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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27065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
추천 :
26
조회수 : 5068
IP : 119.195.***.65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2/03/24 21:11:54
http://todayhumor.com/?panic_27065
모바일
브금) [자작소설] 저를... 기억하세요?
하나의 큰 약속을 가지고 환생한 사람들은
그 약속을 절대 잊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다.
...
2012년 3월, 아직은 날씨가 추운 이른 봄.
한 청년을 오래동안 지켜보고있다.
‘스물일곱살... 인가...’
아침 출근길에 나서는 청년을 지켜보며, 난 함께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3월의 쌀쌀한 바람이 은근히 불어오자 청년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으슬으슬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난 왠지모를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어릴적부터 추운건 질색인 사람이지...’
내 옆으로 나의 수호신계 직속상관이 다가오며 물었다.
“현정아, 저사람 이제 슬슬 예정일 다가오지?”
“네... 이제 얼마 안남았네요.”
횡단보도 옆에 나란히 선, 나의 모습을 청년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이 청년을 수호하며 보낸 근 27년의 시간들... 하지만
내가 이 청년을 지키는 기간이 이제 얼마남지 않았음을 난 알 수 있었다.
조금 오래된 일이지만... 내가 기억해야 할 사람...
... ... ...
1950년 4월 봄날의 기억.
“현정씨, 학교가시는 거에요?”
멀리서 소리치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오른쪽 허리춤에 자전거를 기대고 나를 보며
싱글벙글한 웃음을 한얼굴 가득히 담은 청년...
나는 청년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저 수줍어 쑥맥처럼 대답했다.
“네... 진환씨도... 어디가세요...?...”
‘바보같이 말끝만 흐리고... 참... 어리숙했지....’
진환씨는 동네에서 큰 농사를 지으시던 근처 동네에서 알아주던 부농의 외동아들로
진환씨, 본인도 대를이어 부모님의 큰땅을 물려받아 농사일을 배우고있었다.
진환씨가 아침마다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 것은 순전히 나를 자전거 뒤에 태워
학교로 바래다 주려던 것이었다. 그 외의 목적은 전혀 없었지만, 진환씨는 매일같이
소소한 핑계거리를 만들어놓고는 내가 걷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타고 가실래요? 저도 학교쪽으로 가야하는데...”
당당한 목소리... 진환씨는 항상 당당했다.
뻔한 구애를 하면서도, 한낮의 뜨거운 땡볕아래에서 땀을 흘리면서도,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서... 당당한 사람이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진환씨의 물음에 고개만 끄덕였다.
“타세요!”하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진환씨의 자전거 뒤로 말없이 앉아
진환씨 허리춤 옷가지를 조심스럽게 부여잡고는 말을 한마디 붙일까,
말까하며 망설였다.
‘아... 허리를 확! 좀... 끌어안고 그랬을껄... 그랬으면... 좋았을껄...’
달리는 자전거에 맞부딪히는 선선한 바람에 머릿결이 부서지며 살랑거렸다.
나는 뭐가 대수로운 일인지... 용기를 내어서 힘들게 진환씨에게 말을 걸었다.
“저... 진환씨?...”
“네~ 현정씨!”
“오...늘은 뭐 하러 가시는 거에요?”
“아~ 오늘 집에 간장이 떨어졌어요~ 장에 들리려구요! 하하하.”
“아... 네...”
‘바보... 그날 장 안열리는 날이었는데...’
나는 마을 분교 초등학교의 선생님이었다.
전교학생의 수는 여섯명으로
1학년 남자아이 하나, 여자아이 하나,
2학년 남자아이 하나,
3학년 남자아이 하나, 여자아이 하나,
6학년 여자아이 하나... 총 여섯 명이었다.
진환씨의 자전거를 탄체 교문을 들어서자
작은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이 공차기에 여념이 없었다.
진환씨가 자전거를 넘어트리지 않으려 안간힘쓰며 조심스래 멈췄다.
“자~ 다왔습니다.”
“네... 고마워요... 매번...”
‘바보같이 땅만보고... 돈떨군 사람처럼... 아...’
“뭘요! 어차피 왔어야 하는 길이었는데요! 아!, 하하하하!”
진환씨의 우렁찬 웃음에 공을 차던 아이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고정되었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진환이가 반가운 아이들은 쏜살같이 우리에게 달려와
장난을 치며 말을 걸었다.
“형은 왜, 맨~날 우리 선생님이랑 같이와요?”
“맞아!”
“바보천치들... 진환이 오빠랑~ 선생님이랑 결혼할꺼야~ 그쵸~ 선생님~?”
아이들의 말에 당황해 동그래진 눈으로 진환씨를 처다봤다.
진환씨는 아이들의 소리에 기분이 좋아진건지 호탕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야! 마! 선생님 얼굴 빨게지셨잖아! 쉿!!”
진환씨가 “쉿!!”하며 검지손가락을 길다랗게 세워 입가에 가져가 붙이자
아이들은 그 모습이 재미난지 따라하며 “쉿!, 쉿!” 거렸다.
6학년의 여자아이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무슨! 선생님이랑 진환오빠랑은 결혼안해! 쪼~끄만 것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치! 누나는 뭐! 뭘 그렇게 많이 아는데! 치!! 쉿! 누나 쉿쉿!!”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진환씨의 입가에 환한 웃음이 걸려있었다.
1학년의 남자아이가 진환씨의 바지춤을 움켜쥐어 흔들며 말했다.
“형~ 우리랑 공차기해요~ 네? 네~? 혀엉~...”
“선생님! 우리 진환이형이랑 공차기해도 되요? 네? 되요?”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내가 말했다.
“진환...흠!... 진환오빠...는 바쁘니까 너무 오래동안 붙잡아두면 안되? 알았지?”
