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 자료집
2000년 국제법정은 일본군 성노예제도의 책임을 묻고 가해자들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 세계시민의 힘으로 성사시킨 민간국제법정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뿐만 아니라 지금도 세계각지에서 계속되고 있는 무력분쟁과 그 속에서 피해당한 여성들의 존엄성 회복, 나아가 여성에 대한 전쟁범죄 재발방지를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이 법정은 한국 등 아시아 피해국 8개국과 일본, 총 9개국이 공동으로 개최하고 한국의 21명 생존자를 포함하여 70여명의 생존자들과 2천여 명의 세계 인권, 평화, 여성단체 대표들과 회원 및 참관인들이 참여하였다. 생존자들의 증언은 판사단 뿐만 아니라 법정 참관자 모두에게 전쟁 중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성범죄의 잔인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고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의 사실성을 확인시켜주었다. 이를 토대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판사들은 “히로히토 유죄”, “일본정부의 배상책임”을 판결하였고 이는 정의의 회복과 여성의 존엄회복을 위해 아픈 과거를 증언한 생존자 여성과 아시아 여성들의 염원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1998년 4월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석한 여성단체 모임에서 일본 바우넷 재팬(VAWW-NET JAPAN)의 마쯔이 야요리 대표가 개최를 제안하고, 서울에서 개최된 제 5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The Women's International War Crimes Tribunal 2000 For the Trial of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을 개최하기로공식 결정하였다. 그로부터 2년간 준비과정을 통해 2000년 12월 7-12, 동경에서 2000년 국제법정이 열렸고, 2001년 12월 3~4일, 네덜란드에서 최종판결이 이루어졌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1992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통해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제기된 이후, 현재 일어나고 있는 무력갈등 상황에서의 성폭력문제와 맞물리면서 국제여성인권운동의 주요 주제로 부상하였다. 이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여성폭력문제특별보고관인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씨의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보고서가 발표되고, 일본정부에게 진상규명과 공식 사죄 및 법적 배상 등을 권고하고 있는 동 보고서가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채택되면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국제적 관심과 여론은 더 뜨거워졌다.
이러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국제연대 운동의 성과는 1998년 유엔이 설립한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서 무력갈등 상황에서 일어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전쟁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이 같은 과정에서 2000년 국제법정이 잉태되었고, 1948년 도쿄에서 열렸던 극동군사재판소에서 열지 못했던 일본군‘위안부’ 제도를 기소하기 위해 2000년 국제법정을 열게 된 것이다.
2000년 국제법정이 있기까지 일본군‘위안부’문제와 관련된 각 국가들은 각각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고, 한국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중심으로 1998년 한국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후 1999년 2월, 서울에서 ‘국제실행위원회’가 창립하였고, 8차에 걸친 국제회의 및 법정 준비를 통해 2000년 국제법정을 추진하였다.
2000년 국제법정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세계 여성인권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남겼다.
첫째, 일본군‘위안부’ 제도의 책임자 처벌을 회피하고 있는 일본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고발을 넘어서서 증거에 의한 사실규명과 형사책임을 묻는 형사재판을 한 점
둘째, 이 법정은 피해자 자신들에 의한, 그리고 그들을 위한 10년 가까운 노력의 정점을 이룬 사건이라는 점.
셋째, 2000년 국제법정은 그동안의 여성에 대한 범죄, 특히 성 범죄를 축소하고 면책하고, 전쟁시 성폭력문제를 불처벌로 이끌어 왔던 남성중심의 군사법정들, 뉴른베르그 군사법정이나 도쿄 군사법정을 바로잡는 재판이었다. 즉, 2000년 국제 법정은 국제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무력분쟁 아래의 성폭력에 대한 불처벌의 악순환을 끊고 재발방지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기존 국제법이 갖고 있는 성차별적인 편향을 극복했다고 볼 수 있다.
본 자료집에서는 기소장 및 판결요약문, 법정 녹취록을 실음으로써 본 법정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중략)
본 국제법정은 일본정부가 전쟁 말기에 이에 관련된 많은 문서들을 파기했다는 증거를 보았다. 일부 남겨진 자료를 통해서 성노예화가 정부에 의해 진행된 것임을 보았다.
일본정부도 1993년 ‘위안부’ 관련 문제들을 발표하였다. 사실도 시인하였다. 그러면서 이런 역사적 사실에 대해 유감이라고 했다. 그 ‘유감’은 사죄의 의미가 아니었으며 어떤 배상도 없었다.
본 법정에 제시된 증거와 조사 자료들은 물론 불충분하지만, 많은 지역에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었음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무라야마 총리가 일본군‘위안부’들에게 깊은 사과를 하고 국민기금을 마련하여 희생자들에게 배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기금은 민간기금일 뿐이다. 일본정부가 책임을 지는 행위가 아니기에 피해자들도 모욕적이며 오히려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고 했다.
