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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readers_28082
    작성자 : 빨간냄비
    추천 : 7
    조회수 : 782
    IP : 211.105.***.199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7/03/30 09:29:00
    http://todayhumor.com/?readers_28082 모바일
    [감상문] 별이 남긴 먼지, 유전자가 남긴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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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나르도 다 빈치: 수리과학을 모르면서 내 글을 읽으려 들면 안 됩니다.]
    (*직접 한 말이 아니라, 저자 슈테판 클라인이 문헌 기록을 통해 유추한 가상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돌아갈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동굴 앞에 선다. 해부학 실습도구를 손에 쥔 채. 알고 싶기 때문이다. 내 안의 어떤 유전자가 내리는 명령이 들린다. 들어가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라.

    동시에 공포도 느낀다. 나는 수리과학은 커녕 고교과정 공통과학에 대한 기초지식도 부실한 사람이다. 길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 머리털이 곤두서는 이 때, 내 피는 어떻게 거꾸로 솟을까? - 검색해보니, ‘피꺼솟’은 실제로는 아드레날린이 과다분비되는 것이라고 한다.

    더, 더 알고 싶다.


    <인간유전체> 편을 읽으며 이러한 투쟁심을 느꼈다. 생화학자 크레이그 벤터의 발언을 들으면서 만면한 공격성향을 느낀 것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라 칭한다. 나도 일정부분 그러하다. 그러나 내가 그와 같은 공격성향까지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크레이그 벤터: 이른 나이에 강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의 DNA에는 어떤 분자들이 달라붙어서 특정 유전자들을 오랫동안 봉쇄할 수 있지요. 그러면 그 사람은 쉽게 불안과 우울에 빠지는 성향을 보이고요.]

    내 안의 공격성향 역시 봉쇄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래의 발언까지 듣고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크레이그 벤터: 내가 원하는 것은 인간의 디지털 복사본입니다. 이게 뭐가 문제입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당당하네. 멋지다.

    농담이 아니다. 그는 참전군인이었다. 아비규환의 참상을 겪은 후, 자신 유전자의 남은 가능성을 늦기 전에 모두 발현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는지도 모른다.


    인터뷰어 슈테판 클라인은 훌륭한 질문자이다. 그는 함부로 상대방의 생각이나 태도를 단정지으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현명한 편집자이기도 하다. 각 편의 순서가 사려깊게 배치되어 있다. 이를테면 <인간유전체> 앞에 놓인 <정의>에서 경제학자 에른스트 페르는 이렇게 말한다.

    [에른스트 페르: 당신이나 내가 정의감을 너무 강하게 고수하면, 파이 전체가 커지는 것을 막는 꼴이 됩니다.]
    (*그의 태도 전반을 드러냈다기 보다, 어떤 아이러니의 가능성을 지적한 발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인간유전체> 편을 읽으면서도 멀쩡했던 나는 <정의> 앞 편인 <이타심>에서 오히려 작은 반발심을 느꼈다. 행동과학자 라가벤드라 가닥카는 말벌사회의 효율성에 대해 찬미하면서 오히려 극단적 사회주의사상의 맹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런 의도야 아니었겠으나, 말벌사회와 인간사회를 표피적으로만 비교할 경우 현대인간사회에서 금기시되는 개인의 희생 문제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쟁점들을 엮어 크레이그 벤터의 ‘복사본’ 발언과 연결해 본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으나, <나쁜사마리아인들>(장하준,2007/이순희,부키,2007)이라는 책에서는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범죄(소프트웨어복붙)가 결과적으로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현상을 지적한다. 시장경제원칙으로 따진다면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세상이 그런 식으로 돌아가기도 하는 법이다. 말벌의 세계에서도 권력이동이나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처럼. <모성> 편의 랑구르원숭이들을 미리 끌어와 연결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그저 일어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며 과학은 여기에 개입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인가?