진환씨를 바라보며 괜찮냐고 물어보려했는데
이미 진환씨는 공을 가지고 저만치 달려가있었다.
‘아이 같다니까... 가끔씩...’
... ... ...
1950년 6월 25일
라디오에서 전쟁경보 뉴스가 흘러나왔다.
수많은 인파가 거리로 쏟아저나와 한손에는 옷가지들을
다른 한손에는 아이들을 손에 꼭 쥔체로 발길을 재촉했다.
길을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분께서 나를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아이쿠~ 슨상님 뭐햐~? 지금 즌장났댜... 즌장!! 얼른 짐싸서 길 따라나서... 어여!”
전쟁이란 소리에 제일 먼저 생각난건 진환씨의 소식이었다.
“아! 그... 아주머니! 진환씨는 못보셨어요?”
“이? 진환총각? 아... 글씨? 저기 어디있갔지 뭐... 얼른 짐싸서 출발햐요 슨상님 예?”
“아... 네...”
아주머니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환씨의 집을 향해 달렸다.
자꾸만 벗겨지려는 구두를 양손에 쥐어들고 가뿐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뛰었다.
‘바보... 그 자리에서 기다렸으면... 진환씨가 찾아왔을껄...’
텅비어있는 진환씨의 집앞에서 진환씨를 찾아 목소리를 높혀 외쳤다.
슬쩍열려있는 집 대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 한바퀴를 돌아보니
옷가지와 몇몇 물건들을 급하게 챙긴 흔적이 보였다.
아무도 없었다...
왜 흐르는지 이유모를 눈물을 쏟으며 집으로 달려와 짐을 챙겼다.
짐을 한손에 쥐고 기차역에 몰려든 사람들의 진풍경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발 디딜틈 없이 자리를 잡고 말없이 펼쳐놓은 장사진은...
도저히 한차에 모두를 싣고 갈 수는 없다고... 그 곳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는 것 처럼 보였다.
두리번 거리며 진환씨를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뒤에서부터 군용 차량으로 보이는 트럭이 들어서며 덩치좋은 남자하나가
확성기에 입을 바싹 붙이고 소리쳤다.
“주목!! 주목!!! 지금부터 남성 17세 이상, 30세 이하의 몸에 이상이 없는 분들은
이곳으로 모여주세요!!! 조용!!! 조용히!!! 지금부터 남성 17세 이상, 30세 이하의 몸에 이상이 없는 분들은 이곳으로 모여주세요!!! 긴급 전시상황입니다!!! 조국을 위해!!! 가족들을 위해!!!!! 젊은 여러분들의......“
확성기가 찢겨나갈 듯 덩치큰 남성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리렸다.
그 큰 소리에 삼삼오오 젊은 남성들이 군용트럭 앞으로 몰려들었다.
수없이 몰려드는 젊은 남성들의 인파 끝에서 진환씨의 모습이 보였다.
진환씨의 얼굴이 보이자 순간 나도 모르게 고함을 쳤다.
“진환씨!!! 진환씨!!!!!!!!!!”
진환씨가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돌아보다 나와 눈이 마주처서
눈을 번쩍뜨더니 멈춰서려했으나 뒤에서 진환씨를 밀치는
인파에 쓸려 진환씨는 그대로 군용트럭을 향해 걸어야만 했다.
‘바보... 뛰어갔어야지... 바보야... 뛰어갔었어야지...’
진환씨가 향한 곳을 허망하게 바라보던 난 인파에 휩쓸려
기차역 앞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젊은 남성들을 태운 트럭들이
어디론가를 향해 출발하기 시작했다.
나와 인근의 수많은 인파는 기차를 타지 못하고
기차역에 남아 허망히 앉아만 있었다.
주위로... 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아들... 우리 아들...”
다시는 진환씨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
긴하루였다. 한바탕의 소동이 끝나고나니 피난을 떠날 여력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한참을 기차역에서 시간을 보내다 조금씩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을 따라 발걸음을 분교로
옮기려던 때였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을 찾는 소리가 들린다.
“저기요! 우리아이 못봤어요? 우리아이!!! 아이고!!
아직 9살 밖에 안됐는데!!! 얘 어디갔어! 얘 어디갔어~~어!!!! 여보!! 여보!!!!“
다급한 소리로 서로의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한둘씩 눈에 들어왔다.
“우리... 아이들은... 잘 떠났을까...”
난 짐꾸러미를 다시 한손에 꼭 쥔채, 분교의 교실을 향해 걸었다.
한참동안 진환씨의 자전거 뒤에 앉아 있었던 탓에 이렇게 거리가
멀었다는는 걸 잊고 있었다...
“멀...다...”
분교복도를 지나 교실로 들어선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학교에 다니던 여섯의 아이들 전원이 교실 한켠에 앉아 울고있었다.
“얘들아! 너희들 왜 여기있어!”
“선~생님!!!!! 엉~엉엉!!!”
아이들을 급히 이끌고 집과 기차역을 돌아다녀봤지만 부모님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갈 곳을 잃은 아이들과 난 다시 분교로 돌아와 교실에 자리를 잡았다.
“선생님... 전쟁이 뭐에요? 우리 엄마랑 아빠 언제 돌아와요?”
“음... 음... 흠!... 전...쟁은...?”
목이 메여와 한동안 다음의 말을 이어 할 수가 없었다...
... ... ...
1950년 6월 27일
북한군의 진격에 서울이 돌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일대의 포격음이 다가옴을 알 수 있었다.
이따금 분교에 창이 가늘게 떨리며 도망치라며 비명을 치는 듯 했다.
‘바보처럼... 다리는 뒀다 뭐했니... 뛰었어야지...’
아이들과 나는 교실한켠에 둥그렇게 모여 서로를 부둥켜 안고
어찌할바를 잊은체 숨을 죽이고 있었다. 간혹 들리는 총성이
우리들의 정적을 깨는 유일함이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총성이 좀 전에 비해서
한참을 학교에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두려움이 나에게 전해진 것인지...
