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시절 내 보직은 박격포소대의 FDC라는 보직이었다.
FDC가 뭔고 하니 Fire Direction Center의 약자로서 대략 박격포의 사격 제원을 구하는 요원이라고 보면 된다.(이정도는 군시기밀 아니겠지...ㅡ,ㅡ)
부르는 이에 따라서는 계산병 혹은 포병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좀 큰 포병장비의 FDC는 최첨단 컴퓨터에 과학적인 장비로 중무장하고 있다. 게다가 힐낭이라고 하는 왼쪽 어깨에 차는 연필꽂이를 찰수 있는 특권이 있었는데 사실 요건 간부들이나 차는 물건이기때문에 모르는이가 보면 뭔가 대단한 특수요원인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상을 알고보면 주특기교육시간엔 대략 쌍안경으로 철장밖의 여자나 훔쳐보고 산과들의 식용식물에 대해 탐구하러 다니는....게다가 작업이란 작업은 전부 불려나가는 아주 잡병중의 잡병이라 할 수 있지만....
ㅡ.ㅡ
어느날이었다.
우리 소대는 실제 사격훈련을 위해 부대주변의 훈련장으로 나가게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포탄은 박격포중에서 제일 큰 박격포탄이었다..
흔히 영화에서 그려지는 박격포는 좀 작고 단순무식한 무기로 많이 나오지만 그런건 옛날에 쓰던 대인용 박격포고, 우리가 쓰던 제일 큰놈은 포탄만 어른 허벅지만한 한마디로 졸~~라 무식한 놈이었다....
직접적인 위력을 쓸순 없지만....탱크보다 화력이 세다...
음......간만에 가져보는 사격의 기회다.
군대갔다 온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총쏘는것도 정말 싫었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무슨 화기류에 웬수진일이 있는 것일까? 뭔가를 쏘는 걸 진짜 좋아했었다.
포트리스라는 게임을 아는가?
거리에 맞춰서 각도를 재고 바람의 영향을 계산하고 힘조절 잘 해서 목표물을 명중시킬때 느끼는 쾌감이란 참으로 통쾌하지 않은가.
게임만으로도 그렇게 통쾌한데 내가 쏘고 있는것은 진짜 폭탄이다.
이놈이 터지면 반경 4~5킬로미터까지 소리가 퍼지는.....관악산만한 산하나가 들썩이는 진짜 죽이는 물건이었다.
계속되는 취사장과 테니스장작업에 지쳐있던 나에게 사격훈련이란 스트레스풀러 휴가가는 기분이었다.
진지에 도착하면 고참들의 갈굼과 함께 재빨리 위장망을 치고
나는 표적의 위치를 파악하여 사격제원을 구하게 된다.
사실 다른 고참들이래봤자 내 주특기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기때문에 나는 뭔가 사격제원을 열심히 구하는척 하면서 위장망 치는 엿같은 일에서 열외될때도 많았다.
" 소대장님, 오늘은 표적지부근의 바람이 셉니다. 탄도의 명중률을 위해 사단본부에 기상데이터를 요청하여야 할 것같습니다.."
" ....."
" 소대장님. 오늘 햇볕이 뜨거운걸 보니 포신이 확장할 것 같습니다. 파스칼의 원리를 적용하여 포구내의 밀도와 온도를 감안, 장약량을 결정하여야 할것같습니다.
"....."
" 소대장님....장약의 습도가...."
" ....XX야...."
" 예 "
" ..그냥 전에 적어놓은거 써라..."
"...ㅡ,ㅡ..."
" 오늘따라 잡소리가 길구나."
"..눼....ㅡ,ㅡ"
쩝....사실은 그랬다...산에 박아놓은 표적이 어디 움직이는것도 아니고...항상 같은자리에서 쏘는데 그냥 똑같이 쏘면 된다.
하지만 난 졸라 열심히 계산하는척 했다.
안그래도 땡보직이라고 어떻게 하면 저시끼를 갈아먹을수 있을까만을 고민하는 고참들이 위장망 지지핀을 들고 있었기에..
