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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은 현재 ‘응답하라 1988’의 1년 전이다. 현재 성보라가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2학년이니까 87학번으로 1987년 신입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학생이었던 박종철이 1987년 1월 14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공안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하다 사망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황당한 해명을 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그러나 부검에 의해 밝혀진 진실은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였다.
당시 서울대학교 87학번 신입생 성보라는 가난한 집안형편을 생각해 교사가 되기 위해 수학교육과에 진학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열심히 공부만 해야겠다고 생각한 학생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선배였던 박종철의 죽음에 분노하였고, 이른바 운동권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학교에 입학한 지 석 달 만에 6월 항쟁이 시작되었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 학생이었던 이한열이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뇌사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7월 5일 사망하였고, 7월 9일 열린 이한열의 민주국민장 장례식 때 배우 우현(성노을의 현재 인물로 나온 연기자로 당시 연세대학교 신학과 학생이었다.)은 태극기를 들고 침통해 했다. 아마도 이때 성보라도 이 집회에 참여해 슬퍼했을 것이다.
당시 6월 항쟁은 대학생들이 주도하여 일어났지만 이른바 넥타이 부대라고 하는 30대, 40대 직장인들이 점심시간, 퇴근시간을 이용해 대학생들과 함께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쳤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성보라의 아버지 성동일은 한일은행에 다니는 은행원이다. 성보라가 시위에 참여한 것 때문에 경찰서에 잡혀 갔다가 훈방되어 나오길 기다릴 때 김성균이 성동일에게 성보라를 따끔하게 혼내라고 하자 성동일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혼내냐?’고 반문한다. 또한 성동일은 퇴근길에 시위를 벌이던 한 대학생이 백골단에게 쫓기며 도움을 청하자 아버지인 척하며 구해주고, 헤어질 때는 깨끗이 씻고 들어가라며 오천원을 건네주었다. 아마도 1987년 6월 성동일은 퇴근길에 대학생들과 함께 시위한 넥타이 부대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대학생들에게 생수와 김밥을 사서 건네던 많은 시민들 중 하나였을 것은 분명하다.
출처 |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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