나의 두려움이 아이들에게 전해진 것인지...
나와 아이들은 죽기만을 기다리는 산송장처럼 채념을 하며
일말의 행운으로 전쟁의 피해가 분교를 지나가길 바라고있었다.
한발의 큰 총성이 학교를 울리더니 밖에서부터 날아온
총알하나가 교실의 창문을 꿰뚫며 반대편 벽을 박히곤 멈춰섰다.
공포감에 질린 아이들의 비명이 일순에 터져나왔다.
잠시 후 분교의 짧은 복도를 군화발로 강렬히 차며 달리는
소리를 들었다. 군화발의 무거운 발소리가 교실앞에서 멈추는 듯 싶더니
교실의 문을 촤르륵! 하며 힘차게 열어 젖혔다.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들었다.
아이들과 내가 겁에 질린 얼굴로 교실문을 바라본 순간...
진환씨가 벙찐얼굴을 하며 그곳에 서있었다.
흙더미에 뒹굴러 묻은 자국들과 팔뚝 위로 자리잡은 가늘고 붉은 선의 상처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모두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동안 벙찐로 서로를 응시했다.
이내 진환씨의 표정이 진지해지더니 진환씨는 검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입술에 가져갔다.
“쉿...”
진환씨가 한참을 웅그린자세로 조용히 깨진 창가를 향해 다가가더니
창가벽에 등을 기대고선 우리를 다시 처다봤다.
진환씨가 다시한번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가저가 “쉿...”하는 몸짓을 하더니
갑작스래 소리없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우릴향해 웃어주었다.
잠시후 진환씨는 다시 진지해지 표정으로 창문을 향해 총을 몇발 발사하더니
재빠른 몸놀림으로 창문턱을 넘어 화단으로 착지하더니 허공에 총성을 울리며
저멀리... 아주... 멀리...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진환씨와 내가 격었던 전생에서의 마지막 기억...
한참이 지나 먼발치에서 몇 번의 총성이 울리곤,
북한군들 예닐곱의 장정들이 분교로 들어왔다.
우리 모두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 ... ...
1950년 6월 27일, 알 수 없는 하늘 위의 푸른세상...
이곳에서 나와 아이들의 다음생을 결정짓게 되는 것 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한다는 남자에게 진환씨에
대해 물었다.
우리가 본 그대로 였다.
진환씨는 자신을 총알받이 삼아 근처의 적군을 유인해
인근 야산으로 달렸다. 야산을 두 개나 넘으며 빠르게 도망쳤지만
먼 곳에서 쏜 적군의 총알이 운좋게 정확히 진환씨의 머리를 관통해
진환씨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아이들이 죽은 진환씨는 왜 이곳에 있지 않느냐고 따지고드니
남자는 우리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진환이란 사람이 너희를 구해준 것은 좋은 선행이었지만...
그 사람은 전의 생에서 사람을 여덟명이나 죽였어... 그 사람을 벌을 받을꺼야...“
내가 격앙된 어조로 물었다.
“일곱을 살리고 여덟명을 죽였으니!! 사실상 진환씨는 그렇게 나쁜짓을 하진!!!”
남자는 눈을 지긋이 감으며 말했다.
“현정씨... 사람의 목숨은 덧샘, 뺄샘으로 환산하기에는 너무 무거운거야...”
아이중하나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진환이 형아는 우리랑 같이 다음세상에 못태어나요?”
남자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에 질세라 내가 소리쳤다.
“방법이 아주... 아주 없는 건가요? 정말로 없어요?”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 다만...”
“다만?”
“다른 사람에게 한번의 삶을 받아야만해. 그리 길지도 안지만... 그래도 환생할 수는 있지.”
아이하나가 나서며 소리쳤다.
“제껄 드릴게요! 제가 드리면 되요!!”
남자가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너희 같은 꼬맹이들로는 택도 없어... 정... 원한다면... 방법은 현정씨 밖에는 없겠는데?”
“저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희망의 불빛이 손아귀에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좋아요! 하겠어요!”
남자는 인상을 잠깐 찌푸리고선 나를 어디론가 대리고 갔다.
...
이후... 아이들은 진환씨에게 은혜를 갚겠다며
환생하게 된다면 그의 주변사람이 되길 자청했다고 한다.
아이들중 둘은 진환씨의 부모님이 되어
한명은 진환씨의 누나가 되어
한명은 진환씨의 친구가 되어
한명은... 진환씨의 애인이 되어...
모든 아이들이 진환의 다음 짧은 생이 행복하길 빌며 환생하였다.
그리고 나는...
인간으로써의 삶을 스스로 박탈하고 이 곳 하늘에서
몸담으며 진환씨의 환생한 몸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었다.
진환씨에게 허락된 날짜는 2012년 6월 26일까지였다.
진환씨는 2012년 6월 26일...
전생에 자신의 손으로 죽인 사람의 손에 죽기로 되어있었다.
하나의 큰 약속을 가지고 환생한 사람들은
그 약속을 절대 잊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다...
그는 전쟁중 자신의 친구와 형제 그리고 자신 본인도
진환이 쏜 총에 맞아 처참하게 죽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진환씨도 똑같이 자신의 총에 맞아 죽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는 지난 5월... 중국에서 밀매된 조잡한 한자루의 권총을 손에 넣었다.
그는 그 스스로도 복수가 끝이 난다면 생을 마감하기로 되어있었다.
... ... ...
2012년 6월 26일
따분해 하늘 밑 세상만 바라보는 직속상관에게 말했다.
“저 오늘은 사람몸으로 내려갈거에요.”
“뭣하러? 진환이 만나러?”
“그래도 제 삶은 하나 바쳤는데... 마지막 가기전에 한번은 만나봐야지 않겠어요?”
