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산점
난 군대에 갔다왔다. 나름 힘들다면 힘든 근무지에서 별로 '꿀빨지' 못하는 보직으로 복무하고 왔다.
근데 난 군 가산점에 반대한다. 왜냐구?
60만 장병, 어림잡아 한해 평균 30만명은 제대해서 사회로 다시 복귀할 텐데 과연 그 중에서
공무원, 대기업 등 군가산점 적용되는 곳을 지원하거나 응시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소수다.
그럼 가산점 따위랑 상관없이 진로를 선택할 전역자들은?
여기서 차별이 발생한다. 현역전역자와 비현역의 차별보다 더 막대한 차별인
전역자들간의 차별이다.
똑같이 고통속에서 힘들게 복무하고도 누군가에게는 아주 쓸모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타볼일도, 타고싶은 생각도 없는 우주왕복선 티켓 30%할인권 마냥 쓸모없는 휴지조각.
뒤집어 말하면 원래 해줘야 될 보상은 '가산점' 따위가 아니라 전역자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갈 수 있는 '재화'여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전역자들 사이에서의 차별은 없다.
만고불변의 진리.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일을 시켰으면 돈을 줘야 된다. 헌데 남북분단과 휴전의 특수상황으로 수십만 병력을 유지해야 하지만 국가예산상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고등학생 한달 용돈 만도 못한 돈을 월급이랍시고 준다. 군대를 갔다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군대에가면 사회에 있을때 못지않게 들어가는 신변비용이 월급으로는 도저히 충당되지 않아 집에 손벌리는 일이 빈번하다. 일해주고 돈까지 퍼주는 셈이다.
원래 줘야 할 것을 안준지 너무 오래되서인가. 비정상도 계속되면 정상이 되버리기 마련이다. 오래전부터 그래왔으니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군대간 남자들은 자신들 불만의 원인이 어떤 보상을 받지 못해서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드문것 같다. 그저 군대에서 받은 상처와 고통들만 기억에 남고 그로인한 불만들이 그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채 하소연으로 분출된다.
정작 책임소재가 있는 것은 위정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불만의 화살이 자신들을 향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언제 터질지 모를 그 거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생각해 낸 게 군가산점이 아닐까 한다. 군가산점이 생기면서 그동안 병역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온 여성들 입장에서는 사회에서의 경쟁력에 가시적인 약점이 생겼고, 갑작스럽고 쌩뚱맞은 피해에 당황한 여자들은 열렬히 반대하게 된다. 위정자들이 의도한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지배질서계급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구도다. 전역자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수준을 넘어서서, 갈등과 대립구도가 '전역자와 국가'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으로 전환되면서 남성들의 불만이 국가를 향하는게 아니라 여성들을 향하게 되기 떄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성대결로 문제가 비화될 경우 문제의 본질은 잊혀져가게 되있다. 본래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는 남자와 여자들의 피튀기는 상호비하전쟁을 한발짝 물러나 관망하면 그만이다.
남녀상호비방, 남녀 어느쪽이 더 피보고 사는가, 누가누가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가를 겨루는 이 희한한 마조히즘의 경합에서 남는 건 이성에 대한 혐오와 선입견이다. 그리고 어느샌가 무엇때문에 이 설전이 벌어졌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치고 괴로운 마음만 남아 남녀불문 자신들의 삶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드는 근본적 원인에 대해 고민해볼 생각조차 들지 않을 것이다.
군가산점에 대해서 남자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여성이 아니다. 여성 역시 남성을 상대로 임신드립, 당연한 복무드립 칠 이유가 없다. 군가산점을 내세우는 정부에게 남성들이 해줄 말.
"동작그만, 우리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남성들이 빙다리 핫바지가 아닌 이상,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해야한다.
국가가 제대로 된 보상을 못해줄 망정, 꼼수로 불만을 무마시키거나
갈등의 화살을 애먼곳으로 돌려 정작 자신들의 책임에서 발빼는 것에 넘어가서는 안될 것이다.
간혹 "돈으로 보상못해주는건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으니, 가산점같은 걸로라도 보상받아야 하는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순진한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조삼모사에 놀아나다보면 정작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관성에 젖어 못받게 되는 상황이 된다. 적어도 우리세대에서 제대로 못받았다면 다음세대, 그 다음세대에서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게끔, 국가가 제대로 된 보상을 못해주는 것에 대해 군가산점과 같은 꼼수조차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군 전역자들의 불만을 한몸에 받아 국민들의 '눈치'를 보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내버려뒀던 눈먼돈들을 끌어오든, 제대로 된 재산세를 매기든 그동안 제멋대로였던 사회분배체계를 바로세워서라도 사병들에게 최저임금 주는 날을 하루 빨리 앞당기려고 할 것이다.'사탕발림의 실체없는 보상'때문에 열올려가며 여성들과 힘겨루기를 할바에는 이게 더 발전적이고 희망적이다.
페미니스트?