    <인간 유전체> 편 이후에 등장하는 뇌과학 관련 대화 등이 상당부분 사회정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바로 뒤편인 <공감>에서 신경과학자 비토리오 갈레세는 인간이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타고난 것임을 ‘거울뉴런’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과학이 하건 말건, 인간의 선천적 능력이 해답의 실마리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비토리오 갈레세: 내가 당신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으려면 먼저 나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심리학계의 통설이에요. 그런데 이 통설이 틀렸습니다. (중략) 거울뉴런의 매커니즘이 타인의 내면세계로 직접 통하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에요.]

    요컨대 인간에게는 약자를 포함한 타인에 대해 공감하는 선천적 능력이 있으므로 사회정의는 몇몇 변수들이 훼방을 놓더라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인간사회의 상수, 기본값이라는 뜻인가?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복붙’의 문제를 거시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는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클라인과 갈레세 두 대화자는 ‘공감’과 진정한 ‘함께 느낌’ 사이의 간극을 들여다본다.

    [슈테판 클라인: 공감, 곧 ‘타인 속으로 들어가서 느낌’이 뇌의 자동반응이라면, 진정한 ‘함께 느낌’ 앞에는 아마도 높은 문턱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중략) 그런 높은 문턱이 없었다면, 역사 속의 수많은 잔인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겠죠.]

    [비토리오 갈레세: (중략) 사디스트는 바로 상대방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기 때문에, 쾌락을 느낍니다. 공감과 이타심은 전혀 별개예요. (중략)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의 이타심이 천성적이지 않다고 믿어요.]

    역시, 절망스러운가? 공감한다.

    ‘대면대화’에 대한 갈레세의 단호한 입장표명을 들으며 그저 잠시나마 웃어보기로 하자. 사회적 지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서면보고’를 고집했던 어떤 공감없음의 아이콘이 마침내 어떤 곳에 장기투숙하는 날이 온다면 이 책을, 이 부분에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여 넣어주고 싶다.

    [비토리오 갈레세: 그런 탈육체화는 우리의 사회적 정신적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분명한 것은 진화 과정에서 사회적 지성은 가상적인 만남이 아니라 직접적인 만남에 적합하게 발전했다는 점이에요.]

    지금 이 글이 읽히는 이 곳 역시 온라인 비실명 커뮤니티 아니냐며 울상지을 필요 없다. 단톡방에 이 글을 올린다고 생각해보라. 나도 직접적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과는 이런 글을 서로 써보이지 않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슈테판 클라인: 그래서 (최고의) 우정은 별도의 이해관계로 얽히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맺어지죠.]

    [비토리오 갈레세: 왜냐하면 이해관계 말고 다른 동질성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부끄럽다고 도망가지 마시라. 아직 결정적 한 방이 남아있다.

    [슈테판 클라인: 교수님의 정체성을 이루는 그 모든 정보를 뇌에서 슈퍼컴퓨터로 옮기고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해요.]

    [비토리오 갈레세: 터무니없는 헛소리예요. 이미 밝혀졌듯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느낌은 우리가 타인의 몸을 보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그런 운동능력이 심지어 언어능력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증거도 많습니다. 우리의 정신은 오직 물체의 세계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슈테판 클라인: 그러니까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겠군요.]

    [비토리오 갈레세: 암, 그렇고말고요. 하지만 우리는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불가피한 죽음의 전망을 견뎌낼 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죽음의 전망을 견뎌낼 만한 힘‘은 뒤편의 <의식>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크레이그 벤터였다면 자신만의 반론을 준비한 뒤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을 것이다(유전체 복사와 뇌 복사는 분야 자체가 다르기도 하다. 나는 각 학자간 어떤 태도의 차이를 드러낸 것 뿐이다).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소령은 전뇌 알길 우습게 여긴다며 클레세 교수의 이름을 어떤 명단에 올릴지도 모른다.

    게다가 ‘거울뉴런’의 증거 중 하나로 제시되는 영상이미지를 통한 전염효과는 인간의 선천적 능력이 악용될 수도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국내 방송에서 잠재의식광고, 이른바 ‘서브리미널 효과’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 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 제15조(잠재의식광고의 제한) : 방송광고는 시청자가 의식할 수 없는 음향이나 화면으로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방식을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


    점점 더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이 동굴은 춥다. 실마리, 열쇠, 절대적 정의나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통증> 편에서 ‘찜질fango 대신 탱고tango를!'이라는 문구를 발견한 것은 잠시나마 숨을 돌리게 해 준다 - 나는 이 문구를 내 일지에 적어놓기까지 했다. 이 단락에서는 약리적 처방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건강염려증, 약물중독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와 함께 지속적인 고통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결국 통증이 인간 개개인 존재증명의 신호임을 일깨우며 단락을 마친다.