“너 쓸데없는 짓 하러 가는건 아니지?”
“쓸데없는 짓이라니요?”
상관이 나를 지긋이 노려보며 말했다.
“허락은 하는데... 처신... 똑바로해...?”
“저도 이짓한지 오래됐어요... 다 알아요.”
... ... ...
6월의 느즈막한 햇살이 살에 닺으며 따끔거렸다.
아침 선선한 바람이 없었다면 꽤나 애먹었을 것 같다.
아침 언제나와 같게 진환이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 ... ...
2012년 6월 2일.
아들이 방문을 열며 거실로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진환이, 너 오늘 쉬는 날이냐?”
“네, 아버지. 하하, 저 오늘 새벽 4시까지 일하다 아침에 들어왔어요.”
“뭐? 뭐하러 그렇게 죽어라 일을해. 그냥 적당히 하면되지.”
“적당히가 어디있겠어요. 그냥 잘할 수 있을때 잘해두고 싶어요.”
“흠!…, 그래라 그럼.”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안방에서 나오며 진환이에게 말했다.
“아들? 밥줄까?”
“아니요. 그냥 주스한잔 하고 잠 좀 더 잘게요.”
“빈속에 안좋아. 한술만 떠.”
“하하. 어머니 자고일어나자 마자 바로 밥부터 먹을게요. 지금 너무 졸려서 그래요.”
“그럴래?”
“네. 그럴게요.”
진환이 주스한잔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문을 닫는 소리가 가슴을 치는 것처럼 아파왔다.
“얼마 안남았는데….”
“여보. 당신이 어떻게 일 좀 쉬어보라고 해봐요.”
“저렇게 좋다고 일하는데, 어떻게 말리겠어. 이제 해줄게 별로 안남았나봐….”
해줄게 얼마남지 않았다는 말에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요즘들어 아내가 눈시울을 붉히는 일이 많아졌다.
이제는 잘 구분이 가질 않는다.
방 안에서 깊히 잠이 들었는 저 아이가
그저 우리 부부의 사랑하는 아들 진환이 인건지.
아니면 그 옛날 우리를 아껴주던 진환이 형의 환생인건지.
1949년 10월, 아버지의 기억.
나는 가을이 싫었다.
밤이 이르게 찾아오는 것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매일같이 술만 마시는 아버지, 어디에서 있는지, 살아있는지 조차 모르는 어머니.
나는 매일같이 학교 운동장에서 밤이 찾아오는 것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나와 사정이 비슷했던 숙영이. 매일 방과후를 함께 놀았다.
아마 숙영이가 없었다면 정말 그 긴 시간들이 외로웠을 것이다.
‘나는 매번 공차기를 하자고 때쓰고 숙영이는 소꿉놀이를 하자고 때썼었지.’
해가 뒷산에 걸리며 온 세상이 노랗게 물들어 갈때면
항상 아쉬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집….“
겨울이 코앞이던 어느날이었다.
“어? 저 오빠 또 왔다.”
숙영이가 교문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진환이 형이 자전거를 끌고오며 슬금슬금 다가왔다.
“야, 선생님은 가셨냐?”
진환이 형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까 아~~까 갔어.”
“아~ 한발 늦었네. 너넨 왜 이 시간까지 이러고 있어. 엄마가 찾으신다? 집에가.”
난 진환이 형을 한번 처다보다 죄없는 땅바닥을 쿡쿡 나뭇가지로 쑤시며 말했다.
“우리는 엄마 같은거 없어.”
“?!…….”
잠깐동안 정적이 흘렀다. 잠시후 진환이 형이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뭐야? 야, 소꿉놀이하냐 둘이서? 하하하 짜식들 이담에 결혼할꺼야 둘이?”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숙영이가 팔뚝을 치며 말했다.
“무슨~ 언제 그랬어!”
그 모습을 보던 진환이 형이 호탕하게 웃더니 말했다.
“야, 배 안고프냐? 늦었는데 형이랑 밥 먹으러 갈까?”
... ... ...
2012년 6월 2일, 진환이 잠들어 있는 시각.
“야, 숙영아.”
“왜요….”
아직 눈가에 눈물이 다 마르지 않은 숙영이가 연약한 목소리를 냈다.
“진환이 형이 우리 맨~날 밥주려고, 학교 찾아왔던거 기억나?”
숙영이가 흣, 하며 코웃음을 치더니 대답했다.
“그럼요. 기억나죠.”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배고프면 진환이형 생각이 가끔 나더라?”
“그때 진환이 오빠가 우리 밥 못 먹을까봐 비 오늘날 뛰어와선, 그거 기억나요?”
“왜 기억안나? 다 기억나지. 비맞은 생쥐꼴해서는….”
“하하, 오빠가 우리 밥 많이 줬었죠….”
“하하하, 진환이 형 때문에 배고픈 날은 별로 없었지. 별로 없었지….”
“당신이 일좀 쉬라고 말좀 해봐요. 네?”
“그래. 여행이라도 다녀오자고 하자. 어디 먼곳으로.”
‘배가 고프지 않아도 매일 보고싶었어. 형…. 그냥 너무 좋았어. 그냥 전부다.
제발 내 말 좀 듣고 일 좀 쉬어줘. 지금도 매일같이 보고싶어. 정말이야….'
2012년 6월 18일, 동해바다의 어느 해수욕장.
아직 이른 시기였지만 은근히 사람들이 보였다.
아버지의 생각으로 가족이 모두 모여 동해로 휴가를 왔다.
‘얼마 안남았구나….’
바다앞에 쪼그려 앉아 진환이가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참 수영을 하던 진환이가 사람들 사이를 스쳐 지나며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누나는 수영안해?”
“음? 글쎄, 물 안 차가워?”
