른 결과였기에 기필코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당장 느끼는 고통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살아야만.. 해... 죽을 수는.....없어....아직....'
     
    굽혀져 있던 허리가 꼿꼿해졌고 쳐져 있던 오른팔에 힘이 들어갔다. 탁해져 있던 눈동자는 생기를 되찾았다. 머리를 깨부수는 충격 속에서도 고동색 눈동자에 비친 악은 바로 눈 앞에 위치한 적에게 향하고 있었다.
     
    ".........!"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다.
     
    초호기의 오른팔이 서서히 움직이더니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있는 사도의 팔을 붙잡았다.
     
    "싱크로율 상승!"
     
    그저 움직인 것만은 아니었다. 초호기의 손아귀엔 힘이 실려 있어 사도의 팔을 뭉개고 있는 중이었다. 초호기가 붙잡은 사도의 팔에선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이내 사도의 팔은 부러졌고 초호기는 가까스로 사도의 손에서 벗어나 땅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졌다.
     
    리츠코는 마야의 모니터와 관제실의 모니터를 번갈아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가능성은 폭주였으나 마야의 모니터에 비치는 레이의 수치는 싱크로율이 상승한 것을 제외하고선 모두 정상적인 수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폭주가 아니라면 레이의 강인한 의지가 작용된 것 외에 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어쩌면...'
     
    미사토는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세게 깨물고 있었다. 조금의 가능성을 보았을 뿐이지만 0퍼센트가 아니란 것을 확인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초호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엉거주춤한 자세와 너덜거리는 왼쪽 팔은 허술해 보이기도 하면서 괴기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도는 그 사이 부러졌던 팔을 수복한 다음 초호기를 덮쳤다. 속도는 방금 전 보다 빨라 관제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 조차 갑작스런 사도의 행동에
    당황하며 레이에게 물러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레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초호기 또한 미동도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초호기는 사도의 공격을 그대도 받고 다시 한번 좌초되는 줄 알았다.
     
    "...말도 안돼!"
     
    그 순간 초호기는 민첩하면서도 섬세한 동작을 선보였다. 초호기는 등으로 사도의 공격을 흘려낸 다음 곧장 등을 올려 사도를 순간적으로 둘러업은
    다음 오른 손으로 다리를 붙잡아 반대 방향으로 내동댕이 쳐버렸다.
     
    바닥에 엎어진 사도는 일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으나 초호기는 사도의 양팔을 각 발로 짓뭉개 움직임을 봉했다. 이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초호기가 사도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저렇게 되선 끝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카리양..??'
     
    미사토의 생각대로 초호기가 사도를 끝장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왼쪽 팔은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었고 오른팔은 이미 사도의 코어 부근을 압박하는데 쓰이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코어 부근을 공격할 수도 있었으나 AT필드를 전개하지 않는 이상 맨 손으로 코어를 부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마야, 프로그 나이프를 방출시켜"
     
    마야는 빠른 타자 속도로 순식간에 리츠코의 명령을 수행해냈다. 이내 초호기의 구속구가 열리더니 그 곳에 수납되어 있던 프로그레시브 나이프가 초호기의 오른 손 부근에 떨어졌다.
     
    "이카리양! 거기 있는 걸 집어!"
     
    지금 상황을 결단내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무기였지만 레이는 미사토의 말을 듣기는 커녕 자신의 시야 안에 프로그레시브 나이프가 들어와 있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다.
     
    레이는 주변의 모든 환경을 망각한 채 목표에게만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그만큼 대단한 집중력인 것이었다.
     
    레이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으로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이카리양! 이건 명령이야!"
     
    미사토의 목소리가 날카로워 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는 자신의 본능이 향하는 대로 초호기를 다루기 시작했다.
     
    초호기의 입이 쩌억 소리를 내며 벌어졌다. 벌려진 입 사이로 하얀 입김이 연신 뿜어져 나왔다. 몸을 함부로 가눌 수 없는 초호기의 상황 상 입을
    벌린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너무나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이카리양! 그만둬!!!"
     
    미사토의 외침은 부질없는 울림으로 멀어져 갔다. 초호기는 마치 한마리의 사냥개가 된 것 마냥 사도의 어깻죽지를 물어 뜯었다. 살점이 씹히는 소리가 관제실을 울렸고 몇몇 비위가 약한 직원들은 인상을 찡그리거나 모니터를 보는 것을 피했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그 다음으로 들린 것은 사도의 비명소리였다. 초호기는 뜯어낸 살점을 뱉어내고 다시 한번 고개를 들이밀어 사도의 살을 물어 뜯었다. 이번에
    물어 뜯는 부위는 코어 부근으로 이 부분에선 사도도 생존의 위협을 느낀 모양인지 격렬히 반항했지만 오히려 초호기의 발에 짓눌린 양팔이 무게를 견디지 못 해 다시 한번 부러지고 말았다.
     
