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일읽's comment :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작품으로는 제 인생에서 만난 최고의 소설 중 하나입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2000-201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 중 하나로 꼽히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야기의 구성은 감각적이며 그 내용 역시 살아 있음의 감각으로 흘러 넘칩니다. 이야기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몇 번이고 읽어서 결말을 잘 알고 있음에도 몇 번이고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소설이 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이 벌써 몇 년 전인데, 지금 다시 꺼내 읽어보아도 그때의 감동과 여운이 여전하다. 그만큼 이 이야기의 강렬함은 우리네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까지 침투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하는 의문을 남긴다. 그리고는 이에 대한 답으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한 사람이 겪었던 일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책 맨 앞에 있는 작가노트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노신사로부터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노라고 밝히는데, 그 노신사는 저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 젊은이는 신을 믿게 될 거요."
과연 신은 이 소설 안에도 계신다. 대개는 유머라는 형태로 계시는데, 그것은 삶에 대한 블랙 코미디이거나 혹은 슬픈 농담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아름답고 삶이 감격에 겨운 것은 세상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닌 신이시기 때문이다. 세상의 주인공이 나라고 여기는 한은 세상은 어둡고 삶이란 슬픈 것이다. 이 소설은 한 소년의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해양 또는 모험소설- 이 소설의 주 내용은 바다에 표류하는 이야기이다 -이기도 하며, 끊임없이 동물들이 등장하는 동물소설이면서, 종국적으로는 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편으로는 제도적으로 묶여 있어 신과 동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종교에 대해서 어둡지도 슬프지도 않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낄낄대게 만드는 내용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엄숙하게도 만든다.
뭐라고? 인간이 죄를 지었는데 신의 아들이 대가를 치른다고? 아버지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광경을 상상해봤다. "피신, 오늘 사자가 아메리카낙타의 우리에 들어가서 두 마리를 죽였다. 어제는 또 한 놈이 검은 수사슴을 죽였다. 지난주에는 두 놈이 낙타를 먹어버렸다. 그 전주에는 황새와 왜가리가 당했다. 우리 금색 들쥐를 먹어치운 놈은 또 누구겠느냐? 더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구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나는 사자가 속죄할 유일한 길은 너를 사자 밥으로 주는 것이라고 결정했다."
"네 아버지. 그것이 옳고 합당한 일이겠군요. 저한테 몸을 씻을 시간을 주세요."
"할렐루야, 내 아들아."
"할렐루야, 아버지."
정말이지 이상한 이야기다. 아주 독특한 심리다.
이슬람 지도자와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힌두 사제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힌두교인이면서 기독교인과 이슬람 교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피신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게 범죄는 아닐 것 같군요. 하지만 옳은 말씀입니다."
세 '현자'는 동의하는 말을 중얼대더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도 그랬고. 하늘에서 응답이 내려오기라도 할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어깨에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어머니가 주의를 환기시켰다.
"흠, 피신?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간디께서는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에요."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내 당황스러움은 전염이 된 것 같았다. 모두 말이 없었다.
이야기가 본격적인 국면으로 접어들기 전에 책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그만큼 우여곡절을 거쳐 바다 위에 표류하게 된 주인공이 앞으로 겪게 될 일들은 신을 사랑하던 한 아이에게는 너무나 가혹했음을 드러내주는 구절이다. 특히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여 구명보트에 올랐는데 보트에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 그리고 200킬로그램이 넘는 벵골 호랑이가 있다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동물원을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주인공은 살아남는다. 물고기를 죽이면서 처음으로 살생을 저지르고 하염없이 흐느끼던 아이는 점차 생生에 대한 갈망을 강하게 느끼면서 필사적으로 되어간다.
생존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내 경험상 조난자가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는 기대가 너무 크고 행동은 너무 적은 것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데서 생존은 시작된다. 게으른 희망을 품는 것은 저만치에 있는 삶을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책은 이야기의 힘을 극적으로 보여주는데, 그 힘이란 이야기 밖 현실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렬한 힘만 아니라 이야기 속 망망대해 위에 표류하던 주인공 파이가 끝내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었던 바로 그 힘이다. 그래서 파이는 자신을 구원해주었던 자신만의 이야기를 저자에게 성의성심껏 들려준다. 그리고 다시 저자는 책이라는 형태로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파이의 메시지를 전한다.
신의 존재는 최고의 보상인 것을.
제 블로그(http://onedayonebook.tistory.com)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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