“좀 찬거 같기는 한데 시원하네, 그냥.”
“추울 것 같은데?”
“히히~.”
“꺅!”
진환이가 나를 순식간에 번쩍 들어 올리더니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순간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바닷물 바로 앞까지 온 진환이가
나를 던지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그 자리에 나를 가만히 세우며 물었다.
“걱정마~ 내가 설마 누나를 물에 빠트릴라고? 물 시원하지?”
“그렇네. 시원하다. 하하….”
1950년 4월, 누나의 기억.
일요일 할 일없이 진환오빠가 논일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있었다.
한참을 논에서 씨름을 하며 땀을 흘리던 진환오빠가 나를 보더니
멀리서부터 성큼성큼 다가왔다.
“야? 너 친구들이랑 뛰어 놀아야지, 여기서 뭐해?”
“그냥요. 심심해서요.”
“친구들 만나면 되잖아? 이거 구경하는게 더 심심할껄?”
“괜찮아요. 신경 안쓰셔도 되요. 일하세요.”
“야, 그렇게 빤히 처다보는데 일이 되겠냐?”
“그럼 놀아줘요.”
“뭐하고?”
“몰라요. 그냥 아무거나.”
“참, 애가 뜬금없네…. 야? 너 앵두 좋아하냐?”
“앵두가 뭔데요?”
“헤헷 야, 너 앵두도 몰라? 잠깐만?”
진환오빠가 진흙이 잔뜩 묻은 발로 논에서 올라오더니 길을 따라 주욱 멀리까지 걸어갔다.
한참을 가서 걸음을 멈춘 진환오빠가 작은 나무 옆에서서 무언가를 열심히 손위에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진환오빠를 가만히 지켜보는데 뒤에서
잘 모르는 아저씨 한분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꼬마야, 여기 저수지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니?”
“네? 저수지요?”
나는 냉큼 일어나 저수지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길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어깨에 손을 두른체 내 손가락이 가르키는 방향을
주시하려 애쓰며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잠시 후 뒤에서 힘찬 발소리가 들리더니 진환오빠가 고함을 쳤다.
“야! 이새끼야!!”
“?”
“?”
나와 길을 묻던 아저씨가 진환오빠를 돌아보는 순간 진환오빠는 아저씨가
내 어깨의 얹은 손을 힘껏 부리치며 아저씨를 논두렁으로 힘차게 밀어 넣었다.
진환오빠가 아저씨를 죽일듯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나는 영문을 몰라 눈만 동그랗게 뜨고는 진환오빠를 바라보았다.
맨발이 돌바닥에 찍혀 피가 줄줄 흐르는 지도 모르고
진환오빠는 거친숨을 몰아쉬다가 아저씨에게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를 패죽일 듯 몰아세워 겁을 주니 아저씨는 저 멀리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진환오빠가 달아난 아저씨를 노려보더니 쪼그려 앉아서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후…. 야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오빠가 미안하다. 아~ 저 새끼.”
“????”
“너 모르는 아저씨가 어디 따라가자고 그냥 따라 나서면 안되? 알았지?”
“????”
진환오빠가 나의 눈을 바라보며 누차 같은 말을 반복했다.
‘바보, 그 사람, 정말로 길만 묻는거였는데….’
... ... ...
2012년 6월 23일, 밤거리
핸드폰 넘어로 진환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야? 나 지금 역앞이야.”
“어 여기? 길 건너와서 버스정류장 있는 쪽이야. 진환이 너 왜
옛날에 나랑 술먹고 잠들었던데 있잖아? 하하하하 어, 야 기억나?“
“아, 어어 크하하하 어 알았어. 기다려 금밤갈게.”
정류장에서 길건너를 바라보니 진환이 옆에 수정이가
팔장을 꼭끼고 지하도로 내려가려는 것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진환이와 수정이가 다가오며 인사했다.
진환 : “용희아! 야? 하하 여기야 임마.”
수정 : “용희, 오랜만이야?”
용희 : “어! 아~, 둘이 딱 붙어서 뭐하는거야, 사람 눈꼴시리게 오자마자.”
진환 : “아하하, 야 부러우면 너도 한명 소개 시켜준다니까?”
수정 : “누구?”
진환 : “어? 그건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욕먹지 않을려면….”
용희 : “뭐?! 내가 어디가 어때서?!”
진환 : “아! 어? 아하하 너한테 욕 안먹으려면, 너한테 너한테 하하.”
수정 : “다모인거지?”
용희 : “어, 다른애들은 안불렀어. 더 부를껄 그랬나?”
진환 : “아니야 잘했어. 요즘엔 조용한게 좋더라 그냥 우리끼리 조용하게 한잔하자.”
수정 : “오늘도 거기로?”
번화가 술집을 지나서 조금 더 걸어가면 나오는 횟집.
진환이가 '이곳의 갈치구이는 진품'이라며, 언젠가부터 모일때면 항상 이곳이다.
진환 : “와…. 우리가 벌써 스물일곱이야?”
용희 : “너는 그렇지 나는 아직 만 스물여섯이야. 청춘!”
수정 : “생긴건 니가 제일 삭았어!”
용희 : “아, 얘가 할말없게 만드네?”
진환 : “하하하, 수정이는 어릴때부터 너한테 강하더라. 하하하하하하.”
용희 : “니가 뭘 모르는구나? 수정이 재는 너한테만 약한거야.”
진환 : “아 또, 그런거야?”
진환이가 수정이를 보며 묻자, 수정이 어울리지 않게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내게 소리쳤다.
수정 : “뭘 또, 약하면 어때? 우리 애인인데.”
용희 : “야, 징그럽게 꼬맹이때부터 알던 사이인데 내 앞에선 자중 좀 해봐.”
진환 : “하하하하. 야 그때 초등학교때 서울랜드로 매년마다 소풍가던거 기억나?”
