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에게 처음 편지를 씁니다. 사사로운 이 편지를 신형 개인에게만 전달하지 않고 언론매체에 공개하는 것을 너그럽게 봐 주시기 바랍니다. 60대 중반 세월을 살고 있는 신형과 나, 우리 또래의 많은 이들이 함께 읽고 생각해볼 내용이기에 이 방식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11일 저녁 또 한 번 동창 친목회 모임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매월 11일 저녁에 모임을 갖는 초등학교 동기들의 친목모임인 '신우회'에 대해 나는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족들 외에는 최초의 인연지기들인 초등학교 동창들과 매월 한 번씩 만나는 일은 참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어느덧 황혼기에 접어든 이 시절에도 서로 변치 않고 우정을 나누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게는 다수의 친구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고독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남다른 고독감이 덧나지 않도록 내 나름대로 조심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정치와 관련하는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똑같은 세월을 함께 살아온 사이들이지만, 나와 친구들 사이에는 매우 이질적인 간극이 있습니다. 생각이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는데서 오는 고독감을 동창들 모임에서도 확인하거나 덧내지 않으려고, 나는 혼자 슬픔을 삭이곤 하는 것입니다.
박통이 민생고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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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1월 30일 오후 부산 중구 피프광장에서 유세를 펼치자, 한 지지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씨의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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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모임을 마친 후 신형을 포함한 친구 3명을 내 차로 태안 근흥면 두야리에 태워다 드렸지요. 매월 모임 날마다 내 차로 친구들을 8Km 지점에 태워다 드리는 것을 나는 늘 기쁜 일로 여깁니다. 건강문제 때문에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런 일을 하면서 도리어 위안을 얻곤 합니다. 그날 저녁 두야리를 가는 내 차 안에서 신형과 나누었던 얘기들이 내 뇌리에 통증처럼 매달려 있습니다. 친구들이 내 근황을 물어 최근 출범한 '정권교체와 새 정치를 위한 국민연대'에 참여하여 충남과 서산·태안 공동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는 내 실토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습니다. 저속으로 달렸지만 겨우 8Km를 가는 차 안에서 서로 충분한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나보다는 신형이 더 많은 얘기를 했고 나는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내가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신형, 나는 박정희 종신대통령을 숭배하는 당신의 심정을 일정 부분 이해합니다. "박통이 민생고를 해결했다"는 당신의 신념을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박통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었다는 신형의 주장은 박통이 아니었으면 우리 경제가 이만큼 발전할 수 없었으리라는 단정을 담고 있어서 선뜻 동의하기 힘듭니다. 우리 민족의 가능성과 잠재 능력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패배적이고 자기모멸적인 생각이 아니겠는지요. 그것 역시 저 일제시대 식민지교육으로부터 발현한 노예근성의 한 가지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 말일까요?신형이나 나나 소년 시절에 1950년대와 60년대의 가난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들입니다. 학교에서 밀가루 배급과 우유 배급도 받아보았고, 리(里)사무소에 가서 '안남미'를 배급받아다 먹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와야 했고, 농사짓는 집 아이들은 매일같이 어른들을 도와 밭을 매기도 하고, 소꼴을 베어오기도 했지요. 배고프고 고달프던 시절을 어린나이에 겪었던 우리들로서는 오늘의 풍족한(?) 생활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이 오로지 박통의 공일 수만은 없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농민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또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명분을 앞세운 독재 권력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철저히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인권탄압을 자행했던 박정희의 독재 권력에 대해 내가 한마디 하려하자 당신은 내 말을 막으며 그것은 불기피한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5천만을 살리기 위해 어느 정도를 희생시켰다는 말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라는 해괴한 논법이었습니다. 옛날에 어떤 책에서 읽었다는 말도 했지요. 어떤 인간이 그런 괴상한 말을 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만, 일단 그 말이 사실이라고 치고 말을 한번 해봅시다. 5천만을 살리기 위해 몇 만 정도를 희생시켜도 된다면, 정말 그것이 통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박정희만큼의 공을 세우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몇 만을 희생시켜도 괜찮다면, 나도 박정희만큼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천만을 살리기 위해 몇 만 정도를 희생시키는 지도자가 진정한 지도자일까요? 신형은 그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듯했습니다. 박정희가 5천만을 살리기 위해 몇 만 정도를 희생시켰다고 하면서도 그 '몇 만'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만약 그 속에 당신이나 당신 가족이 속했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는지요. 그들은 바로 내 이웃들입니다. 나나 당신이나 언제든지 그 속에 속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말들 끝에 당신은 요즘의 젊은 세대들에 대해 깊은 불신을 드러내었습니다. 부모 세대들의 가난 고생을 겪지 않고 전혀 모르기에 요즘 젊은 세대들이 박통을 비판하며, 박통을 옹호하는 아버지 세대들을 무시한다는 얘기였지요. 젊은 세대들을 너무 무시하는 조악한 편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박정희의 독재 권력을 비판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얘기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들의 젊은 시절과는 전혀 다른 통찰력과 분별력을 그들이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고생하며 자식들을 잘 가르친 덕입니다. 박정희를 옹호하며 '박정희 향수'에 집착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과거지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과거지향적인 관습 속에서 살아가는 신형과는 달리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또 미래는 젊은 세대들의 몫입니다. '노털'들의 과거지향적인 관습, 젊은 세대들에게 방해 |
▲ 제18대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 첫날인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청 지하1층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된 가운데, 대부분 20~30대인 젊은 유권자들이 구청 정문밖에까지 길게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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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게 과거지향적인 관습 속에서 살아가는 '노털'들을 젊은 세대들이 연민의 눈으로 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수많은 아버지 세대들이 고생고생하며 자식들을 가르치고 보다 나은 경제 조건 속에서 살게 해주었으면서도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과거지향적인 관습 때문입니다.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이루고 민생고를 해결했으니 그 딸에게 표를 주어야 한다는 노인네들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생각에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기가 막혀 하는지 아십니까? 노인네들과 우리 같은 '노털'들의 그런 분별없는 과거지향적인 관습이 젊은 세대들의 미래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얼마나 알게 모르게 방해하는지 아십니까?인생 연륜과 잘 어울릴 수 있는 넓은 도량과 깊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생각의 힘'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안으로라도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식 세대들에게서 존중받고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의 미래 지향을 방해하고 절망감을 안겨주어서는 안 됩니다. 신형, 여기까지 쓰고 보니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이 글을 신형이 보게 되면 어떤 심정을 갖게 될지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신형이 이 글을 읽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좀 더 열린 생각, 깨인 마음으로 제대로 토론 한 번 해봤으면 합니다.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우리들이 젊은 세대들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생각으로 하는 말입니다.만일 이번 대선에서 과거지향 세력이 승리하게 되면 너무 기뻐하거나 자만하지 마십시오. 부끄러운 역사로 남게 되리라는 생각도 해보시기 바랍니다. 또 미래지향 세력이 승리하게 되면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역사의 수레바퀴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새로운 눈으로 인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선거 결과가 어찌 되건 2013년 1월 11일, 새해 첫 모임 자리에서 이 글을 모든 친구들 앞에서 낭독할 생각임을 밝히며 이만 줄입니다.
출처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