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파 보스 안상민 '천하를 버리고 아내를 얻다'
"난 내 자신을 지킬 수 있는게 '주먹'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주먹을 휘둘렀어. 무시받지 않기 위해.
내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지만 지금 건달들은 달라.
'돈'이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돈이 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지.
솔직히 말해 그건 건달이 아니야. 양아치야. 깡패 양아치."
80~90년대 맨주먹 하나로 천하를 통일했던 안토니파 보스 안상민씨.
그는 변해버린 주먹세계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낭만과 의리가 어디있어. 오로지 돈이지.
적어도 우리때는 안그랬는데.
그래도 의리를 알고 멋을 알고 낭만을 알았는데.
적어도 그때는 말이지…" 2004년 2월 14일.
주먹황제 안상민씨는 눈을 지긋이 감으며 '그때'를 회상했다.
2002년 당시 '타임'지에 실린 안상민씨
말더듬이. 어릴적에 말을 심하게 더듬었어.
언어장애라고 하지? 거의 반벙어리 수준이었어.
사람들이 놀리더라고. 참을 수 없었지.
아마 그때부터 주먹을 쓴거 같아. 일종의 복수심이었지.
태권도, 유도, 레슬링, 킥복싱, 합기도 등 온갖 무술도 다 익혔어.
정말 밥먹는 시간빼고는 운동했지. 나를 지킬려고 말이야.
종로를 제패할 때 남들은 날 타고난 싸움꾼이라 말했지.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싸움꾼이라기 보다 독종이었어.
반항심. 초등학교때 이미 나를 당해 낼 사람이 없었어.
두세살 많은 형들도 내 상대가 안됐어. 다 한주먹에 자빠뜨렸거든.
그런데도 내 반항심은 끝이 없었어. 선생님 때문이었지.
선생님은 내가 잘못할때 마다 벌로 책읽기를 시켰어.
더듬더듬 책을 읽는데 얼마나 부끄럽겠어.
그때 느낀 수치심과 모욕감이란. 난 더 삐뚫어지기 시작했지.
그래서인지 밖에만 나가면 싸워댔어.
충남짱. 요즘 애들 흔히 '짱'이라는 말 쓰지?
중학교때 이미 충남 지역을 제패했어. 일종의 주먹짱이었지.
서산은 물론 천안, 온양, 예천, 홍성, 당진 등
충남일대 중학교를 장악해 버렸지.
충남에서 '잘친다'는 아이가 있으면 곧장 달려가 맞장을 떴어.
그때 주먹 맛을 알았어. 타자가 홈런칠때 그 느낌이 있지.
걸렸구나 하는 거. 아마 그 느낌일거야.
내 주먹이 상대 턱에 꽃힐 때 '딱'하는 소리가 나면 백발백중 넘어갔지.
100kg 넘는 거구도 말이야. 그렇게 충남을 완전 제패했어.
내 적수가 없었지.
서울입성. 중2때였어. 부모님이 날 서울로 전학시켰어.
당시 형님이 장충동에서 약국을 했는데.
형님댁에서 먹고자며 장충중학교에 들어갔지.
한데 웬걸. 여긴 진짜 내 세상이었어.
싸울 상대가 얼마나 많아. 시골 바닥하곤 다르거두만.
물론 중학생들은 내 적수가 안됐고. 고등학생 형들이랑 붙었지.
성동공고, 덕수상고, 장충고 등 그 일대 짱들하고 맞장떠서 다 이겼어.
내 소문이 처음으로 퍼지기 시작했어. 장충중학교 싸움귀신이라고.
한참 재밌었는데 부모님이 다시 서산으로 부르더라고.
거기서도 싸움질 할거면 차라리 내려오라고.
가출. 서울이 눈앞에 아른 거리더라고. 서산은 재미 없었어.
나보다 강한 상대가 없으니깐. 내가 싸우는 이유? 정말 단순해.
최고의 주먹이 되고 싶었거든. 난 그냥 싸우는게 좋았어.
