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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 독일과 일본은 과거사에 있어서 정말 가장 대조적인 나라입니다.
독일은 진정성 있는 반성의 대표적 나라로, 그리고 일본은 참회나 후회 없는 뻔뻔함의 대표적 나라로.
독일은 과거의 전쟁을 뼈저리게 참회하고, 현재 우익적인 발상이나 민족주의가 거의 죄악시되는 나리입니다. 반대로 일본은 지금도 야스쿠니의 유슈칸에서 제2차대전을 해방전쟁으로, 연합군의 역사를 승자의 기록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과거 일본제국의 위대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달랐기에 이 두 나라는 이렇게 다를까요?
제2차 대전 종전 직후, 이 두 나라의 인민이 매우 다른 전후를 경험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공통점도 많았습니다.
독일과 일본은 패전 직후 사상 최대의 빈곤과 기아사태를 경험했습니다.
화폐경제가 무너지고 식량조달 시스템이 붕괴했습니다.
사람들은 생필품을 얻기 위해 담배 또는 교환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화폐로 삼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량은 너무 희귀해서 기아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몸을 팔면서 군인들의 자비를 구걸하면서 생필품을 조달했고,
많은 남성들은 그런 여성들을 욕하고 조롱하면서도 자신들 스스로 생필품을 조달하지 못하는 사실에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참사는 독일과 일본 모두 같이 경험한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인과 일본인이 다르게 경험했던 것은 바로 "복수"
독일인과 일본인의 경험은 이 부분에 있어서 크게 달랐습니다.
식민지 만주와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은 재빨리 철수했고, 물론 그들이 고통으로부터 면제된 것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덜 상처입고 현지의 관리자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인이 가장 많았던 식민지, 조선은 일본인들의 안전한 귀환을 보장했으며, 일본인을 상대로한 린치는 대체적으로 적었습니다. 물론 해방 직후에 조선에 남았던 일본군의 규모가 대단하여 조선인들이 감히 일본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인이 경험했던 것은 아주 달랐습니다.
독일인이 수백년동안 고향으로 삼은 곳에서도 독일인들은 단지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린치당했고, 재산이 몰수당했으며, 강간을 당했고, 심지어 학살당했습니다.
동프로이센, 슐레지앤, 주데텐란트 등은 독일인들이 새로 정복한 곳이 아닌, 오히려 수백년동안 살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곳에서도 독일인들은 위협당했고, 심지어 추방당했습니다.
이렇게 추방된 독일인들의 수는 천만명이 넘습니다.
추방만으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었을텐데....
사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심지어 독일 본국의 독일인들은 피지배민족, 지금까지 독일인들이 인간이하(Untermenschen)라고 경멸했던 사람들의 복수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심지어 독일인들이 수용소로 삼았던 아우슈비츠나 베르겐-벨젠은 이제 독일인들을 수용한 곳으로 변했고, 심지어 독일인들이 죽임당하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물론 연합군은 공식적으로 사적인 복수를 금했지만, 현장의 군인들은 대게 상층부의 정책을 무시하고 피해자들이 복수의 기회를 갖는 것을 굳이 막지 않았습니다.
한 수용소에서는 예전에 수용된 사람들이 입장이 바뀌자 한 독일인 병사를 가두고 그를 구타하다가, 연합군 GI가 오면 그를 침대 밑으로 숨겨놓은 다음 연합군 GI가 지나가자, 그를 다시 꺼내서 죽을 때까지 구타했습니다.
더욱 더 충격적인 사건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발생했는데, 한 운동장에 수천명의 독일인들을 가두고 그렇게 수용된 군중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그리고 독일 본토 베를린에서는 수십만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강간 당하고 또 강간당했습니다.
독일여성들은 다른 독일남성들이 보는 앞에서 강간당하고, 그 독일남성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무기력함을 강제로 경험해야 했습니다.
나치가 아닌, 오히려 나치에 반대했던 독일인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폴란드인, 체코인, 러시아인에게 나치부역자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인은 단지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구타해야하고, 침을 뱉으며, 죽여야할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광란에 빠져 독일인들에 대한 복수를 맘껏 자행했습니다. 속이 풀릴 때까지 말이죠.
전쟁이 끝나고 몇개월이 지나자 이러한 광란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반독일감정은 전쟁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여러 유럽 나라에서 식당이나 카페이서 독일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있을 정도로 말이죠.
일본은 이러한 피의 복수, 따돌림과 분노어린 눈빛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일본은 인류사 최초로 핵폭탄을 경험한 유일한 나라였지만, 그것은 즉각적인 파괴와 죽음이었을지언정
피와 살로 이루어진 다른 사람이 똑같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다른 사람을 향해 던지는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그들이 점령한 육지에서 떨어진 섬나라였기 때문에 더더욱, 피지배민족의 분노를 거의 겪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어떤 의미에선 독일은 철저한 복수극으로 1차 충격을 받고, 철저한 따돌림으로 2차 충격을 받았기에 지금과 같이 국민성을 완전히 개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독일처럼 국민성을 개조할 정도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거치지 않았기에, 일본으로서는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놓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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