2.
일본군‘위안부’와 관련한 사안은 1990년대 초부터 UN인권위원회, UN인권소위원회, 국제노동기구(ILO), 국제법률가협회(ICJ) 등 각종 국제기구에서 주요의제로 다루어져 왔다. 뿐만 아니라 피해 각국의 여성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연대회의를 결성하는 등의 국제적인 활동도 끊임없이 해왔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국제적인 활동을 통하여 국내 및 해외의 운동단체들은 일본 정부에 사과와 보상을 요청하는 국제기고의 권고들을 통해 일본정부에 압력을 넣을 수 있었다.
이에 본 자료집에서는 국제기구에 제출된 보고서 및 연대회의의 결의안, 세계대회에서 작성된 행동강령 등 국제사회의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에 대한 바람을 담고 있는 문서들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이 자료집을 통해 일본 대 한국이라는 견지에서 벗어나, 일본군‘위안부’문제를 국제법적 틀과 젠더의 틀에서 분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래에는 본 자료집에 제시된 문서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다.
1장 : UN 관련문서
1. UN 인권위원회
UN 인권위원회의 1994년 3월 4일 결의안(1994/45)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관련한 특별보고관을 임명키로 했고, 같은 해 4월 스리랑카의 변호사 라디카 쿠마라스와미가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되었다. 쿠마라스와미는 1995년 7월 서울을 방문하여 관련 민간단체 및 정부관계자, 국회의원, 법조인, 역사학자 등을 만나 조사를 실시했으며, 이후 일본 도쿄에서도 일본정부, 민간단체, 일본의회 대표들, 학자 등과 면담하였다. 또한 북한은 인권센터의 두 보좌관이 대신하여 방문조사하였다. 조사결과는 1996년 보고서로 제출되었으며, 이 보고서의 권고부분에서는 일본 정부에 ‘위안소’의 설치가 국제법 위반이었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질 것, 배상문제 특별보고관이 제시한 원칙에 따라 피해자 개개인에게 배상할 것과 이를 위해 특별행정법정을 설치할 것, 모든 문서와 자료를 공개할 것, 피해자 개개인에게 문서로서 공개적으로 사죄할 것, 역사적진 진실이 반영되도록 교육과정을 개편하여 의식을 높일 것, 가능한 한 범죄자를 찾아내어 처벌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후 쿠마라스와미는 임기 동안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보고서 내용 중 일부로 다루었다(1998년, 2001년, 2003년)
2. UN 인권소위원회
1998년 8월 21일, 유엔인권소위원회 산하 ‘소수자에 대한 차별방지 및 보호 소위원회’ 특별보고관 게이 맥두걸 변호사는 인권소위원회에 제출한 <전시 조직적 강간, 성노예, 노예적 취급 관행에 관한 특별 보고서>에서 일본군‘위안부’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임을 규정하고, 일본정부에게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과 위안소 설치에 관여했던 책임자 기소의무가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유엔차원의 개입을 촉구하였는데, 유엔인권위원회 인권고등판무관이 위안소 설치에 관련이 있는 책임자들을 기소해야 하며, 일본관리와 함께 증거를 확보하고 피해자의 증언을 청취, 일본전범에 대한 재판 준비를 요구했다. 그리고 일본정부에게 유엔의 사무총장에게 최소한 일년에 두 번씩 진행사항을 자세히 보고해야 함을 권고했다.
3.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28·29회기의 보고서에서 일본 내에서 일어나는 여성차별과 관련된 현안과 일본의 비정부기구 및 정부의 동향을 살피고 일본군‘위안부’문제와 관련해서 우려의 내용을 표했다. 본문에서는 위원회가 일본 당국이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해결책 모색을 위해 노력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4.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위원회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위원회는 2001년 8월 21일 열린 42차, 43차 모임에서 일본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E/1990/6/Add.21)의 국제 규약 이행에 대한 두 번째 정기 보고서를 검토하고 일본 내의 상황 중 우려되는 주제들에 대해 언급했다. 여기에서 위원회는 본래 사적 기금을 통해 조성된 ‘아시아여성기금’에서 일본군‘위안부’에게 제공되는 보상이 피해 여성들의 입장에서 수용 가능한 방안으로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2장 : 국제대회문서
1. 비엔나 세계 인권대회
비엔나 세계 인권대회의 행동강령 중 일본군‘위안부’문제와 관련된 부분은 ‘여성의 평등한 지위와 인권’에 관한 항목이다. 그 중 문단 38의 끝부분에 “전쟁 중 여성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는 국제인권법과 인도주의적 법의 기본적인 원칙에 대한 침해이다. 현재 이러한 침해는 특히 살해, 조직적 강간, 성노예, 강제임신 등을 포함하여 특별히 효과적인 대응을 요한다. (Current violations of this kind, including in particular murder, systematic rape, sexual slavery, and forced pregnancy, require a particularly effective response.)”라고 되어 있었다. 일본이 초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현재’라는 용어를 초안 심의회의에서 집어 넣어 상대적으로 ‘과거’의 사건인 ‘위안부’문제를 배제시키려 한 것이다. 이에 여성운동그룹을 중심으로 한 로비팀은 ‘현재’라는 용어를 빼고 맨 뒤에 ‘처벌(and prosecution)’을 추가하도록 요청했고 현재라는 용어는 ‘모든(all)'로 대체되었다.