나보다 강한 상대를 찾아 그를 눕히는게 좋았지.
한데 서산은 얼마나 심심해. 그래서 가출을 결심했지.
고등학교 2학년때야. 친구 6명을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지.
돈 30만원 들고 종로 여관을 빌렸어. 서울제패의 꿈을 안고 말이야.
그때 여관비가 1200원 정도. 합숙을 하면서 몸을 만들었지.
운동은 종로 YMCA 체육관에서 했어.
종로3가. 당시 종로 3가는 이쁜이파 애들이 장악하고 있었지.
천궁이라는 음악다방에서 상납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우리도 행동에 들어갔지.
다방에서 이쁜이파 애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어.
아니나 다를까 사장에게 돈을 받더니 위에 당구장으로 향하더라고.
곧바로 쫓아갔지. 우리는 죽기 아니면 살기였어.
그러니 상대가 되겠어. 한방에 보내 버렸지.
그리곤 이쁜이한테 돈을 받아 다시 천궁 주인에게 돌려줬어.
그렇게 종로 3가를 접수했고 내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어.
상납? 난 필요없다고 했어.
종각. 종로 3가를 접수하고 때를 기다렸지.
다음 타깃은 종각. 종로 1·2가는 돼지파 구역이었지.
당시 돼지파는 종각에 있는 파노라마 나이트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규모가 꽤 컸어. 한데 돼지파는 예상외로 싱겁게 접수됐어.
우연히 혼자서 돼지파와 마주쳤고..
그 쪽에서 내게 먼저 시비를 걸더군. 날 얕잡아 본거지.
하지만 싸움은 상대가 10명이든 20명이든 상관없어.
우두머리급 두 세명만 눕히면 그걸로 끝이야.
보스가 꺾이면 밑에 부하들은 오합지졸이 되지.
그렇게 종각을 접수했어. 내 나이 스물살때 말이지.
사람들이 나를 김두한이라고 하더군.
맞장. 웬 김두한? 어린 나이에 맨주먹으로 종로를 장악했다고 말이야.
그리고 또하나. 오직 맨주먹으로 싸웠기 때문이지.
난 절대 연장을 안써. 아우들에게도 연장을 못쓰게 했지.
난 내 주먹이 사시미 칼보다 더 세다고 믿는 사람이야.
그리고 그게 진정한 싸움꾼이지. 건달말이야.
대신 전쟁이 시작되면 복대는 차지.
가죽복대. 칼맞고 죽으면 안되잖아. 팔이나 다리는 상관없지만.
명동. 당시 무교동은 특별히 관리하는 애들이 없었어.
질 안좋은 양아치들이 여기 저기서 돈을 뜯고 다녔지.
종로를 완전히 접수한 우리는 무교동을 정리했어.
무교동을 장악하니 식구들이 40~50명 정도로 늘었어.
그리고 명동 접수에 들어갔어.
당시 명동은 신상사, 양은이파(조양은), 서방파(김태촌) 정도 있었는데.
신상사는 사보이호텔 테러로 거의 지는 별과 다름 없었지.
한편 양은이파는 조양은 선배가 구속돼 잠시 조용한 상태였어.
서방파 김태촌 선배와는 원래 친해 우리에게 우호적이었어.
그래서 우리가 명동에 들어가기도 쉬웠지.
그렇게 안토니파는 명동까지 일부 접수하며 세력을 확장시켰어.
그런데 왜 안토니파냐고?
안토니파. 그건 이상하게 지어진 거야.
당시 성 뒤에다 '돈'을 붙여서 부르는게 유행이었어.
돈이 많다고 말이지. 예를 들어 김돈, 박돈 그런식으로.
나보고는 '안돈'이라고 하더라. 그러다 영화 '대부'가 나왔어.
거기 나오는 마피아 이름 대부분이 '안토니오'잖아.
어느새 '안돈'이 '안토니'로 바껴 있더군.