    "이카리, 방치해둬도 괜찮은가?"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상황을 방관하기만 하던 후유츠키가 입을 열었다. 에바가 사도를 포식 함으로써 일어날 일들을 경계해야 되지
    않냐는 뜻이 내포 되어 있었다. 
     
    "......."
     
    하지만 겐도는 여전히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 행동 자체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겐도의 의사표현이었다.
     
    '이카리... 제레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그래도 괜찮다는 말인가'
     
    후유츠키는 별다른 대답 없이 다시 침묵을 지켰다.
     
    현재의 초호기는 뜯어낸 살점을 뱉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으나 언제 포식 행위를 저지를지 몰랐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사도는 다시 괴성을 지르며 자신을 누르고 있는 초호기에 대해 반격을 시도하려 했지만 초호기는 사도의 얼굴 부분을 물어 뜯어 버리는 것으로 사도를
    침묵시켰다.
     
    이내 초호기의 이빨은 환자의 몸을 가르는 메스처럼 사도의 몸을 아래방향으로 거칠게 파헤친 다음 코어를 깨물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마야, 집중하도록 해"
     
    "ㄴ...네"
     
    리츠코는 유독 비위가 약해 모니터를 보는 것을 피하고 있던 마야에게 핀잔을 주면서 마야의 모니터에 비친 레이의 각 종 수치들을 확인해 보았다.
     
    '어째서... 저런 비이성적인 행위를 보이는 거지..?'
     
    모든 수치는 정상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모니터에 비치는 초호기의 모습은 폭주 상태와 달라 보일 게 없었다.
     
    '그런 건가...그래.... 겁에 질려 있는 거야... 저 아이...'
     
    리츠코의 추측이 가장 진실에 가까웠다. 지금의 레이를 움직이게 하고 있는 것은 살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자기보호 본능에 가까웠다.
     
    쩌적!
     
    "초호기... 치아 파손..."
     
    다소 부상 당하기 힘든 부위라는 게 오퍼레이터 휴우가의 말에 힘이 실리지 않게 했다. 실제로 사도의 코어의 표면을 따라 핏방울이 흘러 내리고
    있었고 초호기의 입 주위엔 피가 번져 있었다.
     
    쩌저적!
     
    초호기의 이빨이 몇개나 더 부서져 마치 애무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사도의 코어가 갈라졌다.
    사도는 변변찮은 저항도 못 한 채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생명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사도.. 완전 침묵..."
     
    관제실 안은 조용했다. 당장 벌어진 사실을 믿기 힘들었던 것이다. 처음 목도하게 된 사도의 힘에 맞선 사람은 작디 작은 소녀였고 그 누구도 소녀의
    승리를 예상치 못 했다.
     
    단지 어렴풋이 바라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 바램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을 즉각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미사토, 명령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만 있던 미사토는 리츠코의 다그침을 듣고서야 겨우 제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일단 신호를 차단시켜. 그리고 파일럿의 상태는?"
     
    "부상이 있습니다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휴...."
     
    미사토는 레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도와의 싸움에만 집중하느라 등한시 했었던 레이를 이제서야 신경 쓰는 것에
    대해선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우선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현 시점 부로 작전을 종료하겠습니다. 파일럿의 회수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이로서 공식적인 작전은 끝이 났다.
     
    비로소 주변 환경을 인식할 수 있었다. 미사토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한가득 맺힌 땀을 닦아내었고 리츠코 또한 목을 축이려고 마신 커피가
    다 식어 버렸음을 깨닫고 쓴 표정을 지었다.
     
    "...이겼군"
     
    "이제 겨우 첫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다"
     
    "그렇군. 그것 보다.. 예상 외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초호기는 입을 사용했으면서도 사도의 어느 부위 하나 삼키지 않았다. 이 점에 있어선 제레의 추궁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
     
    맨 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후유츠키와 겐도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대화를 나눈 뒤 먼저 관제실을 빠져 나갔다.
     
    ........
     
    한편 초호기의 엔트리 플러그 안에서 레이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해냈다는 사실이, 이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이 버림 받아야 했었던 이유 따윈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
     
     
    진짜 간만에 써보네요.
     
    한동안 대입 자소서에 신경을 쓰느라 이 것에 신경을 쓸 틈이 거의 없었네요.
     
    ....뭐, 그렇다고 해서 이걸 보시는 분들이 거의 (어쩌면 아예)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제 스스로와 했던 약속이 있는 만큼 계속 써보려고 합니다.
     
    전편 링크 남겨드립니다.
     
     
     
     

     
    ▶◀DTB의 꼬릿말입니다
    new_new_new_절망  - 복사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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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05 00:52:14  182.237.***.19  Lazaretto  443471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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