그렇게 졸라 눈치를 봐가며 제원을 구해놓으면(사실 몇초 안걸린다) 뭔가 아는척 포탄을 꺼내서 신관도 만져보고 턱에 손을 괴고 포탄에 적혀있는 번호같은걸 유심히 적는척을 한다...
이제 가슴설레는 발사순간만이 남아있다.
나는 사격할때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 포탄이 날아가는 시간이었다.
사실 전차같은 직사포는 1초도 안돼서 포탄이 날아가꽂히지만 우리같은 곡사화기는 하늘에 대고 쏘기 떄문에 포탄이 날아가는 시간만도 약 20여초가 걸린다.
그 20여초동안은 정말 짜릿한 순간이 아닐수 없다.
맞을까...비껴날까...장약을 너무 많이 넣었나?
바람이 부나? 비껴나가면 어떻하지?
정말 포트리스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그 짜릿한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었다.
솔직히 포탄이 표적에 맞을 가능성은 졸라 적다.
덕분에 우리 소대 별명이 똥포소대이긴 했지만....그래도 다자란 새끼새를 떠나보내는 어미새의 마음처럼...나는 그렇게 포탄을 날리곤 했다.
그런데 날아가는 포탄이 눈에 보인다는 사실을 아는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바라보면 전차포탄같은것도 눈에 보인다.
하물며 하늘에 대고 쏘는 우리 똥포였으니 포탄을 바라보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드디어 사격 준비가 끝나고..
자 이제 쏠일만 남았다..
내 지시만 기다리고 있는 우리 포수들..
나의 " 쏴"라는 말 한마디에 그는 포문을 열것이다.
이번엔 정말 잘 맞을거야....잔뜩 기대감에 부푼 나.
나는 힘껏 소리쳤다. " 똬~!!"
" 펑!!!" 고막을 찢는 폭발음이 들리고 나는 습관대로 날아가는 포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한껏 기대감에 찬 미소를 띄던 내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져버렸다.
..헉...!!씨바 좆됐다....
하늘을 향해 날아가던 내 새끼새가 날아가던곳은 때마침 사격장위를 지나가던 보잉747....
어리버리 고참들 눈치만 보다가 하늘한번 안쳐다보고 사격명령을 내려버린 것이었다.
그랬다..우리부대가 경기도권이라 국내선같은경우는 김포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아주 낮은 고도로 사격장위를 지나다니곤 했던 것이다.
이것이 원래 비행기 시간표에 맞춰서 사단의 통제를 받아 사격훈련의 스케쥴을 짜도록 되어있다지만..
내 군생활2년여동안 그딴건 구경도 못해봤다.
그 짧은 순간에 만감이 교차하더라.....
인생 종쳤구나....
뒤통수를 한대 후려 쳐 맞듯 멍해져 있는데,
천~~만 다행히도 포탄이 비껴나가드라.
포탄이 비껴나간뒤에도 나는 놀란가슴을 진정시킬수가 없었다.
씨바....저게 맞았으면....난 세계최초로 박격포로 비행기를 잡는 최고의 FDC가 되어서 내일아참 국방일보에도 대문짝만하게 실릴것이고 잘하면 월드뉴스를 타고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될것이 아닌가....북한에서는 나를 스카웃하기 위해 비밀요원을 내려보낼거고...
별 잡생각이 다 들었다.
다행히 소대장님과 고참들은 포탄을 못본모양이었다.
그냥 표적지에 떨어져 터지는 포탄을 바라보며 " 씨바....똥포가 어디 가겠어.." 하는 표정들을 지을 뿐이었다.
나는 끝까지 이 사실을 숨긴채 전역을 했다.
만일 그게 맞았다면 지금쯤 어찌 됐을꼬...
오유 들어왔다가 군대관련 얘기를 몇개 읽고 생각이 나서 적어봤습니다.
혹시라도 이런이야기 좋아하시는 분 있으면 2탄 올립니다..
휴.....그날 그 비행기에 탔던 분들 정말 죄송합니다....ㅠ,ㅜ.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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