용희 : “아!! 징그러운 서울랜드. 기억나지 왜 안나?”
진환 : “그때부터 그랬어. 너네 둘이 징그럽네, 시끄럽네 그러면서.”
수정 : “벌써 그렇게 됐나?”
진환 : "그렇지, 우리가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친했으니까 그때부터가 벌써…….“
‘아니지. 나는 더 오래됐지 너랑 친하게 지낸지….’
1950년 3월, 친구 용희의 기억.
나는 낚시대를 만든답시며 긴 장대에 실만 대충
빙글빙글 감아선 들고선 저수지로 향하는 길을 혼자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언제 다가온지 모를 진환이형이 옆에서 자전거를 천천히 몰며 물었다.
“야, 꼬맹이 어디가냐?”
“낚시가 저수지로.”
“낚시? 뭐야? 그거로 물고기 잡는거야?”
“어! 내가 만들었다~. 물고기 잡아서 엄마랑 구워먹을꺼야.”
“으응? 참, 야 그거론 물고기의 물자도 구경못해.”
“응? 왜??”
...
진환이 형은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운체 쏜살같이
저수지 밑 근처에 있는 개울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길 진환이 형의 넓은 등판이 멋지고 부럽다고 느꼈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진환이 형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가셨었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야, 꼬맹이 이렇게 여기다가 물고기들 집을 만드는거야.”
“응? 어떻게?”
진환이 형이 물이 깊지 않은 곳에 큰돌과 작은 돌들을
둥그렇게 올려 쌓더니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거로 뭐하는데?”
“물고기를 잡으면 여기다가 넣는거야.”
진환이 형은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맨손으로 물고기를 낚아채며
순식간에 물고기를 몇 마리나 잡아 올렸다.
“우와~ 형은 낚시대도 필요도 없네?”
“그럼~ 마, 형은 물고기 잡는 도사야, 도사.”
진환이 형을 따라 물속을 참방거리며 맨손으로
물속을 헤집었지만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
“형 나는 왜 안되?”
“하하 그렇게 소리내서 달려가면 물고기들 다 도망가.”
진환이 형이 내 옆으로 다가와 요령을 가르치다.
큰 돌하나를 슬쩍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 밑으로
작은 망둥어가 몇 마리 헤엄치는 것이 보였다.
진환이 형이 내게 눈짓을하며 잡으란듯이 고개를 앞으로 주욱 내밀었다.
가만히 손을 물밑으로 집어넣은 나는 조심스럽게 망둥어 한 마리를 양손으로 들어올렸다.
“허?! 잡았다!”
“잡았네! 크크크크 야 형말이 맞지? 형 도사야 임마~”
“오!!! 이거로 엄마랑 밥해먹어야지!”
“크크큿 야, 그거로 배불리 먹을라면 그냥 수백마리는 잡아야겠다.”
“오!!! 수백마리?”
내가 눈을 희번쩍 뜨며 진환이 형을 처다보자.
진환이 형이 손에 집고있던 돌을 한켠에 던져놓으며 웃었다.
잡은 물고기들을 근처에서 빌려온 망에 담았다.
자전거 뒷자리에 나를 태운 진환이 형이 물었다.
“야, 꼬맹이 너 소 타본적 있어?”
“소? 소, 우리집에 소 없는데?”
“하하 오늘 소한번 타볼래?”
“오!! 진짜?”
“이거는 무슨 말만하면 오,오 하하 그래 진짜로.”
진환이 형이 소를 끌고나와 소에 커다란 짐 수레를 걸고는
수레 뒤로 물고기망과 쌀을 한가마니 올려놓았다.
“음~ 야, 기다려?”
“응~ 하하, 와 가까이에서 보니까 진~~짜 크다.”
“그럼~”
어디로 잠시 다녀온 형은 쌀을 한가마니 더 지고 나와선
수레에 싣고는 나를 번쩍들어 소 등위로 얹어 놓았다.
“형 소한테 이불은 왜 씌웠어?”
“이불? 아하하하 너 그거 없이 소 등에 타면 남자는 큰일나. 하하하하”
따뜻한 햇살, 시원한 바람, 호탕한 진환이형.
그날 저녁 밭일을 마치고 오신 어머니가
쌀가마니와 물고기들을 보며 내게 물으셨다.
“저걸 진환이 총각이 줬어? 정말로?”
“어! 나랑 형이랑 저수지쪽에 가서 잡았어. 진환이형 막 맨손으로 고기 잡는다?
내가 엄마랑 잡아서 먹는다니깐, 막 그거 쪼끄만한 물고기는 수백마리 잡아야된데.”
“아니, 그거 말고….”
어머니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시더니 물었다.
“진환총각이 왜 우리한테 저걸…. 줬을까?”
어머니가 목 메인 목소리로 영문을 몰라 물으셨다.
“왜는! 나랑 진환이형이랑 친구야. 엄마 몰랐어?”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시며 물으셨다.
“진환총각이랑 너랑 친구야?”
“어! 친구끼리는 물고기같은건 아무것도 아니래.”
“아무것도 아니래? 진환총각이 그래?”
“당연하지!!”
... ... ...
2012년 6월 24일 12시 30분.
진환 : “용희 너 취한거 아니야?”
용희 : “취하긴 임마! 야 한잔 더해, 이쁜 내시끼~”
수정 : “야, 적당히 마셔, 너 많이 취했어.”
용희 : “그러냐?……. 그럼 이 병만 비우자? 응? 우리….”
횟집을 나서며 담배를 한까치 물었다.
용희 : “야, 너 다음에 언제쉬냐?”
진환 : “언제는 다음주 토,일요일 쉬지.”
용희 : “쉬기는 개뿔. 너 주말에도 맨날 일 나가잖아.”
