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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분량인데요. 사실 장편은 처음 써보는 완전 글쓰기 초보입니다.
주변 친구나 동생들에게는 객관적인 평을 들을 수가 없어서요,
한번 읽어보시고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미흡한 점이 있다면, 거슬리시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제 글의 발전에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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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처음 시작은 뭐 그러려니 했다.
모니터 속의 "최종 불합격하셨습니다."란 짤막한 문구를 보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다.
적어도 청년백수 공무원 장수생 윤시훈에게는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불합격의 그 허탈함만큼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수년간의 실패 끝에 적어도 그 결과 자체를 수용할 정도로는 멘탈이 단련된 것이다. 아니, 어찌 보면 실패의 만성화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 진짜. 또 떨어졌냐...' 2차 면접에서 떨어졌으니 이젠 더 댈 핑계도 할 말도 없었다.
사실 면접도 필기성적순으로 끊는 것이니, 이래나 저래나 시험 못 친 본인 탓이었다.
"에라이~"
윤시훈은 방바닥으로 데구르르 구르며 몸을 뉘였다. 예전처럼 열 받거나 우울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생각이 많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제 나이가 서른도 넘었는데,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서 뭔가를 하나하나 이루어가야 할 때인데, 이젠 정말 빨리 취업을 준비해야 했다. 더 이상 시험 준비를 계속할 기력도 현실적인 능력도 없었다. 현실이 코앞에 있었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얼마 안 되는 유산도 이제 다 떨어졌고, 잠깐 잠깐 하는 알바만으로는 더 이상 생활을 지탱할 수 없었다. 게다가 건강도 많이 나빠진 상태였다. 눈가가 떨리고 없던 알러지가 생기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은 아니었다. 그나마 술 담배를 안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진즉 단명했을 거란 뜬금없는 생각마저 잠깐 스쳐지나갔다.
아무튼 자꾸 실패에 길들여지는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뭔가 변화는 필요한데, 그동안 시험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떠올라 시훈의 마음은 이래저래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띵띵띵! 조용하고 어두컴컴하던 방 안에 한줄기 밝은 빛이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잠깐 번뜩이다 사라졌다.
문자였다. 휴대폰 화면에 여자 친구 다영이의 이름이 보이는 순간, 윤시훈은 방바닥에서 벌떡 튕기듯 일어나 바로 앉았다. 시험이 끝난 후인데도, 올해는 정말 자주 만나지 못했다. 직장인인 다영이는 항상 바빴고, 시훈 역시 알바에 면접 준비로 바빴다. 그렇게 한동안 연락도 뜸하고 자주 만나지도 못해서 걱정했는데 시험 결과 날이라고 이렇게 문자를 보내주는구나.
"그래도 여자 친구 하나는 잘 만났지. 내 생각해주는 사람은 너 밖에 없어."
히죽 히죽 웃으며 바보같이 혼잣말을 하던 시훈은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휴대폰을 덜컥 내려놓았다.
'오빠, 이제 그만 헤어지자. 그 동안 오래 생각해봤는데 더 이상 우리 미래가 그려지지가 않아. 시험 합격하고 항상 좋은 일만 있길 바랄게. 답장이나 전화는 하지 말아줘. 고마웠어. 안녕.'
5년간의 연애가 무색할 만큼, 정말이지 단칼에 사랑을 끊어낸 그 차가운 이별통보 앞에 시훈은 정말 문자나 전화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좁아터진 고시원 방구석 안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시훈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멍청하게 끝낼 순 없어. 붙잡아보자. 남자답게 말하고 남자답게 돌아서자.'
누가 봐도 멍청한 짓거리였지만, 시훈은 주섬주섬 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나마 가장 깔끔하고 단정한 새 옷이 2년 전에 산 남방이었다.
'이거 다영이가 선물해준 옷이었지.'
그 때 화사하게 자신을 보며 웃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렇게 그냥 놓아버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시훈은 다영이가 근무하는 회사 앞 카페에 앉아서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 아직 세시였지만 괜찮다. 좀 기다리면 될 일이다. 연락은 하지 않았다. 미리 전화하고 기다리려니 아예 자신을 피해버릴 것 같았고, 밖에서 쭉 기다리다가 조용히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는 심산이었다.
카페는 여전했다. 틈이 나면 그녀와 만나서 웃고 떠들던, 사랑을 속삭이던 곳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날들이 이어지길. 그는 간절히 소망했다.
앉아서 이래저래 취업 정보와 시험 정보를 살피며 기다리다보니 벌써 여섯시가 되어 있었다. 이제 보니 카페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혼자 앉은 테이블은 자기 혼자 뿐 이었다. 괜히 민망해진 시훈은 종업원에게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새로 주문하고 돌아왔다. 벨을 들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는데, 다영이가 회사 건물 입구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당장 나가야겠다 싶어 노트북을 챙기고 가방을 싸는데, 뭔가 이상한 광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다영이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떤 젊은 남자와 팔짱을 끼고 즐겁게 웃으며 카페를 향해 오고 있었다.
