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초등학생때 아버지가 컴퓨터를 사온적이 있었다.
가격은 아마 200만원 좀 안됬던걸로 기억하고
컴퓨터 본체에는 진돗개라는 이름이 써져있었다.
당시 윈도우 95가 깔려있었고 컴퓨터에는 '한글타자연습'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후부터 나와 누나의 일과는 타자연습을 하는게 놀이였다.
지금도 있지만 당시 '산성비'라는 타자연습게임에 누나와 난 몰두해있었고
아래한글 97인가.. 하여간 이 워드프로세스로 배경을 꾸미고 일기를 쓰고 프린터기로 출력하는게 나름 재미있었다.
그 외 여러가지 교육용 프로그램도 설치되어 있었고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컴퓨터를 키고 여러가지 해보는게 너무 신기했다.
아마 이때부터 '역시 컴퓨터는 발가락으로 켜야 부팅이 잘되!' 라는걸 느낀것 같다.
그후 몇년뒤 아버지는 또 새로운 컴퓨터를 사오셨다.
HP에서 나온 컴퓨터로 운영체제는 윈도우 ME가 깔려있었고 나도 초등학생 5~6학년쯤 되었다.
컴퓨터를 사오셨을때 어머니께서 게임씨디 하나 사줄테니 말해보라 하셨고
난 스타크래프트를 외쳤지만 누나는 롤러코스터타이쿤을 외쳤고
결국 누나와 난 언성을 높이다 서로의 앙증맞은 주먹을 날리며 WFC를 찍었고
심판이였던 어머니께선 "게임씨디는 없어!!" 라는 한마디에
아버지의 지갑만 굳어 승자가 될 뻔했지만
결국 그 패배를 바람의 나라로 해소를 하였고
결국 전화요금만 10만원 넘게 나와 팬티만 입고 집에서 쫒겨난적도 있었다.
또한 초등학교 5학년때 친구집에서 봤던 제목없는 테이프가 날 자극시킨것 같았다.
당시 음악은 소리바다. 동영상은 프루나(요즘도 incoming 폴더를 아시나요?)및 당나귀라는 p2p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이때부터 게임도 p2p프로그램으로 iso파일로 다운받고 CD스페이스 라는 프로그램으로 돌리며
'역시 난 컴퓨터를 잘하나봐'라는 착각속에 살았다.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고 아버지께선 더이상 컴퓨터를 사주시지 않으셨다.
어릴때 "컴퓨터를 잘 하니 우리 아들이 똑똑한가보네."라는 생각이
"우리 아들은 하루종일 겜만 쳐하네" 라는 생각으로 바뀐게 가장 큰 계기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돈 없는 중딩이 어떻게 컴퓨터를 마련하겠는가..?
결국 내가 흑염룡이 날뛰던 중2때 부모님께 조르고 졸라서 조립형컴퓨터를 하나 구매했다.
이때부터 하드웨어에 관심이 많았다. 컴퓨터를 뜯어보며 어릴때 책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CPU라던지.. 램이라던지.. 여러가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느날 쿨러에 먼지가 많아 쿨러를 분해해볼려고 힘을주니
팬 날개 하나가 부러졌다. 그리고 컴퓨터를 실행하니 소음이 너무 거슬렸고 근처 컴퓨터수리매장에 맡겼다.
그리고 수리비가 5만원 넘게 나오고 뭔가 더 느려진것 같은 느낌이 든건 왜일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누나는 대학교에 진학하였다.
기숙사에서 쓸 컴퓨터를 가져간다 해서 쓰던 컴퓨터는 누나가 가져갔고
난 내가 모은 용돈으로 토요일날 아버지와 같이 용산에 가서 견적을 직접 맞추며 컴퓨터를 구매하게 되었다.
견적을 맞추고 구매를 하니 직원이
"조립해드릴까요? 조립비 2만원 추가입니다." 라는 말에
"아뇨!! 저도 조립할 수 있거든요!!" 하고 박스만 챙겨 나왔다.
