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저는 가정폭력으로 인해 임신 중기에 접어들 즈음 경찰의 도움으로 도망나왔고 혼인신고는 미루던 중이었기에 미혼모 시설에 들어갈수 있었어요.
제가 들어가게 된 미혼모 시설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조그만 곳이었어요. 그래서 원장수녀님, 행정을 맡으신 행정수녀님, 미혼모들의 생활을 담당하는 간호수녀님이 계시고 또 50대쯤의 일반인 아주머니 한 분(선생님이라 부름)이 계셨어요.
첫인상은 다들 친절하고 온화한 인상에 귀여운 분도 계시고 그랬죠. 같이 생활하게 된 다른 미혼모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린 청소년이나 20대 초반 정도였기에 저는 그 중에선 나이가 좀 있는 편에 속했습니다. 처음 한 일주일은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지나갔어요. 아 정말 이런곳에 머물수 있다니 다행이다 싶었죠. 그런데 점점 멘붕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같이 생활하는 미혼모들 중에는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스스로 제어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 매일 부대껴야 하는 입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그건 수녀님들과 생활 선생님에게 받은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본인들이 하라는것에 무조건 '네'로 복종하지 않고 혹여나 다른 말이라도 한다면 그것이 어떤 말이건 굉장히 모욕인것 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예요.
그렇다고 임신부와 갓난아기를 '보호'하는 일을 하는 분들이라기엔 너무 상식이 없었어요. 태어난지 겨우 한달된 목도 못가누는 갓난아기를 방에 혼자 엎어 재워놓고 나온다거나, 만삭 산모에게 스쿼트를 잘못된 자세로 시켜 무릎이 나갈수 있는 위험을 그냥 둔다거나, 조산을 유발하는 운동이나 뼈가 다칠수 있는 일들을 시킨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예요. 또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걸려 아기가 기형이 될수도 있는 그런것도요.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들이 그저 선생님이, 수녀님이 시키니까 따르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사실 제 입장에서는 뻔히 알면서 입 다물고 있을수 없었어요. 평생 불구가 될수도 있는걸 제가 혼나고 싶지 않다고 눈감을순 없잖아요.
하지만 임신부는 이러이러해서 이럴수도 있대요~ 라고 말씀을 드려도 전혀 수정은 커녕 "조산할때까지 안시킬테니까 시키는대로 해!" 라던가 입 다물으라고 몸을 밀친다던가(임신중인데..) 자신들의 권위와 자존심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지요.
급기야 원장 수녀님은 저에게 니 그런식으로 살면 사회 적응 못한다느니 하며 사회 부적응아처럼 독설을 퍼부으시더라구요. 전 성격이 본래 쾌활하고 일도 즐기는 편이라 나름 어디서나 동료, 선배들에게 이쁨받으며 일했는데.. 아무 문제없이 사회 생활 잘했다고 하니 비웃으며 그건 니 생각이고~ 하며 조롱하시더라구요. 정말 화가 났지만 워낙 나이가 있으신 분이라 참았습니다.
또 어느날은 간호 수녀님이 너는 의견이 있어서 짜증난다 라고 하시기에 그때쯤엔 저도 화가 나서 개인이 자기 자신과 자기 아이에 관해 의견이 있는것이 무엇이 이상한것이냐고 처음으로 따져 물었으나 뭔가 이해 안되는 말로 밀어붙이셔서 벙 쪘었어요. 벙 찌니까 생활선생님이 꼬시다는듯이 키득거리시더라구요 바로 앞에서. 근데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이 외에도 인격모독이나 인신공격이 많은데 너무 길어 줄여줄여 생략하고 쓰고 있네요..
아무튼 저는 자신들의 자존심을 챙기고자 전혀 임신부들의 안전을 생각치 않고 강제로 참여를 시키는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으나 어찌됐든 당장 돈이 없으니 버티자고 하루하루 마음먹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날 원장수녀님이 부르시더니 넌 우리랑 안맞는거 같으니 우리 시설에서 나가라고 하시더라구요. 너때문에 생활관 분위기 다 망친다구요. 애들이 다 너 싫어한다고. 수녀님들은 생활관엔 식사할때 외엔 들어오지도 않으시니 애들이 얼마나 절 따르는지 모르시면서 말이예요. 애들이 잠깐 샤워등을 할때 수녀님들한테 애기 맡기기 불안하다고 항상 저한테 봐달라고 부탁하고 힘든점 토로하고 그러는데..ㅋㅋㅋㅋ
게다가 '보호' 시설에서 너 나가라니요 ㅋㅋㅋ 그곳의 규율을 한가지도 어긴적이 없는데 ㅋㅋ 오히려 제가 들어오기 전부터 분란만 조장하고 생활인들이 불만을 매일 터뜨렸던 아이는 자기네 말을 잘 들으니 그래도 우리가 감싸야지 내보내면 쟤 어디가니 하면서 내보내지 않던 분들이 ㅋㅋㅋ 아 쓰다보니 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네요.
