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와달라고요?"
역시 그는 깜짝 놀랬다. 하긴, 방금 인사했으니까.
그래도 난 절실했다. 남은 것은 수능 뿐이다. 수능까지 망칠 수는 없다. 특차라도 꼭 붙어야 한다.
(주 - 옛날에는 대학입시에 특차라는 제도가 있었다. 수능 100%로 선발함)
매번 내신을 '망칠 수밖에 없어서' 내신이 대입 점수에 들어가는 순간 난 대학 못 간다.
꼭, 수능만큼은 제발 잘 봐야 한다. 정말이다. 너무 간절하다.
그래서 난 이 악몽같은 가위 - 매일 밤 나를 찾아오는 내 친구였던, 지금은 내 밤을 괴롭히는 그 년 - 에서
하루라도 자유로워야 했다. 깊이, 푹 자야 했다. 하루도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시험을 잘 볼 수도,
공부를 잘 할 수도 없었다. 밤새 시달리고 나면 아침은 그냥 유체이탈이었고, 그나마 해 떠 있을 때
틈틈히 자서 저녁에 공부를 반짝 하는 것으로 버텼다.
그러니 한 방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 전 날 밤에는 반드시 푹 자야 한다.
그래야 맑은 정신으로 수능을 볼 수 있다. 그래야 합격한다.
정신 맑을 때 공부하는 것이 나의 전부인데, 그러다보면 당연히
정신이 드는 저녁시간에 1:1로 하는 과외 때 바짝 따라붙어야 한다. 다행히 너무 좋은 과외샘이
날 그 시간에 잘 가르쳐주셔서 그나마 내가 수능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성적은 안 올라갈지라도 실력은 올려주신 선생님을 믿는 마음으로 매일 밤 눌리는 가위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게 되었고, 선생님은 자기 동기중에 그 방면에 제대로인 오빠가 있다며
나에게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정말로 선생님은 다음 과외 시간에 그 오빠를 데려왔고,
나는 오빠(선생님이 동기라고 안 했으면 절대 오빠라고 안 불렀을 아저씨급 ㅠ.ㅠ
흙흙 내 방에 처음 들이는 남자가 이런 놈이라니, 죽은 년을 또 죽일 수도 없고 아놔)랑
인사하자마자 바로 본론을 꺼내들었다.
"수능 전 날 밤에 저 자는 것 좀 지켜주세요!"
"집으로 와달라고요?"
...난 그만큼 절실했단 말이다.
어쨌든 그 오빠는 자초지종을 듣더니, 꽤 신중하게도 엄마아빠까지 다 오셔서 허락을 받은 후에야
오겠다고 했다. 솔직히 수능 며칠 전에 한 번 불러서 진짜 영능력자인지 경험하고 싶었지만,
외간 남자 두 번 들이는 것까지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딱 한 번을 과외샘을 믿고
해 보기로 했다. 아, 그러고보니 대가가 특이했다. 그 오빠는 나의 하룻밤을 지키는 대신
매우 풍성한 간식을 주문했다. 그렇게 많이 먹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는데.
그 후로도 매일 밤 그 년에게 시달렸고,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꾿꾿하게 공부하여
드디어 수능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난 그래도 방에 외간 남자를 들이는 것이라
나름대로 씻고 챙겨 입고 화장까지 하려다가 엄마한테 얻어맞고 방에서 기다렸다.
그 오빠는 10시에 도착해서, 얼른 자라고 했다. 난 그 오빠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말로 가위에 눌리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누군가가 날 세차게 흔들어 깨워서 짜증을 있는대로 내며 일어났더니,
새벽 2시였다. 방에는 날 세차게 흔들어 깨운 엄마와, 걱정스럽게 날 보던 아빠,
그리고 그 눈빛이 날카로운 오빠와 어디선가 등장해서 준비해 둔 간식을 줄창 해치우고 있는
돼지같은 남자가 있었다.
"야, 너 정말!!"
엄마는 그렇게 말하시더니, 갑자기 엉엉 우셨다. 그 오빠와 돼지는 아빠에게 뭐라 하더니, 집에 갔다.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는 왠지 나를 절대로 안 재우려는 엄마아빠 때문에
그 이후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래도 정말 간만에 푹 잔 덕분인지 수능은 그럭저럭 칠 수 있었고
우연히 10개 찍은 것이 다 맞는 바람에 난 생각하던 대학에서 생각보다 좋은 과에 특차로 붙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수능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비인후과로 끌려가서 수면 무호흡증 치료를 받았다.
수면 중에 사망할 수 있을 만큼의 중증이라며, 어떻게 아직도 자다가 안 죽었냐며
의사는 나에게 비결을 캐물었고...
빡센 치료 덕분에 심각한 수준의 수면 무호흡증은 다행히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고,
내 친구, 중학교 때 같이 놀러갔다가 나 대신 차에 치여 죽었던 내 친구는
수능 이후 날 찾아오지 않았다.
그 오빠, 영험한 것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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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써 본 소설형 글이라 정말 개판. ㅋㅋㅋ
실력 부족이라 보충설명이 좀 들어가야겠다.
난 이 시점에 이미 사이비 퇴마행을 좀 해본지라, 귀신이 이유없이 누군가에게 붙는 것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수능보는 고3이 그렇게 누군가에게 원한을 샀을 것 같지는 않아서
(지금처럼 고등학생들이 험악하던 시절이 아님) 뭔가 이상해서 곰돌선생을 초빙할 생각을 했고,
곰돌선생을 풍성한 간식으로 꼬신 후, 혹시 주변에 본체가 없나 수색을 부탁했었다.
그런데 영체는 의외로 그 집 장식장에 있었고, 그것은 - 학생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
자기 딸을 끔찍하게 챙겨주던, 중학교 때 딸을 보호해주다가 죽기까지 했던 학생의 친구가
딸에게 준 곰돌이 인형이라고 했다. 그 인형은 방에서 쫓겨나 거실 장식장에 처박혀 있었는데,
곰돌선생이 그 인형을 발견함과 동시에,
내가 어둠 속에서 고요히 지켜보던 학생이 숨을 쉬지 않기 시작했다.
난 시급하게 방 밖으로 뛰쳐나왔고, 곰돌선생과 부모님 둘은 서로 인형에 대해 이야기하다
방으로 달려 들어와 학생을 억지로 깨웠고, 그 이하는 위에서 나온 바와 같다.
곰돌선생과 나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그 학생을 너무 좋아한 그 친구가 죽어서까지 그 학생을 돌봐주다가
그 학생이 학업 스트레스때문에 심각한 수면 무호흡증에 걸리자
살려주려고 매일 밤 찾아왔던 것이라고...
사이비 퇴마사, 여고생의 방에 쳐들어가다 편 끝.
다음 이야기는 여탕에 쳐들어간 이야기를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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