    앞서 슈테판 클라인의 편집능력에 대해 말한 바 있다(책 내용이 먼저 연재되었다는 신문기사와 책 내용이 얼마나 다른지 알 길이 없으니, 신문과 출판 쪽 모두의 편집팀이 훌륭하다고 보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만약 국내번역본이 원저의 순서를 바꾼 것이라면 편집자의 능력이야 인정하나 이 경우 언질이 있었어야 하므로 즉각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앞쪽에 ‘아름다움’과 ‘우주’ 그리고 ‘기억’이라는 보편적인 화두를 제시한 후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의 가상인터뷰를 기점으로 세부적인 쟁점들을 은밀하게 각인하고 있다. 그것들을 통해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신이 되려는 노력을 막는 것은 정당한가? 그것을 부분적으로 용인할 수 있다면, 인간 공동체의 정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과학이 인간사회의 폭력성을 해결할 수 있는가?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뇌과학을 통해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

    슈테판 클라인은 학자들과의 대화의 힘을 빌어 과학과 인간사회에 얽힌 쟁점들을 각각 다른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후반부에 들어서는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를 환기시킨다.


    역시 물론, 관점들은 계속해서 달라진다. <모성> 편에서 인류학자 세라 허디는 이른바 ‘친절한 유인원’ 이론을 제시한다. 유인원들이 공동육아를 통해 문명의 기반을 닦았다는 것이다. 워낙 혹독한 환경이었으므로 부족간의 거리가 멀어, 전쟁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이 가설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이자 아서C.클락의 소설 <2001스페이스오디세이>의 몇몇 장면, 설정들에 대한 미래사회의 평가는 달라지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도 널리 인정받는 이 영화와 소설은, 유인원 중 한 축이 조금이나마 똑똑해지자마자 경쟁자를 때려잡기 시작하는 그 어떤 경제성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의식>편의, 뇌과학자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의 발언을 통해 한숨 돌리기로 한다.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여러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만성적으로 지나치게 낙관적입니다. 실제로 경미한 우울증 환자가 더 현실적일 때가 많아요. 물론 우울증으로 인한 비용이 커서 문제이긴 하지만요.]

    그러나 <의식>편 역시 알고 보면 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흐름과는 또다른 논쟁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나만의 ‘나’인가 아니면 선조가 남긴 유산들의 결합체로서의 ‘나’인가?

    분명한 것은 ‘나’가 ‘나’에 집착하는 순간 고통이 시작되는데 그 고통에 과연 의미가 있는지는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통증>편의 혜안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발터 치클겐스베르거: 지속적인 고통은 무의미합니다. 고통이 사람을 고귀하게 만든다는 그 신비주의적인 생각은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좋아요.]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한에서 말씀드리면, 우리의 머릿속에는 우리의 본질과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슈테판 클라인: (몇 천년 전 인도) 현자들에 따르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자아라는 매혹적인 거짓을 꿰뚫어보고 자신과 우주가 하나임을 알아채는 것이에요.]

    개인적으로 영화 <매트릭스>가 (좋은 뜻에서건 나쁜 뜻에서건)철학백화점과 같은 면이 있어 가급적 인용을 피하는 편인데 이번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 내용들은 이 대사와 제법 잘 어울린다. ‘수저는 없다 there is no spoon.’


    이 모든 각각의 관점들을 총합하는 결론을 내가 감히 내릴 생각은 없다. 다만 내게 이 책이 오랜만에 매우 매력적인 경험들을 제공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뇌 속의 뉴런들이 날갯짓했다고 할 만한, 어떤 환희를 느꼈다. 그래 과학, 자연과학을 배우자.