진환 : “하하하. 젊을때 버는거야 마~”
용희 : “새끼, 또 한잔 해야지? 생일상이 이거로 되겠어?”
진환 : “이거면 됐어. 뭐 어차피 쉴 때마다 보잖아.”
용희 : “…. 그래! 마, 또 보자.”
수정 : “잘가~”
용희 : “응~ 잘가!”
‘오늘이 마지막인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급하게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뒤에서 진환이와 수정이가 잘가라며 소릴치는데 눈물을 보일 수 없어
“어! 또봐!, 또!” 하고 소리치며 손만 들었다 내려놨다.
2012년 6월 24일, 새벽 1시
진환과 수정이 용희를 보내곤 길을 돌아섰다.
수정이가 진환의 얼굴을 슬쩍 들여다보더니 물었다.
“생일인데 이정도로 되겠어?”
“용희랑 너 봤으면 충분하지.”
“자긴 용희가 그렇게 좋아?”
진환이가 내 얼굴을 물그럼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하하 친구잖아?”
“맨~날 용희,용희.”
진환이와 택시를 잡아 뒷자석에 앉았다.
진환이의 어깨의 기대어 차창 앞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수정아, 졸려?”
“음? 아니 괜찮아.”
신호를 기다리던 택시기사 아저씨가 차창을 올리며 말씀하셨다.
“아... 또 오네... 이놈의 장마가 얼른 끝나야지. 이거 원 지겨워서….”
... ... ...
1949년 7월, 애인 수정의 기억.
학교를 마치고 일찍 집에 돌아가는 길.
교문앞으로 진환오빠의 모습이 보인다.
한손에 꽃을 꼭 쥐고있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다.
‘그날도 선생님 기다렸던 거겠지?’
이유도 없이 밑도 끝도없이 진환오빠에게 다가가며 성질을 냈다.
“여기도 또 뭐해요!”
“응? 수정이네? 선생님은 안나오시냐?”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애가, 왜 갑자기 소리는 지르고 그래?
매일 아침마다 현정선생님을 뒷자리에 태우고 나타나는
모습부터가 내 눈에 너무 거슬렸다.
왜 무엇이 그렇게 미운지도 모른체 그저 마냥 진환오빠가 미웠다.
나는 진환오빠를 한참 노려보다가 휙하고 눈을 돌리며 집을 향해 걸었다.
집으로 향해 걷는 길. 끝도 없이 울화가 치밀었다.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눈가에 눈물이 베여서 한방울씩 흘러내렸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빛이 주춤하더니 멀리서부터 다가온
먹구름이 내 머리위를 지나려 하고 있었다.
얼마 걷지않아 머리위로 빗방울이 한방울, 두방울 씩 떨어지기 시작하며
금방 쏴~하는 소리와 함께 급하게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길옆 나무밑으로 다가가 비를 피했다.
이유모를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야?”
누가 가만히 부르는 소리에 바라보니 진환오빠가 비를 맞으며 자전거에서 내렸다.
“야, 너 집 어디야?”
“뭐가요….”
“이거 비, 안그칠꺼야. 장마비거든.”
“저도 알아요.”
“알면 뭐해? 타 빨리. 아! 야 이것 좀 받아.”
진환오빠가 손에 꼭 쥐고있던 꽃들을 내게 내밀곤
자전거에 안장에 올라앉더니 뒤에 타라는 시늉을 했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빗방울이
더 굵어지려하자 진환 오빠가 내게 소리쳤다.
“야, 수정아 꽉잡어. 빨리 달릴꺼야.”
슬슬 패달을 더 빨리 밟는 것이 느껴지며 자전거가 속력을 높혀갔다.
난 진환오빠의 허리를 양손으로 감싸안고 한손에 들린 꽃을 꼭 쥐은체 집까지 갔다.
‘5학년 이었나. 그 나이도 어렸던게….’
집앞에서 자전거를 세우며 진환이 나를 처다봤다.
꽃을 돌려 받으려는듯 하기에 나는 급하게 뒤돌아서서 집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방에 앉아 물기도 닦아내지 않은체 손에 쥔 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2012년 6월 24일, 택시 안.
진환오빠를 마지막으로 봤던 날.
진환오빠가 겁에 질려있던 우리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던 것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 웃음, 그 웃음이…. 없었어도 난 이번 생을 진환오빠와 함께 했을까...’
“오빠….”
진환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뭐? 오빠? 하하하 깜짝아. 왜이래? 귀엽게?”
“하하...”
‘그날 우리보고 왜 웃었어요?’
... ... ... ...
2012년 6월 26일.
아들이 급하게 집을 나서려는게 보였다.
“야, 아들 밥먹고가!”
“아, 엄마? 아 괜찮아요.”
“안되. 오늘 너 생일이라 미역국 끓여놨어. 먹고가.”
“네?”
식탁에 가족들이 모여 앉아 조용히 밥을 먹었다.
“아들? 오늘, 언제 들어와?”
“글쎄요~ 흠~…….”
별말없이 밥을 다 먹은 진환이가 출근길을 나섰다.
“다녀올게요~” 하며 문을 닫는 소리에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뒤로 가족들이 다가와 내 등을 감싸안았다.
“여보, 우리 진환이, 이제 내 아들인데, 내 아들….”
2012년 6월 26일, 출근길.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진환을 모르는 여자가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시선에 아랑곳 안던 진환이 힐긋하며 그 여자를 보곤 다시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귓잔등으로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묘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집에서 15분 거리의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길.
어느순간 이상한 남자가 나는 쏘아보는 것을 느꼈다.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스처지나가며 출근길을 재촉했다.
‘얼굴에 뭐 묻었나….’
지하철역에 거의 도착할때가 되어 지하철 다리밑을
지나길에 뒤에서 누군가 내게 소리쳤다.