그리고 그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골에 내려가셨고 난 컴퓨터를 조립하겠다며 집에 혼자 남았다.
어머니가 가기전에 집에 혼자 있으니 맛난거라도 먹으라며 3만원을 주고 가셨고
혼자 컴퓨터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왜이리 복잡하고 선이 많은지.. 얼추 구멍이 맞는 선들을 끼우고
램 끼우고 cpu 끼우고 써멀도 안바르고 쿨러 끼우고.. 파워 연결하고
몇시간을 끙끙거리며 조립했고 드디어 본체 전원버튼을 눌렀지만 컴퓨터는 반응이 없었다.
결국 어머니가 주신 3만원으로 근처 동네 pc매장에 가서 2만원 주고 조립을 맡겼다.
대학교에 와서는 노트북이 그렇게 가지고 싶었다.
성인이 되었으니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고 이왕 노트북을 사는김에
성능이 좋아 게임 잘 돌아가고 가볍고 저렴한.. 뭐 그런 말도 안되는 만능 노트북을 원했다.
결국 나름 타협점을 찾아 외장그래픽이 달린 노트북을 하나 구매했고
이 노트북은 내가 군에 입대하면서 누나가 졸업 후 중국 어학연수를 떠날때 가져갔다.
전역 후에는 고사양 3D게임을 하고싶었다.
결국 중고나라를 열심히 검색하여 피시방매물 컴퓨터를 찾게 되었고
나름 가지고 있는 돈을 계산해서 새로 구매하게 되었다.
당시 블래이드앤소울에 빠져있었는데 늘 피시방에서만 해온 게임을 집에서 하니 너무 감격적이였다.
늘 시간에 쫓겨 스킵하던 영상과 대사들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고
돈벌이에 필요한 노가다 및 커뮤니티를 즐길 수 있다는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물론 사양은 타협해서 하옵션이지만 나름 만족이였다.
그 후 취업을 위해 게임할 시간도 적어지고 게임에 신경을 쓸 일이 없다보니 다시 노트북을 찾게 되었다
쓰던 데스크탑을 팔아버리고 노트북을 구매하게 되었는데
'노트북으로 게임을 해? 아이고 의미없다..' 라는 깨달음을 얻어
그냥 작업용으로 쓰기 좋은 노트북을 구매하게 되었다.
결국 이 노트북은 작년에 중국으로 여행갔을 때 누나가 전에 가져갔던 노트북과 교환해 왔다.
지금은 나름 안정적으로 돈을 받으며 일하니 막상 눈독들이던 하이엔드 컴퓨터에 자꾸 눈이 갔다.
그동안 한번도 고사양컴퓨터를 가져보지 못해서 그런걸 수도 있지만
왜인지 모르게 하고싶은 일중 하나가 되어있었다.
더이상 게임을 많이 즐기지도 않지만 컴퓨터에 돈을 쓰니 친구가
"게임도 잘 안하는데 그렇게 컴퓨터를 맞출 필요가 있을까?"
라는 말을 했다.
물론 돈낭비일수도 있다.
튜닝 견적까지 합치면 약 250만원 견적이 나온다.
그러나 이제 정품을 구매하서 쓰고
스스로 조립도 할 수 있고
웬만한 에러 및 고장은 혼자서도 해결이 가능하다.
피규어를 보고 만족감을 느끼는것처럼
커다란 대형TV로 영화를 보며 만족감을 느끼는것처럼
홈시어터로 빵빵하게 음악을 들으며 만족감을 느끼는것처럼
컴퓨터도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만족감을 준다.
이제 해보고 싶었던것들 중 남은건 커스텀수냉과 오버클럭이다.
조만간 내 소박한 꿈이 이루어질 날이 오고 있다.
그리고 곧 깨닫겠지
진정한 튜닝은 순정이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