2. 북경 세계 여성대회
비엔나 세계 인권대회에서와 같이 여성인권그룹은 행동강령이 올바로 채택되도록 모임을 갖고 전략회의를 진행했다. 이에 ‘D. 여성에 대한 폭력’부문과 ‘E. 여성과 무력갈등’부문에 대한 토론에서 전쟁 중 여성이 당하는 강간을 전쟁범죄와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처벌, 배상이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규정케 했다. (특히 145항, c·d·e)
3장 : ILO 전문가위원회 보고서
1995년 11월에 열린 전문가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성노예제(sexual slavery)로 성격이 규정되어야 하고 그것은 강제노동조약 위반이라는 판단을 내렸으며, 일본정부가 빠른 시일 안에 이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할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 이후 1997년, 1999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의 보고서에서도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계속 언급되어 왔다. 특히, 1997년 3월의 보고서는 강제노동조약의 구체적인 조항에 따라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보다 상세한 법적 해석을 내렸다. 즉, 1조 2항, 14, 15조에 따라 배상이 이루어져야 함을 확인하였으며, 2조 2항의 a와 d에서 규정하고 있는 강제노동 금지의 예와 상황이 군위안부 문제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음을 명확히 밝혔다. 또한 25조에 근거하여 이 강제노동의 불법적 시행은 형사 범죄로 처벌되어야 하며, 일본의 형법 176, 177조로서도 처벌이 가능함을 명기했다. 특히, 일본정부와 랭고가 일본정부는 이미 사죄했으며, 국민기금으로 배상을 대신했다고 한 주장에 대해서 전문가위원회는 피해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조치를 계속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1999년 보고서는 일본정부에 대해 매우 강력한 권고를 내렸다. 첫째, 일본정부와 랭고가 보상에 대신한다고 주장한 국민기금이 피해자 다수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했으며, 둘째, 피해자들이 고령이므로 일본정부가 시급히(expeditiously, urgent)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2001년과 2003년 ILO 총회에서는 기준적용위원회 노동자그룹이 주요의제 중 하나로 일본군성노예 문제를 다루기로 결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비록 노사정의 합의 실패로 안건채택에는 실패했지만 ILO 기준적용위원회 노동자그룹에서 일본정부의 강제노동조약 위반문제를 그만큼 중요한 이슈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려냈다. 특히 2003년에는 사용자그룹의 반대로 노동자그룹에서 의제로 채택한 것이 또다시 합의실패로 돌아가자 이에 대해 사용자그룹과 일본정부에게 강력히 항의하는 편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4장 : 각종국제결의문
1. 국제법률가협회
일본군‘위안부’문제에 관한 국제법률가협회(ICJ) 최종 보고서는 1994년 11월에 <Comfort Women: an Unfinished Ordeal>이라는 제하로 출판되었다. 205쪽 분량의 이 책에서는 말미에 결론과 더불어 일본 정부에 대한 7개항의 권고를 담고 있다. 일본은 모든 자료를 공개할 것, 피해자의 증언을 듣고 이를 처리할 수 있는 행정적 포럼을 설치하거나 현재 진행중인 소송을 대신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할 것, 이를 하지 않는다면 피해자의 완전한 재활을 위한 조치를 택할 것, 또는 국제법 전문가로 구성된 재판정이나 중재기구를 구성할 것, 그동안의 임시적 조치로 피해자에게 미화 4만 달러씩을 지급할 것, 일본이 현재의 정책을 고집할 경우 피해자를 대표하는 비정부단체들은 국제사법재판소의 의견을 구할 것, 한국과 필리핀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관련 조양의 해석을 요청할 것, 연합국은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일본이 피해자를 위해 적합한 조치를 취하도록 할 것 등이다.
2. 기타 결의문
1992년 필리핀, 대만, 인도네시아, 태국, 홍콩, 한국의 피해국 여성들과 피해자, 그리고 일본의 여성단체들은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아시아연대회의를 결성하여 일본군‘위안부’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결의했다(1992, 1993, 1995, 1998, 2003년).
그리고 1999년, 미국의 마이클 혼다 의원을 중심으로 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군에 의한 전범과 관련한 하원 합동결의문 27조가 작성되었으며, 이 결의문에서는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여성들을 포함한 범죄의 피해자들에게 즉각적인 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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