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학교에 나와있는데 둘째 아이 전화가 왔어요.
엄마 어디냐고. 집에 왔대요. 남편이 데려다 놓은거지요.
아이 돌봐주는 아가씨는 월-금까지 있고, 주말에는 제가 봅니다.
남편은 보통 금요일 밤에 내려와서 토요일 제가 나이트가 끝나면 같이 시댁에 가고는 했어요. 그리고 일요일에 남편을 남편 학교에 떨구어 주고 저는 올라오거나 같이 올라왔다가 남편이 KTX를 타고 학교에 가거나.
아이에게 아빠는 어디있냐고 물어보니, 내일 미국 출장에 가서 3월 1일날 온다고 했대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3월 1일까지 주말에도 안올라오고 주말도 오롯이 아이들 케어는 제 손에만 맡긴 채 본인 일을 하시겠다는 겁니다. 즉, 저에게 하드타임을 주겠다는 것이죠. 주말에 내가 안올라가서 안도와주면 니가 힘들겠지? 이런거예요... 너 논문도 쓰고 주말에 쉬고싶을텐데 애들때문에 그거 안되겠지? 곧 봄방학인데 어디한번 나 없이 당해봐.. 이런. 댓글에 누가 달아놓으신대로 애같죠 참. ㅎㅎㅎ 제가 그렇게 burnout되면 아이들한테나 본인한테나 좋을게 없을텐데, 지 살 깎아먹기인거 알면서도 이런 짓을 합니다. 개학 하기 전까지 강의준비 + 못다한 논문 + 하고있는 프로젝트들 마무리 등 제가 참 정신없이 살 것을 남편은 잘 알고있어요.
쓰다보니 글이 길어질 것 같네요. 그냥 댓글달아주신 분들이 고마워서, 그리고 어차피 일이 손에 안잡혀서, 이것만 쓰고 reddit 그만 보고 일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넋두리처럼 써보고 있어요 ㅎㅎㅎㅎㅎ
시아버지가 저러세요. 남편은 눈으로 보여지진 않았지만 단칸방에서 시어머니가 맞는 소리, 아이들때문에 이악물고 맞는 소리를 지옥같이 들으면서 컸고, 지금도 시아버지는 본인이 걸린 독감까지 시어머니 탓을 하십니다.
시어머니가 참고살라고 하는건, 저한테만 그러는건 아니에요. 본인 딸들한테도 그럽니다.
그 사고체계가 어떤지 알기 때문에, 며느리라서 차별해서 하는 소리는 아니란 걸 저는 알아요.
그냥 그렇게 살아왔고, 니가 그나마 제정신이니 니가 미안하다고 해서 (본인이 그렇게 하고 산 것 처럼) 그냥 넘어가야지 별수있니.. 내가 잘못키워 미안하다.. 너도 알다시피 엄마가 아프잖아.. 니가 이렇게 하면 엄마가 더 아퍼..
제가 시부모님께 잘해드리려는 이유는, 그냥 그 힘겨운 삶이 참 가엾어서 였어요.
계모 밑에서 학대받고 다 뺏기고 사업실패 등으로 고생한 시아버지와,
그런 시아버지와 살면서 가정폭력 학대 주사 등등을 다 겪어낸 시어머니.
시어머니는 한글을 모르십니다. 아버지는 글을 읽으실 줄은 알지만, 두분 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이세요.
하루 품값 2만 5천원인 이분들께 잘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짜장면집에서 짜장 한그릇이 최고의 사치인 이분들께 유명 빵집 케이크도 맛보시게 하고, 좋은 곳에 여행도 보내드리고 싶었구요.
누구한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사실 그런것 같기도^^;; 없다고는 말 못합니다.
워낙 불쌍한 사람들이라 팔이 안으로 굽어 남편을 편들 것을 안다고 해도
제가 최선을 다해 시부모님을 좋아하고 따른 것이 아깝거나 하진 않아요.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챙겨주고 안타까워 했을 법한 인생들입니다.
이게 다 남편 복인거죠. ㅎㅎㅎㅎ 불우했지만 따스한 시어머니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컸으니
저리 철없이 자신만만할 수 있는게 아니겠어요? 자존감 바닥인 제가 많이 부러워하는 부분입니다.