“야! 최진환!”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는데 갑자기 뒤에서
펑!하는 굉음이 지하철 다리 밑을 진동시키며 커다랗게 울렸다.
아까 길에서 나를 노려보던 남자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하더니
갑자기 뒤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무슨일인지 영문을 몰라 주위를 살폈다.
횡단보도에서 나를 바라보던 여자가 바닥에 누워있었다….
2012년 6월 26일, 지하철역 다리밑.
진환씨의 뒤를 쫒아 지하철역에 거의 도착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고 진환씨와 눈을 마주처봤으나,
역시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안다.
그 전까진 몰랐는데 성큼성큼 걷는 진환씨의 걸음의 넓은 보폭을
사람의 몸으로 따라잡으려니 숨이 조금 차올름을 느꼈다.
‘매번 등만 바라봤었지...’
매일같이 바라보던 넓은 등….
‘자전거 뒤에 앉은 나를 부르던 진환씨, 내게 우물쭈물하는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저기요. 정현씨….”
“네?”
“……. 아니에요! 하하하.”
‘그 때 무슨말 하려고 했어요?’
...
뒤에서 작은 권총을 가슴주머니에서 꺼내드는
남자가 진환씨를 무섭게 쏘아보며 소리쳤다.
“야! 최진환!”
진환씨를 향해 달렸다. 50년간 나와함께 수호계에서 몸담던 선배가
길옆에 서서 ‘쓸데없는 짓’이라는 듯 실눈을 뜨며 날 바라봤다.
선배의 옆을 스쳐가며 진환을 힘차게 밀어냈다.
펑! 하는 소리가 다리 밑을 시끄럽게 울렸다.
가슴팍에 망치를 얻어 맞은 것 같은 통증과
그 주위의 살들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온몸에 퍼져갔다.
나를 발견한 진환씨가 놀라며 내게 달려왔다.
“무슨?! 이봐요!!”
진환씨가 위에 입고있던 자켓을 벗더니
총이 꿰뚫고 지나간 상처위에 덧대었다.
진환씨가 휴대전화를 들고 외치는 목소리가 온 터널을 울렸다.
“……. 놀랐, 죠…?”
“괜찮아요? 기다려요. 구급차 금방올거에요.”
“저…. 저기요…?”
“네!! 네,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선배가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있다.
현정 : ‘딱 하나만 물어보면 안되요? 딱 하난데...’
선배 : ‘하나도 어떤 하나냐에 따라 다르겠지... 너, 벌써 규칙을 너무 많이 어겼어...’
단 한가지만...이라고 생각하니 머릿속으로 하고싶던 말들이 어지럽게 엉켰다.
‘매일 자전거타고 나 학교보내주는거 힘들지 않았어요?’
‘그때, 전쟁터에서 무슨일 있었어요?’
‘죽을때 많이 아팠어요?’
‘저 기억안나요?’
‘저 안보고싶었어요?’
진환씨가 한참동안 말이 없는 내가 걱정이었는지
어느세 손을 꼭 움켜잡고는 무언가 소리치고 있었다.
‘안들려...요. 진환씨.’
어차피 지워질 영혼, 무엇이 아까워 마지막말 한마디를 못 뱉었을까.
망설임이 길었던 탓에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파란 불빛과 빨간 불빛이 교차되는 곳을 향해 진환씨가
달려가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듯
선배가 내 앞에 서며 진환씨를 향한 시야를 가렸다.
선배 : “두번의 생을 바칠만한 사람이야? 현정아, 바보야.”
현정 : ‘두번? 두 번이 뭐에요. 제 전부에요. 제 전부에요... 선배.’
선배 : “미안, 위에서 너 빨리 대리고 오래서. 난리야 지금 위에서...”
현정 : ‘딱 한마디만 물어 본다니까요...’
선배가 다시한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번지는 것을 느꼈다. 희미하게 진환씨가 보인다.
‘진환씨... 저, 사랑했었죠?... 저 사랑했었죠?’
... ... ...
병원에서의 전화를 받고 가족들이 급히 진환을 찾아 병원으로 향했다.
은연중 진환의 죽음을 받아들였던 모든 사람들이 병원에서 말없이 누워있는
현정선생님을 보며 가만히 숨을 죽였다.
아직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진환을 보며 어머니가 목을 놓아 울음을 터트리셨다.
... ... ...
3년 후 2015년 6월 26일.
가족들이 병원 환자 회복실에서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간을 보내고있었다.
수정의 가슴에 안긴 아기가 세상에 찾아온 피곤함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수정 : “자기, 우리 애기 누구 닮은거 같아?”
진환 : “음... 딸이니까, 얘쁜 수정이, 너 닮아야지?”
수정 : “닮아야 하는거 말구~ 나 별로 안닮은거 같은데...”
진환 : “하하하 나 닮으면 큰일인데?”
수정 : “아니야, 자기 닮아도 이쁘게 클꺼야...”
진환 : “우리 딸이니까 우리 닮았겠지, 잘 봐바 벌써 낮이 익잖아?”
가족들 : “...”
...
누나 : “애기 이름은? 생각해봤어?”
진환 : “생각은 몇 개해봤는데, 글쎄... 아직 잘 모르겠네?”
수정 : “...”
아버지가 조용히 입을 여시며 아기의 이마자락을 슬쩍 쓰다듬으셨다.
아버지 : “밝고 정이 많은 아이라고 짓자. 밝을 현에 인정 정. 현정이...”
... ... ...
... ... ...
... ... ...
-끗-
숏다리코뿔소의 꼬릿말입니다
숏다리코뿔소 자작소설 링크
사회의 우등생
동생의 여름방학 계획
아부지 귀빠진 날
바람난 여자친구
가출소녀
흉가에서의 하룻밤
심사
아름다운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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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4 21:36:37 125.180.***.172 미를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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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4 22:01:00 65.49.***.60 Daughter_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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