우습지? 거창한 이유는 하나도 없어.
그냥 사람들이 나를 '안토니'라고 불렀고 그렇게 '안토니파'가 된거야.
승승장구. 그렇게 승승장구했지.
마침 강남 붐이 일었고 우리도 강남으로 진출했어.
당시 강남에는..
남서울호텔, 리버사이드, 팔레스 호텔, 삼정호텔 등 4개가 있었는데.
내가 팔레스 호텔을 장악했지.
남서울과 리버사이드는 호남쪽 식구들이 장악했고.
식구도 200명 이상으로 불어났어.
친구 6명과 서울로 올라온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안토니파가 전국구 조직으로 변해 있더군.
장악. 주먹들의 세계는 단순해. 패자는 말없이 물러난다.바로 그거야.
장악을 했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세력 다툼을 해서,
주먹 강한 사람이 그 지역을 갖는거야. 그렇게 세력을 확장하는 거야.
물론 세력이 커질수록 견제도 많이 받아.
아마 전국 조폭 보스 중 대부분은 불법총기 가지고 있을거야.
테러에 대비하려고. 나도 항상 총을 머리맡에 대고 잠들었으니까.
물론 경찰서에 신고하고 다 반납했어.
야쿠자. 한번은 야쿠자랑 붙은적이 있어.
아마 대한민국 건달중에 야쿠자와 맞장뜬 사람은 나 밖에 없지.
아는 마담의 소개로 야쿠자인 야마구찌 구미 식구들을 만난 적이 있어.
안토니파가 잘 나갔으니 우리를 이용해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는 목적이었지.
무슨 사업? 마약을 국내에 풀자는거야. 미쳤어? 마약을 풀게.
난 단 한번도 '뽕'에 손댄적이 없어.
남들은 나를 건달이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세계에서 정도를 걸었어.
그래서 단호히 거절했지. 건방지다고 내게 시비를 거는거야.
그래서 아주 아작을 내줬지. 그리고 시비건 놈 손가락을 잘라버렸어.
다른 야쿠자가 보는 앞에서.
한데 되려 야쿠자들이 이 안상민의 강한 기백에 매료된거야.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제대로된 주먹이고 높이 평가했지.
배신. 정말 밤의 황제였어.
당시 내 자동차가 3대였지. 1호차가 GM 올즈모빌 방탄차였어.
우리나라에 방탄차 탄 사람은 대통령하고 나, 이렇게 둘 뿐이었거든.
2호차가 벤츠 500, 3호차가 푸조였어. 조직이 커지니 정치권에서도 손을 뻗더라.
그렇게 형님 아우하면서 연결될 때도 있어.
근데 원래 정치가들이 다 그렇지?
달면 삼키고쓰면 뱉고. 보기좋게 이용만 당했지.
그리고 구속됐어.
구속. 그때 사회면에 대문짝 만하게 나왔어.
'방탄차 탄 조직보스 구속' 이라고. 내게 붙여진 죄목만 해도 9가지 더군.
살인교사, 특수강도, 마약, 외환관리법위반, 폭력교사,
총포, 도검류, 화약법 위반. 재판날 검사에게 말했지.
"이보쇼. 이왕 하는거 한가지 더 추가해 10가지 채우쇼.
" 하하. 그랬더니 공갈 협박이라는 죄목이 하나 더 추가되서
10가지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 받았어. 황당하더군.
내 아우들은 모두 15년에서 10년 이상 받았지.
30억. 일단 사람은 살려야 되겠더라고.
당시 가진돈이 한 30억쯤 됐었어. 모두 풀었지.
나와 내 아우들 재판하는 데 있는 돈 다 풀었어.
그런데 세상이 참 웃기지? 사형이 결국 5년으로 깍이더라.
10가지 구형이 다 빠지면서. 우리나라 참 썩었지?
악? 난 말이지 사실 이 세계가 나쁜일인지 몰랐어.
내가 어디 서민을 괴롭혔나? 난 절대 나보다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지 않았어.