이런 암울한 집안에서 교수가 둘 씩이나 나왔으니(자식 넷 중 둘), 어머니가 자부심을 느끼실만 해요.
안그래도 남아선호가 심한 시골에서 평범한 아들들도 왕자님일텐데,
과외는 커녕 등록금도 제대로 못 대어줘서 노가다를 뛰며 학교에 다닌 둘째아들은 특히 일생의 보람이겠지요.
그래서 남편이랑 결혼했었습니다.
기특했어요. 죽지않고 살아준게. 그 엄청난 생존능력. 생활력.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서 걷는 무대뽀정신.
다시 생활력. 특히나 어릴때 가끔 나 커서 굶어죽으면 어쩌지.. 하는게 큰 고민이었던 제게 그가 보여준 책임감과 (내가족은 절대 안굶겨죽일것 같은) 생활력은 아주 결정타였습니다.
나도 가진 것이 참 없는 사람인데, 어찌보면 나랑 참 닮았거든요.
근데 나는 죽지는 않았으나 하루하루 버텨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참 즐겁게 하루하루 강건하게 살아가는게 신기했어요. 낙천적이고 자기가 잘못해도 인정하지 않고(!)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을 배우고 싶었죠. 둘 다 억척스럽고 강하고 아주 비슷한 성격들인데, 그 점만이 달랐어요.
결혼할 때 주변에서 제 친구들은 하나같이 우려했습니다.
가진게 없어도 너무 없다고.
괜찮겠느냐고.
그런데 저도 가진게 없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공평하게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도 최소 비용 (한 500 안되게 들었을거예요)으로 하고 신혼여행도 생략했어요.
(이게 남편이 밀어부친게 아니라 다 제가 오케이한 부분입니다.... 허허허...)
지금도 워낙에 돈 셈 쪽으로는 젬병입니다. 먹고 살 밥이랑 누워 잘 집 정도가 제가 부리는 욕심이죠 ㅎㅎㅎ
남편이랑 이혼을 한다고 해도 소송까지 하면서 뭘 더 받아오거나 하는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갈라서기로 결심하면 딱 갈라서고 끝낼거예요 아마 저는.
아주버님 말씀으로는
남편이 너무 변해서 놀랍다고 하세요.
형님도 내가 아는 **가 아닌데.. 총각 때랑 왜이렇게 달라졌어... 미친거지.. 이러면서 아파하십니다.
저는 너무 오래전부터 이렇게 살아서
무언가 중간부터 틀어진 것 같기는 한데 어디서부터 꼬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 시발점이 있네요. 무슨 책 몇권 나올만한 스토리들이 더 있지만 짧게 쓰자면 ㅎㅎㅎ
그렇게 결혼 후에 미국에 갔어요.
우린 돈도 없었고, 남편의 박사학위 때문에 간거라 저는 공부할 계획은 없었죠.
그러다 가정주부의 삶은 내 체질엔 영 아니구나.. 하는걸 깨닫고는
남편이 공부를 마치자마자 제 공부를 시작했고, 잘 마쳤어요. 제 학위는 미국에 있는것이 더 나은 학위예요.
그러나 남편의 교수임용과 함께
저는 가족들과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애가 둘인 마당에, 몇년의 공부로 몸이 많이 약해진 탓에 혼자 미국에 남아 둘을 건사할 수는 없겠더라구요.
지금은 사실 그냥 그 둘 데리고 죽이되든 밥이되든 미국에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남편을 탓하는건 아니에요. 끌려온게 아니고 제 발로 왔으니 제 선택인거고,
다행히 맛있는건 한국에 더 많아서 잘 왔다고 보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ㅎㅎㅎㅎ
미국에 가서 4개월 있으려니.. 욕심이 보통이 아닌 손윗 시누가 막 고등학교 올라가는 조카를 보냈지요.
아마 이것이 남편과 다투게 된 시발점이었던것 같아요.
긴긴 얘기들은 생략합니다. 어차피 제 조카고 아이의 인생이 걸린 일이라 내 아이 이상의 책임감을 갖고 키웠어요.
