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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이 7월 30일에 개봉했다. 이제껏 본적이 없던 거대한 스케일의 해상전과 최종병기 활의 감독인 김한민, 이순신 역의 최민식, 구루지마 미치후사 역의 류승룡이라는, 최고의 감독과 배우 라인업이 관객들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고 있다. 나도 역시 이 영화를 기대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로서 나만의 방법으로 영화를 한껏 즐기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나는 팝콘과 콜라만으론 영화를 즐기는 데 너무나도 빈약하다고 느끼기에 영화 내의 역사공부, 배우와 감독에 대한 파악, 비평가들과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의 평들 등 최선을 다해 영화와 영화 주변의 정보들을 게걸스레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러한 노력들 중 하나가 바로 칼의 노래를 다시 읽는 것이었다. 나는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칼의 노래’에 쌓인 먼지를 손으로 털어냈다. 책장에 얌전히 꽂혀있던 칼의 노래는 다시 한 번 나를 명량 휘몰아치는 울돌목으로 실어 보냈다.
칼의 노래는 어떤 책일까, 김훈 작가의 소설로 2001년에 처음 초판을 찍어 동인문학상까지 수상한 책으로서, 성웅이라 불리는 이순신이 선조에게 역적모의를 했다는 누명을 써 고문당하고 백의종군을 했던 시점부터 노량에서의 그의 죽음까지를 다룬 책이다. 그 중에서 필자가 소개하는 명량 대첩 전후 부분은 그야말로 이순신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순신의 고뇌를 그린다. 백의종군 할 당시 조정의 명령으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을 때 적들의 수는 압도적이었고 그에 맞서는 이순신이 가지고 있었던 건 13척의 배가 전부였다. 조정은 통제사를 맡길 사람이 없기에 면책을 내렸으나 여전히 이순신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고, 절망적인 상황에 탈영병과 범죄를 저지르는 병사들도 늘어가고 있었다. 아녀자들은 적군의 노리개가 되었고 어린 아이들은 나무에 묶인 채 조총의 과녁이 되어 죽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통제사가 된 그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자신의 손 한줌에 쥐여진 것이 조선의 전부였고, 그것만으로 기울어져 가는 전쟁을 다시 뒤집어야 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전쟁이 끝난 뒤 역모란 누명으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운명이었다.
나는 통제할 수군이 없는 수군통제사였다. 내가 임금을 용서하거나 임금을 긍정할 수 있을는지는 나 자신에게도 불분명했다. 그러나 나의 무(武)는 임금이 손댈 수 없는 곳에 건설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건설은 소멸되기 위한 건설이어야 마땅한 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가 지켜야 할 것들은 이미 그에게 돌아서버린지 오래였다. 그가 맞서야 할 것들은 압도적인 수로 그를 파괴하려 진군하고 있었다. 그가 가진 한줌의 것들마저 그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은 그가 살리려 애썼던 종묘사직이었고 그를 살린 사람들은 그가 죽이려 애썼던 적들이었다. 결국 이러한 아이러니는 안 그래도 고문에 지친 그의 몸에 그의 독백처럼 ‘내 몸에 임금과 적이 동거하는’듯 한 스트레스를 불어넣게 되어 책의 끝까지 이순신을 괴롭히게 된다.
이철의 배에 군량 30가마를 실어주어 우선 죽을 쑤어 먹이도록 했다. 군량은 적선에 올라가 빼앗은 쌀이었다. 모두가 적들에게 빼앗긴 연안 백성들의 쌀이었다. 내가 적을 죽이면 적은 백성을 죽였고 적이 나를 죽인다면 백성은 더욱 죽어나갈 것이었는데, 그 백성들의 쌀을 뺏고 빼앗아 적과 내가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데 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나의 적이 먹고 있었다.-본문 중에서
이런 그에게 다시 칼을 잡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책에서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여진이란 여인이다. 백의종군 할 당시 만난 여진의 몸엔 전쟁에 의한 민중의 고통을 상징하듯 깊은 칼자국이 나있다. 이순신이 그녀를 안았을 때 그녀가 말한 ‘밝은 날 저를 베어주시어요’는 군인으로서 이순신이 지키려 했으나 결국 지키지 못한 백성들의 유언과도 같았다. 관직을 삭탈당하여 스스로를 물 위에 뜬 수군이라고 자조했던 그가 이때 느낀 감정은 울분과도 같았을 것이다. 또한 칼의 노래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 받는 백성들이 등장한다. 아군에게 식량을 수탈당하고 적군에게는 베이거나 강간당해 구천의 유령처럼 천지를 떠돌던 백성들은 이순신에게 어느 때보다도 깊은 고통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떠한 작전을 펴도 항상 백성을 잊는 일이 없었고,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날엔 꼭 백성을 먼저 살폈다. 