앞서 글에서 살펴본것처럼, 남녀 성대결. 참 답 없다. 그리고 남는 거 없다.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 욕많이 먹던데, 난 뭐 그런 욕들은 크게 신경쓰고 싶지 않고. 다만 운동이라는건 사회권력이나 생산의 배분에 있어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것, 고로 정치와 이꼬르 라는 거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설명해 놓은 이 상황에서 당신들이 각을 세워 대립하는 대상이 남성들일 경우 결국 이득 보는 건 이 사회의 지배질서, 혹은 지배계급이다. 물론 동어반복으로 어느날 갑자기 썡뚱맞게 군가산점으로 피해를 보게 된 '역차별'에 대한 분노. 이해할 만 하다. 헌데 그렇다고 가산점 받아가는게 '군 사병전역자=남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들과 각을 세운다면 당신들의 여성주의'운동'은 굉장히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한 운동이 된다.
적어도 내가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운동이라는 건 자신들에게 끼칠 피해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만 외친다고 목적을 달성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장의 요구사항을 그렇게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오히려 나아가고자 하는 운동의 방향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경우가 많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불러일으키는 군가산점에 반대한다."는 정치,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과는 거리가 먼 절대다수의 남성 전역자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적으로 돌려서라도 분명히 해야할 입장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 상황에서는 적어도 아니다.
오히려 "가산점 따위로 현혹하지 말고 남성 사병 복무자들의 노동에 대해 최저임금 보장 등의 정당한 보상과 대가를 지불하라."라고 한다면 이 땅의 2천만 남성들은 당신들 편이 된다. 동시에 소모적인 남녀 상호비방으로 흘러가는 논의의 향방도 바로잡을 수 있다. 여성주의운동의 큰 노선에서도 벗어나질 않는다. 군대자체에 반대한다 해서 강제징병으로 인해 억지로 끌려간 남성들에게 확실한 노동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에는 이견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군가산점에도 반대할 수 있는 논지가 마련된다.
이런 전략과 구상이 고려되지 않은 채 무작정 군가산점제가 여성들에게 끼칠 피해만을 생각하고 '여성차별'만을 이유로 반대의 기치를 드는 것은 남성들의 인식속에서 결국 여성주의운동은 피해의식과 히스테릭의 유치하고 감정적인 운동일 뿐이라는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뿐이다.
EBS 장 모 강사.
군대비하발언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장 모 강사.
처음 문제의 동영상을 봤을 때 강사에 대해 드는 생각은 "저 사람 유치하기 짝없네." 였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별로 변함이 없다.
난 결코 그 강사가 평소 평화주의에 대한 심도깊은 고민과 나름의 사상적 노선, 이념을 갖추고 그런
말을 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단언컨데 군대폐지주의 등의 철학적 입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표준형언어와 비표준형언어를 설명하는 언어영역강좌시간에 갑작스럽게 군대와 살인기술을 끌어들일리는 만무다.
그 강사는 군대를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단지 '남자'를 '까고' 싶을 뿐이다.
남자는 비표준형 언어를 사용한다. 군대가 살인기술을 가르치는 곳이다. 살인기술 배워와놓고 좋아라 한다. 살인기술 배워온 주제에 자꾸 뭐달라며 징징거린다.
이 주옥같은(주옥을 10번 반복해서 빠르게 읽으세요) 문장들은 어느 곳에도 서로 논리적 연관성이나 일반성을 갖지 않는다.
남성이 비표준형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군대가 살인기술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얘기가 서로 연관지어져서 나올 이유도 없으며, 원해서 가게 된 군대가 아님에도 '좋아라한다'며 근거없이 일반화해서도 안된다.
아마도 마지막 문장인 '뭐해달라며 징징거린다'를 말하기 위해 연관성없는 얘기들을 끌어온 듯 한데,
이는 군가산점으로 대표되는 보상문제에 대해서 얘기한 듯 싶다.
이 문장들은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다.
"여자들은 운전을 못한다. 운전하지 말고 집에서 밥이나 하고 애나 볼 것이지. 집안일이나 하는 주제에 무슨 벼슬이라도 하는 줄 알고 남자들한테 이것저것 요구사항은 많아."
논리적 개연성이 전혀 없지만 결국 상대성별을 비하하기 위해 이것저것 끌어온 문장들의 결합이지만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성들의 여성비하 레퍼토리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가하는 이 유치한 언어 폭력이 오늘날 나름 사회적 지식인계층이라 불리는 여성의 입에서 똑같이 되풀이 된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여성이 그런방식으로 억눌려온 만큼 똑같이 되갚아준다는 보복의식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됐든 간에 그런 피해의식과 보복의식으로부터 출발해서 똑같이 되풀이 하는 것. 결국 성별로 편을 가르고 이성의 속성을 제멋대로 규정하여 깎아내리고 비하하면서 상대적 우월의식에 도취되기 위한 유치한 감정의 발로다. 짧은치마 입고 다니는 젊은 여자들을 바라보며 "저러고 다니니 성폭행을 당하지."라고 얘기하는 중년남성 택시기사와 다를바 없는 것이다.
한국의 여성주의운동이 결국 이처럼 피해의식과 보복심리에 사로잡혀 유치한 감정의 수준을 넘지못해 남녀대결구도로 끌고 가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지 않았으면 한다. 만약 그런 유치한 감정에서 비롯한 언행들을 이지적이고 논리적인 태도라 착각한다면 군가산점 따위는 살인기술배워오고 좋아라하는 남자들의 땡깡정도로 조소하고 이사회의 모든 남녀이해관계 문제를 소모적인 남녀상호비하로만 끌고갈 뿐, 앞서 예로들었던 것과 같은 정치적 전략을 펼 수 없어 여성주의운동 입장에 어떠한 이득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