    ‘저 지중해 어딘가에 있다는 누드비치에 처음 당도한 관광객처럼 독자들은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중략) 바야흐로 우리의 뇌는 팽창하여 부풀어오르는 중이다.’
    - 김영하, <너의의미> 중에서 (<오빠가돌아왔다>,창비,2004)


    그런데 왜 제목이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일까? 실제로 양적 비중만 놓고 본다면 뇌과학, 신경과학과 관련한 내용이 가장 많고 우주론에 대한 단락은 하나 뿐이다. 게다가 유전자에 대한 도전적인 태도를 지닌 한 과학자와의 인터뷰가 꽤 자극적이다. 이 사람 요트가 몇 대나 있는 걸까?

    이미 우리는 SF영화 <어라이벌Arrival>을 (심지어 <콘택트>라는 영화가 이미 있고 우주SF라는 장르마저 같은데도) <컨택트>로 개명해버린 최근의 전례를 갖고 있다. 요트 한 번 타 보고 싶어하는 나같은 편집자를 만났다면 이 책은 한반도 땅을 밟으며 다음과 같은 새 제목을 얻었을 것이다. <유전자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요컨대 책 제목에서부터, 슈테판 클라인의 어떤 태도를 엿볼 수 있다. 2차대전 이후의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이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대신 대화 사이의 호흡과 배치를 통해 흐른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과학하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멋진가 봐 하악하악..

    이러한 증상이 생길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클라인이 평소 존경해왔다는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마지막 단락인 <과학과 종교>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스티븐 와인버그: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상대를 단지 그 이유만으로 우러러보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점이에요.]

    어쩔 수 없이 최근에 읽었던 책 <데미안>에 대한 기억을 불러올 수밖에 없겠다. 자연과학분야에 관해 문외한에 가까운 내가 이러한 훌륭한 학자들을 신기하게만 바라보는 것 역시 데미안만큼이나 대상화에 머무르고 말 위험이 있다 오오 닥터스트레인지 오오 . 그들은 그저 출근해서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이 단순한 진실 역시 아름답고 숭고하다.


    [스티븐 와인버그: 한 분야에 진정으로 기여하는 유일한 길은 그 분야를 초심자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일단 내게 인상적이었던 단어들을 열거해 본다. 편의상 해시태그는 붙이지 않았다.

    헤모글로빈. 자연상수. 빅뱅의 속성. 암흑에너지. 중간뉴런. 집단선택. 생명의 소프트웨어. 거울뉴런. 물체성. 통증 감수성. 랑구르원숭이. 심신의학. 라사. 자연법칙 등등

    예상치 못했던 올해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이 단어들 중 두 세 가지를 택해 책 한 권이라도 더 읽는 것.

    [마틴 리스: 신뢰할 만한 여러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속성은 애당초 확정된 설계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빅뱅 과정에서 우연히 정해집니다.]

    슈테판 클라인 역시 서문에서 ‘인생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희망’이라고 말한다. 탐구하고자 하는 과녁이 중요하지, 어디에서 활시위를 당기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인간이 결정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나는 일단 중간뉴런과 거울뉴런을 비롯한 뇌과학, 신경과학을 들여다볼 생각이다.

    역시 물론, 알고 있다. 남은 평생을 노력한대도 뭔가를 제대로 이해하긴 어려울 지도 모른다. 게다가 나는 성격상 이런 경우 (이른바 ‘수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 공식이나 수식까지 알아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강박에 시달릴 지도 모른다. 다시 피가 거꾸로 솟기 시작한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아득한 저 편 너머로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라는 제목은, 그래서 옳다.


    [스티븐 와인버그: 혹시 아실지 모르지만, 당신이 인용한 문장 다음에 한 문장이 더 나와요. “우주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인간의 삶을 광대극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하고, 인간의 삶에 한 가닥 비극의 품위를 불어넣는다.”]


    이제 보니 동굴 안에 또다른 동굴들이 있다. 용기를 내자.

    멀리서 랑구르원숭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


    본문에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으나 원론적인 것들이므로 답변은 자유입니다. 오히려 다소 장르문학적인 궁금증이 생기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간이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거울뉴런’을 범죄에 악용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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