칼의 노래에서 이러한 이순신의 행보를 보면 결국 그가 지키고 싶어했던 건 허깨비처럼 잡히지도 베이지도 않는 종묘사직이 아닌, 바로 그의 눈앞에서 고통 받는 백성들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순신은 다시 칼을 잡고, 명량에서의 전투는 시작되었다. 물살이 소용돌이치는 울돌목에 일자진을 친 그의 13척 함선은 명량을 새까맣게 뒤덮은 200여척의 적군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배의 앞부분을 때리는 역류의 물결은 사나웠고 안위와 김응함같은 역전의 장수들도 이와 같은 전세와 적의 기세에 질려 뒤로 물러나려 할 정도로 상황은 어느 때보다도 심각했다. 물고기 떼처럼 맹렬하게 전진하는 적선을 바라보며 일자진을 편 채 뒤로 물러나던 이순신의 함대는 울돌목의 조류가 밀물에서 썰물로 바뀌자 곧바로 전진 돌격하여 포와 불화살로 적군의 제 1진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적선과 충돌한 이순신은 격군(노 젓는 수병)과 조류의 힘을 빌어 힘껏 적선들을 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총과 포를 퍼부으며 저항했던 적 함대는 방향을 돌리지 못하고 점점 더 좁아지고 빨라지는 역류의 물길로 들어서 후미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뒤로 밀리는 적들은 깨어진 후미의 쓰레기에 부딪혀 깨지고 그 깨진 쓰레기에 또다시 앞에 있는 적선이 와서 부딪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 1진을 담당한 구루지마 미치후사는 부장 송여종에 의해 죽고, 그의 목이 대장선 돚대 꼭대기에 걸리자 적은 그야말로 혼선이 되어 명량의 회오리에 서로 부딪히고 부서지면서 달아났다. 이순신은 그의 일기에 30여척이 침몰했다고 적었지만 그것은 온전히 이순신의 배가 파괴한 적선 들 뿐이지 실제로 적군이 입은 피해규모는 그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적, 임금, 백성, 군사 할 것 없이 모든 게 그를 괴롭히고 불리하게 만든 상황에서 그의 말을 빌려 실로 천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기적적인 반전을 창출해낸, 온전한 그의 승리였다.
칼의 노래를 쓴 김훈 작가는 짧고 강렬한 문체를 구사해 마치 내가 실제로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을 심어줄 정도로 시각적인 인물 내면의 묘사가 정말로 탁월하다. 이러한 그의 솜씨는 이순신을 단순한 위인전에 나오는 위인의 모습이 아닌, 절망적인 상황 앞에 고뇌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어 독자에게 또 다른 이순신을 볼 수 있는 감동을 주고 있다. 필자는 백의종군부터 명량에서의 부분까지만 적었지만, 이 책은 그 뒤로 노량까지 독자들을 실어 나아가고 있다. 노량까지의 부분은 앞으로 읽을 독자들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고 싶다. 궁금하면 가까운 서점에서 사서 읽어 보시길.
뭘 쓰고 계셨을까, 물어보고 싶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MBC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출연해 어린 학생들에게 추천하면서 이 책이 널리 알려졌다.그가 말하길 탄핵결의로 집무정지를 당했을 때 이 책을 감명깊게 보았다고 한다. 사실 책의 내용을 보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를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던 국민, 맹렬히 공격하는 야당, 은근히 동조하는 여당, 결국 헌정사상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집무정지를 당해 무기력한 상태로 청와대 앞 책상에 앉은 그는 과연 이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시 대통령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다는 것 자체는 있을 수 없었던 일이었다(그리고 지금도 그렇긴 하다) 그랬던 사회풍조에서 일부러 김용만, 유재석과 나란히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선 그가 추천한 이 책은 결국 그의 인생에서 무엇을 차지했던 것일까. 솔직히 나는 명량을 보기 전 칼의 노래를 읽으려 했었지만 읽는 도중엔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그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만약에 명량을 볼 계획이신 분들이 있다면 꼭 먼저 칼의 노래를 읽어주시길(혹은 한번 더 읽어주시길), 이순신을 맡은 최민식의 얼굴에서 칼의 노래의 이순신이 겹쳐 보인 건, 책을 읽은 사람들 중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탄핵 받았을 때에 이 책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을 우리의 또 다른 바보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는 것도 좋은 독서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어느 관점에서 봐도 칼의 노래는 살면서 한번쯤 읽어봐야 될 책이다. 주위의 어려움과 내적 갈등을 딛고 일어나는 한 인간은 아직까지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크나큰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영웅임엔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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