이후 시누는 둘째 아이까지 보냈고 그아이도 잘 키웠다능. ㅎㅎㅎ
제 조카들은 허구한 단점이 있는 놈들이긴한데, 암튼 착하고 이쁜 내새끼들입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에서 보낸 시간동안 쉰 적이 없네요. 제아이 둘 + 조카 둘 + 남편이 물고오는 방문객들 + 남편 인척의 자녀 한집에서 케어링 (1년 반 + 8개월 등등) + 제 공부 + RA일 등등등.
아주아주아주 힘든 시간이었다... 라고 짧게 맺습니다만ㅋ
지금 제가 닥치는대로 다 해도 힘든 줄 모르게 삶에 대한 전투력이 몇 배 상승되도록 만들어준 인고의 시간인 셈이죠.ㅎㅎ
... 지금 읽으면서 땅을 치고 계시죠? 원글이 븅신이네 하실거예요.. 제가 생각해도 븅신이 맞... ㅠㅠ
그런데 참 다행인게, 이런 정신없는 시간들을 거치면서 제가 몇 배 더 넓어지고, 강해지고 한 것 같아요.
세상에 못할 게 없구나.. 그냥 생각할땐 무섭지만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구나... 라는 강단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한국에 와서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육아지원 등이 아주 열악하고
공부+일하는 아이엄마에 대한 사회적 함의가 충분치 않아서 더욱 힘들더군요.
남편이 같이 살아서 잠 만이라도 집에서 같이 자 주면 그시간에 아이들을 맡기고 저는 제 일을 할 수 있을텐데
그게 아니니.. 잠자는 시간까지 엄마가 재워주지 않으면 눈물이 아롱아롱하는 아이들이라.. 매일매일 자는 순간에도 자는게 아닌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아카데미아에서 기회를 노려야 하니
더욱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한, 해가 뜨기전에 어둠이 가장 짙은 그런 시간이더라구요.
그런데 이렇게 바쁘기만 하니, 남편과 진득하게 대화를 나눌 필요를 느끼면서도 잘 못해왔던것 같아요.
나도 피곤하고 너도 피곤할테니.. 같이 있으면 얘기를 해도 가볍고 재미있는 주제로 (제가 좀 웃기거든요 ㅎㅎ)얘기합니다. 피곤할 주제는 아예 꺼내지 않게 되었어요. 우선 남편이 못받아들여요. 아무런 트리거도 없는 상황에서 남편을 자극하지 않는 조곤조곤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해도, 순간 분위기가 매우 험악해지고 너는 왜 갑자기 상관도 없는 이미 지난 일을 지금 꺼내서 기분이 나쁘게 만드는거냐.. 가 되는것이죠.
... 제가 그래도 얘기를 계속 했었어야 해요. 하지만 저도 많이 피곤했고, 제가 뒤끝이 있는 성격이 아닌데다 (사실 뒤끝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바쁘다보니 자꾸 까먹어서.. ) 남편처럼 집요하게 누군가를 괴롭히는 성격은 못됩니다. 지구력이 약해요 제가. 삶을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모으다보니 싸움까지 여우같이 계산해서 장기전으로 이끌어갈 시간도, 에너지도 제겐 없는거지요. 남편은 그게 될거예요. 애들을 안보니까. 저는 그 에너지가 있으면 애 숙제를 한번 더 봐주는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회피하고자 한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회피가 되어버렸네요.
남편이 아이들과 어딜 놀러가지도, 놀아주지도 않다보니 제가 그 몫도 해야합니다.
휴일엔 좀 누워서 쉬고싶지만, 아이들의 기대에 찬 눈이 있으니 어디라도 같이 나가주려고 해요.
하다못해 교보문고에서 책을 한권씩 사주고 그 옆에 폴바셋에서 아이스크림을 물려주는 일이라도 합니다.
... 몇 번이나 남편에게 이야기했어요. 피곤한건 아는데, 아이들과 좀 시간을 보내달라고.