시훈이는 찌질 하고 미련이 많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등신은 아니었다. 고교시절 이모네 집, 대학시절 동아리 실, 군대시절 내무반에서 단련된 눈칫밥 덕분에 기본적인 눈치는 탑재하고 있었다. 잠깐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했을 뿐. 저건 누가 봐도 이미 게임 끝이었다. 다영이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남자만 봐도 이미 견적이 나왔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훤칠한 저 남자와 2년 전에 여자 친구가 사준 낡은 옷을 입고 표정마저 추레하게 절어 있는 자신.
"씨발 내가 여자라도 갈아타지..." 시훈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욕이 나왔다. 어느새 구여친 커플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시훈은 그의 인생 통틀어 가장 현명한 판단을 했다.
'연락 안하고 오길 잘했다. 빨리 도망가자.'
그 순간 테이블 위의 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아메리카노가 대수냐 왜 하필 지금이냐 하는 생각도 잠시 뿐이었다. 무시하면 그만 아닌가. 다시는 올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조심스럽게 기둥을 끼고 돌아 구여친 커플이 다른 자리에 착석하는 것을 확인한 시훈은 재빠르게 까페문을 열고 나서려고 했다.
그 순간 맞은편의 다른 누군가가 들어오며 갑작스레 문을 밀어버렸고 시훈의 오른 손 중지와 검지가 유리문에 끼여 버렸다. 우드득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그 다음부터는 시훈에게 너무 잔인한 시간들이었다.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어찌나 길었는지. 맞은편에 들어온 커플도 놀라 비명을 질렀고,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이 시선을 집중했고 시훈은 아픔도 잊고 주위를 살피며 자리를 피하려고 애썼고, 그러다 다영과 눈이 마주쳤고.
헐레벌떡 정신없이 길을 걷다 정신을 차려보니 외진 공원이었고 어긋나고 뒤틀린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훈은 고통에 덜덜 떨리는 왼손으로 폰을 꺼내 119에 스스로 전화를 했다. 야간진료 중인 정형외과에서 손가락 깁스를 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병원비를 계산하고 나니 이젠 정말 잔고도 텅텅 비게 생겼다. 그는 정말이지 오늘 하루가 너무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유별난 하루가 아닌가. 간만에 친구들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동안 시험 준비로 이래저래 만나지도 못하고 연락도 못한지 오래였다. 그 와중에 힘든 일 있다고 전화하려니 차마 염치가 없었다.
"아. 인생 참."
그 와중에 결국 다영이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에 괜찮냐는 그런 내용의 문자일지라도, 정말 쪽 팔렸을 거라고 시훈은 생각했다.
터벅터벅 걷다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시원하게 달렸다. 운전기사 아저씨의 운전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좁은 도로의 틈바구니를 거침없이 헤집으며 도로를 누볐다. 그 쾌속 무비함에 괜히 자기가 직접 운전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덕분에 시훈은 아까까지의 울적함도 잊고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방황하는 자신과는
달리 명멸하는 저 도시의 밤, 그 불빛이 너무나도 화려했다.
'이제 돌아가면 당장 고시원 비부터 걱정해야 되는데. 일자리부터 구해야 되고, 결국 공무원은 이제 포기하는 건가.'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한동안 이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던 시훈은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버스가 너무 빠르다.
'왜 내리막 커브 길에서 속력을 안 줄이지?'
운전기사를 바라봤더니 엄청나게 허둥지둥 브레이크를 밟고 경적을 울리고 난리를 부리고 있었다. 버스 안에 탄 다른 승객들이 그때서야 눈 안에 들어왔다. 엄마와 꼬마아이, 할머니 몇 분, 그리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 여럿. 모두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실감하지 못한 멍청한 표정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어어어 하는 소리들과 함께 내리막길을 다 내려온 그 순간, 버스는 속력을 이기지 못하고 커브를 돌다 균형을 잃었다. 완전히 도로를 벗어나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충격이 시훈을 덮쳤다. 뭔가를 꽉 잡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강한 바람에 힘없이 나풀거리는 갈대같이 시훈의 몸은 이미 그의 의지를 벗어나 있었다. 버스가 구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이제 죽는구나.' 그 찰나의 순간, 시훈은 생각했다. 누군가는 과거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 했었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그냥 시간이 쭉 길어진 느낌이 들었고 마냥 억울했다. 이렇게 재수 없이 하루를 보내고 이렇게 재수 없게 그냥 죽는다고? 어떻게 평생이 이 지랄이지? 참고 또 참고 삼키고 또 삼키던 울분이 그의 그 소중한, 곧 마지막이 될 시간들을 뒤덮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그에게 속삭였다.
"그럼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속삭임은 천둥같이 시훈의 귀를 파고들었다. 짜증이 났다. 이건 무슨 개소리야. 이제 죽을 마당에 장난하나. 그는 머리끝까지 치민 화를 담아 고함을 질렀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씨발 개 엿 같은 공무원 한번만 해보고 죽고 싶다!"
그러자 대답이 들려왔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대, 계속 살아라. 내가 원할 때까지."
쿵쾅거리는 소리와, 온몸을 찢을 듯 고통이 그를 삼켰다.
그리고 이윽고 모든 것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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