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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특진관 예조 판서 유지가 아뢰기를, "성안에 요귀가 많습니다. 영의정 정창손의 집에는 귀신이 있어 능히 집안의 기물을 옮기고, 호조 좌랑 이두의 집에도 여귀가 있어 매우 요사스럽습니다. 대낮에 모양을 나타내고 말을 하며 음식까지 먹는다고 하니, 청컨대 기양하게 하소서." 하자, 임금이 좌우에 물었다. 홍응이 대답하기를, "예전에 유문충의 집에 쥐가 나와 절을 하고 서서 있었는데, 집 사람이 괴이하게 여겨 유문충에게 고하니, 유문충이 말하기를, '이는 굶주려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다. 쌀을 퍼뜨려 주라.'고 하였고, 부엉이가 집에 들어왔을 때도 역시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였는데, 마침내 집에 재앙이 없었습니다. 귀신을 보아도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면 저절로 재앙이 없을 것입니다. 정찬손의 집에 괴이함이 있으므로 집 사람이 옮겨 피하기를 청하였으나, 정찬손이 말하기를, '나는 늙었으니, 비록 죽을지라도 어찌 요귀로 인하여 피하겠느냐?'고 하였는데 집에 마침내 재앙이 없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부엉이는 세상에서 싫어하는 것이나 항상 궁중의 나무에서 우니, 무엇이 족히 괴이하겠는가? 물괴는 오래 되면 저절로 없어진다." 하였다. 유지가 아뢰기를, "청컨대 화포로써 이를 물리치소서." 하니, 임금이 응하지 아니하였다. <성종실록 17년 11월 10일 기사> |
승정원에 전교하기를, "듣건대 호조 좌랑 이두의 집에 요귀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도 있는가? 그것을 물어서 아뢰라." 하니, 이두가 와서 아뢰기를, "신의 집에 9월부터 과연 요귀가 있어서, 혹은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자취를 감추기도 하며 창문 종이를 찢기도 하고 불빛을 내기도 하며 기와나 돌을 던지기도 하는데, 사람이 부딪혀도 다치는 일은 없으나 다만 신의 아내가 살쩍에 부딪혀 잠시 다쳐서 피가 났습니다. 종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사람과 말을 하기를 사람과 다름이 없고, 비록 그 전신은 보이지 아니하나 허리 밑은 여자의 복장과 방불한데 흰 치마가 남루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은 일찍이 보지 못하였고, 단지 밤에 두 번 사람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신이 처자를 이끌고 다른 지붕으로 피해 있었더니, 얼마 아니되어 또 따라와서 때없이 나타났다가 없어졌다가 하가에, 신이 생각하기를, 피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여기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는 요귀가 없었습니다." 하였다. <성종실록 17년 11월 25일 기사> |
삼사동 구리정이 4일 동안이나 울었는데, 그 소리가 맷돌을 가는 것과 같았다. 해괴제를 지었다. <태종실록 5년 4월 19일 기사> 풍주에서 돌의 이변이 있었다. 풍주 두요포 강변에 있는 돌이 스스로 28보나 옮겨졌는데 높이가 2척, 길이가 5척이었으며 또 한 돌이 8보나 옮겨졌는데 높이가 1척, 길이가 5척이었다. 이들 돌이 옮겨진 자국은 깊이가 1척, 넓이가 4척이나 되었다. 또 월곶 강변에 한 돌이 처음 나타났는데 높이가 3척, 길이가 2척이었다. 서운 부정 김서를 보내어 해괴제를 행하여 빌었다. <태종실록 19년 1월 26일 기사> 전라도와 경상도의 바닷물 색깔이 변하였다. 순천부 장성포에서는 물이 15일부터 비로소 붉어져 20일에 이르러서는 변하여 검정색이 되었는데, 고기와 새우가 죽어서 물 위로 떠서 나왔다. 만일 물을 길어 그릇에 부으면 그 빛깔이 보통 것과 같았다. 양주 다대포에서는 18일에서부터 20일에 이르기까지 물이 붉어지고 27일에서부터 28일에 이르기까지 또 붉어져 고기가 죽어서 물 위로 떠서 나왔다. 물을 퍼스 그릇에 담으면 응결되어 끓인 우모의 즙과 같았다. 절영도에서는 18일에서부터 20일에 이르기까지 물이 붉어지고 동래 외평에서는 21일에 물이 붉어지고, (중략) 임금이 "천구가 떨어지면 이러한 변이 있다. 제사지내는 것이 무익하나 지난해에도 이러한 변이 있어서 사람을 보내어 제사지냈으니, 지금도 또한 해괴제를 행하는 것이 좋겠다." 하고 드디어 검교 공조 참의 최덕의를 전라도에, 판서운관사 애순을 경상도에 보내어 제사를 행하였다. <태종실록 13년 7월 27일 기사> 부엉이가 홍례문의 서쪽 십자각에서 울므로, 해괴제를 지냈다. <세종실록 15년 10월 27일 기사> 평안도 삼화현의 백성 박영산이 벼락에 맞아 죽으니, 향과 축문을 내려서 해괴제를 지냈다. <단종실록 즉위년 7월 15일 기사> <세조실록 1년 10월 4일 기사> |
출처 | 2008년도 썼던 동아리 발표문을 다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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