그럼 본인처럼 아이들이랑 시간 많이보내는 사람이 어딨냐고 ㅎㅎㅎ 합니다.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애들이랑 좀 놀아주라고 하면, 어찌 노는지를 몰라요. 저도 부모님이 같이 있어준 적, 놀아준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걸 억지로 같이 있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놀아주고 해서 더 힘이드는데 신랑도 그렇겠죠.
도와달라고도 이야기 했어요. 울면서도 해보고, 여우짓하면서도 해보고, 평범한 어조로도 다양하게.
울면서 했더니 짜증을 냈구요. 너만 힘든줄 아냐고. ㅎㅎㅎ
여우짓 하면서 해보니 해주더라구요. 다만 이 말을 듣고나서는 여우짓을 시도할 때마다 왠지 비참해서 그냥 제가 하게 되더라구요. "남자는 이렇게 해야 하는거야. 뭔갈 시키지말고 이렇게 여우짓하면서 부탁을 하면 다 하게 돼있어."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이 말을 들으니 내색은 안했지만 불쾌하고, 서글프더군요. 아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하게 된 것도 남편의 저런 자세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무언갈 많이 요구하거나 시키는 편은 결코 아니거든요.
평범한 어조로 하면 그 기분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날은 짜증을 내고, 어떤 날은 도와줍니다.
제가 참다 참다 소리를 지른다 라고 했었는데.. 이게 의미전달에 조금 미흡했던것 같아요.
제가 (소리지르는걸) 참다 참다 (말로 조곤조곤 몇번을 얘기하고, 통하지가 않아서 최소 3회 이후에) 소리를 지른다 라고 해야 맞는 표현 같아요.
그냥 설명을 하고 차를 한잔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라는 조언대로 정말 하고 싶어요ㅠㅠ 그런데 그게 저 소리를 지르는 지경까지 가고 나면 제가 이미 상당히 말로 해결하고자 노력했고 그게 안되서 소리를 질러 신경도 안쓰려던 남편을 주목하게 만든 상황이어서 좀 불가능한 상황이 됩니다..ㅠ
그리고 연휴 3박 4일 중 새벽에 밤늦게 들어오는 걸 아무얘기도 안하진 않았어요. 좋은 소리로, 그거 안가면 안되겠냐고, 꼭 설날 가족들이랑 같이 보내는 시간에 친구들을 만나야 겠냐고 했지요. 부탁하면서 그냥 집에 있으면 안돼? 하고 말하고 애교도 부렸어요. 그치만 나갔다 오겠다더군요. 첫날 늦게 왔을 때는 이미 집에 온다던 시간 8시로부터 (전화와 문자를 보냈거든요. 이때 도착한다고 10분만 20분만 계속 거짓말 하고 있어서 제가 화가 좀 났네요) 3시간 이상 늦어진 시간에 도착했을 때도 시댁에서 큰소리 내지 않으려고 개그치면서 '이 가정파괴범들 같으니, 아니 3시간씩 왜 온다온다 하고 못온대?' 하고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얘기를 해두었지요. 바로 다음날 더 늦게 들어왔지만.
제가 스킬이 없는것 같기도 해요. 효과적인 대화의 스킬도, 여유도 없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좋은 말 + 설득 + 애교 + 회유 + 협박 등등 소리 안지르고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봤고 해온것 같은데,
결론은 남편이 하고싶은대로 합니다. ㅎㅎㅎ
소리를 지르기 전엔 제 얘기를 들어주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어요.
소리지르는 것에 대해 변명같지 않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참 변명같네요. 사실인데..ㅠㅠ
댓글에 남겨주셨던 분들 말씀처럼
아이가 둘이고,
그 아이들이 상처받을 것을 생각하면, 이혼이 참으로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건 아닌것 같은데
말을 해도 통하질 않아서 어떻게 할줄 모르겠어서 주절주절 이야기해봤어요.
주절주절 한참을 해봐도 여전히 답은 안나오는.. 멘붕게 아이콘 같은 상황이네요.. ㅎㅎㅎ
괜히 설연휴 잘 보내신 분들한테 고구마 목멕힌 기분을 드린듯 ㅠ
지금 남편한테 전화해서 조곤조곤 잘 말해볼까 하는데 될지 모르겠네요. 해볼까 말까 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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