이 외에도 미혼모 시설은 임신과 출산,육아에 관한 교육들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에 여러 프로그램들을 낮동안 진행합니다. 아침식사때 수녀님이 간단히 오늘은 무슨 프로그램을 한다 이런걸 배우는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하고 설명해주세요. 그런데 막상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면 말해준것과 전혀 다른 프로그램인 경우가 종종 있어서 좀 의아했지요.
어느날 프로그램 후에 다같이 둘러 앉아 나물같은걸 다듬을때 프로그램 어땠냐는 이야기가 나와서 제가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지도가 아니라 치료인것 같더라구요." 라고 얘기를 하니 갑자기 표정이 굳으면서 "아닌데, 니가 잘못 안거야. 독서 지도 맞아. 내가 다 관할하고 들어가보기도 했는데 무슨 소리야." (들어오신적 없음) 그러자 다른 생활인들도 "수녀님 맞아요 그거 지도라기보단 치료 같아요." 하니 더욱 표정이 굳어져서는 저한테 니가 잘못안거야. 그런소리 하지마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제가 외부 강사님께 이 프로그램이 무슨 프로그램이냐고 여쭤보니 수녀님이 완전히 잘못 알고 계신게 맞더라구요.
이 외에도 본인들이 섭외하고 스케줄을 짠 프로그램들의 내용이 실상 무엇인지 잘못 알고 계시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나가라고 하시면서 본인들은 충분히 잘 알고 운영하고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쭈어도 되겠냐고 하니 뭐냐고 하시길래 혹시 임신부들이 피해야할 음식은 뭐가 있는지 아시냐고 물었어요. 제 생각엔 이건 기본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랬더니 "아니? 내가 왜 그걸 알아야 하는데?" 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럼 매일 진행하는 프로그램들도 제대로 모르고, 임신에 관해서도 모르고, 갓난아기 다루는 법도 잘 모르는데 (심지어 안는것도 어설프고 아기한테 너무 뚱뚱하다느니 성격이 어떻다느니..) 도대체 무엇을 잘 알고 일을 잘 하고계신다는건지 저는 도저히 납득이 안갔어요.
그래도 나가라니 어쩌겠어요. 다음날 당장 나가기로 했지요.. 그리고 다음날 오전 퇴소절차를 밟는데, 보통 의무적으로 작성하는 듯한 서류 하나와 설문서류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친구, 가족 등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이를 어길시 법적인 책임을 지겠습니다.' 라는 서류에 서명을 하라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당연히 그런 서류에 서명할 이유도 의무도 그들이 그런걸 요구할 권리도 없다는걸 알기에 (어린 친구들은 아직 사회를 안겪어봤으니 뭣 모르고 다들 하고 나간것 같아요) 서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왜 안했냐고 하시기에 제 경험을 제 주변인들이나 어느곳에나 얘기할 자유는 당연히 있는것인데 그로인한 법적책임을 제가 져야 할 이유가 없어서 그랬다고 했죠.
제가 이걸 꼭 서명해야만 나갈수 있나요? 라고 물으니 자신들도 강제할수 없다는걸 알기에 우물쭈물 하고는 급 근심걱정 가득한 얼굴로 원장수녀님이 나와 자기는 너보고 먼저 나가라고 한 적이 없다며 네가 나가겠다 했다며(도대체 제가 언제...?) 무마시키려고 하다 실패하시곤 굉장히 걱정해주는듯한 얼굴로 배웅하시더라구요.
어쨌든 전 그런 말도안되는 서류에 서명하지 않았으므로 자유롭게 이 글을 씁니다. 제가 그곳에서 생활하며 알게된것은 그나마 이 곳이 미혼모 보호시설들중에선 꽤 좋은편이라는...거예요... 다른 곳들은 권위의식이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더라구요..
그들의 복지에 관한 마인드는 한마디로, "내가 안타깝게 여겨서 도와주는데 주는대로 감사히 받아 먹기나 할 것이지 감히 의견을 내??" 였습니다.
제가 거기서 나오니 여러 복지관들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친구가 그러더군요. "그나마 장애인 시설들은 티비에서 그동안 장애인 인권에 관한 고발들이 많이 나와서 많이 좋아진 편이야. 이용하는 분들도 스스로의 권리를 잘 알고 주장하시고. 그런데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힘들고 폐쇄적인 미혼모 센터나 아동복지 센터들은 정말 답 없는 경우가 많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