약자한테는 한없이 약했고 강자한테는 한없이 강했던 게 이 안상민이야.
단지 우리끼지 치고박고 싸웠을 뿐이었는데.
어느날 우리보고 사회악이라 하더라고.
하지만 정말 사회악은 정치하는 사람들 아닌가?
온 국민을 도탄에 빠지게 하고 분노케 하잖아.
은퇴. 97년이지.
팔레스호텔에서 은퇴식을 가졌어.
은퇴식하는 보스 봤어?
하하. 사실 그냥 내 생일날 조직원들 불러놓고 이제 이 생활 그만 접겠다고 말한거야.
그간 10여년 동안 교도소를 들락 거렸지만 여전히 나는 손을 씻지 못했지.
하지만 결국 이제와 느낀건 환멸 뿐이었어.
의리는 사라진지 오래고 배신이 난무했지. 회의감이 들더라.
나는 적어도 사나이 의리 하나로 살았는데. 멋과 낭만을 알았는데.
어느새 주먹세계는 주먹보다 연장이 앞서는 피비린내 나는 곳으로 변했더군.
하지만 무엇보다 손을 씻게 된 계기는 내 사랑하는 아내 때문이야.
아내. 지금으로 부터 40년전. 아내를 처음 만났지.
나하고 한동네 소꼽친구야. 초등학교 6년을 같이 다녔지.
그때부터 소위 내 여자로 점찍었지. 정말 예뻤어.
한데 그 예뻤던 여자가 자궁암에 걸렸어.
다 나 때문이지. 내가 맨날 속만 썩였으니까.
우리 와이프 정말 대단한 여자야.
여지껏 나랑 20년 넘게 살면서 내가 준 돈 단 한번도 받은적이 없어.
그런 돈은 싫데. 그리고 서산에서 혼자 이불가게 하면서 우리 아들 두명 다 키웠어.
그렇게 고생했던 부인이 자궁암에 걸린거야.
의리. 하루는 내 바지를 잡고 울더라.
이제 그만 옆에 있어 달라고. 그때 느꼈지. '내가 참 못된 남편이었구나.
나 여지껏 의리 하나만으로 살았는데.
정작 아내한테는 그 의리하나 조차도 지키지 못했구나.
' 그리고 그때 아내가 자궁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어.
백약이 무효였지. 결국 손을 씻기로 했어.
아내에게는 이 '안상민'이 만큼 좋은 약이 없으니까.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 아내는 여전히 이불가게를 해.
나는 시간나는 대로 배달을 나가지.
천하의 안상민? 그게 뭐가 중요해.
내 사랑하는 여자 하나 못지킨다면 말이야.
"옛날 방탄차를 타고 다녔던 그때와 소형차에 아내를 태우고 다니는 지금,
언제가 더 행복하신가요? " 인터뷰를 끝낸뒤 느닷없이 던진 질문.
안상민씨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지금이 더 행복해.
우린 아직도 서로 얼굴보고 좋아서 웃어. 물론 그 화려했던 시절이 가끔 생각나기도 해.
내가 지금 시골에서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웃는 아내를 보면 금새 잡생각이 사라지지.
천하를 버렸지만 아내를 얻었자나."
안상민씨는 요즘도 밤마다 청소년 선도사업을 위해 서산 시내를 헤매고 다닌다.
벌써 5년째. 교화시킨 청소년만 해도 1000명이 넘는다.
99년 자전적 소설 '거물'을 출판해 받은 인쇄비 2억 모두 청소년 선도사업을 위해 썼다.
그래서인지 서산에는 밤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의 수가 몰라보게 줄어들었다.
"아주머니들 아들 마음잡게 해줘서 고맙다며 만원짜리 지폐가 든 봉투를 살며시 내밀어.
대부분이 1~2만원이지. 하지만 그 돈이 예전에 가지고 있던 몇억 몇 십억보다 훨씬 소중해.
진정한 돈의 가치를 알았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